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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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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23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1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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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추천
38
글자
11쪽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DUMMY

둘을 뒤로한 채, 나는 집으로 향하기 위해 수인 전용 택시를 탔다.


환자복 차림을 한 나를 본 택시 기사가 살짝 놀란 것 같았지만, 그는 곧 덤덤하게 차를 몰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계란 아홉 개를 삶아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자 곧바로 내 차로 향했고, 완공식이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좋은 아침이네...오, 멋진 의족을 달고 왔군."


안톤 씨 가족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고, 그들과 함께 접수를 마친 뒤 공기 정화기가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순백색의 알과 같은 무해해 보이는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그 위압적인 크기는 내게 불길한 인상을 남겼다.


"그럼, 완공 기념으로 시험 구동을 하겠습니다."


거대한 알의 측면이 열리고, 초록색으로 빛나는 풍속성 크리스탈이 가득 내장된 내부 구조가 드러났다.


곧, 기계는 마력을 에너지로 전환하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기를 요란하게 빨아들이는 소리를 내고서, 얼마 뒤 맑은 공기를 강하게 내뿜었다.


기계가 성공적으로 작동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계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오직 나와 안톤 씨 가족만이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역시 저 구조는 너무 불안정해. 조금만 세게 건드려도 바로 측면이 뜯어지겠어."


"당장이라도 저 옆면의 크리스탈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야. 저 정도 크기의 결정이 붕괴되면 이 일대는..."


각각 건축학과와 마나고정학과에 재직 중인 두 분의 우려가 이어졌다.


두 분 말대로, 저렇게 이상한 구조물을 발상지에 세운 것에는 분명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음모의 진위를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완공식이 끝나고 관중석 주변으로 나오는 길이었다.


"텔룸?"


사라가 말을 걸어 왔다.


"왜 그러니?"


"어..혹시 부탁 하나만 더 들어 주실 수 있나요?"


그녀가 속삭이길, 자기를 서릿발 분지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집에 있는 그림은 사진을 보고 그린 거라...그것을 그린 뒤로, 직접 가 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어요."


"일단 네 부모님께 부탁을 드려 봐야겠군."


안톤 부부에게 드라이브 이야기를 꺼냈다.


두 분은 조금 망설이는가 싶더니, 곧 긍정의 답변을 남겼다.


"직접 가 보고 싶다는 부탁이라면 들어 주고 싶었지. 하지만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텔룸, 부탁하는데... 직접 데려다 줄 수 있겠나?"


나도 그녀와 시간을 보내는 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기에,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의뢰를 수주하겠습니다."


"고맙네. 원한다면 점심 식사도 함께해도 되니, 천천히 놀아 주게나."


"알겠습니다."


사라를 안아들어서 조수석에 앉히고, 예사 인간 전용으로 만들어진 안전 벨트를 채웠다.


키가 작은 사라에게는 창문 밖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아쉬워하는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읽고는 그 아이가 심심해하지 않게 음악을 틀어 주기로 했다.


어떤 취향인지 알 수 없어서, 라디오의 음악 채널을 여러 차례 돌렸다.


"좋아하는 음악 있어?"


"음...심포닉 메탈은 어때요? 좋아하시나?"


심포닉 메탈이라...초등학생 나이대에는 드문 취향이었다.


"취향 참 특이하군."


"아마 지금쯤 'Rhapsody Of Inferno'의 음악이 나오고 있을 거에요."


사라의 말대로 채널을 돌리자, 정말로 그들의 앨범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 채널, 자주 듣는 모양이지?"


"네. 개인적으로 좋아하니까요."


그렇게 차 안에는 내내 강렬한 선율이 흘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곧 서릿발 분지에 도착했다.


그 아이는 차에서 직접 내려 눈 앞에 펼쳐진 절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형언할 수 없는 아이디어의 돌풍, 그것을 마주한 그녀의 입에서 무심코 탄식이 흘러나왔다.


