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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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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8.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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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502,547

작성
21.12.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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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268
글자
20쪽

Goodfellas.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신포고 별관 건물, 그것도 구석에 위치한 문예부실.

마치 운동권 학생들의 비밀아지트 같다.

어딘지 음침한 분위기가 강하게 풍겼다.

때문에 이곳은 올 곳이 아니라는 기분이 절로 들게 했다.


끼이익-


출입문까지 불길한 소리를 냈다.

류지호가 찡그린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

실내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고우찬과 황재정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들이 내품는 담배연기가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구수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독한 냄새가 류지호의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한대 줄까?”

“안 펴.”


준우가 보이지 않았다.


“준우는 사진부 암실에 들렀다 온대. 암실에 사진 인화한 것 확인해야 한다더라.”

“시험기간인데 사진을 인화했대?”

“친척 할머니 환갑잔치 사진이라나, 뭐라나.”

“사진부 암실은 흑백 밖에 안 되지 않냐?”

“예술사진이래.”

“환갑잔치에 예술사진은 무슨.”

“준우도 은근히 돌아이 짓 많이 해.”

“사돈 남 말하고 있다.”


킥킥.


자신들의 만담 같은 대화가 우스운 모양인지 두 녀석이 낄낄댔다.


“재정이 너는 중학교 때 모범생이었다며. 담배는 언제 배웠냐?”


황재정은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모범생이다.

그런 녀석이 날라리 흉내를 내는 것 같아 우스워 물었다.


“띨빡아~ 너하고 재정이 내가 저번 달에 가르쳐줬잖아.”


고우찬이 심드렁하게 황재정 대신 대답했다.

그랬다.

이때 쯤 호기심에 한 번만 피워본다는 것이 류지호가 30년 넘게 담배를 피우는 계기가 되었었다.


“자랑이다! 너는 누구한테 배웠어?”

“아버지 담배 쎄벼서 펴보니까 그냥 펴지던데?”

“언제?”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동네 형들이 피는 게 폼 나 보이더라고.”

“하여간 못된 것은 기를 쓰고 배우는구나.”

“아빠는 몰라. 입조심해.”

“모르실 리가 있겠냐? 알면서 넘어가시는 거지.”

“그런가?”

“어른들은 애들이 뭘 하는 지 대충 다 알아.”


황재정이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친구한테 후까시 잡지 말고, 똥개나 어떻게 해볼 궁리나 해.”

“말본새하고는 말 좀 이쁘게 해.”

“저거 봐. 저 놈 말투 또 이상해.”


고우찬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방송부 중에 할머니가 무당인 얘 있다며. 함 가보자니까. 언제 갈래?”


류지호가 버럭 소리쳤다.


“시끄러!”


그때 문예부실로 김준우가 들어왔다.

앉자마자 고우찬에게 담배를 한 대 받아 피워 물었다.

그 모습이 하도 자연스러워서 누가 보면 어른이 담배 피우는 줄 알 것 같다.

류지호는 어른들에게 흡연사실을 일러바칠까도 생각해봤다.

말을 들을 녀석들이 아니다.


“시험 끝났는데 뭐 할까?”


김준의 물음에 고우찬이 반색해서 바로 대답했다.


“아네모네 가기로 했잖아.”

“아네모네 아줌마 분위기가 왠지 사연 있는 여자 같아 보이지 않냐?”

“그 아줌마 마담 출신이야.”

“어떻게 알아?”

“우리 동네에 엘로우하우스 누나들 많이 살아서 알아.”


속칭 엘로우 하우스는 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집창촌이다.

고우찬은 무용담이랍시고 사창가를 활보하고 다닌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들곤 했다.


“어쩐지 그 아줌마가 색기가 확 풍기더라.”


류지호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유치해서 못 들어주겠네. 일어나! 영화나 보러 가게!”


친구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무슨 영화 볼 거야?”

“영화는 액션, 액션하면 아놀드 형이지.”

“그냥 칼집 갈까?”

