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다(1)
[튜토리얼이 완료되었습니다.]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청량한 알림음과 함께 나는 집에서 깨어났다.
덥썩-
본능적으로 몸의 곳곳을 확인했다.
온몸을 옅게 덮은 흉터들이 눈에 들어오자 이곳이 정말 현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타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을 뛰쳐나가 방을 둘러봐도 부모님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보다도 지금의 나에 대하여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분명 나는 죽었을 터인데 어째서 내가 살아있는 걸까.
그리고 내 눈앞을 가린 이건 도대체 뭔데···?
이름: 백승혁
배후성: ???
칭호: 허망된 꿈을 쫒지 않는 자
종합 능력치: [체력 Lv.3],[근력 Lv.3],
[민첩 LV.3],[마력 Lv.3]
전용 스킬: [헤이스트(E)], [탈진(F)], [근력 강화(F)]
남은 능력치 포인트: 4
「칭호, ‘허망 된 꿈을 좇지 않는 자’의 전용 특성으로 모든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하아···”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 나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 게임 창이라니···
하긴, 죽었던 가족을 본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어렸을 때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였을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이걸 누르면 없어지는 건가?”
[시스템 창을 닫으시겠습니까?]
[YES / NO]
딸깍-
허공을 손가락질하자 효과음과 함께 눈앞을 가리고 있는 무언가가 말끔하게 없어졌다.
‘뭔가 몸이 한층 더 가벼워진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입고 있던 반팔 티를 바닥에 내던지고 거울 앞에 다가섰다.
티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경험하기 전보다 확실히 몸이 더 다부져졌다.
나는 숙련된 보디빌더마냥 포즈를 지으며 혼잣말로 작게 속삭였다.
“신기하네···”
끼이익···
그 순간, 시우가 낡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하암··· 오빠, 일어났어?”
눈을 비비던 시우가 나를 힐끗 보고는 소리쳤다.
“개 더러워.”
콰앙-!
그 한마디를 남기고 시우는 문을 박차고 방을 나갔다.
“하아··· 되는 게 없네.”
[상태 창을 여시겠습니까?]
딸깍-
나는 눈앞에 장황하게 펼쳐진 상태 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능력치’라는 것이 내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학창 시절에 즐겨 했던 RPG 게임처럼 이 또한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 되는 일이었다.
“아직 잘 모르겠으니 포인트는 쓰지 말고···”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내 눈앞을 가린 또 다른 무언가 말이다.
▣ 1번째 메인 퀘스트
▸미션 : 타락한 오크를 사냥하십시오.
▸내용 : 홀로 타락한 오크를 사냥하여 던전을 클리어하십시오.
▸보상 : 1단계 성력(星力) 개방, 능력치 포인트 지급
▸난이도 : ???
거절 및 실패 시 사망
겨우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다시 한번 목숨을 걸어야 된다니···
게다가 상대는 고블린도 일반 오크도 아닌 오크들의 족장이라고 불리는 ‘타락한 오크’였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 NO]
거절하고 싶지만 강렬하게 표시되어 있는 빨간 글씨에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허공에 손을 뻗었다.
[초소형 던전이 생성됩니다.]
우우웅-
사방에 울려 퍼지는 잔잔한 진동과 함께 방안에 있던 거울 속이 희미하게 일렁거렸다.
‘이게 가능 한 일인가? 한낱 인간이 던전을 생성할 수 있다니···’
하긴 이미 ‘헌터’ 라는 직업이 생겨난 후로 세상을 관통하던 보편 법칙들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단순히 이 또한 그런 것이다.
[부디 건투를 빕니다.]
슈우욱-!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차원 문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쿠웅-
한참을 빨려 들어갔을 무렵, 바닥에 엉덩이를 강하게 찧고 주저앉았다.
하지만, 무엇도 예측이 불가능한 이곳에선 고통을 느낄 찰나의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취이이익-!』
“설마··· 에이··· 설마 아니지?”
나는 당황한 얼굴로 성난 근육을 뽐내며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오크를 바라봤다.
