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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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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38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23 08:52
조회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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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DUMMY

<<위험지 네이밍 클럽>>


(요란한 인트로가 지나가고, 갸름한 얼굴에 옅은 구릿빛 피부를 가진 사회자가 카메라 앞에 섰다.)


`사회자: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 위험지 네이밍 클럽의 회장을 맡고 있는 에릭 맥도넬입니다. 오늘은 아노무라 해안에서 일어난 실종사건의 주인공! 이름 없는 해식동굴에게 이름을 붙이는 시간을 갖도록 할 건데요, 우선 이 자리에 모여 주신 오늘의 패널 여러분의 소개가 있겠습니다. 먼저, '음란한 서큐버스' 상을 수상한 유명 AV 여배우이자 최연소 하드코어 포르노 감독, 스테이시 스핑크(Stacy Spink)를 소개합니다!



`스테이시: 여러분 안녕! 천만 시청자들의 애인 스테이시에요! 좋은 이름 많이 준비해 왔답니다!


`사회자: 최근 노드: 업실론(Node: Upsilon)에 있는 AV배우 양성소에서 특별 교육을 받고 오셨다면서요?


`스테이시: 맞아요. 그 쪽 여왕님은 어떻게 애교를 부려야 사람들이 꼴리는지 잘 알고 계시죠. 기획부터 시작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사회자: 앞으로의 커리어가 기대되는군요!


`스테이시: 여러분! 모두 제 영상물을 기대해 주세요! 다음 기획은 50:50 아스픽시아 러시! 조여드는 질식, 그리고 불타오르는 정사로 가득한 새벽녘이에요! 와우!


(여자는 충격적일 정도로 야한 분홍 코르셋을 입고 있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얼마 전 사창가에서 본 그 망사 스타킹 여자와 동일인물인 것 같다. 나는 슬그머니 소어의 눈을 가렸다.)


(그녀는 카메라 앞으로 나오더니 물 오른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방청객들의 환호성을 모았다.)



`사회자: 그럼 다음은 외곽 지역에 위치한 공업지구의 빅 보스, 마누엘 킨치(Manuel Ckiench)입니다!



(고급스러운 중절모와 정장으로 멋을 낸 거구의 백인이 가벼운 인사를 보냈다.)



`마누엘: 모두들 좋은 하루 되시지요. 공업지구에서 작은 사업을 운영하는 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사회자: 따님의 장례식은 잘 치루고 오셨나요?


`마누엘: 막 끝내고 방금 도착했죠. 후후후, 오늘의 프로그램이 기대되는군요.


`사회자: 오늘은 희생자들이 많아서 더욱 짜릿한 시간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누엘: 참, 돈은 잘 입금했으니.. 부탁한 건 확실히 준비되어 있겠죠?


`사회자: 물론이죠..킥킥!



(사회자는 곧바로 다음 패널로 넘어갔다. 푸른 장발을 늘어뜨리고, 흰 가운을 걸친 음침한 연구원이 등장했다.)



`사회자: 세 번째 패널은...발상지에 특별히 방문하신 뉴 메갈로폴리스의 기계공학 분야 수석 연구원, 신교독 씨 입니다!


`신교독: ..쳇, 그냥 지나가다가 심심해서 들어왔는데 이 지경이네. 이름은 몇 개 준비해 왔으니까 빨리 끝내요.


`사회자: 네! 그럼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는 목을 가다듬고, 메인으로 넘어갔다.)



`사회자: 이번에는 각자가 준비해 온 이름을 룰렛 안에 넣는 시간입니다. 패널 여러분들은 원하는 이름 후보를 적어서 제시해 주세요!


`스테이시: 그럼, 저는 희생자 중 30대 여성인 '로렌 스티븐슨(Lauren Stevenson)'하고, 나머지는 '필리아(Philia)', '제이드(Jade)'로 할게요!


