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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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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37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19 10:08
조회
324
추천
34
글자
9쪽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DUMMY

"소라찜이라도 먹으려고?"


내가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라의 껍질을 전부 부순 다음, 살과 다른 내장은 전부 제쳐 두고 타액선(침샘)만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이걸 짜내서 독을 좀 모으려고 해."


소라에 있는 독이라면 테트라민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소라를 잘못 먹고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는데, 책을 읽어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소라의 타액선에는 테트라민(테트라메틸암모늄)이라는 독소가 내장되어 있다.


주로 자율신경 신경절을 틀어막아 복통과 마비, 어지러움을 유발하며 운 나쁘면 사람 여럿 잡을 수 있는 독소였다.


특히 저렇게 커다란 소라라면 그 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진은 그것을 전부 짜내서, 주사기에 담아 석궁용 볼트에 연결했다.


"좋아, 이거면 충분해."


"그건 어디에 쓰려고?" 내가 물었다.


"거대한 두족류를 보았다고 했지? 이거라면 아마 조금은 효과가 있을 것 같아."


나는 조금 우려되는 기색으로 되물었다.


"두족류도 같은 독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설마 면역은 아닐까?"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그걸 모르니까 더 써 보고 싶어지는 거잖아."


일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송장 냄새가 난다."


천장으로부터 테일러의 목소리가 울렸다.


머지않아, 바위 위에서 몸이 등 쪽으로 완전히 말린 상태에 고통에 실성한 표정으로 죽어 있는 대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습한 환경과 사망한 지 2주 이상의 시간이 지난 탓일까,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내장의 부패로 인해 복부가 크게 팽창한 것을 보게 되었다.


"성별은 여성. 아까 뉴스에서 보았던 대학생과 동일 인물이야. 종아리를 성체 감청바늘에게 깊게 찔렸고, 그 과정에서 파상풍에 걸려 사망하게 된 것 같아."

그녀의 말대로 다리 쪽을 보자 탁한 회갈색의 고름이 가득 찬 게 눈에 들어왔다. 진이 부검을 하는 동안, 나는 주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죽은 대학생이 쓴 것 같은 노트가 웅덩이에 빠져 있었다.


젖은 노트를 조심스레 펼치자, 일기의 주인이었던 샤페이(Sharpay)가 죽기 전까지 적은 짧은 일기를 읽을 수 있었다.


「Amy 언니고 뭐고, 난 지금 죽을 것 같다. Amy가 동굴 안에 숨어 있을까 궁금해서 뛰어들어온 게 실수였다. 이상한 해파리 같은 괴물에게 다리를 찔리고 쫓기다가 너무 깊은 곳으로 와 버렸다. 같이 들어온 아이들하고 다른 과 후배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아니 그것보다도, 종아리가 너무 아프다. 박힌 가시는 손으로 억지로 뽑았지만 피가 멈추지 않고, 이상하게 붓는 것 같아서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핸드폰은 바닷물에 젖어서 못 쓰게 되어 버렸고, 이제 남은 건 누군가 올 것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겠지.」


「배고픔을 누르기 위해 억지로 자고 일어났더니 종아리가 완전히 부어 버렸고, 발목은 움직일 수도 없었다. 대학교에서는 신고도 안 한 건가, 구조자는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를 찌른 해파리는 아직도 아래를 배회하고 있다. 소금기 때문에 피부 곳곳에 습진이 생겼지만, 내 다리에 비해서는 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오늘은 글을 더 쓰지 못 할 것 같다. 제발, 의사나 구조대원, 정 안 되면 수인 용병이라도 좋으니까 아무나 와 줬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 로이드(Lloyd), 미안해.」


「아프다. 다리에 고름이 찼다. 온몸이 떨린다. 살려줘, 살려줘, 아파, 살려줘...

.

.

.」


...이후로는 손톱이 빠져 생긴 피로 얼룩져 알아볼 수 없었다.


부릅뜬 눈을 감기고, 부검을 마친 시신을 시체 가방에 넣어둔 뒤 길을 나섰다.


남은 대학생 한 명과 초등학생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 답은 아마 저 머나먼 암흑 속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울한 조디의 내장 속에서, 아니면 또다른 괴수의 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놈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랜턴의 밝기를 최대로 올린 다음 주변 벽을 유심히 살폈다.


백 미터 가량 진입하자 벽에서는 진물이 묻어났고, 비린내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비린내 사이로 불길한 곰팡내가 희미하게 풍겼다.


"...Glacies In Gladius...놈이 다가오는 것 같아."


나는 얼음의 검을 불러내 단단히 쥐었다.


"테트라민 장전 완료. 이쪽도 준비는 끝났어."


곧 머리 위에서 테일러의 와이어 감는 소리가 들렸다.


준비는 끝났다.


곧 바닥에 구멍이 뚫린 거대한 공동이 눈 앞에 펼쳐졌다.


"Ignis."


작은 불꽃이 날아가 구멍 가장자리를 비추자, '조디'가 굵은 손가락을 뻗었다.


