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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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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86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1.11.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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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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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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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수고 많으셨습니다.”


파티가 4층을 빠져나온 것은 불과 3시간 만이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석과 로운을 선두로 속전속결로 4층을 클리어 했다.


이전에 2층을 공략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무 말도 없는 로운과 석은 눈빛만으로 호흡을 맞추며 몬스터를 두드려 팼고, 나래와 미혜 만이 겨우 두 사람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나는 여기 왜 온 거냐.”


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제천이 소원과 함께 떨어진 아이템을 주우며 말했다.


“그래도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지 않나요? 멋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열심히 해서 저분들처럼 되고 싶다는 의욕도 생기고요.”


제천이 소원을 빤히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 들은 소개로는 소원의 능력은 실전에서 겨우 간단한 부상만 치유할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아무리 스탯과 스킬 레벨을 올려도 전투에서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말이다.


모임이 파하고 나래의 추가 설명에 의하면 소원의 능력이 원래 그렇다고 했다. 충분한 시간을 들이면 후유증 없이 세밀하고 섬세하게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지만 긴급하고 촉박하게 진행되는 실전에서는 사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소원은 매번 전투에 참여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지혁이 깨어난 이후로는 치유 능력자를 모집하는 정부의 요청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거절하는 법도 없었다.


“그런 능력을 준 신을 원망해 본 적 없어?”


예전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되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흘러갔고, 지금은 더욱 강한 힘을 받지 못한 것에 원망하는 능력자들이 나타났다.


왜 더 강하지 못하지. 내가 탑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강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야. 신이 좀 더 좋은 능력을 줬더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나약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제천이 어울리는 한 능력자 무리가 자주 하는 소리였다.


“어쨌거나 도움이 되잖아요. 이런 세상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만족해요.”


소원이 환하게 웃어보였다. 제천이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와 이런 내용의 대화를 소소하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소원이 보는 제천은 항상 날이 서있고 나태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어쩐지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닐까? 곁에 사람이 있는 게 무서운 걸까.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신도 그렇게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구나.”


소원의 대답을 들은 제천은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기로 했다. 탑꾼을 해 본 적 없는 둘이 탑꾼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로운과 석은 4층의 보스까지 때려눕힌 다음에야 바닥에 드러누웠다.


“석 씨! 로운 씨! 괜찮아요?”


나래가 급하게 다가가 두 사람의 입에 회복 포션을 부었다.


“오늘 왜 이래요. 아저씨들. 나이를 생각하라고.”


아직 창창한 청년인 로운이 미혜에게 따질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건 석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무슨 일 있었어요?”


나래가 물었지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천장을 바라만 봤다.


“아직 제천 씨와 소원 씨가 안 왔으니까 조금만 더 누워있어요.”


나래가 주변에서 양털 몇 개를 주워 로운과 석의 머리 밑에 넣어 주었다.


4층은 양들의 층이었다. 사납게 변한 양들은 공격력은 낮았지만 두껍게 자란 털로 인해 방어력이 높았다.


“대표님. 무슨 안 풀리는 일 있어요? 그냥 싸우고 싶어서 온 거죠? 뭔가 하려고 온 게 아니라? 우리를 이런 식으로 써먹어도 되는 거예요?”


나래가 떨어진 아이템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미혜가 로운의 곁으로 다가와 쭈그려 앉아 물었다.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바보 같고 먹는 것과 폭력 밖에 모를 것 같은 아이였지만 사실은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지혁이 미혜를 아끼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건 아마도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 일거라고.


“대표님? 대답 좀 해봐요.”


측은한 마음이 생기다가도 손가락으로 꾹꾹 찌르는 모습이 마냥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면 피식하고 웃게 된다.


“아니야. 그냥 이런 던전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아직 5층을 가기는 무리 같으니까.”

“거짓말. 보여주려고 했는데 보기도 전에 이렇게 다 패고 다녀요?”

“하하.”


