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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님의 서재입니다.

A급 헌터가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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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작품등록일 :
2024.05.23 21:16
최근연재일 :
2024.06.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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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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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얼음 능력자 백담비 - [1]

DUMMY

환각 속 나는 자줏빛으로 일렁이는 게이트를 본다.


게이트 앞에 선 이계인(異界人)들을 본다. 그리고 이계인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백담비를 본다.


백담비, 그녀는 납치되고 있다. 머나먼 이계로 끌려가고 있다!


‘배액다암비이이!’


내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지만 지금은 발성조차 쉽지 않다. 목에 가득 차오른 피가래 탓이다.


놈들을 노려보기 위해 상반신을 드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까 통째로 잘려 나간 두 다리는 내 옆에 널브러져 있다. 이 와중에 내가 아직 살아있는 것은 오로지 초재생능력 덕이다. 상처가 덜 심각해서가 아니라.


끔찍한 울분과 답답함 속에서 나는 나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내지른다. 저 깡마른 이계인들을 향한 욕설이다.


저 다른 세계에서 북한 주민들보다 거지 같이 산다는 버러지들. 풍족한 이 땅을 향한 약탈에 나선 침략자들······.


그들에게 포박된 채, 백담비는 나를 보더니 눈을 질끈 감고는 중얼거리듯 말한다.


‘뭐 해보겠다고 여기 있지 말고 어서 공간이동 해. 살아야―’


백담비의 말이 끊긴다. 이계인들이 그녀를 잡아당긴 탓이다.


이계인들은 나를 흘긋 쳐다보더니 저 앞으로 나아가버린다.


결국 이계인들은 게이트로 사라진다. 그들에게 붙들려 있던 그녀도 함께.


나는 한동안 그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피를 한 바가지 토해내고는 게이트를 노려본다.


저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한다. 어떻게?


나는 애써 정신을 집중해 공간이동 한다. 게이트 바로 앞으로 이동한 다음 애벌레처럼, 상반신만 꿈틀꿈틀 움직여 내 몸을 게이트 안에 억지로 집어넣는다.


그리하여 내 동료와 이계인들을 삼켰던 게이트는 나마저 집어삼킨다.


시야가 자줏빛 세계로 가득 찬다······.


*******


시야의 전환과 함께 나는 현실로 복귀했다.


그러고는 숨을 헐떡거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격해진 감정 또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제기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뭐라도 때려 부수고 싶은 기분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참아야 한다. 이 분노의 유래가 정상이 아닌 것을 안다. 이 자리에서 표출이라도 했다간 무슨 취급을 받을지도 뻔하고.


계속해서 울화가 내면에서 소용돌이 치는 가운데 박미형 씨가 말했다. 다행히 내게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담비 씨, 이제 팀 옮길 거면 활동 지역이 달라질 테니까 이사해야죠? 내 소유 빈 건물이라도 좀 보여줄까?”

“괜찮아요.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돼요. 나 돈 많은 거 아시잖아요.”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긴? 우리 같은 얼음 능력자한테 누가 집 쉽게 빌려준대요? 내가 시의원 명함 들이밀어도 얼음 능력자랍시고 아파트 안 팔아줘서 환장하겠는데 담비 씨가 뭔 수로 집을 구해?”

“사람 안 사는 동네에 헐값으로 파는 빌라들 많잖아요. 그중 하나 사서 이미 잘살고 있어요.”

“뭐? 미쳤어, 진짜 미쳤어······.”


둘이 대화하는 동안 나는 심호흡을 거듭했다. 덕분에 겨우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럼 팀에 정식으로 합류하는 걸로 알고, 팀원에 그쪽 이름 넣어서 보고하지요. 팀원끼리 언제 만날래요? 내일?”


내 물음에 백담비가 어조 변화 없이 대답했다.


“시간 정해주시면 바로 나갈게요.”


금방이라도 축 늘어질 듯한 힘없는 목소리였다. 방금 박미형 씨랑 대화할 때도 저 모양이던데, 이 여자가 우울증이라도 앓고 있는 걸까?


