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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님의 서재입니다.

A급 헌터가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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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작품등록일 :
2024.05.23 21:16
최근연재일 :
2024.06.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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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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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학원 수강생 김극 - [1]

DUMMY

약 사 년 전부터, 한국은 거의 망했다.


상황이 어쩔 수 없기는 하다. 괴수들이 주거지들을 습격해 도시의 태반이 슬럼화하고 식인 정령들이 해운을 마비시킨 상황에는 어느 나라든 멀쩡할 수 없는 법 아닌가.


이 와중에 국뽕 TV가 늘어난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뭐라도 취할 거리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이 다른 나라들보다는 낫다는 사실, 그러니까 한국이 거의 망했을 때 다른 나라들은 아예 망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한국인들을 몹시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하는 모양이다.


차라리 한국도 아주 망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 죽겠다.


*******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공무원 학원 아니면 헌터 학원뿐이다.


옷가게며 네일샵 따위가 몇 곳 보이지만 죄다 망했는지 불이 꺼져있다. 음식점들도 죄 셔터를 내린 가운데 편의점 하나가 달랑 남아서는 쌀과 라면만 잔뜩 쌓아놓고 파는 중이다. 이곳이 한국의 정신적 수도 인천이란 사실을 새삼 믿기가 어렵다. 젠장.


헌터 학원 중에 제일 볼품없는 곳에 들어섰다.


젊은 여자가 접수대에 앉아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움찔하는 것이 내 덩치에 겁먹은 모양이지. 귀여운 년.


“학원 등록하러 오셨어요?”


여자가 억지로나마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고 되물었다.


“예. 한 달에 얼맙니까?”


여자는 우선 상담부터 마쳐야 학원비가 결정된다고 설명하더니 원장님을 불러오겠다며 도망쳤다.


잠시 후 원장인 듯한 남자가 와서는 친한 척을 해댔다.


“보디빌더신가? 몸이 엄청 좋으시네! 진작부터 헌터 되려고 준비하셨나 봐요. 군필이세요?”

“아뇨.”

“그럼 사격법 같은 건 추가로 교육받으셔야겠고······ 각성은 안 하셨죠?”

“각성했는데요.”


내가 짧게 대답했더니 원장은 어째 놀란 눈치였다. 그는 크게 뜬 눈으로 날 보더니 어리둥절한 듯 내게 물었다.


“각성자시라고요?”

“왜요. 각성자 안 받아요?”

“아뇨, 그게 아니라. 수강생분들 중에 각성하신 분들은 별로 없어서 말입니다. 어, 잠시만요. 여기 수강신청서에다 뭔 능력인지 구체적으로 적어주시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원장은 내가 작성한 수강신청서를 받아들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신체강화에 공간이동?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죠······”

“나 시간 별로 없어요.”


내가 짜증 냈는데도 원장은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더니, 나와 종이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스마트폰을 켜며 물었다.


“성함이?”

“김극이요.”


내 대답에 원장은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는 듯했다. 그러곤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맞네. 네이버에 치니까 얼굴 나오네. 아이고, UFC 선수셨구나? 2전 2승 하시고서 한 번 각성하셨고, 대한각성연대 활동하시다가 또 각성하신?”

“그게 인터넷에 다 나와요?”

“나오네요. 하여튼 대단하신 분이었네. 그래서······ 이 학원 다니시려는 이유가 있을까요? 누구 소개를 받았다거나?”

“그냥 여기가 싸 보이길래.”


나는 그리 대답하고서 좀 무례하게 대답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이번에도 원장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 그치. 여기가 싸긴 싸요. 그래서 정말 등록 하시려구?”


나는 그럼 가짜로 등록하러 왔겠느냐 되물었고 원장은 내 대답에 만족하면서도 불안한 듯한 눈치였다.


자꾸 저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각성자 수강생이 몇 없다더니 가르치기가 어렵나? 각성자는 수강생으로 들이기 꺼려지는 건가?


“그래서 수강료 얼맙니까?”