“화도진 쪽에 만화방 있거든. 거기서 포르노 보여준다더라.”


고우찬이 탈선의 길로 이끄는 말을 하자, 친구들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오호~ 포르노!”

“거기가 어디야?”


이 당시 신포동 골목에 칼국수를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하루 종일 비디오 영화를 틀었다.

호객행위의 일종으로 간혹 에로영화를 틀기도 했는데, 남학생들은 그 시간에 일부러 맞춰 칼국수를 먹으러 가기도 했다.

또 일부 만화방에서는 불법으로 밀실을 만들어 따로 돈을 받고 무삭제 외국 에로영화를 보여줬다.

심지어 대놓고 포르노를 틀어주는 만화방도 존재했다.


“너희들 <애마불륜>은 봤냐?”

“난 저번 주에 <그로잉업> 봤다.”


고우찬은 에로영화 족보를 줄줄이 읊어대며 친구들을 선동했다.


“일단 담배 꺼. 여기서 죽치고 있어봐야 답이 안 나와. 학교부터 뜨자.”


류지호가 먼저 일어서자 친구들도 서둘러 담배를 끄고는 일어섰다.

사인방은 문예부실이 있는 별관을 빠져나와 운동장을 걸어갔다.

김준우가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황재정에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누가 미팅 주선 안 해주냐?”

“사진부에 날라리 형들 많잖아. 형들한테 네가 한 번 부탁해 봐.”

“서클은 나만 들었냐? 너도 있고, 지호도 있잖아.”

“우리 형들은 막걸리만 좋아해. 여자 안 좋아한데.”

“그 뻥을 누가 믿어?”

“그래서 뭐 하고 놀 건데. 네가 오늘 책임지기로 했잖아.“

“왜 나만 매번 돈 쓰지? 기분 탓이냐?”

“너는 사장 아들이잖아. 용돈 많은 놈이 써야지 개털인 저 놈들이 쓰겠어.”


사인방이 막 교문을 나서는데 누군가 뒤에서 불러 세웠다.


“야! 거기! 그지 새끼들!”


류지호와 친구들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박광렬과 똘마니들이 팔자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갑작스런 그들의 등장에 류지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존만이들. 인사 안하냐?”


고우찬이 지그시 박광렬을 노려봤다.

김준우가 기세싸움을 벌이려는 고우찬의 앞을 재빨리 막아섰다.


“안녕하세요.”


김준우가 먼저 넙죽 인사를 했다.

황재정이 고우찬의 옆구리를 살짝 치고는 구십도로 허리를 굽혔다.

류지호도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박광렬이 비웃음 가득 담긴 어조로 말했다.


“돈 안 뺏어 그지 새끼들아.”


류지호와 친구들은 대꾸하지 않고 침묵했다.

박광렬이 바닥에 침을 뱉고는 거들먹거리며 지나쳤다.


“양아치 새끼! 학교 선배만 아니면 그냥!”


고우찬이 분한 얼굴로 씹어 뱉었다.

위계질서를 따지는 사회분위기상 신포고에서는 후배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선배를 이겨서는 안 되었다.

만약 후배가 선배를 패는 일이 발생하면 선배들의 즉각적인 응징이 이루어졌다.


“신경 쓰지 말자.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황재정이 쓴 것을 삼킨 표정으로 고우찬을 다독였다.


“짜증나네.”


류지호도 기분이 가히 좋지만은 않았다.

신포고 같은 명문은 문제아가 적은 편이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의리가 있고, 우정을 멋으로 아는 풍조가 있었다.

학교에서 좀 논 다는 학생도 같은 학교 후배를 괴롭히거나 돈을 빼앗지 않았다.

박광렬처럼 개념이 없는 양아치들도 간혹 있었지만 한 학년에 두서너 명 정도였고, 그 정도 숫자로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양아치들한테 겁먹어서 피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한 판 붙어 봐도 깨질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아.’


2년 동안 저들과 학교에서 마주쳐야 한다.

그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면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해야 한다.


