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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60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1.12.07 09:00
조회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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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5)

DUMMY

“박영철...”


미혜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석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언제나 당당하고 천진난만했던 아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석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박영철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 있나 기억을 되새겨봤지만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석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하하... 너희가 그날 그렇게 가버리고. 나는 녀석들에게 팔을 잃었어!”


영철이 뜯어져 나간 왼쪽 소매를 들어올렸다. 팔꿈치 이후에 있어야 하는 신체 부위가 없는 탓에 잘린 옷자락이 힘없이 늘어졌다. 뜯어진 옷자락 사이로 옅은 분홍빛이 도는 피부가 보였다.


“너희 때문에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고! 알아?”


남자가 부정확한 발음으로 소리치며 두 사람에게 걸어왔다. 다가올수록 이상한 향냄새 같은 것이 났다.


마약에 대해서 무지한 석이었지만 이 남자가 무언가를 하고 정신을 놓아버렸다고 판단했다.


“후후... 그날 신이 나에게 왔다.”


남자가 등에 메고 있던 칼집에서 칼을 꺼냈다. 굳은 피와 군데군데 날이 나가있는 일본도였다.


“신은 나에게 너희에게 복수할 힘을 주었고, 너희를 죽이고 내 영혼이 자유로워지면 자신과 같은 영원한 힘을 주겠다고 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옷자락을 통해 느껴지는 흔들림은 변하지 않았지만 미혜는 많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영철을 향해 소리쳤다.


“나또한 신이 될 몸. 그러니 곧 죽을 네 목숨을 가엽게 여겨 특별히 알려주지.”


남자는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던 허리를 피고는 양팔을 하늘을 향해 펼쳤다.


“세상에 있는 신들이 인간의 편일 것 같아? 아니다. 그러니 너희 같은 인간들도 어느 신의 편에 설지 미리 정해놔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한 남자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에 파이프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날아갔다.


“그러니. 나는 너를 죽이고 그 망할 녀석들을 죽이겠다.”

“흥. 네가 대표님과 아저씨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리!”


석은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손의 떨림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미혜는 이제 떨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이 녀석한테 죽을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다음은 아저씨한테 가겠지. 그것만은 안 돼.’


영철이 진짜로 어떠한 능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저 날이 나간 칼이라도 마음먹고 휘두르면 지혁은 힘없이 죽고 말거다.


“나서지 마라. 칼을 들고 있다.”


앞장서서 나가려는 미혜를 석이 팔로 가로막았다. 항상 대련을 하고 있지만 무기를 갖고 있는 상대와 싸우는 법에 대해서는 아직 가르쳐주지 못했다.


“아뇨. 저 녀석의 말도 안 되는 싹은 내가 여기서 잘라 버릴 거예요.”


미혜가 조그만 손으로 석의 근육질 팔을 밀어 내리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무기를 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장도야. 이런 좁은 골목길에서 자유롭게 휘두를 수는 없겠지. 나는 녀석이 예측할 수 있는 움직임만 피하면 돼.’


지형에 대해서는 로운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루해서 대충 듣기는 했지만...


미혜가 앞으로 한발자국 나오자 영철이 칼을 들고 달려왔다.


로운이나 석과 하는 대련과 달리 시작 신호는 없었다. 이게 진짜 실전이었다. 어떠한 신호도 없이 그저 상대를 죽이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영철이 칼을 뒤로 빼며 크게 휘둘렀다.


‘저렇게 휘두르면 막힐 텐데...’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칼이 벽을 베며 다가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날이 다 빠진 칼이 종이를 썰 듯이 벽을 베면서 다가올 수 있단 말인가.


가능성은 단 하나였다.


아까 본인 입으로 말했던 신의 능력을 받았다는 것. 그것이 아마도 칼과 관련된 능력이었을 것이다.


미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칼을 높게 뛰며 피했다.


그러자 영철 또한 자신을 따라 뛰어올라오며 칼을 위로 베었다.


