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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작가님의 서재입니다.

대항해시대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로미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16 19:01
최근연재일 :
2022.07.10 10:26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9,082
추천수 :
558
글자수 :
253,585

작성
22.06.2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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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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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리스본 귀환(1)

DUMMY

불안한 듯 떨리는 눈빛.


바닥에 납작 엎드린 청년은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붉은 색 융단이 공간을 반으로 가르듯 길게 펼쳐져있었고, 좌우로는 대신들이 기립해있을 법한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두 발을 딛고, 두 무릎을 대고 있는 붉은 융단의 끝에는 계단. 자신이 엎드린 곳 보다 세 계단 높은 곳에는···. 위엄 있는 의자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보인다.


그는 누구일까?

자신은 왜 이 곳에 끌려온 것일까?


자신이 왜 이곳에 와있는지 그는 당최 알 수 없었다.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어제 일이 끝난 뒤 친구들 몇몇과 가볍게 맥주를 마셨던 일.


그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던 것까지는 분명히 기억이 났다. 헌데 거기까지···.


그 이후의 기억이 전혀 없다.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방 안에 쓰러져있었고,

낯선 자들의 손에 이끌려 이 곳에 온 것이다.


그는 의자에 앉은 이를 감히 올려다 볼 용기조차 내지 못한 채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불현듯 스치고 간 생각.


가끔씩 술이 취할 때면 어릴 적 자신이 들었던 출생의 비밀을 안주거리 삼아 떠들어 대던 그.


‘혹시 그 얘기를 듣고 날 잡아온 건가?’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시절, 술 취한 어미에게서 자신이 왕족의 씨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저 고귀한 궁전에서 사는 왕족이라는 말. 워낙 횡설수설하는 말이었기에 진위는 알 수 없었다.


허나 진실이라고 해도 자신의 어미는 천한 거리의 여인이었기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술자리의 허풍으로 쓸 소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만약 자신이 어젯밤 술에 취해 다시 한번 그 이야기를 꺼냈고, 또 그 이야기가 옆으로 새어나가 잡혀온 것이라면···.


그는 재빨리 주변을 다시 살펴봤다.


두려움에 떨며 제대로 보지 못한 광경을 하나둘씩 더듬어 나갔고, 그제서야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자신이 엎드린 곳은 어느 모로 봐도 확실히 궁정 내부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국왕과 대신이 모여 국정을 운영하는 집무실···.


자신이 왕족을 모욕했고, 그 죄로 이곳에 잡혀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 노기 띈 얼굴로 앉아있는 자는 설마? 포르투칼의 국왕 폐하인 주앙 3세?


정체불명의 작은 청년.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때였다. 그의 뒤로 인기척이 들려 온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들어선 남자가 의자 가까운 곳에 멈춰서자 앉아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라.”


벌벌 떨리던 고개를 들자 꼿꼿이 앉아있는 남자와 그의 옆에 선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표정을 읽을 수 없이 굳은 얼굴이었다.


“네 이름이 뭔가?”


“저···. 저는 마르코라고 합니다.”


“네 놈이 스스로를 왕족의 후예라고 떠들고 다녔다지?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건 그저···.”


스릉.


기척도 없이 다가온 청년의 검이 어느새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대경실색한 마르코가 움직이지도 못한 채 외쳤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제발.”


하지만 옥좌에 앉은 사내는 차가운 눈초리로 검을 쥔 청년에게 눈짓했다.


이내 검이 남자의 살갗을 파고 들었고···.


스윽.


“흐읍”


남자는 감히 신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떨어져나간 자신의 목을···. 그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틀어막으려 두 손을···.


아니다.


목은 제자리에 붙어있었고,

뿜어져나와야할 피도 없었다.


목에 가져다댄 손바닥에 한줄기 선혈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허억, 허억.”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뿜는 남자. 그의 앞으로 옥좌에 앉은 사내의 음성이 낮게 울려퍼졌다.


“지난 일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죽은 듯이 살아라. 눈이 있어도 보지 말고, 입이 있어도 그저 닫고 지내라. 조만간 일이 잘 풀리면 다시 연락이 갈 것이다. 만일 내 말을 어기거나 오늘 일을 발설한다면!”


