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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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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17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21 10:32
조회
311
추천
40
글자
10쪽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DUMMY

암석과 함께 천장이 통째로 뜯어진 구멍 사이로 눈부신 태양빛이 들어와 동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하아...후...헉..."

나는 일순간 몰려드는 피로감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전신이 바닷물과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수고했어!"


테일러는 내 팔 아래로 들어와, 그 작은 키로 나를 부축하려 애썼다.


나는 곧 친구들에게 이끌려 안전지대의 바위 위로 이동했다. 내가 바위에 기대어 쉬는 동안, 그들은 내가 가져온 등유로 버섯의 잔해를 불살랐다.


"이제 포자가 자라서 번식할 일은 없겠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진이 돌아와서 말했다.


"아이들 시신은 균사가 가득 번져서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태우게 되었어."


조금은 긴장이 풀린 테일러가 거들었다.


"그럼, 이제 대학생들의 유해를 수습해서...으윽."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섬뜩한 통증이 왼쪽 어깨를 찔렀다.


진은 가방에서 의약품을 꺼내며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잠깐, 아직 일어나지 마. 어깨에 열상이 생겼어."


다시 자리에 앉아 아픈 부분을 손으로 훑자, 찌릿한 아픔과 함께 붉은 선혈이 손가락 사이에 흥건히 고였다.


진의 말대로, 아까 균사가 왼쪽 어깨 부분을 뜯어가는 도중 살을 찢는 것에 성공한 모양이다.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고통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봉합해야겠다."


그녀는 곧 수술도구를 꺼냈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 셔츠를 찢었다.


페트병에 담긴 생리식염수를 나의 상반신에 부어서 이물질을 닦은 뒤, 거즈로 상처를 눌러 지혈했다.


그 다음에는 뭔가를 꺼내더니, 내 입에 그것을 넣었다.


"물어. 재갈이야."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재갈을 꽉 깨물었고, 곧 소독약을 묻힌 거즈가 상처를 쑤셨다.


소독약이 상처를 자극하는 느낌에 인상이 구겨지고,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멸균된 수술용 바늘에 실을 꿰어, 예닐곱 바늘 정도를 꿰맸다.


바늘이 비늘 틈 사이사이를 뚫을 때마다 짜릿한 자극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마른 거즈를 덧대고, 삼각건과 압박붕대로 오른쪽 겨드랑이와 왼쪽 어깨를 둘러서 봉합을 마쳤다.


"끝. 너라면 일주일도 안 되어서 회복이 끝날 거야."


그녀가 내 입에 물린 재갈을 꺼냈다.


"치료 고마워."


"고맙긴. 원래 이런 거 시키려고 부른 거잖아."


그리고는 내 가방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 던져 주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우리가 거들 테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구."


테일러가 말했다.


나는 곧 몸을 일으켜, 수건으로 발을 닦은 뒤 양말과 신발을 신었다.


마지막으로 무거운 외투를 걸쳤다.


이거라면 셔츠가 없더라도 추위를 막기에는 충분했다.


"준비 끝났어. 다들 이만 나가자."


멀쩡한 오른팔로 남자 대학생의 시신을 담은 가방을 들고, 친구들을 불렀다.


우리는 마침내 동굴 밖으로 향했다.


잔뜩 헤집어진 덫가리비와 개암달팽이들, '우울한 조디'의 유해, 검게 썩은 갯벌을 지나자 마침내 빛이 보였다.


밀물 시간이 시작되며 바닷물이 차오르는 동굴을 뒤로 하고, 우리는 말없이 걸어나왔다.


소금기 섞인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폐를 채웠다.


동굴 속에서 숨을 다한 이들이 그토록 원했을 맑은 바닷바람이었다.



우리는 그 길로 용병업 사무소에 시신을 양도하며 의뢰의 완수를 알렸다.


「185년 빙하의 달 26일 12시 30분, 의뢰 처리 완료.」


용병업 사무소에서, 처음 보는 젊은 여자가 업무의 처리를 맡았다.


