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헌터 나이토 상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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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이 동네, 저 동네를 지나치던 중이었다. 정신적 그물망을 펼쳐 수색하던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수도 안에도 데스클로 한 무리 있는데.”
“하수도요?”
나는 괴수들의 숫자와 놈들이 잠복 중인 하수도의 위치, 그리고 놈들의 근처 하수구는 세 곳이라는 등의 정보를 전했다.
헌터 하나가 씩 웃었다.
“이번에는 좀 편할 거 같은데요? 팀 나눠서 말씀하신 하수구 앞에 대기하다가 화력 집중하면 되겠네.”
“하수구로 나오는 게 아니라 천장 뚫고 나올 가능성은 없나?”
“없을 거 같은데요? 벽은 잘라낸 다음 밀면 되지만 천장을 잘라내면 콘크리트며 흙 같은 게 다 아래로 떨어지니까 고생스럽잖아요. 게다가 두께도 꽤 있으니까 쟤들 방식으로 뚫고 나오려면 시간 좀 걸릴걸?”
그리하여 우리는 놈들마저 소탕하기 위해 크게 세 팀으로 갈라졌다.
우선 내가 속한 팀, 그리고 백담비가 속한 팀(백담비가 최전방에서 데스클로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이 헌터들의 생존에 도움 된다고 판단한 내가 다른 팀에 보낸 것이었는데, 그녀로선 그런 식으로 중히 쓰이는 게 기분 나쁘지 않은 눈치였다).
마지막으로 나이토 상이 이끄는 팀······.
나는 내 앞의 하수도 입구를 보았다. 저 너머 괴물들의 움직임을 모두에게 무전으로 전파했다.
「두 마리, 백담비 씨 쪽으로 가고 있고······ 세 마리 나이토 쪽으로 가고 있으니 준비하고······」
다른 팀에 정보를 다 전달한 뒤에는 정신적 그물망의 범위를 좁혔다. 저 앞에 나올 괴수들을 대비해야 했다.
그리고 데스클로 세 마리가 튀어나온 순간, 나와 다른 헌터들이 일제히 사격하여 놈들을 쓰러뜨렸다.
“좋아!”
이렇게 우리 쪽 괴수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쓰러뜨렸다. 다른 팀은?
정신적 그물망을 펼쳐보니 백담비 팀도 무탈하게 자기네 몫의 괴물을 처치한 마당이었다.
이제 나이토 상 쪽을 확인하려던 차였다.
무전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도와줘! 나이토 상 쪽인데 도와줘요!」
나는 정신적 그물망을 뻗으며 급히 물었다.
“몇 마리?”
「두 마리······ 한 마리밖에 못 죽였어요! 그중에 한 마리는 총 맞아도 안 뒤져요!」
설명을 들어보니 역장체였다. 내가 맡아 처치해야 할 괴수다.
나는 즉시 그쪽으로 공간이동 했지만 주변에 역장체는 없었다. 그저 목에서 피를 콸콸 쏟아내는 헌터 한 명과, 팔다리의 부상 탓에 신음하는 헌터 두 명이 보였을 뿐이다.
역장체, 역장체와 괴수들은 어딨지?
저 멀리에서 엔진음이 났다. 심지어 음악 소리마저 요란하게 울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놈들이 보였다.
데스클로 두 마리가 한 명의 바이크 라이더를 쫓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바이크를 몰고 온 헌터는 한 명밖에 없다.
나이토 상.
나는 자길 뒤쫓는 괴수들을 향해 샷건을 쏴대며 은빛 바이크를 달리는 일본인과 그 뒤를 바짝 쫓는 데스클로 두 마리를 보았다. 아, 이제 한 마리였다. 막 나이토 상을 덮치려던 한 마리가 그가 쏜 샷건에 맞아 죽었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역장체는 멀쩡하게 그를 쫓고 있었다. 난 공간이동 하고자 정신을 집중하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았다.
거리를 좁힌 역장체가 땅을 박차고 도약하려는 찰나, 나이토 상이 바이크와 몸을 한꺼번에 젖히는 것을 보았다. 미리 괴수의 세세한 동작을 살피고 이후를 예측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움직임.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역장체를 피해 나이토 상이 바이크를 꺾었다. 급회전하여 다른 방향으로 바이크를 달리면서도, 상반신은 계속 뒤를 향한 채였다.