사내가 강조한 마지막 말에 남자는 떨리는 고개를 가누며 그를 올려봤다.

서릿발처럼 차갑고 노여운 기세.


몸서리치게 하는 두려움에 그는 황급히 고개를 떨구며 외쳤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반드시 눈을 감고 입을 틀어막고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자의 다짐에 중년의 사내는 눈치를 보냈고,

곧이어 들어온 낯선 이들이 그의 눈을 가렸다.


끌려올 때처럼 그는 홀연히 사라져야 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스캇?”


“네. 페르낭 사령관님.”


의자는 옥좌가 아니었고,

그 곳은 궁전의 집무실이 아니었다.


의자에 앉은 자도 주앙 3세가 아닌

리스본의 치안 사령관 페르낭 고메스였다.


그의 저택 안 집무실에서 모종의 음모가 뱀의 또아리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


등잔불만이 호젓이 흔들리는 어두운 방 안.

야심한 시각에도 잠에 들지 못한 가냘픈 그림자 하나가 방안에서 아른거렸다.


눈이 시렸던 탓일까?

혹은 책을 읽고 지식이 쌓여 갈수록 오히려 무언가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답답함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서책으로 향하던 시선을 돌려 창 너머를 바라본다.


까만 하늘을 알알이 수놓아 반짝이듯 빛나는 별.

어느새 가득 차올라 환한 빛을 전해주는 달.


하늘과 별과 달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스스로 어디쯤 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또한 어디로 가야할지···.


답답한 마음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문이 없는 오목한 테라스로 향하자 생각보다 서늘한 공기가 그녀를 감쌌고, 난간을 붙잡자 금속이 주는 서늘한 감각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테라스 난간 너머로 어둠이 소복이 내려앉은 이스탄불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가지 곳곳에 밝게 빛나는 점은 마치 하늘의 별과 닮아있어 어디까지가 땅인지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분간이 힘들었다.


마치 그 때처럼···.

알제에 기항하기 전날 밤 선수루 난간에 올라 레온과 함께 바라본 밤하늘.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그런 것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했을까?

그저 함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토록 특별했는데···.


그녀는 레온에게서 뺏어온 목걸이를 매만졌다.


그를 닮아 푸른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팬던트가 왜인지 자신을 바라보고 또 지켜줄 거 같이 느껴졌지만···.


사실 그와 그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친구라 부르기엔 함께한 시간이 부족했고 연인이라 부르기엔 약속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 속엔 항상 레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왜 그토록 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그녀가 살아갈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기 때문이었을까? 시리도록 날카로운 일상을 감내하게끔 그녀를 일깨우고 마음 속에 불씨를 지펴주었기 때문일까?


아니 실상 레온이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준 것은 없었다. 가슴 울리는 조언을 해주지도, 명확한 방향을 알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행동한 것 뿐이었다.


그는 그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것 뿐.

그 길목에서 두 사람은 잠시 경로가 같았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만날 약속도 없었다.


그를 다시 보려면 첫 만남이 그랬듯 우연에 기대는 수 밖에 없다는···. 그 사실을 떠올릴 때면 그녀의 가슴은 아련히 아파왔다.


단지 함께 걸었을 뿐이라도

그녀에게 그것이 하나의 특별함이었기에···.


밤하늘에 머물던 달은 토프카피 궁전 뒤로 기울어져 갔고 그녀는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 하나의 점으로 뜬

뉴키즈호가 중간 기항지 없이 보름이 넘는 항해를 이어오고 있었다.


장기간 이어진 항해에 선원들은 분명 지쳐 있어야 했다. 여느 때처럼 그들의 얼굴에 피로와 짜증이 가득했어야 마땅했다.


허나 그들의 얼굴에 피어난 것은 기대감이었다.

항해일수가 길어질수록 그들은 묘한 흥분에 휩싸여 갔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

선원들 대부분이 반겨줄 가족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그리워하는 감정이 없을 수는 없었다.


첫 항해를 떠난 지 일 년이 넘는 기간이다.

그들은 처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튀니스 즈음에 기항해서 쉬어가려 했던 레온을 말린 것 또한 선원들이었다.


