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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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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40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14 09:55
조회
352
추천
38
글자
9쪽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DUMMY

//


뉴 메갈로폴리스 건국 이후 185년, 빙하의 달 24일 오전 2시.


여우가 부탁받은 일을 잘 해낸 것 같다.



한 시간 전, 그가 목표를 확보해서 데리고 오는 데 성공했다.


환자의 전신 곳곳을 소독약을 묻힌 섬유로 닦았고, 왼쪽 팔뚝에 수술용 카테터를 삽입했다.


수술에 앞서 정맥주사로 마취제를 투여하고, 환자의 가슴에 심전도 측정기를 부착한 다음 호흡 보조 마스크를 씌웠다.


체온, 심박수나 혈중 산소 포화도는 적당하다. 수술을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스프레이를 써서 소독제를 다리의 단면과 그 주변에 충분히 살포했다.


준비해 둔 의족을 왼쪽 다리 주변으로 가져온 다음 단면을 절개하여 근육, 신경과 혈관을 인공 근육에 연결했다.


출혈이 일어나긴 했지만 지혈제를 투여하자 큰 불편함 없이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피부를 봉합한 다음 환자를 회복실로 옮겼다.


빨리 결과를 보고 싶으니 세 시간 뒤에 깨우는 게 좋을 것 같다.


환자의 호흡과 맥박은 수술 내내 일정하게 유지되었기에 결과는 양호할 것으로 보인다.


//


뉴 메갈로폴리스 건국 이후 185년, 빙하의 달 24일


오전 5시.


나는 어둡지만, 많이 익숙한 병실에서 눈을 떴다.


내 몸은 주변에 의료기기들이 가득한 환자용 침대 위에 뉘여져 있었다.


의료기기에서 나온 여러 가지 선이나 이상한 약물이 들어간 주사 장치가 나에게 연결되어 있었으며, 눈을 움직이자 내 신체 정보가 표시되는 모니터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내 코와 입을 덮은 마스크에서는 신선한 공기가 계속 공급되고 있었다.


고개를 조금씩 돌려 주변의 상황을 확인하던 중, 놀라운 것을 확인했다.


내 왼쪽 다리에 의족이, 그것도 상당히 고가의 모델로 보이는 것이 붙어 있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힘겹게 의족을 들어올렸다. 인공 근육과 연결된 허벅지의 대퇴근이 당겨지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들어올린 의족을 굽히자, 무릎과 발목의 관절이 부드럽게 구부러져 침대에 닿았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시도했지만 아랫쪽에 감각이 거의 없었다.


사실, 호흡하는 것도 마스크에 거의 의존하고 있었다.


계속 움직이려 시도하다 결국 지쳐서 뻗었을 때,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강렬한 빛이 눈을 찔렀다.


"..좋아. 감염증도 없고, 거부반응이나 별다른 부작용도 일어나지 않았어."


익숙한 목소리. 그것은 분명 유지니아의 것이었다.


그녀가 카테터를 통해 주사제를 투여하자 마취가 조금 풀리며 스스로의 힘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헉...유지니아..?"


유지니아가 호흡 마스크를 벗기자 주변의 짙은 소독약 냄새에 코가 먹먹해졌다.


"생일이잖아, 아저씨. 나 아니면 누가 이런 거 챙겨 주겠어?"


매끈한 입술에 요망한 웃음기가 번졌다.


"이거..진짜 비싸 보이는데...그나저나 나는 또 언제 납치해 온 거야..!"


"내가 특별히 비싸게 주고 맞춰 온 물건이니까 조심히 쓰는 게 좋을 거야."


"알겠어...알았다고.."


비록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그녀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정말 튼튼하네.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 못 했어."


유지니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에게 연결된 의료기기들을 하나하나 떼어 냈다.


"자, 부축해 줄 테니까 일어나서 옷 입고 조금 걸어 봐."


나는 천으로 국부를 가린 다음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시 기다렸다가 그녀가 가져다 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부축을 받으며 몇 발짝을 떼었다.


두 다리로 걷는 감각은 오랜만이었기에 처음 한두 번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의족이 맨바닥을 몇 번 스쳤지만 놀랍게도 흠집 하나 없었다. 역시 굉장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무릎을 바닥에 찧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 뒤, 비로소 균형을 잡고 두 발로 일어섰다.


조금 빠르게 걷다가, 침대 주변을 잠깐 달리자 하반신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어때, 좀 쓸 만해?"


그녀가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다가와 물었다.


"..예전의 내 다리가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네."


"이걸...어떻게 갚아야 하지?"


"14 라코타니까 천천히 갚으라...는 건 농담이고, 어차피 생일 선물이니까 안 갚아도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야?"


"적어도 너보다는 안정적으로 벌고 있으니까 안심해."


"..고마워."


오른쪽 눈에 이유 모를 눈물이 고였다.


"흠, 혹시 우는 거야?"


"..아니."


"이런 때는 얼마든지 울어도 좋은데."


"..아직 이런 일로 울기에는 할 일이 많이 남았어."


순간, 유지니아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비록 네가 아무리 천대받는 수인일지라도, 인간적인 감정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정곡을 찌르는 대답이 들어와서 조금 놀랐다.


사실 그녀의 말이 백 번 옳다.


우리들의 내면에는 한 마리의 짐승을 안아든 평범한 인간이 있다.