‘도장에 다시 나가야돼. 아냐, 태권도는 좀 약하지 않을까? 합기도나 특공무술로 갈아타야 되나?’


류지호는 여름방학 즈음으로 해서 태권도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박광렬과 몇 번 마주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 혼자 운동하는 것으로는 안 돼. 당장 태권도장에 다녀야 해.’


태권도보다 권투나 합기도, 킥복싱을 배우는 것이 호신용으로 좋다.

그럼에도 태권도를 다시 하려는 것은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월 회비도 할인받을 수 있을 같고.

당장은 어떤 일에 대해 반응하는 정도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능동적으로 뭔가를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공부, 체력단련, 학교생활만으로 시간이 모자랐지만.


✻ ✻ ✻


영화는 <명천회갱호(明天會更好)>를 골랐다.

우리 말로 '내일을 더 나아질거야'라고 해석할 수 있다.

홍콩 느와르의 시작이자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영화다.

류지호와 친구들은 2층 중앙 난간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좌석제가 정착된 시기가 아니어서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다.

이 당시 극장은 공연장처럼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었다.

대부분의 관객은 2층 좌석을 선호했다.


‘사람이 별로 없네.’


류지호는 2층 난간에서 텅비다시피 한 1층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명천회갱호(明天會更好)>는 개봉 당시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겨우 본전치기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재개봉관으로 내려간 뒤에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동시상영관에서 상영하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그리고 비디오 대여점에 풀린 후에 광풍이 불었다.


‘대기업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배급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질 때니까 아무래도 영화 흥행도 제멋대로겠지.’


이 당시 극장은 개봉관, 재개봉관, 동시 상영관으로 메이저와 마이너가 명확히 구분이 되었다.

어떤 극장에서 개봉을 했느냐에 따라 영화의 급이 매겨졌다.

때문에 대한극장, 피카디리, 단성사 같은 서울 유명극장에서의 개봉은 그 만큼 많은 관객이 동원돼 어디 극장 개봉 작품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홍보를 했다.

서울보다 늦게 개봉하는 지방 극장에는 포스터에 어디 극장 절찬 상영이란 문구가 들어간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극장 불이 꺼졌다.


촤라라락.


영사기에서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극장 안의 정적을 깼다.

디지털 영상 시대의 기억이 또렷한 류지호는 감회가 새로웠다.


‘필름은 영사할수록 낡아지지. 서울에서 많이 상영한 영화일수록 필름에 스크래치가 생기고, 지방극장에 배급되어 상영하면 스크린에 비가 내렸어. 동시상영관에서는 중요한 장면에서 화면이 끊겨 욕하면 봤었는데....’


대한뉴스가 지루하게 상영되다가 예고편이 나왔다.


두둥!


電影工作室(전영공작실) 로고가 뜨고, 드디어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류지호는 영화 <천국 영화관>에서 주인공 토토가 고향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유품인 필름을 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류지호는 마치 토토가 된 심정으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하아암’


감정이 너무 메말랐나...

류지호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명천회갱호(明天會更好)>는 류지호가 수십 번 본 영화다.

대사까지는 몰라도 장면들의 거의 대부분이 머릿속에 들어있다.

영화가 중반으로 접어들자 졸음이 쏟아졌다.

결국 류지호는 영화를 보는 내내 졸고 말았다.


✻ ✻ ✻


김준우가 친구들을 향해 호기롭게 소리쳤다.


“애들아, 양키시장 들렀다 연하대로 가자.”

“양키시장에는 왜?”

“잔말 말고 따라와!”


김준우가 친구들을 이끌고 동인천역 뒤편에 위치한 일명 양키시장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인천항과 가까워 외제물품이 많이 들어오던 양키시장이다.

비록 70년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시기에도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에서 나온 물건들을 파는 곳이 여럿 존재했다.

몇 년 후부터는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물건들이 사라지면서 이른바 짝퉁 물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양키시장은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마다 노점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여전히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집 근처와 학교를 제외한 장소에 류지호가 처음 갈 때면 시대극 야외세트장을 관광하는 느낌이 들곤 했다.