영혼 없이 웃고는 눈을 감았다. 심문하듯이 바라보는 미혜의 눈을 보고 있으면 진심을 말할지도 몰랐다.


로운은 초조해 하고 있었다. 몇 개월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챙기기에 바빴기 때문에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자신의 계산에 의하면 지금쯤 5층을 클리어하고 6층을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왜 이렇게 함께 하고 싶은 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냥 같이 탑에 오르자고 말한 유일한 사람이어서 그럴 지도 몰라.’


그런데 그 남자가 어느 순간 연락도 되지 않는다.


자신은 남자와 함께 탑에 오르기 위해서 모든 걸 미루고 팀을 만들고 있었는데.


심지어 이제 앞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은 조금 더 시간을 써야 했다. 아니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할 지도 몰랐다.


이 얘기를 석에게도 했다. 앞으로 자신의 계획과 함께.


-... 알겠다.


처음에는 거절을 하던 석도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다른 나라였다면 어렵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니까.


눈을 감고 앞으로의 일정을 체크하고 있던 로운의 귓가에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제천과 소원이 막 마지막 구간에 도착했다.


“자. 그럼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할 일이 있어서요.”


거의 도망치다시피 탑을 나왔다.


“저 사람 왜 저래?”


제천이 뭐냐는 듯이 바라봤지만 대답해주는 이들은 없었다.


+++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실내는 마음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공간임과 동시에 편안한 장소였다.


어렸을 때부터 지냈던 공간과 닮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무음 처리를 해 놓은 핸드폰만이 간간이 빛을 발하며 반짝 거렸다.


[부재중 전화 : 34 통]

[확인하지 않은 문자 : 50통]


거의 대부분이 꼬맹이와 소원의 것이란 걸 안다. 그럼에도 받을 수 없다. 아무렇지 않게 받을 자신이 없었다.


-마나를 담는 그릇이! 거의! 요만하단!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능력조차 받을 수 없는! 신들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그릇이라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제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사제님의 말을 듣자마자 소년의 말이 떠올랐다.


-그 어떤 신조차 능력을 주지 않은 인간이기에 더더욱...

-아무도 손 내밀지 않은 인간에게 힘을...


여기서도 난 아무런 가치가 없구나.


이렇게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능력을 주지 말지.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없게.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게 해주지.


난 그냥 혼자서 살아남고 싶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다른 대학생들이 당연하듯이 받는 지원이 나에게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혼자서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세상이 변했고, 나는 나대로 새로운 일을 찾았을 뿐이다.


탑꾼 일만 안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내가 감당할 수도 없는 능력을 받아서 나의 밑바닥을 알게 되는 일은 없었을까.


“하아...”


갑갑했다. 눈앞에서 파티원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엄청난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내가 가진 마나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니...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 지혁아 네가 우리의 희망이야 알았지?

-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해야 해!


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이변이 일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꼬르륵...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플 수 있구나...


두 사람이 난리 칠 테니까... 밥은 먹어야 겠지...


+++


4층에 다녀온 이후로 로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로아에게 물어봐도 그저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대표님도 아저씨도.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우리보고는 열심히 하라고 했으면서!”


그래서 지혁을 만나기 위해 저녁 시간에 맞춰서 지혁의 방이 있는 층의 로비에 앉아 있었다.


성남 지부 임시 거처에서 가장 발이 넓은 소원의 정보에 의하면 지혁이 매일 저녁 7시에 저녁을 시킨다고 했다.


“곧 저녁이 올 테니까 뺏어서 내가 직접 가겠어.”


여러 가지 생각도 해보고, 유추도 해봤지만 지혁이 갑자기 잠수를 탄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소원은 그냥 좀 내버려 두라고 했지만 미혜는 그럴 수 없었다.


“소원 언니는 아저씨한테 너무 약해!”


주변 어른들의 행동이 답답한 미혜가 로비 소파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잔뜩 성을 내고 있었다.