강하게 불어 오는 삭풍 아래 사라의 연갈색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올리브 색 눈동자에 푸르게 빛나는 설경이 담기고, 이윽고 그것은 모든 이들이 잃어버린 낙원의 빛을 발하는 구슬처럼 변했다.


과연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아무 말 없이, 사색하는 소녀를 따라 설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휴대전화를 꺼내 파노라마 모드로 경관을 찍는 것을 보니 퍽 즐기는 모양이었다.


그 때였다.


소녀의 눈 속에 부조화의 그림자가 잡혔다.

"어...텔룸, 저 검은 건 뭐죠?"


내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아, 품에서 쌍안경을 꺼냈다.


"한 번 자세히 볼까."


쌍안경으로 검은 물체를 확대하자, 이윽고 그것은 누워 있는 깃털 뭉치로, 또 깃털 뭉치에서 누워 있는 수인으로 변했다!


"..저건 수인이야.. 수인이 쓰러져 있어!"


사라 역시 그 검은 그림자를 응시하던 중 무언가 깨달은 듯 소리쳤다.


"수인이라고요?!..저건.. 까마귀?"


바로 그 순간, 나는 눈밭을 헤치며 그 검은 형상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내 몸은 그것을 구해야 한다고 뇌에게 종용하고 있었다.


곧, 나는 그 검은 아이를 안아들고 차를 향해 돌아왔다.


순간 손가락에 느껴졌던 뜨끔한 통증은 급박한 상황 속에 잊혀졌다.


"너무 작고...그리고 완전히 차갑게 식었어요!"


사라보다 작은, 그 어린 것은 한파 속에 차갑게 얼어붙은 상태로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내 힘만으로는 그 아이를 구할 수 없었다.


내 체온은 예사 인간보다 낮아서, 보통의 인간들보다도 높은 체온을 가진 그 아이를 데워줄 수 없었다.


그 어린 것을 차에 태워서 핫팩을 넣은 담요로 감싼 뒤, 뒤에는 사라를 앉히고 병원으로 달렸다.



병원에 도착한 때는 오후 한 시였다.


사라를 응접실에 앉혀 두고 컵에 뜨거운 차를 따라서 준 다음, 진을 만나러 갔다.


진은 마르셀로의 증상에 대해 알아보다가 잠시 쪽잠을 자던 중이었다.


"아, 사이러스. 무슨 일이야?"


대답 할 여유도 없이, 안고 있던 어린 까마귀 수인을 그녀에게 보였다.


"...빨리 치료를 준비할게."


밤새 일한 탓인지 그녀의 눈가는 피곤함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급히 온수를 받아서 까마귀 수인을 녹이는 것을 돕기 시작했다.


깃털에 얼어붙은 서리가 떨어지고, 차가웠던 몸에는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깨어나지는 못했기에 아이를 침대에 올려 두고 담요를 덮어 줬다.


"일단은 조금 괜찮으려나.."


"아직 더 기다려 봐야 해."


"그런가..참, 마르셀로는 좀 어때?"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진은 짧게 한숨을 쉬고는 그의 상태를 이야기해주었다.


"섞여 있던 다른 약제가 예전에 전쟁터에서 겪었던 트라우마의 플래시백을 유도하는 모양이야. 아직도 두 시간 간격으로 발작을 반복하고 있어."


"식사는 어떻게 했어?"


"음식은 고사하고, 기진맥진해서 물도 제대로 못 마셔."


"...내가 한번 가 볼게."


자해의 고통은 나에게도 익숙하다.


어쩌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8년지기 친구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자, 키카드 받아가."


키카드를 건네받고, 마르셀로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입마개를 하고, 목줄과 수갑으로 침대에 완전히 구속되어 있는 마르셀로가 나를 맞이했다.


그는 힘을 다 써서 축 늘어진 상태였다.


그의 입마개를 풀어서 옆에 두고는 대화를 시도했다.


"좀 진정은 됐어?"


"사이러스."


"..자, 지금은 좀 괜찮아졌으니 물 좀 마시라고."