정말이지 싸가지가 없는 걸 넘어 감정 표현조차 없었다. 지금도 내게 직접 은혜를 입게 된 백담비가 아니라 박미형 씨가 더 고마워하는 눈치 아닌가.


“김극 씨, 오늘 정말 고마워요. 나 때문에 학원에도 싫은 소리 해야 했을 텐데 정말 미안해. 이제 김극 씨가 나보다 잘 나가니까 내가 돕겠다고 말하기가 뭐하긴 하거든? 그래도 나중에 제 도움 필요하면 망설임 없이 바로 전화해요, 응?”


박미형 씨가 배웅하는 가운데 나는 둘과 헤어졌다. 그리고 협회에다 기존 인원과 학원에서 보내주기로 한 인원, 이번에 합류하기로 한 백담비의 이름을 넣어서 내가 거느릴 헌터팀의 명단을 적어 보냈다.


그러고는 팀원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자 맨 먼저 성문영에게 전화했다.


내가 여자 하나가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전해주니 성문영은 의아한 눈치였다.


「여자 헌터요? 여자는 각성자 아니면 헌터 일 잘 안 하는데?」

“각성자 맞아. 얼음 능력이지만.”

「에이, 얼음 능력자면 노각성으로 쳐야지······ 그래서 이뻐요?」


이쁘다고 대답했더니 어째 녀석은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심지어 뭔가 심상찮은 걸 눈치챈 듯, 녀석은 이렇게 묻는 것 아닌가.


「이쁜 얼음 능력자면, 씨······. 혹시 그 여자 이름이 백담비는 아니죠?」

“맞는데, 아는 여자야?”


그리고 성문영이 한숨 쉬듯 대답했다.


「백담비, 몰라요? 헌트웹 슈퍼빌런 중 하나잖아!」


*******


「확실히 형은 모르실 수도 있겠네. 그 여자가 유명했던 게 한 일 년 전이거든요? 한번 검색해봐요!」


성문영이 그리 말하길래 시키는 대로 해봤다.


그리고 과연, 헌트웹에 백담비 석 자를 치니 검색 결과가 몇 페이지를 넘어가는 게 아닌가.


나는 검색하여 나온 글들을 쭉 훑어보고서는 혀를 찼다. 이거 참,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였구만.


성문영이 예쁜 여자가 합류한단 소식에도 떨떠름하던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백담비는 헌트웹에서 악명 높은 정신병자였던 것이다.


백담비가 직접 헌트웹에서 활동하며 혐오스러운 사진이라도 올려댄 것은 아니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백담비 자체가 기피되고 있었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그녀가 얼음 능력자 주제에 수백억 계약금을 받아 챙긴 사실 자체가 헌트웹의 모든 계층이 분노할 일이었다. 각성자 헌터든 비각성자 헌터든, 한낱 ‘얼레기’가 그런 돈을 받았단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익명 : 백담비 그년 줄 돈이면 외국에서 각성자 세 명은 사왔겠네······.


Ⓐ syberMagneto : 진짜 얼레기가 그 돈 반납 안 하고 꿋꿋하게 계속 활동하니까 다들 환장함 ㅋㅋ



그리고 백담비와 같이 활동한 헌터들의 평가마저도 좋지 않았다. 헌트웹에 올라온 경험담을 들어보면 그녀에 대한 평가는 이런 식이었다.


‘자기가 아직 연예인인 줄 아는 정신병자.’

‘동료 장례식에도 크롭티 입고 올 년.’


처음엔 백담비도 정상이었다는데, 헌터로 활동한 지 일 년쯤 지나니 맛이 가버렸다고 한다. 그 사실을 복장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고도.



익명 : 어느 날 사냥 가야 하는데 백담비 그년이 선글라스 쓰고서 크롭티에 재킷까지 차려입고 온 거지. 심지어 화장 풀세팅인 게 난 걔가 어디 놀러 가려다 급하게 사냥하러 온 줄 알았어.

그런데 다음 날이랑 그다음 날에도 똑같애. 크롭티에 화장에 선글라스······.

