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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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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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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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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12.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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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어느덧 몸에 땀이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7월로 접어들었다.

류지호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고우찬의 집으로 달려갔다.


“나 왔어! 운동 가자!”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빡!


고성재가 고우찬의 뒤통수를 때리며 으르렁거렸다.


“친구한테 뭐하는 짓이냐!”

“안 가! 안 해!”


고우찬이 이불속으로 숨어들어가 완강히 반항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으름장에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쳇... 누가 보면 지호 저 놈이 아들인 줄 알겠네.”


고우찬이 이불을 개며 툴툴거렸다.


“와봐.”


류지호와 집을 나서는 고우찬을 고성재가 불러 세웠다.


“왜?”

“운동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


고성재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고우찬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 당시 만 원이면 상당한 액수였다.

작년 출시된 매운라면을 50봉지나 살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다.


“뭐든 포기하지 말고 해. 쥐구멍에도 볕은 든다.”


고우찬은 냉큼 돈을 받아 들었다.


“잘 쓸게요!”


고성재는 서둘러 집을 빠져나가는 아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반 년 치 용돈을 선뜻 준 것은 친구에게 짜장면이라도 사주라는 의미다.

알아들었을지 모르지만.


다다닥!


류지호와 고우찬 두 사람이 신문을 옆구리에 낀 채 동네를 달렸다.

왼쪽으로 대문이 나 있는 집은 고우찬이 신문을 넣었고, 류지호는 오른쪽 주택을 맡았다.


“아씨... 힘들어 죽겠네. 천천히 좀 달려. 신문배달에 목숨 걸었냐?”


툴툴대고 또 구시렁거리고.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는 고우찬이다.

헌데 딴 길로 새지 않고 류지호를 잘 따라왔다.

아버지의 협박이라는 채찍과 용돈이라는 당근에 완전히 굴복한 결과다.


‘우찬이가 외우는데 얼마나 걸리려나....?’


고우찬이 구독자 집에 대한 암기를 마치면 부수를 늘릴 생각도 있었다.

두 사람이 몫을 나눠 가지면 현재 부수로는 푼돈 밖에 만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문배달을 마치고 나면 태권도도 함께 수련했다.


“몸 풀기 전에 단전호흡부터.”

“오오~ 내공심법 배우는 거야?”

“무협지가 애들 다 버려놨다니까.”


어릴 때 홍 관장이 했던 말을 그대로 고우찬에게 돌려주는 류지호다.


“내가 지금부터 가르쳐 주는 복식호흡법으로 느리고 규칙적으로 깊게 들이마시면서 호흡을 하면 신진대사도 활발해지고 기초대사량도 올라가면서 몸속의 노폐물과 독소를 보다 효율적으로 배출할 수 있어. 매일 20분 이상을 꾸준히 하면 폐활량이 늘고 심리적인 안정효과도 얻을 수 있고.”

“좋은 거야?”

“좋은 거지. 이거 꾸준히 하다보면 담배도 끊게 될 걸? 그리고 명상효과도 있으니까 마음도 차분해져. 너처럼 다혈질인 놈한테는 아주 좋아. 용연태권도장에서만 가르쳐 주는 거니까 열심히 해.”

“오오! 여기서만 배울 수 있다 이거지?”


원래 고우찬은 단순한 성격이지만 멍청하진 않다.

그것도 성인이었을 때 이야기다.

지금은 열일곱 먹은 덩치만 곰 같은 어린애일 뿐이다.


후우우웁.


류지호는 20분 정도 고우찬에게 단전호흡을 가르쳤다.

가벼운 맨손체조와 스트레칭 요령도 알려줬다.


“이얍! 아자!”


팡! 팡!


류지호가 홍 사범이 대주는 미트에 호쾌한 발차기를 연달아 퍼부었다.

정 사범으로부터 기본 마보자세와 정권지르기, 기본 발차기를 배우는 고우찬이 틈틈이 류지호의 발차기를 훔쳐봤다.


꽝! 꽝!


도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타격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홍 사범은 시원한 타격음이 좀 더 잘 터지도록 미트의 각도를 조절했다.

타격음이 잘 터져야 발차기 하는 맛과 멋이 나는 법이다.


‘꽤 있어 보이긴 하네.....!’


고우찬은 내심 감탄했다.

공부할 때와는 또 달랐다.

솔직히 진지한 류지호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내가 저 비리비리한 지호놈에게 질 수 없지.’


공부로 류지호를 이길 순 없다.