폰카를 찍기 위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찾다가 없다는 걸 깨닫고 한숨만 내쉬기 일쑤다.


‘스마트폰은 그렇다고 쳐도 인터넷이 없는 것이 더 아쉬워.’


퍼스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는 시기다.

플로피 디스켓을 이용해 부팅을 해야 하는 286 도스 컴퓨터다.

컴퓨터가 워낙 고가여서 일반 가정에서는 엄두도 못 냈다.

인터넷을 일반에서 쓰려면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스마트 폰 하나로 자유롭게 일상을 영위했던 류지호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그냥 신기해서.”

“몇 번 와봤으면 뭐가 신기해? 길 막지 마.”


양키시장은 좁은 통로를 따라 노점들이 마치 미로처럼 얽혀있어 처음 오는 사람은 그 복잡함에 당황한다.

일행과 함께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뿔뿔이 흩어져 버리기 일쑤다.


“학생, 여기 좋은 물건 있는데, 한 번 보고 가.”


호객행위를 하던 노점 아주머니가 류지호의 팔을 붙잡았다.

매대에는 갖가지 상표가 무질서하게 진열되어 있는데, 간간이 미군 마크가 눈에 띄었다.


“GAP 모자나 후드티 있습니까?”

“갭?”

“짝퉁.....”

“우린 짝퉁은 안 팔아.”


아주머니가 정색을 했다.

짝퉁이 없을 리가.

상인들은 단골이 아니면 짝퉁이나 부평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건을 내주지 않았다.

불시에 단속을 나오기 때문이다.

나름 단골 위주로 불법 물품을 거래했다.


“학생이 마음에 드는 거 한 번 골라봐.”


류지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매대의 옷들을 꼼꼼히 살폈다.

GAP 모자가 90년대 중반에 가서야 유행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인천에는 매장이 없어서 양키시장에서 짝퉁이 대규모로 풀렸던 것 같다

그때부터 미군 물건을 팔던 양키시장이 짝퉁의 천국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이 놈들은 또 어디로 간 거야?”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사인방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류지호는 사인방을 찾아 시장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다시 입구로 나왔다.

재회한 사인방 친구들이 명품 브랜드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용케 짝퉁을 구입한 모양이다.

고우찬은 어디서 구했는지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있다.

고우찬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바바리코트까지 입어 줘야 제대로 폼 나는 건데.”


꼴들은 보니 ‘소마‘ 흉내를 어지간히 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건 네가 써.”


류지호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김준우가 건네는 선글라스를 받았다.


“진짜 멋있지 않았냐? 화분에 미리 총 숨겨놨다가 총알 떨어지니까 꺼내서 쏴. 돈으로 담뱃불 붙이는데 존나 멋있더라.”


고우찬이 침을 튀어가며 떠들어댔다.


“무슨 권총이 기관총이냐? 수십 발을 쏴도 총알이 안 떨어져.”


황재정이 까칠하게 초를 쳤다.


“람보 보다는 인간적이지 뭘.”


김준우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먹물 든 새끼들... 폼 나면 됐지. 영화 보면서 뭘 그런 걸 따져?”


고우찬이 주윤발의 쌍권총 액션을 흉내 내며 말했다.


“지호 저 놈은 졸더라.”

“방사룡 영화가 아니라서 그래.”


이 당시 류지호는 방사룡이 나오는 영화는 빼먹지 않고 관람했다.

류지호는 특히 <Fast Food Van>을 좋아했다.

영화 클라이맥스의 방사룡과 서양인 가라데 고수와의 일대일 대결을 무척 좋아했다.

방사룡 영화의 전매특허였던 계속 두들겨 맞다가 어찌어찌해서 결국에 가서는 힘겹게 이긴다는 클리셰를 보여주는 레전드급 명장면이다.


“방사룡이 나온 영화는 좀 유치하지 않냐?”

“그럼, 액션은 브루스 리야.”

“언제 적 브루스 리냐?”