곁에 선 랄프와 카렌은 물론이고, 모든 항해사가 마찬가지였다. 키를 잡고 돛을 만지는 부지런한 손놀림에도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 곳으로 모여갔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너머로 조금씩 떠오르는 그 곳.


자신들의 고향, 리스본이었다.

그 거대한 도시가 손에 잡힐 듯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윽고 뉴키즈호는 리스본의 항에 가 닿았고 귀항 과정은 빠르게 마무리 되었다. 돛이 접히고 앵커는 바다 속으로 잠겨갔다.


그제서야 들어오는 광경.

고향은 모든 것이 그대로 정겹고 따뜻했다.


뉴키즈호와 레온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항구로 마중나와 준 것이다.


레온이 알고 지내던 교역소 상인과 조선소 인부들, 아버지인 리키 메이슨과 함께 일했던 선원과 상인들 또한 삼삼오오 모여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엠마를 안은 레온이 뉴키즈호에 연결된 임시 계단으로 한걸음씩 내려딛자···.


짝.


영문모를 박수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이내 하나의 물결이 되어 퍼져나갔고


짝. 짝. 짝. 짝짝짝.


레온과 뉴키즈호 선원 전원의 무사 귀환을 환영하는 박수와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항구를 가득 채웠다.


머쓱해하던 랄프와 카렌, 선원들이 항구에 내려서자 군중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카렌의 어머니인 실리안 아주머니였다.


“엄마···.”


스무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카렌 역시 고향을 떠나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장성한 딸이 반가운 것인지 실리안 아주머니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는 카렌 또한 눈시울이 점점 붉어져 가며 한걸음씩 다가서는데···.


“엄마?”


스치듯 카렌을 지나치는 실리안. 그녀는 처음부터 카렌을 보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레온의 손을 잡고 서있는 엠마.

금세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울먹이는 모습의 엠마에게 항한 것이다.


“아이구, 엠마 왔구나? 우리 엠마가 이렇게나 컷어?”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포근한 실리안 아주머니의 말에 결국 울음을 터트린 엠마.


“흐아아앙”


왜인지 평소보다 아장아장한 걸음으로 엠마는 유모였던 실리안 아주머니의 품에 포옥 안겨갔다.


그런 엠마가 사랑스러운지 실리안 아주머니는 연신 쓰다듬으며 달래주었고,


선원들 모두가 귀향의 감회를 만끽하고 있었다.


“랄프, 한 달 가량 일정없이 쉴 생각이니깐 선원들에겐 그렇게 공지해. 너도, 카렌도 좀 쉬고.”


“그래. 선원들 보너스까지 내가 챙길 테니깐 걱정하지마.”


“근데 레온, 넌 이제부터···.”


랄프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말을 탄 궁정대신 한 명이 그들 앞에 멈춰섰다.


“레온 메이슨 함장이시죠? 폐하의 칙서를 가져왔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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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최후의 수단(1) 22.07.07 144 4 12쪽
46 치안대를 박살내다(5) 22.07.06 151 4 12쪽
45 치안대를 박살내다(4) 22.07.05 129 4 12쪽
44 치안대를 박살내다(3) 22.07.03 141 4 12쪽
43 치안대를 박살내다(2) 22.06.30 161 4 11쪽
42 치안대를 박살내다(1) 22.06.28 168 4 11쪽
41 리스본 귀환(3) 22.06.25 164 5 11쪽
40 리스본 귀환(2) 22.06.24 171 4 11쪽
» 리스본 귀환(1) 22.06.23 188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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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지중해의 거상, 레온 메이슨(2) +1 22.06.20 183 4 12쪽
36 지중해의 거상, 레온 메이슨(1) 22.06.18 179 4 12쪽
35 발바롯싸의 보상은? 22.06.17 17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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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모험의 소용돌이(1) 22.06.10 206 4 12쪽
28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3) 22.06.09 208 5 12쪽
27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2) +1 22.06.08 237 6 11쪽
26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1) 22.06.07 223 6 12쪽
25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3) 22.06.06 246 7 12쪽
24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2) 22.06.05 250 8 11쪽
23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1) 22.06.04 252 7 11쪽
22 마린의 왕자, 섀넌 무어(3) 22.06.02 253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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