원래는 그냥 다른 헌터들처럼 평범하게 입고 다니더니, 갑자기 무슨 아이돌처럼 세팅하고 다니기 시작한 거야. 하루 이틀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이후로도 쭉 그래.

눈요기도 하루 이틀이지 맨날 이러니까 슬슬 부담스럽지. 이년이 갑자기 왜 이러나, 슬슬 진짜 아이돌 복귀하려고 이러나? 하고 인터넷에서 조사 좀 해봤더니 얼마 전에 이년 소속사가 망했다네?

그제야 이년이 왜 이러는지 알았지. 연예계 복귀할 희망이 사라지니까 미쳤구나.

특히 그놈의 선글라스를 절대 안 벗더라. 대화할 때도 안 벗고 밥 먹을 때도 안 벗고 상황 브리핑 중에도 안 벗고······.

사냥 나가서 총 쏴야 할 때면 그때야 겨우 선글라스 벗는데, 선글라스 왜 평소에 절대 안 벗는지도 알 만해. 평소에도 팀원들이랑 말 섞거나 시선 마주치기도 싫어하는 게 확 티 나는데 그 썩은 표정 가리려고 그러는 거지, 미친년이



팀에서의 태도가 정말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와 함께한 팀원들의 원성을 몇 개나 더 찾아볼 수 있던 걸 보니.



익명 : 누가 걔한테 수고했다고 음료수 뽑아준다? 자기가 이쁘니까 작업 건다고 생각하는지 됐어요, 하고는 진짜 끝까지 안 받아. 그래서 걔만 빼고 동료들한테 음료수 하나씩 돌린다? 지 꼽준다고 생각하는지 우울증 발작해서 며칠은 말 걸어도 무시해.

팀원들이 태도 좀 고치라고 말해도 죽어도 안 들어. 심지어 높으신 분 말도 안 듣더라. 인천 시장이 직접 저 아가씨 복장이 사냥이랑 안 어울리는 거 같다고 노골적으로 눈치 줘도 들은 척도 안 해


Ⓑ GoodHunter : 이런 말 하긴 뭐한데, 말이 안 통한다면 팀원 중 누군가가 폭력으로라도 태도 교정하려고 시도한 적 없나? 헌터들이 여자 동료라고 끝까지 스윗하게 굴었을 거 같진 않은데


Ⓐ syberMagneto : 뭔 수로? 비각성 쓰레기들은 얼레기조차 이길 수 없어 쓰레기야


익명 : 인정하긴 싫은데 저 새끼 말대로 그년이 꼴에 각성자라 일반인은 그냥 갖고 놀 수 있었음. 실제로 누가 빡쳐서 주먹이라도 들면 그년이 역으로 조져버리니까 어떻게 팰 수도 없고, 그냥 팀원들 속만 터지는 거지



그렇듯 헌트웹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백담비가 헌터팀을 새로 구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의 업계 평판이 지독하게 좋지 않았던 것이다. 박미형 씨 추측대로 위대한 인천시에서 압박이라도 한 탓이 아니라.


그리하여 다음 날, 헌트웹에서 묘사한 대로, 그리고 전날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돌처럼 입고 나온 백담비를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성문영도 나와 마찬가지 심정인 듯했다.


“진짜 헌트웹에서 본 그대로네요? 크롭티에 선글라스에, 높으신 분이 그러지 말라 지적해도 끝까지 저런다더니······.”

“진짜네.”

“형이 어떻게, 안 될까요?”

“나보고 뭘 어쩌라고.”

“헌트웹에서 보니까 저 여자를 지금까지 아무도 교정 못 한 이유가, 저 여자가 각성자라서 일반인 헌터는 어떻게 건드릴 수가 없어서 같거든요? 근데 형도 각성자고 저 여자 능력은 형한테 안 통하니까 저 여자도 형은 무서울 거야 아마.”

“그러니까 목소리 내리깔고, 좆같이 굴면 좆같이 대해주겠다며 윽박지르기라도 하라고?”

“예!”

“글쎄, 꼭 그래야 하나? 하이힐이라도 신고 있었음 뭐라고 하겠지만, 저게 딱히 움직이기 불편할 복장은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입고 싶은 대로 처입으라지 뭐.”