치아 같은 빨판이 돋아난 녹황색 촉수들, 그리고 촉수를 감싸는 황갈색 점액이 우리들을 맞이했다.


촉수 끝에 달린 수박만한 농포가 우리를 향해 불길한 빛을 뿜었다.


빌어먹을, 저 정도 크기라면 한 번만 맞아도 치명상을 입게 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촉수가 타격을 할 것을 예상하던 찰나, 농포가 네 갈래로 쩍 열리며 이빨이 가득 돋아난 입이 드러났다. 입에서는 끈적한 침이 방울져 떨어졌고, 놈의 목구멍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올라왔다.


순간, 등 뒤에서 볼트가 날아왔다.


볼트는 그 불결한 입 안으로 들어가 목구멍에 적중했고, 곧 테트라민을 주사하기 시작했다.


주사를 맞은 촉수는 곧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놈이 쓰러지기 무섭게 달려들어 농포를 베어냈다. 단면이 얼어붙으며 촉수가 검게 괴사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후속타를 막을 준비를 위해 후방으로 움직일 때였다.


갑자기 놈의 상태와 움직임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원래대로였으면 팔팔하게 살아 있는 다른 촉수들이 나를 잡으려 날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아 테일러의 검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심지어 가볍게 당긴 와이어에도 점막이 찢어지며 체액이 터져나왔다.


결국 놈은 머지않아 허무하게 죽었고, 다른 대학생의 시신은 멀리까지 뻗은 촉수 끝자락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신의 하반신은 이미 반쯤 소화되어 질퍽거리며 악취를 뿜는 꼴이 되어 있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확실히."


진이 잠시 살점을 뒤지며 놈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저런 연체동물이 와이어에 잘리는 것은 처음 보는데."


테일러가 천장에서 뛰어내려 가볍게 착지했다.


그들의 말대로, 놈은 피부의 상태로 보나 움직임으로 보나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계속 굶은 듯한 기세가 마음에 걸렸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역시, 이유를 알 것 같아."


진이 간단한 부검을 마친 결과를 말했다.


"원인은?"


"몇 주간 영양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어."


내 직감이 확실히 들어맞았다.

그렇다는 것은, 조디를 뛰어넘는 상위 포식자가 이 장소에 있다는 것이었다. 피할 수 있는 전투는 피하는 것이 최대의 전략이라는 사실은 명백했기 때문에, 우리는 곧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 때였다.


우리가 들어온 방향으로부터, 거대한 버러지가 기는 듯한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테일러가 가장 먼저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자, 그는 경악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그리고 우리들의 다리를 잡아끌어 바위 사이로 숨어들었다.


그러자 나와 진 역시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내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했다.


나의 키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검푸른 버섯이 균사 다발을 휘둘러 웅덩이와 갯벌을 헤

집으며 기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버섯의 갓 부분에, 영상에 나온 초등학생 둘이 열매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아니, 나는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그것들이 사람이라고는 생각 못 하겠다.


아이들은 피부와 내장에 버섯이 가득 들어차 외부로 돌출되어 있었고, 균사가 번져 검푸르게 변한 얼굴과 두 눈을 발작적으로 진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은 얼어붙어서 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랜턴 꺼."


"랜턴..?"


"...당장!"


그녀가 나로부터 랜턴을 재빨리 빼앗아 '조디'의 유해가 있는 곳으로 힘껏 집어던졌다.


순간, 거꾸로 매달린 초등학생들의 시선이 랜턴의 빛으로 향했다.


둘의 성대에서 갈라질 대로 갈라진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버섯은 랜턴을 향해 가늘고 긴 균사를 날렸다.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랜턴은 그대로 박살나며 순식간에 고철 덩어리로 바뀌어 버렸다.


파편이 떨어진 곳에서는 현무암으로부터 균사가 터져나왔다.


"...!"


오랜 기간 위험수를 상대한 나에게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진은 고지대에 있는 바위에 소독약을 뿌리고 우리를 그 위로 이끌었다.


그리고,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흉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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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1 +27 20.05.25 306 37 9쪽
18 A Sudden Emergence(순간적인 출현) +30 20.05.24 299 42 8쪽
17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16 20.05.23 294 38 11쪽
16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6 +18 20.05.22 303 40 10쪽
15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15 20.05.21 312 40 10쪽
14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4 +19 20.05.20 350 34 9쪽
»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13 20.05.19 325 34 9쪽
12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2 +12 20.05.18 327 36 13쪽
11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1 +8 20.05.17 340 36 11쪽
10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6 20.05.16 367 35 8쪽
9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4 20.05.15 345 38 11쪽
8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4 20.05.14 352 38 9쪽
7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4 20.05.13 362 39 11쪽
6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1 +3 20.05.12 399 42 8쪽
5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4 +8 20.05.11 430 44 14쪽
4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4 20.05.11 439 39 12쪽
3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2 +7 20.05.11 534 50 7쪽
2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1 +18 20.05.11 660 59 7쪽
1 정적 - 프롤로그 +25 20.05.11 1,034 9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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