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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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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32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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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추천
35
글자
8쪽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DUMMY

"이 아이, 성대를 적출당했어."


성대 적출.


조류 수인들은 특유의 구강 구조로 인해, 일부분의 발음을 성대에 의존한다.


그런 그들에게 성대의 부재란 입술과 혀가 없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 온 아이인 거지..?"


"등에 흰색 인장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면, 아마 불법 실험실에서 쓰이다 버려진 것 같아."


불법 실험실에서 태어나 쭉 자랐다면 분명 호적도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이제 얘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순간, 평소의 나라면 떠올리지도 못했을 생각이 뇌리를 휘어잡았다.


"...내가 키울까?"


나도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뭐?"


"...키운다고."


그녀의 안경 뒤로 경이가 번졌다.


"..아니...진지하게 묻는 건데, 양육비는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야?"


"일을 좀 더 많이 하면 되는 거고."


"말리지는 않겠지만...갑자기 아이를 키우겠다니, 조금 신기해서 그래."


그녀 말대로, 한평생 전투만 해 온 용병에게 갑자기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아이를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고아, 그것도 시민권도 없는 수인 고아가 홀로 발상지에서 겪을 일은 불 보듯 뻔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해 장기를 적출당하거나, 헐값에 도축장이나 실험실에 팔리거나, 변태들의 성노리개나 악취미적인 형상의 박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강한 용병이 후견인으로 서 있다면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워진다.


막 고아원을 뛰쳐나온 다른 수인들이 교활한 인간들의 손에 붙들려 처참하게 숨을 거두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아이에게는 그런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수인 용병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무리일지라도, 적어도 짐꾼으로 키운다면,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애들이 나처럼 흉하게 자라 버리는 모습을 보긴 싫거든. 나 같은 용병은 못 되겠지만, 아마 짐꾼으로라도 키울 수는 있을 거야."


"..흠, 알았어. 원하는 대로 해 봐." 그녀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거렸다.


"일단 얼굴을 좀 익혀두는 것이 좋겠어."


"직접 이름도 지어 주는 게 어때?"


"이름은...음...."


어떤 이름을 지어줘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잘 모르겠는데...그냥 '소어'라고 부를까."


"'비상하다(Soar)'라는 뜻이야?"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어...단순하지만 기억하기 편한 이름이네."


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언제쯤 깨어날까?"


"아마 두어 시간 안에는 일어날 거야. 다른 일이라도 하고 오는 게 어때?"


반가운 소식이었다.


"알았어. 그럼 잠시 식사라도 하고 올게."


그리고, 사라를 데려다 주기로 결심했다.


응접실에서 사라에게 말을 걸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점심도 못 먹었네..배는 안 고프니?"


"전 괜찮아요. 그나저나 아까 그 애는 좀 어때요?"


사라 역시 소어의 안부가 궁금한 것 같았다.


"두 시간 정도면 깨어날 거래. 큰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을 거야."


"다행이네요.."


"참, 점심 먹으러 갈 거니?"


"그러죠."


사라를 데리고 근처의 샌드위치 가게로 향했다.


참치 샌드위치를 두 개 주문하자, 나도 못 본 사이에 사라가 금액 지불을 마쳤다.


차에서 짧은 식사를 마치고, 안톤 씨 댁에 그 아이를 내려 준 다음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는 자리를 떴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위험수의 혈액을 가지고 올라왔지만 진은 쪽잠을 자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응접실에 혼자 앉아 있기에는 조금 심심했기 때문에 커피를 뜨겁게 끓여 머그컵을 가득 채웠다.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컵을 들고, 소어가 있는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실로 들어가자 작은 요람에 눕혀져 있는 어린 까마귀 수인을 볼 수 있었다.


여덟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외모를 보고, 만약 인간이었다면 아직 유치원에 다닐 나이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심코 그의 목 쪽에 돋은 솜털에 손가락을 뻗었다.


온열 매트에 달아오른 솜털이 차가운 손가락을 부드럽게 감쌌다.


솜털에 묻혀 있던 손가락을 움직여 소어의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조심스럽게 닦아 없앴다.


손가락이 부리 쪽으로 향하자, 그가 눈을 천천히 떴다.


극점의 빙하처럼 푸른 눈동자가 조금씩 움직여 주변의 상황을 확인하더니,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향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움직여서 요람 안에 들어온 내 손목을 꼭 붙드는 것이었다.


조류 특유의 높은 체온이 손끝에 이슬처럼 맺혀 있어, 마치 그것이 혈관으로 스며들어 온몸을 데우는 듯했다.


