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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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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13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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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추천
39
글자
11쪽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DUMMY

암시장에 도착하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검은 후드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골목들 사이를 활보하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전등이 요란하게 빛나는 건물의 창가에서는 파티 가면을 쓴 매춘부나 스트리퍼들이 살결을 드러내며 행인들을 유혹했다.


1층이나 2층의 기둥서방 옆에 선 포주들은 아가씨들을 굴려먹기 위해 서로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오늘은 남국에서 날아온 흑진주 여왕, "퓨샤"의 특별 트월킹 쇼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아! 저렇게 말라빠진 계집애들보다 특별 초청한 인터넷 성인 방송계의 대스타,

"캔디"의 EDM 스트립쇼를 즐기러 와 주시죠!"


..하여간, 살결이 주는 쾌락이란.


극단적인 쾌락, 끝 없는 빵과 서커스,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정치 모델인 모양이다.


국가가 기르는 무한한 쾌락의 나무, 그것은 경쟁에서 밀려나 완전한 낙오자가 된 이들에게 음탕한 가지를 내민다.


서약을 맺은 이들은 금전적 자율성을 대부분 상실하는 대신, 값싸고 좋은 마약과 달콤한 술의 공급, 그리고 화끈한 매춘부 그룹의 고용을 보장받는다.


대부분은 여비가 떨어질 때까지 열과 성을 다해 욕정을 불태우며 어느덧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것이 마지막 여정이라는 것을 잊은 채, 다가오는 물안개로부터 눈을 돌리고 양초처럼 타들어간다.


마침내 그들의 여비가 바닥을 보일 때, 정부에서는 흥청망청 놀다 뻗은 그들을 찾아가 마약을 주사해 가사상태로 만든다.


그 다음은 전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짙은 회갈색 스모그 속으로, 보랏빛 물거품 사이로, 마침내 까마득한 무저갱으로.

그들의 행방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어찌 되었든, 이런 향락적인 사회 덕분에 매춘부라는 직업은 준 공무원 수준의 안정성을 구가한다.


잘나가는 연예인들도 까보면 백이면 백 그 시작이 유흥업소니, 그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마르셀로의 경우도 그렇지만, 삶이 너무나도 힘든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목욕물과 화끈한 애인, 가루 한 줌, 혹은 주사기 여러 개가 가장 위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매력적인 여인들을 뒤로하고 거래장 쪽으로 향할 때였다.


갑자기 과감한 아가씨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들러붙었다.


"거기 있는 커다란 오빠, 나랑 좀 놀아줘~"


틀어올린 금발, 코를 찌르는 복숭아 냄새, 옷깃에 묻어나는 창백한 파우더.


몇몇 남자들이 비슷한 외모의 꽃뱀에게 심각한 피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생각 없다. 말로 할 때 비켜라."


가볍게 뿌리쳤지만, 여자가 찰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빠 어서어~ 나 지금 엄청 심심하단 말이야앙~"


여자는 나를 보내 주지 않겠다는 듯 망사 스타킹을 입은 사타구니를 내 꼬리에 들이대고 비벼 댔다.


"백주대낮에 떡칠 생각 없으니 꺼지라고 분명히 말했다."


다시 그 여자를 무시하고 거래장으로 향할 때였다.


"...하!...짐승 자지새끼 주제에 어디서 위선에다가 내숭이란 내숭은 다 떨고 개지랄이야! 발상지 시궁창 물 먹은 정어리 새끼는 발기도 안 되는 병신들인가봐?"


등 뒤의 젊은 여자는 바닥을 하이힐로 밟으며 쌍욕을 내뱉었다.


흔히 듣는-나이대에 비해 더 길고 추접스러운 욕이라 흘려 듣고 걸음을 재촉하려던 찰나, 여자가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치한이야아!!"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그녀가 소속된 러브호텔에서 떡대-나보다 머리 네 개 이상은 작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나왔다.


각목을 든 놈들과 회칼을 든 몇 놈이 어지럽게 뒤섞여 나와 여자를 에워쌌다.


여자가 자신의 떡대들에게 명령하듯 소리쳤다.


"저 새끼야! 빨리 살은 썰어서 튀기고 자지랑 지느러미는 끓여서 수프로 만들어 저녁상에 올려 버려!"