작은 컵에 물을 담아서 그의 이빨 사이로 흘려넣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으나 물을 세 번 정도 마실 때에는 조용히 받아 마셨다.


"그 이상한 대마초는 어디서 구한 거지? 그걸 먹은 이유는 또 뭐고?"


"'모르부스' 라는 회사에서 시연회를 하길래 받은 건데...도와줘. 그걸 먹은 뒤로 기억이...데이지, 얼어 죽을 년, 그 가느다란 모가지를 비틀어서 내 눈깔에..."


그가 다시 횡설수설하기 전에 말을 끊었다.


"기억?"


"오...그건.."


그가 순간 목이 부어서 말을 삼키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10년 전 노드: 타우(Node: Tau)에서 일어난 시가전 때 일이었는데..."


그가 이야기하기를, 그는 당시 주 정부에 대항하여 조직된 반란군에 고용된 용병이었고 교착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별동대에 편성되었다.


별동대의 역할은 오래 된 저택의 뒷문으로 침투해 내부에 잠복한 참모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친구 여러 명과 함께 움직였던 터라, 그들은 더욱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잠입에 능숙한 이들로 구성된 그들은 큰 문제 없이 참모가 은신한 방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으나, 곧 함정에 걸려들고 말았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메갈로폴리스 군인들과 반란군들의 시체가 일시에 부활하여, 소규모로 이루어진 별동대를 인해전술로 전멸시킨 것이다.


당시 마르셀로는 산처럼 몰려 오는 시체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친구들을 보고는 절규를 내지르며 칼을 휘둘렀고, 그러다가 깨진 창문으로 밀려 떨어지고 말았다.


창문으로 떨어지는 와중에, 그는 바로 아래 층에서 어떤 여자를 보았다.


거대한 은제 삽을 들고, 검푸른 레이스가 달린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은발의 숙녀. 고혹적인 여자가 태연히 파이프를 무는 것을 보았다.


창문 밖으로 떨어져 내리는 자신에게 아쉬운 듯 던지던 그 공허한 시선을 그는 평생 잊지 못하겠다고 되뇌었다.


전말을 이야기하던 중, 그는 졸린 듯 크게 하품했다.


"피곤해. 그런 기억은 한 두 개가 아니야. 그냥 똥 밟았다 치고 좀 자고 싶어."


"..."


전쟁이란 건 잔인한 것이다. 당사자들의 정신이 무너지는 것은 육체적인 개념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리라.


더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시간조차 약이 될 수 없으니, 그는 결국 다른 약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약 좀 작작 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냐.'


한 마디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도로 사그라들었다.


나는 이 이상 다가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어쩔 수 없이 데려온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요람으로 옮겨진 아이의 깃털에 가득 맺힌 서리도 온수에 녹아 없어진 상태였다.


"상태는 좀 어떤 것 같아?"


"약간의 영양실조와 경미한 동상이 있고...더 큰 문제가 있어."


"더 큰 문제?"


진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차마 믿을 수 없는 대답을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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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1 +27 20.05.25 306 37 9쪽
18 A Sudden Emergence(순간적인 출현) +30 20.05.24 298 42 8쪽
17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16 20.05.23 294 38 11쪽
16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6 +18 20.05.22 302 40 10쪽
15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15 20.05.21 312 40 10쪽
14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4 +19 20.05.20 349 34 9쪽
13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13 20.05.19 324 34 9쪽
12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2 +12 20.05.18 327 36 13쪽
11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1 +8 20.05.17 340 36 11쪽
10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6 20.05.16 366 35 8쪽
»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4 20.05.15 345 38 11쪽
8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4 20.05.14 352 38 9쪽
7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4 20.05.13 362 39 11쪽
6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1 +3 20.05.12 398 42 8쪽
5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4 +8 20.05.11 429 44 14쪽
4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4 20.05.11 439 39 12쪽
3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2 +7 20.05.11 534 50 7쪽
2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1 +18 20.05.11 659 59 7쪽
1 정적 - 프롤로그 +25 20.05.11 1,033 9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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