심지어 롤러스케이트도 류지호가 더 잘 탔다.

몸 쓰는 것에서는 지고 싶지 않은 것이 고우찬의 솔직한 심정.

고우찬이 류지호에게 승부욕을 품기 시작했다.

그런 일상이 일주일 간 반복되었다.


✻ ✻ ✻


엊그제 중간고사를 본 것 같은데, 어느새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류지호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아껴가며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황재정이 교실로 찾아왔다.


“열심히 하네?”

“이것 말고는 학교에서 따로 할 것도 없잖아.”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황재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모여서 같이 시험공부하자.”


류지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재정을 바라봤다.

황재정의 입에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공부하자는 말이.


“우찬이랑 같이 운동한다며? 준우는 요새 아빠가 새로 카메라를 사줬다고 틈만 나면 사진 찍으러 다니더라.”


탁!


류지호가 보던 참고서를 덮었다.

그리고 황재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니들이 맘 잡고 뭔가 열심히 하는데, 나만 뒤쳐질 수 없잖아?”

“.....!”

“너도 갑자기 변해서 운동도 하고, 공부도 죽어라 하고.... 우리 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던 띨빡 같았던 놈이 앞장서서 친구들 챙기는데 난 뭐하나 싶고... 뭐 그러네.”


류지호가 가만히 황재정의 눈을 바라봤다.

항상 활기라고 찾아볼 수 없었던 눈.

그런데 지금은 묘한 열망이 깃들어 있다.


“나 혼자는 도저히 공부가 안 돼. 우리 중에 네가 공부를 제일 잘하니까... 나 공부 좀 가르쳐줘.”


류지호는 황재정의 말이 기꺼웠다.

어쩌면 기다리던 말일지도.


“그러자!”

“고맙다.”

“고맙긴 뭘. 우리 친구 아이가.”


류지호가 잔뜩 목소리를 깔고 한참 후에나 유행할 영화 대사를 흉내 냈다.


“뭐냐, 또 그 요상한 말투?”


하하하.


류지호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신의 변화가 친구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찌 즐겁지 않을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류지호는 곧장 김준우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시험공부 계획을 설명했다.

김준우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즉각 찬성했다.


❉ ❉ ❉


기말고사를 일주일 앞 둔 토요일.

류지호와 고우찬이 태권도 수련을 서둘러 마쳤다.

그리고 각자의 집이 아닌 완전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구월동 신흥부촌.


시청이 새롭게 들어서고 종합터미널 이전이 예정되면서 형성된 동네다.

넓은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주택 가운데 한 곳의 초인종을 류지호가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준우 친구 지호와 우찬입니다.”


호리호리한 인상의 단아한 중년 부인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김준우의 어머니 조성자다.

그녀는 아들 친구들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2층에서 편하게 공부하렴.”


류지호는 곧장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부잣집다웠다.

2층에는 방만 세 개가 있었고, 아파트처럼 화장실이 실내에 있었다.

심지어 공부방도 따로 존재했다.

286 컴퓨터와 프린터까지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5.25인치 디스켓 드라이버가 전면부에 노출되어 있는 넓적하게 누운 본체 위에 뒤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흑백 모노크롬 모니터가 올려 있다.

이 당시 퍼스널 컴퓨터의 가격이 대략 140만 원 대다.

류지호의 아버지 월급 세 달치를 모아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일반 가정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그런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미래에는 조립PC를 구입하거나 직접 조립하기 위해 모두가 용산으로 몰려가게 되지만, 이 당시에는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PC를 조립했다.

청계천에서 조립PC가 풀리면 대기업이 따라가는 분위기였다.

다시 말해 청계천에서 시제품이 나오고 나서 한참 지나서야 국내 대기업들이 소위 메이커용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그런 시절이다.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286 컴퓨터를 쓰고 있을 때 청계천에서는 386컴퓨터가 조립되어 전문가들에게 팔려나갈 정도였다.

류지호가 인테리어소품처럼 느껴지는 컴퓨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컴퓨터 되는 거냐?”

“당연하지.”


김준우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진짜? 고장 난 거 장식으로 놓은 거 아니고?”

“누나가 가끔 써.”

“막내 누나가 공대생이었냐?”

“아니. 상대 다녀.”

“암튼 된다는 거지?”

“난 쓸 줄 몰라.”

“나중에 내가 좀 쓸 수 있을까?”

“컴퓨터도 할 줄 알아?”