오크와의 거리가 먼 데도 불구하고 사방이 썩은 내로 진동했다.
오크의 머리에는 마치 게임의 몬스터처럼 빨간 명찰이 달려있었다.
「오크들의 군주 취리히」
나는 오크의 이름표를 바라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시발,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아무래도 난 일반 스테이지를 무시하고 여기로 온 거 같다.
『취이이-!』
콰앙-!
오크가 거구의 몸집으로 빠르게 도약 해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자 바닥이 은은하게 진동했다.
“이런 미친···”
스윽-
콰지직-!
붉은 피로 칠갑이 돈 철퇴가 다리를 스쳐 지나자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무슨 속도가 저따위야?”
『취이익-!』
타앗-
나는 고양이를 마주친 쥐처럼 꽁지 빠지게 사방으로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공격을 피해 낼 수 있다고 쳐도 이 던전은 피하기만 한다고 클리어 되지 않는다.
타앗-
“젠장··· 저 빌어먹을 덩치를 어떻게 잡아야하지?”
『취이, 취이이, 취이!』
[오크들의 군주 ‘취리히’가 피의 욕망을 사용합니다.]
[취리히의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
“에이, 농담하지 마··· 여기서 더 빨라질 수가 있다고?”
『치익-』
어느새 붉게 물든 철퇴는 나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젠장, 이건 못 피한다!’
쿠웅-!
“커헉···”
찰나의 순간, 팔로 철퇴를 막아냈지만 역부족이었다. 눈을 깜빡인 순간 나는 걸레짝이 된 양팔과 함께 벽에 처박혀있었다.
주륵-
입가에서 피가 약간 흘러내렸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정도는 아니야.’
나를 죽음으로 몰아 간 그 빌어먹을 쓰레기와는 비교할 가치조차도 없다.
그 악마 놈 앞에선 희망의 불씨가 차갑게 꺼져갔지만 이 덩치에게선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스으윽-
[마나를 소요합니다.]
[상처의 일부분이 치유됩니다.]
『취이이-!』
타앗-!
오크는 사냥을 마무리한다는 듯이 자신의 배를 몇 번 두드리고는 철퇴를 바닥에 내던지고 내게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너보다 훨씬 약해. 하지만 나는···”
『취익-!』
오크의 환하게 빛나는 머리가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헌터다.”
[마나를 모두 사용합니다.]
[헤이스트를 발동합니다.]
[이동속도가 10초간 최대치로 증가합니다.]
슈웅-
이동속도를 현재 나의 한계까지 끌어올려 오크의 머리가 닿는 순간 옆으로 굴러 철퇴를 피해냈다.
콰앙-!
투두둑-
오크의 머리가 벽 깊숙이 박혀 강한 충격에 균열이 일어난 천장에서 돌덩이가 떨어져내렸다.
[헤이스트가 종료 됩니다.]
“허억··· 허억···”
위험했다. 모든 마나를 쏟아부었는데도 피하지 못할 뻔했다.
『취이··· 취···』
오크는 벽 깊숙한 곳에 박혀 힘껏 발버둥쳤다.
“···이제 어떻게 해야지?”
공격을 피해 시간을 벌긴 했지만, 이미 마나는 모두 동났고 나의 힘으론 전력을 다하더라도 저 단단한 육체에 티끌 하나도 상처 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오크의 발 밑에 떨어진 철퇴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내가 들 수 있을까?’
투두둑-
오크의 강력한 몸부림에 깊숙하게 박혀있는 머리가 서서히 빠져갔다.
‘뭐라도 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나는 여기서 죽는다.’
나는 모든 생각을 멈추고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흐읍···”
숨을 거칠게 마시고 온 힘을 다해 철퇴의 손잡이를 잡았다.
“진짜 더럽···게 무겁네···”
끙끙거리며 철퇴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철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투툭-
설상가상 오크는 어느새 머리가 절반 이상 빠져나온 상태였다.