내가 불퉁하게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김극 씨 같은 각성자 분들은 수강료 공짜예요. 교재비랑 헬스장 이용도 무료고요. 사격장 이용료랑 탄약값도 학원에서 내드려요. 거기에 꾸준히 나오시는 거 확인되면 식비랑 교통비도 지원해드려.”


나는 잠시 눈을 껌벅이다가 물었다.


“왜요?”

“각성자 헌터 누구누구 데뷔시켰다고 학원 광고에 좀 쓰려고요. 또 학원 강사들 커리어도 챙겨주고, 수강생들 인맥도 챙겨주고 해야 하니까. 김극 씨는 이름이랑 초상권 사용에 동의만 해주시면······”


생각지도 못한 특혜였다. 나는 딱히 거절할 이유를 생각해내지 못해 동의했고 원장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당황하여 몸이 굳었다.


원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양손으로 내 손을 꼭 붙잡는 게 아닌가.


이 양반이 지금 뭐 하는 거냐? 내가 확 밀쳐내기도 전에 원장이 말했다.


“고마워요. 잘 와줬어 정말. 나도 이제 운이 좀 트이나 보다. 꿈자리가 좋더라니 이런 귀빈이 다 와주고······.”


*******


쪽팔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강사님들! 잠시 다 여기 와봐. 이 늠름하신 분 보이지? 앞으로 이분 집중적으로 챙겨야 돼. 이분이 말이야, 어?”


원장에게서 날 소개받은 학원 강사는 날 한동안 멀뚱히 쳐다봤고, 갑자기 내게 악수를 청해 나를 당황케 했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자 수강생끼리 딱히 친목을 다지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는데도 강사는 굳이 날 모두에게 소개했다.


“다들 이분 봐요. 김극 씨라고, 다들 이분이랑 친해져야 할 거야. 이분이 글쎄······”


내가 UFC 선수였다는 설명에서 수강생들은 오, 하고 한번 감탄하고 말았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두 가지 능력을 지닌 각성자라는 설명에 이르렀을 때, 그러니까 신체강화니 공간이동니 하는 내 초능력들이 언급된 순간에는 방금까지 멀뚱멀뚱 듣고 있던 수강생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와.”

“개부러워, 씨발······.”


이런 반응은 꽤 신선했다. 격투기 선수였단 사실보단 각성자란 사실이 훨씬 대단하게 여겨지는 모양이지?


그리하여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 가운데 수업이 시작되었다.


사격 시간이었다. 학원 근처에 사격장이 따로 있어서 다들 실탄을 가지고 사격했다.


내 옆에는 강사 한 명이 옆에 달라붙었다. 강사는 영점조절이란 걸 해주더니 내게 총 한 자루를 들려주었는데, 내가 사격 관련 지시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자 의아한 듯했다.


“총 처음 쏴보세요?”

“예, 뭐.”

“키가 너무 크셔서 군에서 안 받아줬나? 그래도 훈련소에서 쏴보지 않았어요?”

“훈련소를 가긴 갔는데.”

“하기야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안 나시겠다.”


입소 첫날 훈련소 조교를 폭행해서 총 한 발 쏴보지도 못했단 말은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이 먹고 보니 이게 자랑스레 떠벌릴 일이 아닌 걸 알겠더라고.


한편 강사는 처음부터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데도 짜증스럽거나 귀찮은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내게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차근차근 알려주더니, 내게 한번 쏴보라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쐈다. 쏘는 족족 명중하자 강사는 감탄하다 말고 혀를 찼다.


“아, 처음이신데도 너무 잘 맞히셔서 이상하다 싶더니 신체강화자라 그렇구나. 완력이 너무 강하니까 반동이 의미가 없나 봐요. 신체강화자들 전용 총이 따로 있으니까 그걸로 쏴야 연습이 되겠는데······ 기다려봐요. 내가 이번 주까지 어떻게든 구해올 테니까.”


강사가 나한테 말하던 중에 근처에 있던 수강생이 끼어들었다.


