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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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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19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11 21:16
조회
438
추천
39
글자
12쪽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DUMMY

"한 시간 뒤면 피크타임이니까 빨리 처리하는 게 좋겠네."


유지니아가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내가 입고 온 무거운 자켓을 건네받았다.


지시대로 엑스레이 촬영을 마치고 인화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내 왼쪽 다리의 단면을 소독약으로 닦고 있었다.


그리고는 환상통을 치료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웬 큰 거울을 하나 끌고 오는 것이었다.


"거울은 무슨 일로?"


"얼마 전에 발견한 낡은 문서에서 읽었던 치료법이야. 한번 해 보지 않을래?"


거울로 내 오른다리를 비춘 다음 양쪽 다리에 힘을 주자, 왼쪽 다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오른쪽 다리가 비쳐 보이는 것 때문에 다리를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리가 잘린 이후로 느꼈던 불균형과 스트레스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었다.


"..흠."


"만족스러워 보이네. 좀 괜찮아?"


십 분 정도 지나자, 의자 뒤로 돌아간 진이 팔로 내 턱을 감싼 뒤 목 뒤의 지느러미를 여유롭게 간지럽혔다.


"...아.."


그 순간은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대답할 수 없었다.


3주간 쌓인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감각에 약간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러스?"


"아아, 그래...많이 괜찮아졌어. 고마워."


"아까 분명 후회는 안 할 거라고 장담했지?"


"후..이번에는 부정 못 하겠다."


최고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언제 나온 치료법인지는 몰라도, 의족을 얻기 전까진 혼자서라도 매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리를 원하는 만큼 움직이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진이 인화되었다.


그녀는 사진을 택트로 가리키며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꽤나 심각한 이야기이긴 한데, 지금 여기에서 이걸 빼내는 건 무리일 것 같아."


"무슨 일이길래 그래?"


그녀의 표정이 진지하게 굳어졌다.


"잘 들어 줘. 내가 이걸 대책 없이 빼내는 순간, 우리 둘 다 죽을 거야."


"뭐..?!"


"좌표 발신기 옆에 특수한 폭탄이 부착되어 있는데, 네 심장과 주변의 장기는 물론이고 나도 그대로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어."


...날벼락이었다.


조만간 의족을 장만할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언제 그 아줌마가 나와 옆에 있는 다른 누군가를 터뜨려 죽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그 여자가 시키는 대로 평소처럼 행동하는 게 좋겠어."


"그 빌어먹을 아줌마가..."


그러나 당장 그 아줌마를 욕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도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방법을 찾아 볼 테니까, 일단 진정해."


"..기분 전환 겸 빨리 의족 살 생각이라도 하자."


왠지 내가 이렇게 침통하게 앉아 있는 게 그 여자의 노림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처럼 움직이기로 했다.


"잘 생각했어. 나도 열심히 해 볼테니 힘 내."


"그래."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자켓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니, 벌써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왠지 나른한 것이 딱히 드라이브를 할 기분도 아니었고, 서릿발 분지로 가서 추가 작업을 하기에도 시간이 애매했다.


혹시 다리가 이 모양이 되어서도 짧게 때울만한 일이 있나 궁금해서 근처의 의뢰 게시판을 둘러보기로 했다.


대형 게시판에 도착하기 무섭게, 근처에 어지럽게 붙은 게시물들 중 하나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보기 드문 푸른 형광색 테두리에, 특이한 문양이 찍혀 있는 게시물이었다.


아마 가끔 올라오는 뉴 메갈로폴리스에서 나온 문서인 듯 했다.


"초대형 공기 정화 장치 개발 인원 모집 중-조형 마법 숙련자 우대, 단 수인은 사절"

갑자기 발상지에 공기 정화 장치를 만든다니,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다.


그리고 발상지에는 수인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어째서 수인을 고용하지 않는 걸까?


의문점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그냥 편견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번쩍이는 광고문을 제쳐 두고, 나는 옆에 붙어 있는 수수한 포스트잇을 떼어 내용을 읽었다.


"카벙클 인형 눈 붙이기 아르바이트-개당 4켈론 지급"


카벙클...유명한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소환수로, 특이한 울음소리가 특징인 캐릭터이다.


