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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작가님의 서재입니다.

대항해시대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로미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16 19:01
최근연재일 :
2022.07.10 10:26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9,115
추천수 :
558
글자수 :
253,585

작성
22.06.15 12:58
조회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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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모험의 끝

DUMMY

슈우우웅.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 무렵,

한차례 서늘한 바람이 그들 사이를 지나고.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들 앞에 홀로 선 자.

왜인지 그 기운만으로 모골을 송연케 하는 자.

그의 입에서 마지막으로 흘러나온 말.


‘너흰 모두 죽는다.’


그 말의 의미를 잠시 되새겨보는 그들···.


‘죽어? 우리가? 갑자기? 왜?’


지금껏 수많은 부녀자를 납치하고 범하고 죽이면서도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 자들. 술과 약물에 찌들어 정상적 사고가 힘든 그들이었다.


지금 눈앞의 상황이 무엇인지 도무지 판단이 힘든 그들에게 레온이 보여주려 한다.


자신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자신들이 어떻게 죽어갈 것인지···.


분노에 찬 레온이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이내 붉고 푸른 검기가 레온을 감싸 돌았고

그의 몸이 흩날리듯 사라지며 자취를 감추었다.


스윽. 스윽. 스윽.



상대는 총 일곱 명. 그리고 단 세 번의 검격.

그걸로 끝이었다.


상대가 생각하고 반응하고 저항할 그 어떤 틈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에게 내려진 형벌에 순응할 수 밖에 없었다.


검이 지나간 자리에 생긴 깊게 패인 상처.

뒤늦게 손을 뻗어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으려 해도 아무 소용없었다.


그들 사이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레온.


그의 검은 언제 그랬냐는 듯 검집에 꽂혀있었고, 동시다발적으로 뿜어지고 흩날리는 일곱개의 핏물은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걷는 레온.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 그 끝에 라일라가 있었다.



**



여긴 어디지?

얼마나 잠든 것일까?

의식을 잃은 채 얼마나 누워있었던 걸까?


눈을 뜬 라일라에게 보이는 모든 광경이

전혀 낯선 세계의 풍경처럼 생경하게 다가왔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던 라일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비릿한 피내음과 함께 지난밤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두 번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공포의 순간,

지우고 싶은 기억인 동시에 잊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 혼란스런 그녀.


그 순간에 다가와준 한 남자가 있었기에.

그가 전해준 포근하고 다정한 말.

그리고 이마에 와닿았던 입술의 느낌.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은 라일라였다.


왜일까?

의식을 놓기 전 자신을 바라보던 레온의 눈빛과

이마에 닿았던 그 감촉 때문이었을까.


눈을 뜨게 된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눈에 레온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언가 가슴 아팠다.


눈을 뜰 때 가장 먼저 보였으면 하는 이가 그였다. 어젯밤 눈을 감을 때처럼 눈을 뜰 때도 그 다정한 모습을 기대했던 걸까?


물론 그래야할 의무는 없지만,

자신이 눈을 뜰 때까지 지켜주고 바라봐주는 것.

그걸 원하고 있는 자신···.


눈을 뜨자마자 레온부터 찾는 자신이 쉽게 이해가지 않았다.


‘이게 무슨 감정일까?’


한창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빠져든 라일라였다.



“어? 언니 일어났다!”


“어멋! 깜짝이야!”


“언니 잘 자써? 오빠가 언니 깨면 말해달라고 했거든. 그래서 엠마가 기다렸어. 히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라일라가 자신의 앞에 선 여자아이를 바라봤다.


언제부터 자신의 옆에서 기다렸을까···.


커다란 눈망울과 오똑한 코, 은은한 갈색빛이 도는 머리색. 어딘지 모르게 레온을 닮아있었다.


“너 혹시 레온 동생이야? 이름이 뭐야?”


“응, 나 엠마. 오빠는 우리 오빠 맞아!”


자그마한 아이가 퍽 귀엽게 느껴진 라일라.


“넌 말도 참 이쁘게 하네. 언니한테 와 볼래?”


제법 컸는지 낯선 사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엠마가 그녀의 품에 포옥 안겼다.


어느새 들어온 레온이 두 사람을 말없이 바라보다 조용히 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


부웅. 부웅.


출항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널리 퍼지고.


바람을 등에 업은 뉴키즈호가 베네치아 항구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치안대원의 눈을 피해 나세르와 라일라를 승선시키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큰 위험은 없었다.