그때 관리자용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서 식사를 담은 카트를 밀고 한 관리자가 나타났다.


+++


띵동-


주문한 저녁이 온 모양이었다. 침대에 무겁게 내려앉은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워 문 앞까지 갔다.


문을 열자 밝은 빛과 함께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아저씨!”


식판을 든 꼬맹이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불도 안 키고 뭐하는 거예요! 아니. 세상에.”


꼬맹이는 화난 표정으로 말을 하다가 내 얼굴을 보고 놀라더니 이내 측은한 얼굴이 되었다.


“네가 왜 그걸 들고 와.”

“아저씨가 연락이 안 되니까요.”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지. 그리고 내 방 좀 그만 찾아와. 나도 좀 혼자 있자.”


나를 걱정하는 소원과 꼬맹이가 과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물론 걱정을 끼치는 것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후... 가져다 줘서 고마워. 돌아가.”

“그래요. 오늘은 돌아갈게요. 내일 또 올 거니까. 그때까지 수염 깎아요!”


꼬맹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누구보다 세게 문을 닫고는 사라졌다.


큰 소리에 놀랐는지 옆방에서 문을 열었다가 닫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수염을 깎으라니?


식판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는 화장실로 갔다.


오랜만에 본 전등 불빛에 눈이 부셨다. 부심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청난 모습의 내가 보였다.


이게 바로... 나?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과 퀭한 눈빛.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이 누가 봐도 폐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구나. 나 이렇게 망가져 있었구나.


거울을 바라보고 있자 내 엉망인 얼굴 옆으로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글자가 나타났다.


“바리스타...”


스탯창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글자였다.


글자를 천천히 읽고 있자니 글자의 배열이 달라지면서 다른 글자가 나타났다.


“정신... 차려.”


문자는 다르지만 이전에 이것과 비슷한 느낌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레시피를 작성한 존재.

레시피 위에 내가 보라고 메모를 남겨둔 존재.

에스프레소 머신을 내 방 앞에 무단 투기하고 간 존재.


“이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구나.”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던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치 없는 나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존재였다. 부모조차 포기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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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 21.12.03 212 0 14쪽
32 출국 21.12.02 227 1 12쪽
31 허물고 세우고 21.12.01 238 0 16쪽
30 능력자들의 Z지대(7) 21.11.30 265 0 13쪽
29 능력자들의 Z지대(6) 21.11.29 263 1 12쪽
28 능력자들의 Z지대(5) 21.11.28 276 1 12쪽
27 능력자들의 Z지대(4) 21.11.27 283 1 13쪽
26 능력자들의 Z지대(3) 21.11.26 302 0 13쪽
25 능력자들의 Z지대(2) 21.11.25 329 3 14쪽
24 능력자들의 Z지대(1) 21.11.24 358 3 14쪽
23 행방 21.11.23 368 4 12쪽
» 도움닫기 21.11.22 386 4 12쪽
21 캐롤라인 세일리 21.11.21 435 3 13쪽
20 [마나가 부족합니다.] 21.11.20 477 6 15쪽
19 돌아보면 때론 큰 곡선이기도 하다. 21.11.19 500 8 12쪽
18 앞만 보며 걸어갔던 길이 21.11.18 537 8 14쪽
17 정식 바리스타 21.11.17 550 7 13쪽
16 첫 탑 나들이(3) 21.11.16 531 8 14쪽
15 첫 탑 나들이(2) 21.11.15 562 8 13쪽
14 첫 탑 나들이(1) 21.11.14 626 9 13쪽
13 제안 21.11.13 686 7 13쪽
12 로운 컴퍼니 21.11.12 814 8 13쪽
11 마법진이 빛날 때(7) +1 21.11.11 825 9 11쪽
10 마법진이 빛날 때(6) 21.11.10 865 8 13쪽
9 마법진이 빛날 때(5) 21.11.09 1,000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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