나는 무심결에 내 손을 잡은 그의 가느다란 팔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깃털이 돋아난 팔은 세게 쥐면 부러질 것만 같았다.


커피가 든 컵을 옆으로 치워 두고, 나는 그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잘 잤니?"


소어는 그저 나를 그 큰 빙하색 눈망울로 가만히 올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글은 쓸 줄 알고?"


그러자, 그가 종이와 펜을 달라고 손짓했다.


근처에 있던 조그마한 포스트잇과 볼펜을 건네 주자, 그는 곧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소어(Soar)」


다행히도, 간단한 글은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네 이름은 소어야."


「누구」


"'사이러스' 라고 해.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것 같아."


소어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가 내 손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잠시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였다.


복도 쪽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보고 있지만 말고 들어와."


그 말을 듣자, 문 밖에서 안을 엿보고 있던 흰색 사막여우가 들어왔다.


곧 그가 까치발을 들고 요람 속 아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귀엽다..아야앗!"


그가 요람 안으로 손을 밀어넣자, 소어는 부리로 그의 손을 약하게 물며 장난을 쳤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둘이서 소어의 장난을 받아주던 도중, 나는 요람에 붙어 있는 태그를 볼 수 있었다.


「갈까마귀 수인. 영양실조 해결을 위해 균형 잡힌 식사를 급여할 것.」


그러고 보니, 소어가 밥을 먹었는지가 의문이었다.


수액을 맞고 있기는 했지만, 무언가를 먹이기는 해야 했다.


"참, 마르셀로, 점심은 먹었어?"


"아까 치킨 시켜서 먹었어."


그제야 평소처럼 돌아 온 목소리와 함께 꼬리를 흔들며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아침보다는 상태가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러면 1인분만 만드는 게 좋겠군."


탕비실의 냉장고를 열자 우유와 치킨 스톡, 그리고 당근이나 감자 같은 재료들이 나왔다.


어린아이가 삼키기 쉽도록 채소를 잘게 다진 다음, 재료들을 모아 천천히 끓였다.


뜨거운 수프는 병실로 가져가는 동안 군침을 돌게 만드는 향기를 흩뿌렸다.


"밥 먹을 시간이야."


맛있는 냄새를 맡자 소어는 요람 위로 몸을 일으켰다.


곧 마르셀로의 짧은 평가가 이어졌다.


"냄새는 좋은데,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이는 게 좋겠다."


소어를 안아들어 식탁 옆 의자에 앉히고, 숟가락으로 수프를 떠서 입 안으로 흘려넣어 주었다.


뜨뜻한 수프가 위장을 덥히기 시작하니 소어의 표정도 밝아진 것 같았다.


몇 번 수프를 먹여서 기호를 확인한 다음에는 숟가락을 들려 주고는 혼자서 먹도록 했다.


조금 서투르지만 열심히 수프를 떠 먹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릇을 비워 갈 무렵, 급하게 먹던 와중 부리 옆으로 수프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나는 옆에 있던 냅킨을 하나 뽑아 입가에 묻은 수프 방울을 닦아 주었고, 나를 올려다보는 맑은 얼음 같은 눈동자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밥을 다 먹인 이후에는 나의 직업이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자 꽤나 만족한 것 같았다.


분명 즐거운 순간이었지만, 입이 둘로 늘었다고 생각하니 어서 일하러 움직여야만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선 용병업 사무소에서 의뢰를 확인하기로 결심하고는 곧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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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1 +27 20.05.25 306 37 9쪽
18 A Sudden Emergence(순간적인 출현) +30 20.05.24 299 42 8쪽
17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16 20.05.23 294 38 11쪽
16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6 +18 20.05.22 302 40 10쪽
15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15 20.05.21 312 40 10쪽
14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4 +19 20.05.20 350 34 9쪽
13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13 20.05.19 324 34 9쪽
12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2 +12 20.05.18 327 36 13쪽
11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1 +8 20.05.17 340 36 11쪽
»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6 20.05.16 367 35 8쪽
9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4 20.05.15 345 38 11쪽
8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4 20.05.14 352 38 9쪽
7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4 20.05.13 362 39 11쪽
6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1 +3 20.05.12 398 42 8쪽
5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4 +8 20.05.11 430 44 14쪽
4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4 20.05.11 439 39 12쪽
3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2 +7 20.05.11 534 50 7쪽
2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1 +18 20.05.11 659 59 7쪽
1 정적 - 프롤로그 +25 20.05.11 1,034 9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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