출항 절차를 무사히 마친 레온일행과 뉴키즈호가 다시 알제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함장실 앞의 랄프가 난간을 잡으며 소리쳤다.


“와우, 역시 난 항해 체질인가봐. 이렇게 배를 타고 나가는 게 너무 좋아. 저기 바다 좀 봐봐. 레온. 너무 아름답지 않냐?”


그의 말에 잠시 바다를 응시하는 레온.


지중해의 태양을 머금어 반짝이는 쪽빛 바다.


저 멀리 푸른 하늘과 넘실대는 파도가 하나의 선으로 합쳐지고, 출렁이며 끝없이 펼쳐진 물의 향연이 레온을 반겨주는 느낌이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레온의 머리를 흩날리며 간지럽혔고 배 주위를 날며 끼룩대는 갈매기의 울음소리마저 상쾌함을 더해주는 기분이었다.


“그래, 바다에 나오니 좋네.”


“어찌됐건 레온, 우리 이번에도 성공한 거 맞지?”


상처없이 라일라를 데려오라는 발바롯싸의 의뢰.이번에도 멋지게 완수한 것이다. 물론 예상보다 사건과 사고가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 어쨌건 라일라가 우리 배에 탔고 알제로 돌아가고 있으니 성공한 셈이지.”


“또 한 번의 성공이네. 발바롯싸가 무슨 보상을 줄까? 아, 근데 라일라는 정체가 뭐래? 발바롯싸가 왜 데리고 오라는거야?”


“응? 라일라 정체? 그런게 따로 있나? 발바롯싸는 그냥 자기 배를 훔쳐가서 잡아오란거 아니였나?”


“아니, 그게 아니잖아. 라일라가 배를 훔쳤다기 보다는 발바롯싸가 거의 내 준 셈이잖아. 게다가 나세르는 발바롯싸의 부하라며? 경호까지 붙여가며 보내고 너한테 무사히 데려오라는 의뢰까지 한 셈이잖아.”


레온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궁금하기도 했으나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으니 굳이 더 캐묻지 않았던 것이다.


“뭐 따지고 보면 그렇지. 근데 나도 라일라가 정확히 누군지는 몰라.”


“아니, 그렇게 붙어있었으면서도 그걸 몰라? 말 안해? 한번 물어보지 그랬어? 초상화도 그렇고, 발바롯싸가 신경쓰는 것도 그렇고, 모르긴 몰라도 대단한 귀족 출신인거 같은데···.”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마지막 말을 남긴 레온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그가 향하는 곳, 뉴키즈호의 선수루에는 라일라,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는 그녀가 있었다.


라일라 드 칼리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 뒤에 붙은 가문의 성을 생각했다. 칼리에 가문의 라일라. 그것이 자신이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했다. 그 어떤 부분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즐겁지 않았으며 달아나고 싶었다.


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끝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가야할 곳. 삶의 끝엔 무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 뿐인 인생이었다. 화려하게 피어난 장미가 시들 듯이, 이렇게 서서히 죽어가듯이 살 수는 없었다.


새로운 삶을 꿈꿨고 그래서 떠났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까운 시종 몇 명만 데리고 떠난 모험길. 알제를 거치고 또 베네치아에 가 닿았다.


허나 다른 삶을 찾겠다는 것은 현실 도피에 대한 허울 좋은 변명일 뿐이었을까? 시종들의 보살핌을 탈피하지 않은 삶에 모험이 있을 수 없었다.


변함없이 답답하게 이어지는 나날에 조금씩

지쳐갈 때쯤 레온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과 달랐다.


어떠한 현실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일상에 거대한 뿌리를 내린 채 당당히 살아가는 그였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스스로 길을 만들며 헤쳐 나갔다. 또한 보여주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는 것을. 삶의 단편 밖에 모르던 자신에게 확실히 보여주었다.


동경했던 모험의 이면에는 살 떨리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약한 자들, 포기하는 자들은 살아낼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더럽고 한심하다고 치부하는 보통의 사람들 또한 그 모든 것을 인내하고 감수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깊이 인식시켰다. 아무리 비린내나는 현실이라도 그들은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라일라는 깨달았다.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강해져야 한다.’


비단 육체적인 강함이 아니다. 주어진 일상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힘을 키워야한다.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오랜 시간이 누적된 반복된 시도가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돌아간다. 나의 세계로. 그 속에서 나는 나를 키울 것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길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거야?”


“레온···?”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


“응? 뭐 그래. 근데 이제 어쩔거야? 발바롯싸에게 돌아가도 괜찮은거야?”