“저대로 잘 싸우든 말든 다른 팀들 눈치가 보이잖아요? 팀 분위기도 해칠 거 같고······.”


나는 잠시 성문영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문영아. 내가 어릴 때부터 누가 나한테 명령하는 걸 싫어했거든? 아빠가 지 마실 물 떠오라고 시키든 교사가 머리 몇 센티로 깎으라 시키든 죄다 기분이 나빴단 말이야.”

“그래 보여. 그래서요?”

“그래서 나도 남한테 어지간하면 명령 안 한다. 내가 그렇듯 남 기분도 나쁠 거 같아서.”


내가 기껏 내 신조를 말했더니 성문영은 제대로 알아들은 눈치가 아니었다.


“저 여자 꼬시려고 지금부터 잘 보이려는 거 아니죠?”

“나 꼬추 안 선다, 새끼야.”

“어, 왜요?”

“신체강화자로 각성하면서 생식능력에 갈 영양이 죄다 근육에 가고 있으니까. 덕분에 근손실도 안 생겨서 아주 좋아죽겠다, 어?”


잠시 후 모이기로 한 내 헌터팀이 전부 모였다.


한 명 빼고 전부 아는 인원이었다.


학원 원장이 추천해서 팀에 넣게 된, 약 팔 개월 활동했다는 베테랑 헌터가 자신을 소개했다.


“장병곤입니다! 이야, 제가 설마 다니던 학원 덕을 보게 될 줄은 진짜 몰랐는데요. 정확히는 저 넣도록 허락해주신 김극 씨 덕이죠? 팀에 넣어주셔서 진짜 너무 고맙습니다! 다들 잘 부탁드리고요······”


이후로 약 일주일이 흘렀고 우리는 장병곤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업계 돌아가는 사정이며, 탄약 싸게 사는 방법이며, 괴물 상대하는 요즘 방법이며······.


장병곤 그와 친해지기도 쉬운 일이었다. 그는 베테랑인 데다 나이 또한 많은 편인데도 날 상관 모시듯 깍듯이 대했고, 나 이외 모두에게도 후배 대우하며 으스대는 게 아니라 싹싹하게 굴었다.


영리한 처신이었다. 각성자인 내게 굽신거리는 거야 당연한 일이요, 이들 중 다섯 명이나 원래부터 알던 사이인 이상 베테랑이랍시고 선임 노릇하려다간 팀에서 고립될 수 있을 테니까.


당연히도 장병곤은 자연스레 팀에 섞였다.


그리고 백담비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그 어떤 반전도 없이 그녀는 헌트웹에서 묘사된 그대로였다.


백담비는 평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누가 먼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베테랑으로서의 조언 따윈 해주지 않았으며, 그놈의 선글라스를 절대 벗지 않았다.


지금도 선글라스를 낀 채 가만히 앉아만 있는 백담비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 우울증 환자 같은 여자랑 내가 친해질 수가 있나?


모르겠는데, 환각 속 나는 해낸 모양이다.


환각 속 나는 저 여자와 깊은 관계인 듯 보였으니까. 저 여자가 납치되니 절규하며 게이트 안으로 따라 들어갈 정도였지 않은가. 어쩌면 단순 동료를 넘어선 긴밀한 관계였을 수도 있겠다.


환각 속 내 분노가 전이된 듯, 지금의 나 또한 그 장면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곤 한다.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환각 속 나와 일체화되어 그 분노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 본 환각에서는 다들 아주 처참하게 죽었지 않은가. 그 끔찍한 장면을 보고서 어떤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여자는? 환각 속에서 몸 성히 납치돼서인지 심각성이 덜하게 느껴진다. 그 일을 기필코 막아내야겠다는 사명감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갑자기 휴대폰이 진동했다.


내 휴대폰뿐만 아니라 모두의 휴대폰이 그랬다.


장병곤이 진동하는 자기 스마트폰을 확인하고서 외쳤다.


“게이트 열렸답니다. 다들 준비해요!”



작가의말

언제나 읽어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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