그러나 핍박이 이어지고, 숨을 거두기 전까지, 그리고 숨을 거둔 뒤에도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할 것을 알게 되면 그 인간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결국 인간의 형상은 무너지고, 종국에는 짐승에게 먹히며 그 이하의 존재로 타락한다.


"조심하도록 할게."


"좋은 자세야. 참, 마르셀로에게도 의족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그렇다.


밤에 자고 있던 나를 병원으로 데려-납치 해-온 것은 마르셀로였다.


그 역시 여기에 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 친구도 보러 가야지. 그런데...그 전에 좀 주고 싶은 게 있거든."


"뭔데 그래?"


"차에 파충류계 위험수 혈액을 좀 보관해 둔 게 있거든. 가져가."


"산지 직송이잖아? 좋아. 의족 값으로 치겠어."


그녀와의 대화를 끝내고 응접실로 향하자, 마르셀로가 한쪽 팔을 잡고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


마르셀로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의 동공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상태가 왜 이래?"


"하...내가 수술하는 동안 또 뭐라도 피운 건가."


유지니아는 짐짓 화 난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마르셀로의 상태를 살피던 중, 나는 불길한 냄새를 맡았다.


냄새가 풍기는 곳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로부터, 비릿한 쇳내가 스멀스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오늘도 또 터졌나, 염려를 억누르며 냄새를 쫓았다.


재빨리 냄새의 근원지로 달려가 보니, 뜨뜻한 핏물이 세면대에 한 사발 고여 있었다.


그 냄새는 부상당한 마르셀로에게서 나는 냄새와 같은 것이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유지니아를 불렀다.


"유지니아, 빨리 치료 좀..!"


그러나 대답은 없었고, 요란하게 싸우는 소리만 들렸다.


다시 응접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친구가 미친 듯이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의사! 누가 의사 좀 불러! 살려줘! 이 새끼들이 나를 찢어버리려 들잖아! 이 씨발것들, 싹 다 꺼져! 뒤져버리라고!"


풀려 있던 붉은 동공은 극도로 축소되어 있었고, 흰자위는 충혈되다 못해 왼쪽 눈의 것은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그는 섬뜩하게 쉰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외치며 미친 개처럼 유지니아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아저씨, 정신 좀 차려!"


유지니아는 테이블을 뒤집은 다음 전방으로 차서, 마구잡이로 쿠크리를 휘두르는 그를 저지하곤 등 뒤에서 석궁을 꺼내 작은 마취 볼트를 장전했다.


묵직한 테이블에 깔린 그가 기어나올 때를 노려서, 그녀는 석궁을 허벅지에 적중시켰다.


마취 볼트를 맞은 마르셀로는 몇 번 경련하다가 곧 의식을 잃었다.


"..이 놈, 도대체...이번에는 또 뭘 먹은 거야?"


허탈한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일단 지혈을 좀 하고, 얘가 피운 게 뭔지부터 알아봐야겠는데."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거즈를 꺼내 그의 팔에 생긴 상처를 눌렀다.


오 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출혈이 잦아들어 팔의 상처가 선명하게 드러났고, 나는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왼쪽 팔뚝에는 수많은 자상이 나 있었다.


상처의 형태를 보아, 들고 다니던 쿠크리로 그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내가 놀란 이유는 사용된 도구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상처의 형태였다. 2mm가량의 일정한 간격을 둔 격자 무늬로 살갗을 찢어 놓은 것이었다.


마약을 복용할 때마다 가끔 이상한 짓을 벌이고는 했지만,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었다.


일곱 해를 함께하면서도, 나는 그를 이토록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그의 구름처럼 폭신거리는 털에 피가 배어들어 엉겨붙은 걸 깎아내는 것을 도운 뒤, 유지니아가 나머지 일을 처리하도록 했다.


마르셀로를 병실에 묶어 놓고, 그녀는 가방을 뒤져서 남은 마약을 꺼냈다.


"평소에 피우던 대마초와는 달라. 잎을 말아 놓은 씹는 담배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데, 안에 다른 약물이 들어 있어."


그녀가 대마초 뭉치를 풀자 붉은 가루가 떨어져 나왔다.


"..깨어난 다음에 이걸 어디에서 구했는지 물어봐야겠군."


"그래야겠어. 나중에 내가 물어볼 테니까..."


마지막으로, 나는 머뭇거렸다.


"가능하면 왜 그랬는지도 좀 물어봐 줘."


"알았어."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동업자인지라 나로선 그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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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1 +27 20.05.25 306 37 9쪽
18 A Sudden Emergence(순간적인 출현) +30 20.05.24 299 42 8쪽
17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16 20.05.23 295 38 11쪽
16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6 +18 20.05.22 303 40 10쪽
15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15 20.05.21 312 40 10쪽
14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4 +19 20.05.20 350 34 9쪽
13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13 20.05.19 325 34 9쪽
12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2 +12 20.05.18 327 36 13쪽
11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1 +8 20.05.17 340 36 11쪽
10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6 20.05.16 367 35 8쪽
9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4 20.05.15 345 38 11쪽
»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4 20.05.14 353 38 9쪽
7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4 20.05.13 362 39 11쪽
6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1 +3 20.05.12 399 42 8쪽
5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4 +8 20.05.11 430 44 14쪽
4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4 20.05.11 439 39 12쪽
3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2 +7 20.05.11 534 50 7쪽
2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1 +18 20.05.11 660 59 7쪽
1 정적 - 프롤로그 +25 20.05.11 1,034 9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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