김준우가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글쎄,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방송부 담당 선생이 전산부도 같이 맡고 있거든. 학교에서 사용법을 대강 배우긴 했어.”


반은 맞고 반은 거짓으로 둘러댄 것이다.

전문대를 다닐 때 286 컴퓨터를 잠시 사용해 본 적이 있긴 했다.

운영체제가 DOS인 관계로 단축키와 명령어를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났다.

지금도 몇 개의 단축키가 바로 기억이 났다.


“작은 누나한테 걸리면 잔소리 들으니까. 몰래 써야 돼. 내게 미리 말만 해.”

“고맙다, 친구야.”


컴퓨터 관련 서적을 사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비록 눈 가리고 아웅 일지라도.


‘이래저래 돈 벌 건수보다 쓸 일만 생기네.’


2층에서 가장 큰 방에 사인방이 모여서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살금살금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조성자가 쟁반을 든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딸만 연이어 셋을 낳았다.

마지막에 낳은 사내아이가 김준우다.

오죽 귀한 아들일까.

외아들이라고 오냐오냐 키우는 것은 아니다.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고 사진에 몰두하는 외아들이 내심 걱정되던 차다.

친한 친구라는 녀석들이 공부를 하겠다고 모여 애쓰는 모습을 보니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조성자는 과일이며 간식거리를 수시로 내오며 아이들은 격려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먹성이 좋은 고우찬이 가장 큰소리로 외쳤다.

함께 하는 합숙시험공부는 일요일까지 이어졌다.

류지호는 지난 중간고사에서 마구잡이식 공부로 시행착오를 겪었다.

암기과목이라고 해서 단순히 외우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며 외웠던 것들 상당수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과목별 공부요령을 고민했다.

공부에 왕도가 없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습관처럼 체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애들아, 잠깐 내 이야기 좀 들어봐.”


류지호는 친구들이 자신에게 집중하자 입을 열었다.


“내가 공부하는 방법을 말해볼게. 참고 해봐.”


일단 자신의 공부법을 친구들에게 알려줬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김준우가 류지호의 공부법과 궁합이 가장 좋았다.

황재정은 중학교 때 나름 하던 방식이 있었다.


“이건 별로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


황재정이 수학문제를 별 어려움 없이 풀었다.

물리와 화학 과목도 꽤 잘 이해했다.

류지호가 전반적인 학습 분위기를 주도했다면, 황재정은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친구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공부와 담을 쌓고 사는 고우찬이 문제다.

녀석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만화책 보려면 옆방 가서 봐!”


황재정이 까칠하게 말했다.


“만화책도 책이거든. 흥!”


콧방귀를 낀 고우찬이 만화책을 챙겨 옆방으로 사라졌다.

옆방으로 들어간 고우찬이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만화책을 봤다.

이내 싫증이 나버렸다.

만화책을 한편에 던져두고, 몸을 일으켰다.


헛! 헛!


허공에 발차기를 가볍게 날렸다.

대번에 황재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안 해!”

“거 까칠한 새끼!”


고우찬은 투덜거리다가 기마자세를 취했다.

방 안이라 요란하게 발차기를 못하니 기마자세로 기본인 정권지르기나 손날치기 같은 상반신만 이용한 기본동작을 수련하기로 한 것이다.

고우찬은 좁은 공간에서도 가능한 다리 찢기와 푸쉬업도 간간이 섞었다.


“재정아, 조급해 하지 마.”

“지금까지 너무 요령만 피운 것 같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황재정은 허무주의에 빠진 것처럼 매사 비관적이다.

그렇지만 일단 내뱉은 말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격이다.


“어디가?”

“화장실....”


류지호는 화장실이 아닌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주방에서 조성자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

“응, 그래? 간식 떨어졌니?”

“저희가 폐를 끼치네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호호, 말도 참 어른스럽게 한다.”


류지호가 쑥스러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공부는 잘 돼 가니?”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하니까 능률이 오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준우 잘 좀 부탁한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준우도 원래 한다면 하는 아이니까요.”

“어쩜 말도 이리 이쁘게 할까?”

“그래서 말인데.... 저희가 시험기간 동안에도 함께 모여서 공부를 하면 안 될까요?”

“우리 집에서?”

“시험보고 각자 뿔뿔이 흩어지면 지금의 집중도가 떨어질까 싶습니다.”


조성자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류지호가 반쯤 포기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무 폐를 끼치는 걸까요?”

“그러자꾸나. 내가 어른들과 이야기 해볼게.”