인형 눈 붙이기라면 앉아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소일거리였다.


나는 곧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오늘 저녁에 집으로 백 개의 인형을 배달하겠다는 답장을 들었다.


400켈론.


큰 덩치 때문에 식사량이 많은 편인 나에게는 대략 5일치 식비-멀쩡한 음식을 살 금액-로도 조금 모자란 금액이었다.


험한 용병업으로 벌어온 돈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이마저도 없었으면 나는 부랑자나 야생인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 우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을 달래기 위해 도서관에 잠깐 가기로 했다.


화속성과 수속성 마법만으로는 슬슬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터라, 간략하게라도 다른 마법을 학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놀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자켓의 후드를 눌러 쓰고 구석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초보자를 위한 원소술식 접미사 이론: 조형부터 투사까지'


'재능 있는 응급구조사를 위한 백마법 입문'


오늘은 그 두 권으로 접미사 이론과 기초 백마법을 연습하기로 결정했다.



나를 깔보는 듯한 사서의 눈길이 거슬렸지만, 일단 책을 빌린 다음 뒷뜰의 연습장으로 나왔다.


접미사 이론에서는 풍속성 마법을 기준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간략하게 설명된 것을 몇 번 읽어 기본적인 명령어를 암기했다.


"Ventus In Iaculum."


적힌 대로 명령어를 조합하자, 바람의 다트가 살벌한 속도로 날아가 이십 미터 정도 떨어진 상록수에 명중했다.


전투 시 마법을 주로 쓰는 사람들이라면 술식을 적어 둔 스크롤이나 로드를 사용해서 짧은 암시로 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마법이란 상당히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주 연마해야만 한다.


"Partum Glacies, In Arcus Et Sagitta."


익숙한 조형 주문을 외우자, 얼음으로 된 활과 화살이 손에 잡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바람의 다트가 남긴 구멍을 조준하고 활시위를 당겼다.


활시위를 놓자, 얼음 화살이 날아가서 상록수에 난 구멍을 벌리며 파고 들어가 줄기를 얼렸다.


마법을 영창하자 주변에 발생한 옅은 마소의 야릇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느껴졌다.


역시 내게는 이 느낌이, 손가락 끝을 울리는 활시위의 진동이 더 어울린다.


...애꿎은 상록수에게는 미안하지만.



다른 명령어를 조금 연습하고, 백마법 책에서 본 치유술로 이마에 생긴 피멍을 가라앉히다 보니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가 다섯 시 반이 되었다.


충분히 책을 읽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이어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1층에 거주하는 건물주, 길버트 안톤 씨였다.


"누구십니까?"


"길버트일세. 403호에 사는 청년 맞는가?"


"아아. 안톤 씨,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날도 추운데, 오랜만에 같이 저녁이나 먹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


"저녁이라...원하신다면야."


"그럼 6시 정도에 103호로 오게나."


"하하..곧 가겠습니다."


안톤 씨는 발상지 외곽에 위치한 조형 마법 대학교에서 아내 분과 함께 교수직을 역임하고 계셨다.


사회적으로 고위 신분에 속하는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수인을 돕고자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월세가 싼 다세대 원룸 주택을 운영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고, 가족 분들도 내게 항상 친절하게 대한다.


가끔은 이렇게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일도 있는데, 안톤 부인의 요리 솜씨가 상당히 좋아서 언제나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집의 딸인 사라는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를 그곳에 머물도록 만든 이도 사라였으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많은 아이들은 내 뒷모습만 보여도 울면서 도망가는 바람에 조금 서운했었는데, 그녀 앞에서는 편하게 있을 수 있다.


간만에 즐거운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자 연락을 받은 직원이 카벙클 인형과 인형 눈을 한가득 내밀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발코니에 물건들을 가져다 놓은 뒤, 1층의 103호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어머나, 왔구나! 자, 추우니까 어서 들어와."


키가 큰 안톤 부인이 현관문을 열며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후...오랜만에 뵙는군요, 안톤 부인."


안톤 부인의 가벼운 포옹을 받아주며 인사를 나누었다.