`신교독: 나는 희생자 중 초등학생 두 명인 '블레이크 스티븐슨(Blake Stevenson)', '윌리엄 스티븐슨(William Stevenson)', 그리고 '개암달팽이(Hazel Snail)'로 하죠.


`사회자: 좋아요, 좋아! 멋진 이름들이 나오고 있군요.



(아이고, 참 멋지기도 해라.)



`사회자: 자 그러면, 킨치 씨는 어떤 이름을 넣으실 건가요?


`마누엘: 흐음... 저는 제 딸 '샤페이 킨치(Sharpay Ckiench)'와 후배 대학생 '니콜라 드 파누이에(Nicolas de Fanouillet)'의 이름을 넣겠습니다.


`사회자: 오오오! 드디어 따님의 성함을 넣기로 결정하셨군요!


`마누엘: 아아, 내 딸의 이름이 지명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 영광스러운 일도 없죠. 분명 죽은 딸도 하늘에서 기뻐할 겁니다.


`사회자: 자! 이름이 전부 결정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방청객 여러분의 투표를 통해 이 이름들이 차지할 범위가 결정될 것입니다!


(곧 투표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표가 고르게 분산되는 것 같았으나, 곧 '샤페이 킨치' 항목의 득표율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회자: 오오! 대학교의 인기인이자 여왕벌이었던 샤페이 양은 죽어서도 인기가 많군요!


`마누엘: 우오오! 딸아, 힘내라! 이 아버지를 빛내어 다오!



(해당 항목은 어느새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마누엘 사장이 뒷돈을 넣은 것이 분명했다.)



`스테이시: 내가 넣은 이름들이 인기가 별로 없잖아...


`신교독: 그나마 개암달팽이가 당신네 이름보다 인기가 많군요. 그나저나 저 흰색 돼지 자식...너무 부럽잖아...



`사회자: 이제, 대망의 룰렛 회전 시간입니다!



(룰렛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모두의 눈길이 룰렛으로 향한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 때, 룰렛은 멈추었다.)



`사회자: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결과는...샤페이 킨치입니다! 마누엘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마누엘: 오오! 드디어 내 딸이 도움 되는 일을 하는구나!


`스테이시: 아쉽다...


`신교독: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나갑니다, 나가요.



(그는 생방송 중 스튜디오에서 당당하게 나가 버렸다.)



`사회자: 음...일단 해식동굴의 이름은 '샤페이 킨치 동굴'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음 사건 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곧 머리가 아파 와 텔레비전의 전원을 껐다.


...언제나 그랬듯, 이 프로그램은 최악이었다.


그 효시는 알 수 없지만, 세상에는 점차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퍼졌다. 아니,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사람의 죽음마저도 유희로써 소비되고 있는 처지였다. 희생자의 이름이 당당히 지명으로 내걸리는 모독 속에, 희생자의 의지는 없었다.


나는 결코 저 이름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동굴의 이름은 그저 '개암달팽이 동굴'이면 충분했다.


우울해지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압생트를 한 잔 따랐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 무심하게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태양을 향해 구름이 흘러갔다.


말 없이 죽은 이들을 위로하며 석양을 바라보자, 무의식 속에서 흐릿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허나 다시 비누거품이 풀어지듯, 시커먼 바닷물에 녹아 형체를 잃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목숨이 웃음거리로 취급되는 중, 죽은 자들을 두 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사람들 중 하나는 우리 용병들이다.


저런 추악한 모독을 부르짖는 유가족이나, 시신을 맞이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릴 현대의 장의사들은 그저 통곡을 낙으로 삼는 밴시와 다를 바 없다.


비록 죽음을 가장 많이 접하며 둔감해질지도 모르는 이들이, 도리어 더더욱 민감해진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제의 동업자가 다음 날 아군의 목을 전부 잘라 적에게 바치고 현상금을 얻는 경우도 있음을 고려하면 그것은 더욱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죽음은 우리의 뼈와 살갗을 파고들듯 새겨져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먼 바다를 향해 공허한 시선을 던지며 인생을 허비하는 나를 꾸짖듯, 살을 에는 바람이 한 점 불어와 볼을 때렸다.