“감사합니다!”


류지호를 2층으로 올려 보낸 조성자가 사인방의 집에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시험기간 동안 아이들이 자신의 집에서 함께 먹고 자고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설득했다.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친구 집에 모여 공부를 하겠다는데 반대할 부모는 없었다.

사인방은 김준우의 집에서 합숙을 하며 기말고사를 치렀다.


✻ ✻ ✻


학기말고사.


줄여서 기말고사라 칭한다.

이 시험은 학생들에게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맛보게 한다.

기말시험이 끝나면 학기나 학년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류지호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친구들의 공부까지 봐주느라 시험 마지막 날에 가서는 그로기 상태에 몰렸다.

무슨 일을 하던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했다.


‘태권도라도 하니까 이 정도지....’


7월 중순에 초대형 태풍 셀마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대한민국은 셀마로 인해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와 1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힘들어 했다.

그런 한편 수재의연금 모금과 군인들의 대민봉사가 줄을 이었다.

각계각층의 도움의 손길이 방송과 언론을 통해 미담을 수놓고 있었다.

온 나라가 물난리를 겪는 가운데, 류지호는 잠시 운동과 공부를 내려놓고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떨어질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호야. 이리 와 봐라.”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류지호를 거실로 불러냈다.

류민상이 예의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물었다.


“수재의연금은 어디에 내는 것이냐?”

“방송국에 접수해도 되고, 아마 신문사에 접수해도 될 거에요.”

“여보, 지호에게 오만원만 줘.”

“오, 오만 원씩이나 뭐하게요?”


심영숙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이 당시 쌀 한가마니가 8만 원이었다.

서민에게 오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지호는 엄마한테 돈 받아서 신문사에 내고 와.”

“괜찮아요. 제가 학교에서 수재의연금 냈어요.”

“얼마 냈어?”

“천원이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십만 명이라는데 천원이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 우리가 없이 살아도 모른척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다.”


내키지 않아하는 심영숙에게 오만 원을 받은 류지호가 한국신문 인천지국을 찾아갔다.

다른 곳보다 자신이 배달하는 신문사에 접수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다.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수재의연금을 접수하고 있었다.


‘자기 먹고 살기도 벅찰 텐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남을 돕고 살고 있구나.’


류지호는 수재의연금을 횡령한 공무원에 대한 언론보도를 기억했다.

사실 국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모은 수재의연금이나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

정작 도움을 받아야할 곳에 쓰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언제든 눈먼 돈처럼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연례행사처럼 수재의연금을 내기 위해 지갑을 연다.

류지호는 내심 오만 원이란 거금을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을 위해 내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었다.

자신이 한 달을 죽어라 신문을 돌려야 벌 수 있는 돈.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돈을 흔쾌히 내놓았다.


‘아버지는 도리라고 말씀하셨지.’


도리(道理)는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을 말한다.

류지호는 두 번째 얻은 삶에서 성공한 삶 사람들에게 선망을 받는 인물이 되고 싶었다.

권력을 쥔 성공한 사람.

부를 거머쥔 자도 권력을 가진다.

명예도 권력이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멋진 인생.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앞 서 대처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바른길만 걸으며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부자들 중에 도리를 지켜가며 부를 쌓아 올린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해?’


영화판을 기웃거리는 부자들을 많이 보았다.

남의 밥그릇을 빼앗으려만 드는 부자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쌓아 올린 사람들.

누군가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비정한 기득권자들.


“......학생!”


신문사 여직원의 목소리가 접수대 앞에서 상념에 잠긴 류지호가 정신을 일깨웠다.


“도화1동. 류, 민자 상자 쓰시는 분과 그 외 가족 4인이요.”


류지호는 수재의연금을 접수를 마치고, 신문사 지국을 빠져나왔다.


펄럭!


류지호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일기장부터 펼쳤다.

일기장 사이사이에 메모한 미래의 사건들을 훑었다.


후우.


류지호의 입에서 나지막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바람직한 부자건 뭐건.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당시는 대학생들도 마땅히 할 만한 아르바이트가 없다.

류지호는 연습장을 꺼냈다.


끄적끄적.


낙서하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어나갔다.

신문·우유 배달, 공사장 막노동, 호프집·커피숍 서빙, 빵집 DJ, 예식장 알바....


“잠깐! 예식장?”


60년대 중반부터 전국적으로 결혼식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지금 시기는 결혼식장 예식이 일반화 되면서 전통혼례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현재는 결혼산업 측면에서 과도기다.