“발바롯싸는 걱정 안해도 돼. 그보다 넌 궁금하지 않아? 내가 누군지···?”


“음, 궁금하긴 한데. 네가 굳이 얘기하지않으니 더 묻지 않는거야. 다들 각자 사정이 있잖아.”


“그랬구나. 난···.”


“······.”


“나도 너처럼 강해질거야. 더 이상 도망치지도 않을거고 피하지도 않을거야. 누구나 쉽게 꺾을 수 있는 꽃은 되지 않을거야.”


잠시 그녀를 바라보는 레온.


“그래, 넌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줬어. 그 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순간을 말하는지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세상에 대항하기로 마음 먹었던 순간. 부러뜨린 막대를 스스로 쥐었던 순간.


선선하게 불던 바람이 왜인지 차갑게 느껴지고,

라일라는 레온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기대는 순간 애써 결심했던 다짐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의 품에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레온의 옆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라일라.

올라오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녀는 뉴키즈호의 난간을 꼭 쥐었다.


홀로 혹은 함께···.

그들의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는 바다는 언제나처럼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


“함장, 도시예요. 알제가 보여요!”


파수대 위에서 언제나처럼 들리는 토미의 목소리.

뉴키즈호는 보름간의 긴 항해를 끝내고 마침내 알제에 돌아온 것이다.


한밤 중 폭풍우를 만나 배가 뒤집힐 뻔한 가슴 철렁한 경험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세라노의 명령에 따라 모든 선원들이 배의 균형을 유지하고 돛을 접으려 애 쓸 때, 라일라도 갑판으로 나와 도왔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눈앞의 사물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라일라는 뒤에 있지 않았다. 물론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알제의 첨탑을 바라보던 레온 곁으로 라일라가 다가와있었다.


“결국 끝이네.”


“끝? 무슨 끝?”


“우리가 이렇게 여행하는 일이 다시 있을까? 잠시 뒤 우리가 헤어지면 다시 만날 날이 올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왜 그런 생각을?”


“아마 마중 나와있는거 같아. 우리 오빠가···.”


가늘게 눈을 뜬 라일라가 알제의 항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같은 곳을 더듬는 레온의 시선에···.


저 멀리 알제의 항구에···.

뉴키즈호가 접항을 시도할 작은 공간도 없이 수없이 많은 함선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 함선에 꽂혀있는 깃발은

알제해적 하이레딘의 표식이 아니었다.


셀 수없이 늘어선 거대한 함선에는

오스만 제국의 공식 문양을 단 깃발이 위엄

넘치게 펄럭이고 있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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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최후의 수단(3) 22.07.09 112 4 12쪽
48 최후의 수단(2) 22.07.08 103 3 11쪽
47 최후의 수단(1) 22.07.07 145 4 12쪽
46 치안대를 박살내다(5) 22.07.06 151 4 12쪽
45 치안대를 박살내다(4) 22.07.05 129 4 12쪽
44 치안대를 박살내다(3) 22.07.03 141 4 12쪽
43 치안대를 박살내다(2) 22.06.30 162 4 11쪽
42 치안대를 박살내다(1) 22.06.28 169 4 11쪽
41 리스본 귀환(3) 22.06.25 164 5 11쪽
40 리스본 귀환(2) 22.06.24 172 4 11쪽
39 리스본 귀환(1) 22.06.23 188 3 11쪽
38 지중해의 거상, 레온 메이슨(3) 22.06.21 175 4 11쪽
37 지중해의 거상, 레온 메이슨(2) +1 22.06.20 183 4 12쪽
36 지중해의 거상, 레온 메이슨(1) 22.06.18 181 4 12쪽
35 발바롯싸의 보상은? 22.06.17 177 4 12쪽
» 모험의 끝 22.06.15 187 4 12쪽
33 모험의 소용돌이(5) +1 22.06.14 174 4 12쪽
32 모험의 소용돌이(4) 22.06.13 174 3 11쪽
31 모험의 소용돌이(3) 22.06.12 184 4 11쪽
30 모험의 소용돌이(2) 22.06.11 194 4 11쪽
29 모험의 소용돌이(1) 22.06.10 207 4 12쪽
28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3) 22.06.09 210 5 12쪽
27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2) +1 22.06.08 237 6 11쪽
26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1) 22.06.07 223 6 12쪽
25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3) 22.06.06 246 7 12쪽
24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2) 22.06.05 250 8 11쪽
23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1) 22.06.04 253 7 11쪽
22 마린의 왕자, 섀넌 무어(3) 22.06.02 254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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