그렇게 외친 여자는 종종걸음으로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놈들은 많아 봤자 스무 명, 마법을 쓰는 놈은 보이지 않았다.


힘 좀 쓴다는 놈들이긴 하지만, 몇 명에게선 거구의 수인 용병을 앞에 두고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야. 저 새끼 설마 텔룸인가 하는 그 놈 아니냐?"


"..그런 것 같다. 얼굴 오른쪽의 눈 아래로 넓게 생긴 켈로이드는 분명 그 놈이야."


"...아주 흉물인데. 빨리 처리 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던 중, 난 얼음으로 방패를 생성해 등 뒤를 가렸다.


"Partum Glacies In Scutum."


아니나 다를까, 쇠뇌용 볼트가 날아와 방패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지금이다! 조져!"


쇠뇌를 쏘는 것을 신호로 놈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Ventus In Iaculum, Adepto Divisa."


커다란 바람의 다트가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손을 가로로 움직였다.


다트가 사람의 수에 맞도록 쪼개어진 순간, 손을 가볍게 저으며 조준해 날렸다.


바람의 파편들은 놈들의 신체부위를 가리지 않고 박혀들어갔고, 아직 체력이 남아 있는 것들은 2미터 남짓한 거리까지 다가왔다.


하나.


방패의 날 부분으로 가장 선두의 녀석을 향해 목을 겨누고, 힘을 주며 오른쪽으로 휘두른다.


단련된 용병이 휘두르는 얼음 덩어리, 그것만으로도 목뼈 정도는 유리처럼 부서진다는 사실을 놈은 몰랐던 모양이다.


만용에 젖어 핏대를 세우던 그 목이, 우둑,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부러져 흐느적거렸다.


목뼈가 비틀린 채로 바닥에 쓰러져 거품을 뱉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주문을 외웠다.


"Partum Glacies In Hastam."


마법을 영창하자, 오른손에 얼음으로 만든 장창이 잡혔다.


창을 들고는 몸을 숙인 뒤, 놈들이 뭉친 곳으로 창을 겨눈 다음 멀쩡한 다리와 꼬리에 힘을 주어 수평으로 도약했다.


창은 조무래기 세 명 정도의 간동맥을 꿰뚫었고, 나는 그것을 남은 무리에게 던져 진형을 무너뜨렸다.


둘, 셋, 넷.


"Partum Ignis In Gladius."


왼손에 타오르는 듯한 검이 만져졌고, 남은 무리에 달려들어 한 놈의 등판에 그것을 쑤셔넣었다.


"으극...꺼걱.."


염통에 불타는 쐐기가 박힌 놈은 꾸르륵 소리를 내며, 몇 번 경련하다 숨을 거뒀다.


이걸로 다섯.


인파 속에서 석궁을 쏜 놈이 겁을 집어먹고는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놓친다면 분명 원군을 부르리라.


아무리 목발에 기댄 사람이라도 용병은 용병이다. 잘린 다리 한 짝은 놈을 쫓는 데 있어 큰 무리가 되지 않았다.


목발, 꼬리, 남은 한 쪽의 다리를 사용해 전속력으로 땅을 박차고 나간다.


신속하게, 정확하게.


"윽...아..하아악!"


도망치던 놈은 예상외로 간단히 잡을 수 있었다.


두꺼운 손에 응축된 강력한 악력으로, 그 목을 가볍게 움켜잡고 들어올렸다.


"읍..우국..구..ㄱ"


놈은 생명이 위협받는 감촉에 들고 있던 석궁도 놓쳤다. 검은 석궁이 보도블럭을 때리며 앙칼진 금속음을 울렸다.


의기양양하게 방아쇠를 당겼을 그 잘난 면상이 산소부족으로 새파랗게 죽기 시작했다. 두 다리가 절박하게 버둥거리며 팔을 힘겹게 걷어찼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명을 갈구하는 그 모습에 내면의 짐승이 꿈틀거렸다.


목을 물어뜯을까, 두개골을 악력으로 으깰까, 손톱으로 내장을 찢을까, 아니면 이대로 질식해 죽을 때까지 붙들고 있을까.


나는 그것을 죽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행할 감정의 농도 역시 충분했다.