곧 창문을 닫고, 이른 저녁을 만들기로 했다.



계란 두 개를 풀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약간의 우유와 잘게 다진 야채를 넣고 버터를 두른 팬에 가볍게 볶았다.


열을 받은 계란은 푹신한 뭉게구름처럼 부풀어오르며 감미로운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후추와 말린 파슬리를 뿌리고, 작은 접시에 옮겨 담은 뒤 소어의 자리에 놓아두었다.


"소어, 저녁 먹을 시간이다."


계란을 좋아하는지, 아이는 곧바로 식탁으로 달려와 포크를 집어들었다.


나는 내 몫을 만들기 위해 계란 여섯 개를 풀었다.


소어가 음식을 조금 먹었을 무렵, 나는 간장 맛 어묵 하나와 오믈렛이 담긴 접시를 들고 소어의 맞은편에 앉았다.


주로 혼자 식사하던 평소와는 달리, 다른 누군가와 함께 먹는 저녁식사의 맛은 각별했다.


그 즐거운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어서 조금 천천히 먹었지만, 오믈렛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다.


아이 역시 음식이 마음에 드는지 열심히 식혀 가며 먹었다.


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만족감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더니 눈을 빛내며 나에게 내밀었다.


"더 달라는 거니?"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바로 접시를 받아들어 오믈렛을 더 얹어 주었다.


음식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지만, 전날에 비해 식욕이 너무 늘어난 것 같아 염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는 소어와 함께 바깥의 공터에서 가벼운 달리기를 했다.


어느 때에는 내가 그를 따라서, 또 다른 때에는 그 반대로 그가 나를 따라서 달렸다.


어린 시절부터 체력을 길러 두는 것이 소어에게도 이로울 것이다.


조금은 엉성하지만, 꼬리깃을 흔들며 열심히 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이십 분 가량을 달렸음에도, 소어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역시 아이들의 기력은 언제나 경이롭다.


나는 커다란 이온음료 한 캔을 뽑아서 소어와 나누어 마셨다.


함께 음료수를 마시던 중, 소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뒤에는 집으로 돌아와 함께 샤워를 마쳤다.


아이는 내가 준 인형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치자마자, 그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팔로 내가 선물해 준 청록색 카벙클 인형을 껴안았다.


"잠깐, 물기 좀 말리고!"


황급하게 그를 안아들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 와중에도 인형을 감싸안은 팔은 풀지 않았기 때문에, 인형은 곧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아이고.."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벽난로 앞 안락의자에 앉았다.


"인형이 그렇게 좋아?"


인형에 부리를 박고 기뻐하는 것을 보아하니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소어, 내일 어디라도 놀러 갈래?"


내가 물었다.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함께 괜찮은 관광지라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따스한 열기를 내보내는 벽난로 앞에 앉아 인형의 물기를 말리던 우리는, 이윽고 침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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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1 +27 20.05.25 306 37 9쪽
18 A Sudden Emergence(순간적인 출현) +30 20.05.24 299 42 8쪽
»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16 20.05.23 295 38 11쪽
16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6 +18 20.05.22 303 40 10쪽
15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15 20.05.21 312 40 10쪽
14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4 +19 20.05.20 350 34 9쪽
13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13 20.05.19 325 34 9쪽
12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2 +12 20.05.18 327 36 13쪽
11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1 +8 20.05.17 340 36 11쪽
10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6 20.05.16 367 35 8쪽
9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4 20.05.15 345 38 11쪽
8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4 20.05.14 352 38 9쪽
7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4 20.05.13 362 39 11쪽
6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1 +3 20.05.12 399 42 8쪽
5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4 +8 20.05.11 430 44 14쪽
4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4 20.05.11 439 39 12쪽
3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2 +7 20.05.11 534 50 7쪽
2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1 +18 20.05.11 660 59 7쪽
1 정적 - 프롤로그 +25 20.05.11 1,034 9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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