풀린 눈에 비해서 꽤나 잽싼 몸짓이었다. 그때 미혜는 영철의 눈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흰자위까지 검게 물든 영철의 눈 주변으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칼날이 미혜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옆구리가 화상이라도 입은 듯이 뜨거워지며 통증이 밀려왔다.


“미혜야!”


석이 미혜의 이름을 불렀다.


“전 괜찮아요.”


중심을 잃기는 했지만 바닥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상대는 쉴 시간은 주지 않겠다는 듯이 뛰어와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칼에 맞은 것들은 모든 것이 베였다. 베인 쓰레기통에서는 쓰레기가 터져 나왔고, 잘린 파이프에서는 물이 넘쳐흘렀다.


“에이씨. 아침에 씻고 나왔는데. 너 때문에 지저분해졌잖아!”

“낄낄...”


영철은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신을 놓은 눈빛이었다. 아니.


‘저게 사람의 눈빛이라고 할 수 있나.’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공포 소설은 좋아했다.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삽화가 실려 있던 책이 있었다.


악마에 쓰인 남자.


“선생님. 만약에 내가 정말 안 될 것 같으면 그때 도와주세요.”

“... 그래”


이런 모습을 로운이나 지혁이 봤더라면 아마 엄청난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쓸데없는 싸움은 피하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은 피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항상 이성만으로 행동할 순 없는 일이다.


미혜에게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아까 영철을 처음 봤을 때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지혁에게는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미혜는 여전히 그날에 자신을 강제로 잡아채던 영철의 손길이 생생한 꿈을 종종 꾸곤 했다.


아니 그 보다 더. 수많은 손길이 자신의 팔다리를 잡아채는 악몽을 몇 번이고 꿨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로운도 용서할 수 없지만. 몇 개월을 지켜보며 가르침을 배우면서 알았다. 그 사람은 너무 정이 많아서. 사람을 너무 믿어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타인에게 많은 기회를 줘서. 그랬다는 것을.


뭣보다 수없이 많은 사과를 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받아주지 않았음에도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물론 아직도 용서했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미혜는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로운도, 지혁도, 소원도...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고 있지만 그들도 아직은 미숙한 사람들이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물론 이 아저씨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유난히 말이 없는 석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칼날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간발의 차로 칼끝이 턱 밑을 훑고 지나갔다.


“어우. 얼굴은 건들지 말자!”


칼날이 위를 향하고 있는 틈을 타 영철의 머리를 걷어찼다.


‘방금 얼굴은 건들지 말자면서.’


그런 미혜의 발길질을 보며 석은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세게 걷어찼는지 영철이 날아가 부딪친 벽에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정작 상대는 머리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벌떡 일어났다.


“뭐야. 그런 수상한 연기를 풍기고 다니냐. 좀 씻어라.”


미혜는 혀를 차며 손에 힘을 모았다.


“그간 훈련을 통해 갈고 닦은 괴력 펀치다!”


[스킬 괴력 펀치 Lv. 7이 발동됩니다.]


“낄낄낄”


[스킬 절대 검술 Lv.3이 발동됩니다.]


영철도 날아오는 주먹에 맞서 칼을 휘둘렀다.


황금빛의 주먹과 흑빛의 칼날이 맞부딪치며 폭발이 일어났고, 골목길엔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날아가던 쥐 한 마리가 석의 이마에 정통으로 부딪쳤다.


폭발과 함께 주변의 모래와 돌멩이까지 모두 떠오르는 바람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미혜야!”


석이 먼지 속에서 미혜를 찾았다. 다행히 한 번의 폭발에 먼지는 오래 머물지 않았고 곧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미혜의 옆구리에서 흐른 피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고, 남자의 옆에는 부러진 일본도가 있었다.


‘... 죽었군.’


남자는 핏기가 없는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광기는 어디 갔는지 이미 식어버린 피부였다.


‘꽤 오래전에 죽은 것 같은데 어떻게...’


잡아본 남자의 피부는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아무리 즉사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몸이라는 게 이렇게 빠르게 식을 리가 없었다.


“으으...”