본격적으로 결혼산업이 폭발하기 바로 직전인 시기다.

류지호은 결혼 관련해 떠오르는 것을 마구잡이로 적어나가다가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계가 있는 하나의 업종을 찾아냈다.


“아..... 웨딩촬영!”


지금 시기의 웨딩 사진은 결혼식 날 예식장에서 촬영하는 것이 전부다.

본격적인 의미의 웨딩 촬영이 시작된 것은 90년대부터다.

90년대에 들어가서야 신랑·신부가 결혼식 바로 직전에 웨딩 촬영을 진행하게 된다.

결혼식 당일 오전에 웨딩 촬영을 하고, 오후에 결혼식을 올리는 식이다.

주로 예식장 근처 야외에서 이뤄지게 된다.

그것은 기념사진 분야이고, 또 다른 한 분야가 웨딩비디오다.

그 분야 역시 90년대 들어 시작된다.

류지호는 연출부 생활 틈틈이 웨딩비디오 알바를 뛰곤 했었다.

영화 일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론 도저히 생활이 안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혼시즌 주말마다 웨딩비디오 알바를 했었다.

외환위기 전에는 연출부 수입보다 웨딩비디오 알바로 번 돈으로 먹고 살았을 정도였다.


“소자본으로 할 수 있겠는데....?”


현재 시점의 웨딩비디오 시장은 블루오션이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척되지 않은 시기다.


“정말 이럴 때는 인터넷이 아쉽다.”


생각난 김에 정보를 검색하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마침 결혼식이 열리는 토요일이다.

류지호는 수첩과 볼펜 한 자루를 챙겨 또다시 집을 나섰다.

곧장 주안으로 향했다.

주안 주변에는 고려, 귀빈, 동궁 등의 예식장이 모여 있다.

비록 장마철이긴 했지만, 결혼식이 제법 열리고 있었다.

류지호는 예식장들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웨딩촬영 현황을 파악했다.


‘역시 예상대로야....!’


웨딩비디오를 촬영하는 시기가 아니다.

웨딩사진 역시 본식이 끝나고 하는 기념촬영이 전부다.

류지호는 수첩에 관련 정보를 열심히 메모 했다.

간간이 떠오르는 관련 기억 또한 빼먹지 않고 적었다.

사진과 비디오 촬영 관련 업체 리서치는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발품을 팔기로 했다.

이 시기 웨딩비디오 촬영 현황을 확인하려면 서울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웨딩의 메카인 서울 강남.

그곳에 가서 직접 눈으로 봐야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있다.


“결혼 축하드려요.”


류지호는 일면식도 없는 부부의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갈비탕 한 그릇을 얻어먹었다.

동인천과 부평역 주변에도 예식장이 많다.

전철을 타고 가다보면, 모든 예식이 끝나있을 것 같아 오늘은 포기했다.


작가의말

어느덧 올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주가 다가왔습니다.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한파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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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14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777 193 21쪽
46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11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19 202 24쪽
44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755 210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380 214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323 227 18쪽
41 Carpe diem... (2) +12 22.01.10 10,474 235 20쪽
40 Carpe diem... (1) +12 22.01.10 10,842 222 20쪽
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10 238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0,941 230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739 223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461 233 22쪽
35 영화밥 먹고 살 팔자... (4) +7 22.01.07 10,529 212 22쪽
34 영화밥 먹고 살 팔자... (3) +8 22.01.06 10,763 197 21쪽
33 영화밥 먹고 살 팔자... (2) +5 22.01.06 11,025 217 20쪽
32 영화밥 먹고 살 팔자... (1) +8 22.01.05 11,643 222 24쪽
31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는 법이다. +13 22.01.05 11,457 227 26쪽
30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4) +11 22.01.04 11,764 228 24쪽
29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3) +16 22.01.04 11,830 241 24쪽
28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2) +12 22.01.03 11,797 236 21쪽
27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1) +8 22.01.03 12,268 237 20쪽
26 블루오션인 건 확실해! +9 22.01.02 12,358 251 27쪽
25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4) +12 22.01.01 11,875 260 20쪽
24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3) +11 22.01.01 11,878 250 22쪽
23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2) +8 21.12.31 12,162 238 16쪽
22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1) +8 21.12.31 12,956 245 24쪽
21 우리는 가족입니다! (3) +14 21.12.30 12,848 262 24쪽
20 우리는 가족입니다! (2) +12 21.12.30 12,886 26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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