“이런 빌어먹을···”
“제발 움직여다오, 조금만 더··· 제발···”
『취이이이-!』
내가 끙끙대며 철퇴를 드는 사이, 박혀 있던 오크의 머리는 어느새 3분의 2 이상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때 불현듯이 떠올렸다. 아직 쓰지 않은 포인트의 존재를.
[능력치 포인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남은 능력치 포인트: 4]
어릴 때부터 게임을 미친 듯이 해왔던 나는 누군가가 말을 안 해줘도 시스템을 사용하는 법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근력에 모두 사용한다.”[근력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근력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근력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근력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흐읍-!”
아직 무겁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휘두를 수 있을 정도의 무게였다.
부웅부웅-
철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수십 바퀴를 회전시켰다.
기회는 단 한 번, 무조건 명중시켜야 한다.
쿠쿵-
이내 오크는 자신의 머리를 완전히 빼어 내고는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취객처럼 비틀거렸다.
『취이이이!!!』
‘지금이다!’
타앗-!
바위를 발판 삼아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오크에게 도약했다.
『취익-!』
오크가 눈을 뜨고 울부짖으려던 찰나,
콰직-!
빠르게 회전하던 철퇴는 이내 오크의 두개골을 산산조각 냈다.
[타락한 오크 취리히를 처치하셨습니다.]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 1단계 성력(星力) 개방, 1 능력치 포인트]
나는 피를 내뿜고 몸만 덩그러니 남은 오크의 옆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오크의 몸에서 무언가가 두둥실- 하곤 떠올랐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설마··· 혹시?”
굉장히 짙은 청록색의 마정석이 오크의 몸에서 튀어나와 나의 손에 안착했다.
그래도 명색이 던전이라고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처럼 보상이 지급되는 것 같았다.
‘이 정도 크기라면 대충 어림잡아도 C급 이상이다.’
승혁의 눈이 순간 밝게 반짝였다.
“자, 잠시만··· C급 정도라면··· 일십백천만··· 사··· 삼천만원?”
나는 삼천만 원짜리 금덩이를 소중하게 품에 감싸 안았다.
“물론 내 목숨 값이 고작 삼천만원이라는 게 조금 그렇지만···”
알바를 수십 개월을 해도 모으기 힘든 돈을 한순간에 벌어들였다.
마음 같아선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며칠만 쉬고 싶지만, 소중한 기회가 생겼을 때 이를 놓치는 건 멍청한 호구나 하는 짓이다.
나는 먼지로 뒤덮인 온몸을 대충 털고는 일렁거리는 차원 문을 향해 걸어갔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 정면 돌파로는 가능성이 전혀 없었을 테니··· 지능이 낮은 오크여서 천만다행이지···
[현실로 복귀합니다.]
스르륵-
소중한 금덩이를 꽉 껴안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내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대자로 누워 온몸을 비비자 침대가 검게 물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은 월세를 갚고··· 오랜만에 외식이나 할까?’
나는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에 벌떡 하곤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까 이게 전부가 아니잖아?”
이번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받을 수 있는 보상은 마정석이 끝이 아니었다.
[성력(星力)을 개방하시겠습니까?]
나는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성좌들의 강력하고도 특별한 권위, 성좌들은 자신의 계약자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할 수 있고 사람들은 이를 성력(星力)이라고 명명했다.
게임 화면 따위가 눈앞에 보이는 헌터는 아마 내가 최초일 거다.
그러기에 나의 배후성은 도대체 누구이고 어떤 성력을 부여할지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개방한다.”
[1단계 성력이 개방됩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휘황찬란한 오라가 나의 주변을 감쌌다.
“···잠시만, 고작 이딴거라고?”
띠리리링-
그때, 나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려왔다.
‘나래?’
“오빠, 오늘 학교 안 와?”
“학교?”
“어. 첫날인데 안 와서 교수님 빡친 거 같은데.”
“교수님?”
“왜 그래 오빠, 어제 술 마셨어?”
“얼른 뛰어와.”
뚜두두-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연도와 날짜를 확인했다.
「2020년 3월 2일」
“아 시발, 좆됐다.”
아무래도 나는 자퇴하기 전, 대학생 2학년으로 돌아온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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