하지만, 내가 고른 것은 뜻밖의 선택지였다.


단단히 쥐어잡은 멱살을 어깨 너머로 당긴 뒤, 인파가 적은 분수대를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체구가 작고 가벼웠던 놈은 육 미터 가량을 우습게 날아가 물에 처박혔다.


...어쩌면 여섯.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한 본보기가 되었으리라.


결국 나는 다시 후드를 눌러 쓰고 거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래장에 도착하자 접수원이 나를 맞이했다.

"아, 누군가 했더니... 오늘은 뭘로 가져왔어?"


접수원은 피를 잔뜩 뒤집어 쓴 내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걸었다.


"파충류 위험수 혈액이야. 갤런당 얼마 정도 해?"


"혈액 1갤런이라면...아, 지금은 시세 조금 떨어져서 80켈론 500카리스 정도 해."


"그 정도면...충분하겠지. 여기 9갤런."


"좋아...물건도 확실히 받았고, 품질도 괜찮네. 자, 네 몫이야."


그녀가 대략 760켈론에 해당하는 돈을 건넸다.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의족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암시장을 빠져나왔다. 일을 너무 오랫동안 했던 것일까, 어느새 점심도 거르고 네 시가 되도록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 먹어야 했지만, 곧 저녁 시간이라 차 안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을 조작하자 새로 나온 드라마가 눈에 들어왔다.


"'성좌의 게임'이라...유명한 시리즈였는데."


원작 소설도 탄탄한 설정과 훌륭한 문체로 인기가 좋았으나,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돋보이는 드라마판 제작 소식에는 모두가 흥분했다.


곧바로 재생 버튼을 누른 다음 의자 등받이를 뒤쪽으로 기울였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생기 넘치는 상록수 숲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았을까, CG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다.


낮에는 눈부시게 타오르는 태양을, 밤에는 고고하게 등 돌린 달을 머금는 청명한 호수가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았다.


왕, 기사, 평민, 다양한 종족들을 비롯한 모두가 어울리며 펼쳐 나가는 경이로운 이야기.


어쩌면 다른 세계의 머나먼 과거에 일어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이 환상에 열광한다.


등장인물들이 보여 주는 만감 속에는 사랑, 희망, 야망, 책략, 음모를 비롯한 다양한 행동과 가치관이 녹아 있었다.


인간의 욕망과 속내를 거리낌없이 보여주는 이 작품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보니,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닭 세 마리의 살을 발라 내어 넓은 냄비에 담고, 간을 맞춘 가다랑어포 육수와 계란, 파와 양파를 넣고 잠시 끓였다.


좋은 냄새가 올라올 때, 즉석 밥 위에 그것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마무리로 후추를 뿌려 내 취향에 맞는 저녁식사를 완성했다.


그릇을 앞에 두자, 곧 후끈하게 올라오는 수증기 속에 섞인 맛있는 냄새가 내 식욕을 자극했다.


뜨거운 덮밥을 식혀 가면서 주린 위장을 만족스럽게 채웠다.


식사를 마친 뒤,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간만에 전투를 해서 그런지 근육이 놀라서 조금 당기는 느낌이 있었다.


아픈 곳을 몇 번 주무르고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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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1 +27 20.05.25 305 37 9쪽
18 A Sudden Emergence(순간적인 출현) +30 20.05.24 298 42 8쪽
17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16 20.05.23 294 38 11쪽
16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6 +18 20.05.22 302 40 10쪽
15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15 20.05.21 311 40 10쪽
14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4 +19 20.05.20 349 34 9쪽
13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13 20.05.19 324 34 9쪽
12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2 +12 20.05.18 327 36 13쪽
11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1 +8 20.05.17 340 36 11쪽
10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6 20.05.16 366 35 8쪽
9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4 20.05.15 344 38 11쪽
8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4 20.05.14 352 38 9쪽
»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4 20.05.13 362 39 11쪽
6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1 +3 20.05.12 398 42 8쪽
5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4 +8 20.05.11 429 44 14쪽
4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4 20.05.11 438 39 12쪽
3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2 +7 20.05.11 534 50 7쪽
2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1 +18 20.05.11 659 59 7쪽
1 정적 - 프롤로그 +25 20.05.11 1,033 9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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