나이토 상은 다시 자기를 쫓아오는 역장체를 향해 계속해서 샷건을 쐈다. 저따위 탄으론 어림도 없다는 걸 알 텐데 어째서?
저 괴물이 계속 자길 쫓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널 공격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다른 놈들을 노리러 가버리는 게 아니라 붙잡기 어렵더라도 날 계속 따라오라고 총성으로 윽박지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 역장체가 다른 헌터들 사이에서 날뛰었다간 죄다 죽고 말 테니까.
다른 의도일 리는 없었다. 한 박자 한 박자에 생사가 오가는 이 상황에도 똑바로 괴수를 향하고 있는 저놈의 눈동자만 봐도 확신할 수 있었다. 바이크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또한 저놈을 유인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한편 역장체든 나이토 상이든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었다. 그래서 공간이동으로 어디로 이동해야 가까이 붙을 수 있을지 계산하기가 벅찼다······.
시간이 좀 걸린 끝에 어떻게든 성공했다.
마침내 내가 그들 옆에 공간이동 했다. 바로 앞에서 역장체가 달리고 있었다. 놈의 측면을 향해 헌터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기던 그때, 나는 샷건의 방아쇠를 당기던 나이토 상과 눈이 마주쳤다.
놀랍게도 그 찰나의 순간, 나이토 상의 눈은 제 앞에 나타난 나와 역장체를 번갈아 훑었다. 저 정도 동체시력은 격투기하던 시절에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탕’ 소리 다섯 번.
내 헌터 라이플에서 연발로 발사된 기관포탄 다섯 발이 역장체를 조각냈다.
“아!”
그제야 나이토 상은 샷건을 내렸고, 나를 다시금 바라봤으며, 겨우 안심한 듯 웃었다.
그 눈동자에도 생기가 돌아왔다. 콘솔 게임을 이지모드로 하는 중에도 저만큼 차분할 순 없겠다 싶던 눈동자에 비로소 드러난 감정이었다.
“무전 한 지 일 분도 안 됐는데 바로 와주셨구나? 공간이동이 좋긴 정말 좋네요! 가뜩이나 스펙 빵빵한 각성자 헌터가 실질적으로 여러 공간에 동시에 있는 셈이니까······”
이 새끼가 지금 너스레를 떠는 건가, 아니면 아부를 하는 건가?
둘 다 아닌 것 같았다. 보아하니 진심으로 안도한 게 확실했다.
그렇다면 방금까지는 사실 긴장한 채로도 그리 차분해 보였단 것이로군. 비각성자 찌꺼기 주제에······.
“다친 덴 없고?”
“덕분에요!”
이후로는 뒤처리를 신속히 해냈다.
나는 다친 두 명과 시체가 된 한 명을 공간이동으로 병원에 옮긴 후 현장에 복귀했다.
곧바로 피비린내가 코에 스며들었다. 목이 반쯤 잘린 헌터의 피가 웅덩이를 이룬 마당이었다. 병원에 옮기긴 옮겼지만, 저 피 웅덩이 크기만 봐도 생존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예, 또 한 무리 소탕했습니다. 이번에는 역장체 한 마리 섞였는데 돈 더 주십니까······」
기어이 사망자가 발생했단 사실에 나는 몸이 굳었지만 다른 헌터들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이야, 역장체 떴는데 한 명밖에 안 죽었어. 복권 사야겠다 진짜.”
표정만 살펴서는 죽은 인원이 누구의 팀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짝만 봐선 다들 담담해 보이는 것이 다들 적당히 침통해 보였고 적당히 태평해 보였다.
그날 우리는 59마리의 데스클로와 이름 모를 괴수(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 아마존 정글에서 툭하면 신종 생물이 발견되듯 게이트에서도 툭하면 발견된 적 없는 괴물이 새로 튀어나온다) 한 마리를 사냥했다.
이것은 하루 만에 해냈다기엔 너무나 놀라운 사냥 성과라는 듯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그날 공중파 뉴스에도 우리가 등장했다.