아마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사회 초년생으로, 개인 물품으로 보이는 작고 푸른 유리 꽃병을 데스크 옆에 놓아 둔 것이 보였다.


푸른 유리병에 담긴 것은 노란 꽃잎을 화사하게 벌린 프리지아 두 송이였다.


"저거, 한 송이에 600켈론은 넘어갈 거야."


유지니아가 슬쩍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꽃-변이되지 않은 원종-들은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그 가격은 과도하게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작고 발아하기 쉬운 안개꽃 종류부터 기본이 300켈론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랴.


그 여직원이 꽃을 좋아하는 것은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지만, 용병업 사무소는 장식물이 어울리는 카페 같은 장소가 결코 아니었다.


'꽃병은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하고 마음속으로 우려를 표했다.


"여기, 약속된 보수입니다."


1 라코타 200 카리스.


아껴 쓴다면 2주 동안의 생활비로는 적절한 정도였다. 마르셀로와 유지니아에게 수고비로 350켈론씩 나누어 준 이후에도 얼추 충분했다.


당분간은 정체불명의 어묵만 먹는다면 식사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소어에게는 되도록 좋은 대우를 해 주고 싶었다.


내가 의족을 사기 위해 모은 돈 역시 그 아이를 위해 사용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기."


유지니아가 커피를 끓이러 나간 사이, 마르셀로가 나에게 손짓했다.


"왜?"


"집에 들어갈 때, 선물이라도 사 가는 게 좋지 않겠어?"


맞는 이야기였다.


어제나 오늘이나, 막상 일 때문에 바빠서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선물이라면 뭐가 좋을까?"


"카벙클 인형! 그건 어린아이들이라면 다들 좋아할 거야."


인형...좋다. 소어는 어떤 색을 좋아할까 잠시 고민했다.


"색은...에메랄드 색으로 하는 게 좋겠지."


"일단 기본 색이 가장 좋을 거야."


5켈론 200카리스라는 조금 비싼 가격이지만, 집에 가는 길에 사 가기로 했다.


잠시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던 중, 의뢰주 대학생이 다급하게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의뢰인이네. 혹시 서류 때문에?"


"큰일났습니다! 희생자 샤페이의 유가족이 아래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


그의 말마따나, 1층에서 웬 중년 여성의 단호한 음성과 변성기 온 남자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대학생은 잔뜩 겁을 집어먹곤 문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만 진정하고 조금 앉아 있어. 저 작자들이 원하는 게 뭐야?"


"ㅇ...이번 의뢰를 수주한 용병을 데려오라고 난리에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다음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계단을 내려갔다.


"나와... 그 짐승새끼 당장 끌고 오란 말이야!"


"로이드,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해라."


나는 계단 중턱에서, 그 여자와 아이의 외모를 짧게 훑어보았다.


그 여자가 걸친 검은 캐시미어 코트는 한 눈에 보아도 매우 비싸 보였다.


넉넉히 바른 화장품이고 단정하게 틀어올린 올림머리에도 상당히 돈을 들인 것처럼 보였다.


허나 머리에 쓴 검은 베일을 보니,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아이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왜소한 녀석이었다.


나이 열넷은 먹은 놈이 제 모친에게 매달려 있는 꼴이, 지금 생각해 보니 좀벌레나 벼룩과도 닮은 것 같다.


놈은 장례식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연미복 같은 이상한 정장 차림에, 백금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순간 그 놈의 허리춤에 달린 물건이 시야에 잡히자, 나는 열어두었던 외투를 단단히 여몄다.


"내가 의뢰를 받은 용병이다만, 무슨 일이지."


여자는 불편한 기색으로 제 자식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핏대를 세운 소년이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금방이라도 피가 터져나올 듯 분노로 잔뜩 충혈된 눈동자는 어지간한 위험수 못지않게 그로테스크했다.


"ㄴ..네가 우리 누..누나를 죽였지!"