“방사룡 액션은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브루스 리가 진짜배기지.”


친구들이 두 룡자 들어가는 액션배우의 대결을 주제로 티격태격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류지호도 덩달아 유쾌해졌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하는 이 시기.

류지호는 다른 시기도 아닌,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 온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아 가자!”


고우찬이 호기롭게 외치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다른 친구들이 동조하며 따라갔다.


“내가 이런 유치한 짓을 해야겠냐?”


류지호는 선글라스를 주머니에 넣으며 탄식했다.

친구들과 우정을 쌓는 것과 애처럼 행동하는 건 다른 문제다.


“지호야, 뭐해. 빨리 와!”

“너희들 먼저 가라, 난 천천히 따라갈게.”


류지호는 친구들의 우스운 행동을 따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


고우찬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명천회갱호(明天會更好)>의 대사를 주절거렸다.

류지호는 모른 척 발걸음 재촉해 친구들에게서 떨어졌다.


❉ ❉ ❉


술집 아네모네.

이 시기 전형적인 대포집이나 호프집과 어딘지 달라 보였다.

룸살롱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몇몇 연하대 학생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실내를 류지호가 감회에 젖어 둘러봤다.

주방 앞에서 40대 중반의 외모, 화장기 없는 얼굴에는 삶을 초탈한 허무함이 서려있는 여사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젊었을 때는 제법 미인 소리를 들었을 법 했다.

지금도 화장을 하고 헤어스타일만 조금 다듬으면 꽤나 미부인으로 보일 것도 같다.

그녀가 술집 아네모네 사장 채연지다.

류지호가 업소용 냉장고에서 소주 두 병을 꺼내 주방을 향해 말했다.


“두 병 가져갑니다.”


채연지가 류지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의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한 눈빛.

채연지의 눈빛은 과거로 돌아오기 전 류지호의 그것과 닮아있다.

패배자의 눈, 소중한 것을 상실한 자의 눈, 용기와 열망을 잊어버린 자의 눈.

이 술집의 상호는 꽃 이름 아네모네에서 따왔다.

아네모네는 꽃말 대부분이 슬픈 사연이나 이별 후에 느끼는 안타까운 심정이 들어 있다.

배신, 사랑의 괴로움, 허무한 사랑, 사랑의 쓴맛, 속절없는 사랑 등등...

류지호가 19금 대본을 쓸 때 많이 써먹던 모티브였다.


‘설마......’


채연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류지호와 친구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이곳을 출입했었다.

여사장과 관련해 불미스런 일이 벌어졌던 기억은 없었다.

채연지는 매사에 의욕 없이 억지로 장사를 하는 느낌은 들었지만, 대학가 문화가 변해가고 트렌드가 바뀌기 전까지 이곳에서 계속 영업을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내 주제에 무슨 연민이냐? 남이야 남. 신경 끄자.‘


류지호가 소주병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앉기도 전에 김준우가 물었다.


“넌 누가 이길 것 같아?”

“뭐가?”

“만약 람보하고 코만도가 붙으면 누구한테 돈 걸 거야?”


친구들은 홍콩액션영화에서 할리우드 액션영화로 화제를 바꾼 것 같았다.


“<지구 최강의 영웅들> 멤버 아무나 한명 뜨면 걔들이 다 이겨.”

“걔들이 누군데?”

“악당 한 놈 패려고 다구리 치는 정의의 슈퍼히어로 패거리.”

“히어로가 뭐?”

“그런 게 있어.”


류지호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친구들과 소주잔을 부딪쳤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다.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마시니 더욱더 맛이 좋았다.

오랜만에 죽마고우들과의 술자리라 조금 들떴던 모양이다.

과거로 돌아 와 처음 마신 소주인데 과하게 마신 탓인지 류지호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우리 집에 가서 잘래?”

“괜찮아.”

“나는 2층에 방이 있어서 어른들한테 안 걸릴 수 있는데.”