미혜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석은 이상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미혜가 먼저였다. 소매를 뜯어 가장 큰 상처가 있는 옆구리와 팔에 지혈을 하고는 들어올렸다.


뛰어가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호텔로 돌아가서 치료를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조금만 버텨라.”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가 이런 무모한 싸움을 하는 것을 말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미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로운에게 좀 많이 혼나면 될 일이었다. 지금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미혜의 얼굴로 됐다고 생각하는 석이었다.


석이 꽤나 인파가 줄어든 거리를 둘러보며 왔던 길을 따라 뛰어갔다.


두 사람이 떠난 골목길.


초라한 차림새의 남자가 창백한 피부로 누워있다.


어느 추운 겨울. 마법진에서 살아남은 영철은 허전한 왼팔을 보며 욕을 내뱉고 있었다.


“이 놈들 다시 만나면 가만 두지 않아.”


자신을 미끼로 자기들끼리 도망간 녀석들.

그 여자애도 그래. 자신이 뭔 짓을 했다고 그러는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반응을 해서 사람을 범죄자 취급이나 하고...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영철은 앞으로의 살날이 걱정되었다. 탑꾼 일로 먹고 살던 자신이 팔도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랬던 그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챙이 넓은 검은색 깃털이 달린 모자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은 여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차림의 여자가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뭐야.”

“내가 좀. 도와줄까?”


여자가 경쾌한 구둣발 소리를 내며 영철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들어 올려 검지로 그의 이마를 눌렀다.


“신이 너를 도와줄 거야. 아주 사소한 대가만 치른다면 말이야.”


여자의 손끝이 닿은 영철의 이마에 검은색 마법진이 나타나며 한 겹, 두 겹 쌓여갔다.


그 뒤로 정신을 차린 영철은 낯선 타지에 와있었다. 수많은 한자가 세상을 메우고 있는 곳. 자신이 평생을 써왔던 언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곳.


그 뒤로 줄곧 복수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질 줄은 몰랐다.


영철은 발끝에서 모래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한두 알씩 떨어지던 모래가 어느 순간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빠른 속도로 그를 모래로 만들었다.


아주 시꺼먼 검은 모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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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 21.12.03 212 0 14쪽
32 출국 21.12.02 227 1 12쪽
31 허물고 세우고 21.12.01 238 0 16쪽
30 능력자들의 Z지대(7) 21.11.30 264 0 13쪽
29 능력자들의 Z지대(6) 21.11.29 263 1 12쪽
28 능력자들의 Z지대(5) 21.11.28 276 1 12쪽
27 능력자들의 Z지대(4) 21.11.27 283 1 13쪽
26 능력자들의 Z지대(3) 21.11.26 302 0 13쪽
25 능력자들의 Z지대(2) 21.11.25 329 3 14쪽
24 능력자들의 Z지대(1) 21.11.24 357 3 14쪽
23 행방 21.11.23 368 4 12쪽
22 도움닫기 21.11.22 385 4 12쪽
21 캐롤라인 세일리 21.11.21 434 3 13쪽
20 [마나가 부족합니다.] 21.11.20 477 6 15쪽
19 돌아보면 때론 큰 곡선이기도 하다. 21.11.19 499 8 12쪽
18 앞만 보며 걸어갔던 길이 21.11.18 536 8 14쪽
17 정식 바리스타 21.11.17 549 7 13쪽
16 첫 탑 나들이(3) 21.11.16 531 8 14쪽
15 첫 탑 나들이(2) 21.11.15 562 8 13쪽
14 첫 탑 나들이(1) 21.11.14 625 9 13쪽
13 제안 21.11.13 686 7 13쪽
12 로운 컴퍼니 21.11.12 813 8 13쪽
11 마법진이 빛날 때(7) +1 21.11.11 825 9 11쪽
10 마법진이 빛날 때(6) 21.11.10 864 8 13쪽
9 마법진이 빛날 때(5) 21.11.09 1,000 11 14쪽
8 마법진이 빛날 때(4) +1 21.11.08 1,132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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