그 놈은 접수대에 놓인 꽃병을 내 발 앞으로 집어던졌다.


아르바이트 첫날의 불쌍한 접수양이 깜짝 놀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꽃병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히 부서졌고, 반짝이는 파편들과 물에 젖은 프리지아 두 송이가 바닥을 굴렀다.


나는 긴 한숨을 쉬며 적당히 항변했다.


"사람을 죽이는 의뢰는 아니었을 텐데, 왜 생각이 그딴 식으로 흘러가냐?"


놈은 눈을 부라리며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지..지지..짐승 버러지 주제에 어디서 더러운 거짓말이냐!! 내가 누구 아들인지 몰라?!"


그 말에, 나는 옆에 선 우거지상의 여자를 살짝 흘겨보았다. 중학생 소년과 대학생 딸을 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아주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다.


아하.


생각해보니, 나는 어디에선가 이 여자를 본 적 있었다. 명품 분석 프로그램 "부르주아스' 타일(Bourgeois' tyle)"이라는 상류층 토크쇼에서 항상 첫 번째 패널로 나오는 남자가 자주 데리고 나오던 여자였다.


아마도, 이름은 앤 코드먼(Ann Codeman)으로 기억하고 있다.


분명 이 여자는 자기 남편과 함께 지역 유지인 것으로 유명했다. 개인적으로 그 프로그램 자체를 싫어하긴 했지만 나름 개성적인 얼굴이라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 누군가 했더니 지역 유지의 도련님이셨군. 그래도 너한테 존댓말은 안 쓸 거니까 알아 둬. 네 누나는 17일 전에 죽었으니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닥쳐, 닥쳐, 더러운 짐승이면 씨발놈의 아가리 좀 싸닥치라고! 마마, 제발 내 이야기 좀 들어 봐. 이 더러운 짐승새끼는 거짓말하는 거야. 분명 우리 누나를 물로 끌고 들어가 죽이고 시체도 따먹었을 거라고!"


"..로이드, 이미 다 끝난 일이니 조용히 해. 우리는 샤페이의 시신만 받으러 온 거야."


올백머리 소년의 발광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제 잘난 듯 분수도 모르고 사납게 짖어대는, 광견병 걸린 치와와같은 느낌이 들었다.


짐승새끼라는 말을 주둥아리에 달고 다니는 꼴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가진 놈들일수록 자식 교육도 더 거지같이 시키는 걸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겠군. 나머지는 알아서 끝내라."


내가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돌아서려는 참이었다.


찰칵이는 금속음이 사무소 전역의 공기를 흔들었다.


곧 폭발음과 함께 등짝에 묵직한 충격이 꽂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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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1 +27 20.05.25 306 37 9쪽
18 A Sudden Emergence(순간적인 출현) +30 20.05.24 298 42 8쪽
17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7 +16 20.05.23 294 38 11쪽
16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6 +18 20.05.22 302 40 10쪽
»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5 +15 20.05.21 312 40 10쪽
14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4 +19 20.05.20 349 34 9쪽
13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3 +13 20.05.19 324 34 9쪽
12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2 +12 20.05.18 327 36 13쪽
11 Drowned Fanatics(익사한 광신도들) - 1 +8 20.05.17 340 36 11쪽
10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5 +6 20.05.16 366 35 8쪽
9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4 +4 20.05.15 344 38 11쪽
8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3 +4 20.05.14 352 38 9쪽
7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2 +4 20.05.13 362 39 11쪽
6 Abraxas' Nightmare(아브락사스의 악몽) - 1 +3 20.05.12 398 42 8쪽
5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4 +8 20.05.11 429 44 14쪽
4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3 +4 20.05.11 438 39 12쪽
3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2 +7 20.05.11 534 50 7쪽
2 A Misty Mystery(안개투성이 의문) - 1 +18 20.05.11 659 59 7쪽
1 정적 - 프롤로그 +25 20.05.11 1,033 9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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