아무리 키가 크더라도 3미터에 달하는 거구를 안으려니, 부인의 머리는 내 명치에 간신히 다다르는 정도였다.


"마침 잘 왔어. 오늘은 특식으로 준비했으니 느긋하게 먹고 가!"


부인을 따라 식탁 근처로 가니, 오랜만에 맡는 짭짤한 바다 향기가 느껴졌다.


식탁 위에 놓인 크고 아름다운 대구 요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생선? 최근에는 어묵으로밖에 못 먹었는데..."


요즘처럼 마소에 오염된 바다에서 이처럼 멀쩡하게 생긴 생선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니, 분명 비싼 가격으로 준비한 게 틀림없었다.


"사라, 저녁 먹어야 하니까 내려와!"


내게는 약간 작은 의자에 조심스레 앉자 안톤 부인이 사라를 불렀다.


"세상에, 이게 얼마만이에요?" 그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저녁에도 봤잖아. 잘 지냈어?"


"물론이죠."


곧 길버트 아저씨가 돌아왔고, 안톤 씨 가족이 식전 기도를 마치고 나자 식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귀한 걸 대접해 주시다니...감사합니다."


"다리도 불편한데 든든하게 먹어야지. 먼저 한술 들라고."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들어 뜨거운 대구의 볼살을 발라 내서 입에 넣자, 오래간만에 느끼는 생선의 맛에 혀 아래로 군침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때, 먹을 만 해?"


안톤 부인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먹네요."


흰색의 촉촉한 생선살이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느낌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내줬다.


"일부러 950 켈론이나 주고 샀는데, 맛있다니 다행이네."


세상에, 대구 값이 또 올랐다.


하긴, '일반적인 장미' 한 송이가 600켈론에 달하는 사치품이 된 세상에서 뭘 더 바라겠는가?


'조금 이색적인 장미'들도 숲에 가면 찾아볼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을 함부로 탐내다가는 육식성 장미에게 먹히고 말 것이다.


전투력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메갈로폴리스가 판매하는 것을 사는 쪽이 훨씬 안전하다.


짧은 담소를 나눈 뒤, 다들 식사에 집중하던 와중이었다.


"참, 로라, 얼마 전에 발상지 도심에 대형 공기 정화기가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혹시 그 설계도 읽어 봤어?"


"아, 그 시설...무슨 의도인지는 몰라도...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공기청정기는 아닌 것 같아."


"그렇지? 동력원이라고 주장하는 마력 크리스탈이 과도하게 들어차 있어. 모양도 특이한 것이..."


"뭔가...알처럼 생겼지?"


"그래... 딱 알 같은 형태였어."


낮에 본 전단지에 적혀 있던 공기 정화 시설에 대하여 전문가 두 명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하지만 두 분 다 그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있어서, 완공식에 참여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두 분의 토론에 열이 오르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사라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텔룸, 식사 끝나고 제 방에 잠깐 와 줄래요? 진짜 말하고 싶은 거 있는데."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으나, 그렇게 바쁘지 않았으므로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사실 그녀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이 아이가 어떤 인간인지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대구 요리를 기세 좋게 해치운 다음, 사라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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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A Sudden Emergence(순간적인 출현) +30 20.05.24 298 42 8쪽
17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16 20.05.23 294 38 11쪽
16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6 +18 20.05.22 302 40 10쪽
15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15 20.05.21 312 40 10쪽
14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4 +19 20.05.20 349 34 9쪽
13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13 20.05.19 324 34 9쪽
12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2 +12 20.05.18 327 36 13쪽
11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1 +8 20.05.17 340 36 11쪽
10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6 20.05.16 366 35 8쪽
9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4 20.05.15 344 38 11쪽
8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4 20.05.14 352 38 9쪽
7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4 20.05.13 362 39 11쪽
6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1 +3 20.05.12 398 42 8쪽
5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4 +8 20.05.11 429 44 14쪽
»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4 20.05.11 439 39 12쪽
3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2 +7 20.05.11 534 50 7쪽
2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1 +18 20.05.11 659 59 7쪽
1 정적 - 프롤로그 +25 20.05.11 1,033 9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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