“강사님 헌터 라이플 빌려오시게요? 그거 이름만 라이플이지 중화기라서 못 빌리지 않나?”

“경찰 아저씨들한테 뽀찌 좀 주면 빌려줄 것 같은데······.”

“그래도 그거 아무거나 빌려오면 안 될걸요? 17kg짜리며 22kg짜리며 무게별로 천차만별이잖아요. 먼저 신체 능력 검사부터 해야······”


강사에 수강생들까지 내가 쓸 총기를 두고 토론하고 있었다. 나한테 쏟아지는 이 관심이 과하다 못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계속 당황스럽게도, 이후로도 이 과한 호의는 계속되었다.


나를 제외한 수강생 모두가 군필인 듯 장전이며 탄창 교체며 알아서 잘하는 중에 나 혼자 쩔쩔맸다. 그러면? 강사는 물론 옆자리 수강생까지 불평 한마디 없이 날 돕는 것이었다. 내가 헌터 학원에 온 건지 유치원에 온 건지 긴가민가하더라.


이때 내가 의아하게 여긴 것은 수강생들의 관심과 호의였다.


학원 강사가 날 신경 써주는 것은 원장 지시가 있었으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수강생들이 그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화장실 거울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내가 사람들이 먼저 다가올 만한 면상은 아닌데, 어째서?


정말이지 쉬는 시간마다 수강생들이 얼마나 많이 말을 걸어왔는지 모르겠다.


얌전히 앉아서 웬 형법 강의까지 듣고 나니 수강생 하나가 또 친한 척 말을 걸어왔다.


“형? 형법 수업은 대충 들어도 돼요.”

“나 거지라서 합격 바로 못 하면 굶어야 되는데.”

“이 수업 안 들어도 합격해요. 헌터 필기가 운전면허 필기보다 훨씬 쉬운 거 몰라요? 초등학교 도덕 시험처럼 대충 착해 보이는 거 찍으면 합격이라니까.”

“그 정도로 쉽나?”

“어. 헌터 시험 자체가 엄청 쉬워요. 나라에 괴수 사냥할 헌터 맨날 부족하잖아? 그러니까 남자든 여자든 사지 멀쩡하면 합격시켜주는 수준이래요.”

“그럼 학원은 왜 다녀.”

“헌터 된 이후가 어려우니까······. 헌터 생활하는 중에 욕 안 먹고 안 죽으려고 학원 다니는 거죠. 그런데 형법? 이건 헌터 되기 전이나 된 후나 필요 없으니까 안 들어도 돼. 진짜예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을걸.”

“안 들어도 되는 수업이면 강의목록에 왜 있대요?”

“구색 맞추기지 뭐.”

“선생 말론 이 수업 엄청 중요하다던데.”

“잘리기 싫으니까 우기는 거죠. 형법 강사가 원래 공무원 학원에서 형사법 강의하던 양반이라는데, 요새 경찰 공무원이 인기가 너무 없잖아요? 강의 들으러 수강생이 안 들어오니까 결국 공무원 학원에서 잘린 거지. 여기서도 잘리면 굶어 죽으니까 자리보전하려고 엄청 열심인데 대충 흘려들어요. 저 안경잽이가 헌터 일을 해봤겠어, 업계를 잘 알겠어? 나보다 몰라요. 진짜야.”

“그쪽은 헌터 업계 잘 아나 봐?”

“잘 안다기보다는 좆문가? 대충 그런 거지. 헌터 커뮤니티를 하거든요.”

“헌터 커뮤니티? 인터넷이요?”

“헌트웹, 몰라요?”


수강생은 그놈의 커뮤니티를 꼭 들어가 보라고, 그 사이트에 현직 헌터들이 많아서 업계 돌아가는 사정이며 이런저런 정보를 습득하기엔 학원 강사들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형은 각성자니까 각성자 인증하고 배지 꼭 달아요!”라고도 말했는데 이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고.


이후로 몇 가지 수업을 듣고 나니 헌터 학원에서의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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