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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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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30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11 10:18
조회
1,033
추천
94
글자
6쪽

정적 - 프롤로그

DUMMY

※프롤로그를 읽지 않고 본편으로 넘어가셔도 내용의 이해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시간이 멈췄다.


지긋지긋하게 어깨를 때리던 빗줄기도, 폭우로도 묽어지지 않는 끈적한 피바다도 전부 얼어붙었다.


단 하나, 나의 등 뒤로 날아오르는, 나 홀로는 막아설 수 없는 거대한 존재 하나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이윽고, 그것은 거대한 알을 향해 날았다.


그리고 알이 부화하고 말았다.


내가 도대체 어떤 끔찍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인가.


한 달 전부터 누려 온 그 행복한 일상이 그토록 무거운 죄였단 말인가?


그러나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은 없다.


초록빛 날개가 만물을 감싼다.


감싼다, 그리고 또 감싼다, 조이고 조이다 못해 종국에는 터져버리도록 사랑을 베푼다.


초록빛 날개가 갈채를 보낸다.


밀어내고, 빨아들이고, 다시 밀어내는 무형의 갈채-만물을 수확하는 박수 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녹색의 방주가 도시의 검은 물 아래로 떨어질 때.


거대한 갈채에 순응했다.


말들이여, 달려라. 촛불 앞에 선 하얀 초원 위를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재앙의 근원을 향해 달려라.


눈 앞은 구름 아래 어두워만 가지만, 몸은 눈발 아래 차갑게 얼어붙으며 생명수를 쏟고 있지만, 회백색 벼랑 끝자락에는 답이 있으리.


공포.


척추를 가르는 한파, 내장을 파고드는 바퀴벌레,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


당신은 공포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만약 있었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을 종식시킬 만큼 강렬했는가?


미지의 존재를 향한 인류의 공포, 그 절대적인 공포는 결코 무뎌지는 법이 없다.


먼 옛날, 최초의 지성체가 탄생한 순간부터 그들과 함께해 온 우리들은 언제나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물질이었던 우리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짐승과도 같은 취급을 받았다.


노예, 사냥감, 그리고 식량까지.


그들이 원하는 것들 중 우리가 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들로부터 많은 것을 빼앗고도,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이래로 무의미한 분쟁이 끊일 날은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분쟁이 해결되어도, 우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항상 미지의 존재이자 공포의 상징에 불과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인간들 사이의 큰 분쟁들은 우리들을 가장 밑바닥에 깔아둠으로써 끝나고 일시적인 정적이 흐르게 되었다.


혼란이 가라앉으니 날개를 얻은 산업체들은 주변의 숲과 바다를 삼키며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산업체의 마수가 휩쓸고 지나간 지역에는 곧 여러 도시들이 생겨났다.


인간들은 그 24개의 도시들을 '노드(Node)'라고 부르며, 각 노드들에는 알파(A)에서 오메가(Ω)까지의 기호가 붙었다.


그리고, 행성을 가로지른 산업체들이 모인 지점에는 메갈로폴리스가 건립되어 인류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다.


모든 과학과 마법이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해 집중되었고, 단물이 다 빠진 문명의 발상지는 실업자들과 텅 빈 공장, 그리고 우울한 인상들이 가득한 회색의 공간으로 변했다.


이곳에 모이는 이들의 대부분은 신세대들로부터 소외받은 존재들이었다.


신체적 이점으로 육체노동에 종사하던 이들, 환경오염으로 발생한 위험수(危險獸)들에게 모든 것을 잃고 간신히 연명하는 난민들이나 퇴역 군인들, 그리고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포기하고 방황하는 마법사나 기술자들.


비록 누군가의 동정을 사기에 충분한 이들이지만, 각자의 무기를 사용해 우위를 점하며 점차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런 사회 속에서 연명하는 나의 삶 역시 '공포' 중 하나이다.


나의 본명은 사이러스(Cyrus)지만, 사람들에게는 텔룸(Telum)으로 불린다.


어쩌면 이런 사회에서는 본명을 최대한 숨기는 게 가장 안전할지도 모르는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어린 시절, 지옥 같았던 고아원을 뛰쳐나온 이후로는 좀도둑질부터 마약 운반까지 손을 대며 입에 풀칠을 했다.


그러던 중 남는 돈으로 기초적인 조형 마법을 배운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이것만 제대로 배워 두면 돈이 더 들어오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필사적으로 마법에 매달렸다.


두 손이 화상으로 짓무르고, 동상으로 얼룩져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물건을 훔친 가게의 주인에게 얻어맞은 어깨와 팔, 바닥에 넘어져 아파오는 무릎을 달래며 밤새 조형 마법을 연마했다.


그리고 내 열세 번째 생일날, 마침내 누군가를 죽일 법한 무기를 만들게 된 이후로...나는 용병이 되었다.


무기를 얻은 이후, 그것으로 인간의 숨통을 끊었을 때의 감촉은 내게 잊혀지지 않는 자극으로 남게 되었다.


불꽃이 사그라드는 손에 한탄하듯 젖어드는 무연고자의 붉은 선혈, 그리고 경멸하듯 지폐를 던지는 고용주의 비정한 눈빛을 보았다.


그날 밤, 나는 위액이 나올 때까지 음식물을 모조리 게워내 버렸다.


눈을 감을 때마다 피투성이 해골이 입을 벌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지독한 환상에 시달려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위험수를 잡는 의뢰를 받기로 한 것은 그 다음 날부터였다.


비록 첫날부터 촉수에 맞아 갈비뼈가 세 개나 부러지고, 다른 용병이 발목이 부러져 비명을 지르는 것을 옆에서 목도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악몽에 시달리는 일이 없었다.


위험수의 신체 부위를 뜯어서 암시장에 팔기 시작하자 주머니가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받을 수 있는 의뢰도 늘기 시작했다.


무기의 레플리카를 구입하니 더욱 선명한 형상의 무기를 뽑아낼 수 있게 되었고, 더 강한 위험수를 만나게 되어 벌이도 점점 늘었다.


대부분이 빌어먹을 세금으로 뜯겨나가지만 그래도 밥벌이는 할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그런 생각에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그저 사회의 부품처럼 살았다.


단지 돈을 벌었다.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돈 버는 것 하나뿐이었다.


왼쪽 다리에 생긴 염증을 돌보지 못해, 그것을 자르게 되기 전까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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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1 +27 20.05.25 306 37 9쪽
18 A Sudden Emergence(순간적인 출현) +30 20.05.24 299 42 8쪽
17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16 20.05.23 294 38 11쪽
16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6 +18 20.05.22 302 40 10쪽
15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15 20.05.21 312 40 10쪽
14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4 +19 20.05.20 350 34 9쪽
13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13 20.05.19 324 34 9쪽
12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2 +12 20.05.18 327 36 13쪽
11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1 +8 20.05.17 340 36 11쪽
10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6 20.05.16 366 35 8쪽
9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4 20.05.15 345 38 11쪽
8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4 20.05.14 352 38 9쪽
7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4 20.05.13 362 39 11쪽
6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1 +3 20.05.12 398 42 8쪽
5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4 +8 20.05.11 430 44 14쪽
4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4 20.05.11 439 39 12쪽
3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2 +7 20.05.11 534 50 7쪽
2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1 +18 20.05.11 659 59 7쪽
» 정적 - 프롤로그 +25 20.05.11 1,034 9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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