「인천에서 진행된 지역 복구 프로젝트가 순조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일곱 시간 동안 진행된 작전을 통해 총 육십 마리 괴수를 사살하여, 두 개 동을 완전히 (······)
예비군 일만 명이 동원되어 열여덟 명이 실종되고 다섯 명이 사망한 결과 고작 한 마리 괴수를 사살했을 뿐인 지난 독수리 작전과 비교할 수 없는······」
새삼 세상이 변했단 게 느껴진다.
작전 첫날부터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것이 내 기준에는 끔찍하게 불운한 시작으로 느껴지는데, 뉴스에서는 이걸 ‘경탄스러울 만치 순조로운 시작’쯤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태평하게 인권운동이나 하는 동안 세상은 이 정도로 변한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헌터 김극은 저번 인천에서도 놀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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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마친 후 씻고서 헌트웹에 접속했다.
그러고는 이쁜 말투로 글 하나를 작성하려다 그만두었다. 내가 주도한 작전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날에 그러는 것은 고인 모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뭔가 적는 대신 읽기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헌트웹에 나이토 상을 쳐보았다.
유명인답게 그와 관련된 글이 수두룩하게 쏟아져나왔다.
그리하여 나는 나이토 상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가 단순히 스트리머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놀라운 실력자 헌터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을, 거꾸로 그 놀라운 실력 덕에 스트리머로도 유명해졌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또한, 그는 인터넷에서 나이토 상 외의 별명이 또 하나 있었다.
‘B급 헌터’.
원래 헌터 등급에 B급 따위는 없다. 각성자임을 뜻하는 A급과 거기서 또 초월적인 수준(super)임을 뜻하는 S급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오직 나이토 상에게만 부여된 칭호로, 비각성자이기에 고화력을 퍼부어 역장체 등 강력한 괴수를 타격하는 A급 헌터의 역할은 수행하지 못하지만 바로 그 아래 등급은 된다는 뜻이었다.
‘B급’하면 생각나는 좋지 않은 어감과 달리, 순수하게 그를 예찬하고자 붙여준 칭호인 셈이다.
인터넷에서 조롱 목적이 아닌 별명이 붙다니? 정말로 흔치 않은 경우다. 그놈의 실력이 얼마나 감탄스러웠으면······.
눈매를 가늘게 좁힌 채, 계속 마우스를 따닥따닥하던 중이었다.
메시지가 왔다는 시스템 알림이 떴다.
그놈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 GoodHunter : 사죄드리고 싶어 연락드립니다.
말씀하신 댓글을 찾아보니 확실히, 팀원이 당한 모욕에 기분 나쁘실 만하더군요. 그땐 별 대단한 생각 없이 단 댓글이었는데 제가 경솔하고도 무례했습니다. 실제로 만나 뵌 백담비 씨는 충분히 제 역할 이상을 훌륭하게 해내는 분이었던 만큼 제게 그런 모욕을 들을 이유가 없기도 했고요.
또한 전과자, 어쩌고 하며 주제넘게 작성한 글에 대해서도 사죄드립니다.
문제가 된 댓글과 글은 이미 삭제했습니다. 몇 번을 사죄드려도 부족하겠지만, 거듭 사죄드립니다.
원래대로라면 백담비 씨에게도 직접 사과드려야겠지만 그러려거든 인터넷에 백담비 씨를 험담하는 글이 올라온 사실을 굳이 알려야 할 텐데 그 경우 백담비 씨가 불쾌함을 느끼게 되실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제 맘 편하자고 바로 사과드리기엔 조심스럽네요. 여러모로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김극 씨? 오늘 보여주신 실력은 역시 들은 대로 최고였습니다! 위급한 중에 도와주신 것에도 깊이 감사 드립니다!
다시 만날 때는 서로 웃으며 인사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일본인은 사과를 잘 안 한다더니 다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군. 이 정도로 공들인 사과문은 오랜만이었다.
놈의 메시지를 다 읽고 난 나는 바로 컴퓨터를 껐다.
그러고는 오늘 일어난 일과 그놈의 일본인에 대해 생각했다.
그놈은 확실히 내가 원래 갖고 있던 ‘베테랑 비각성자 헌터’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놈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놈이 좋아질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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