집안이 비교적 부유한 김준우는 부자동네인 구월동 2층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그는 용돈도 넉넉한 편이라 항상 친구들의 유흥비 대부분을 책임졌다.

오늘도 술값은 김준우의 몫이었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류지호는 김준우의 걱정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어떤 친구들하고 어울리기에 고등학생이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밤늦은 시간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오다 어머니에게 걸렸다.

안 걸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류지호는 새벽까지 잔소리를 들어야만했다.


“시험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친구들하고 조금 마셨어요. 죄송해요.”

“대학생이니? 스트레이스? 암튼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미성년자가 술 마셔도 된다고 누가 그러디?”


심영숙은 지난 보름간 아들이 아침에 운동을 가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사실을 알기에 매를 들지는 않았다.


“엄마가 중간고사 성적 꼭 확인해 볼 거야.”


심영숙은 협박 아닌 협박으로 잔소리를 마무리 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 작성자
    Lv.69 Lafayett..
    작성일
    21.12.24 08:33
    No. 1

    잘 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57 k7******..
    작성일
    21.12.26 20:35
    No. 2

    공부법 있는데...
    아....안타갑네요
    싸움은 타격기 권투 ..그리고 유도죠
    태권도 하면좋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패천마검
    작성일
    21.12.29 10:26
    No. 3

    방사룡이 성룡 진짜이름인지는 처음 알았음. ㄷㄷ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1.06 17:21
    No. 4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77 sangom
    작성일
    22.01.11 09:56
    No. 5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82 장장이
    작성일
    22.01.12 10:08
    No. 6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88 골목대장님
    작성일
    22.01.16 00:45
    No. 7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3 사ㅅ
    작성일
    22.02.23 11:42
    No. 8

    초반이 너무 답답하게 흘러가네...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87 형산운송
    작성일
    22.05.17 00:47
    No. 9

    20~30대 분들은 경험하지 않아 지겨울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제가 50대라 그런지 어린시절 익숙한 풍경이 그대로 그려지네요.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5 에시드
    작성일
    22.06.06 01:47
    No. 10

    다굴전문 히어로 저때도 있었어요 물론 영화가 아니고 코믹스팟으로 단 개개의 영웅들은 영화나 미드로 나왔었어요 헐땡이나 거미인간 같은.. 물론 저시대 최강은 가슴ㅂ각에 에스자임.. 아 그건 지금도인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늘나무숲
    작성일
    22.09.17 17:27
    No. 11

    진짜 회귀한다고 해도 돈빼면 멀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90년대에 삼성,sk 2000년대에 아마존,구글 2010년대에 비트코인 , 테슬라
    돈은 끝인데 다시 산다면 멀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새로운 직업은 모르겠고, 영어나 잘하고 싶네요. 연애도 좀 해보고 싶고
    몸관리를 좀더 잘하고 싶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6 방랑고객
    작성일
    22.11.05 16:24
    No. 12

    지역 지명은 그대로 쓰면서 기업 인물 콘텐츠들 이름만 조금 수정하는 이유가 있나요? 굳이 수정이 필요하면 창작을 했으면 좋겠네요 역사나 줄거리나 창작이 안되면 언급없이 스킵하면 좋겠어요. 다 아는걸 눈가리고 아웅하니 읽기 불편해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73 雲祖
    작성일
    23.05.13 11:09
    No. 13

    제목만 리메이크한거임?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17 Dsound
    작성일
    24.07.17 03:45
    No. 14

    명천회갱호가 영웅본색이구나 뭔가 했네 굳이 작품이름까지 변형을 가할 필요가 있을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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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19 20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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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Carpe diem... (4) +12 22.01.11 10,380 21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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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영화밥 먹고 살 팔자... (4) +7 22.01.07 10,529 212 22쪽
34 영화밥 먹고 살 팔자... (3) +8 22.01.06 10,763 197 21쪽
33 영화밥 먹고 살 팔자... (2) +5 22.01.06 11,025 217 20쪽
32 영화밥 먹고 살 팔자... (1) +8 22.01.05 11,643 22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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