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최근연재일 :
2020.08.12 10:30
연재수 :
276 회
조회수 :
21,554
추천수 :
410
글자수 :
1,705,606

작성
19.09.03 07:10
조회
67
추천
1
글자
13쪽

54화. 의뢰 고르기(2)

DUMMY

분명 연회에서 듣기론 루크 또한 마법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라 들었다. 전투 능력 하나만으로 부탑주에 오른 사나이. 자연스레 수많은 역경에 맞서 다수의 실전을 거친 그라면 분명히 자신에게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으리라.


그래서 현우는 다짜고짜 그의 연구실에 쳐들어갔고,


"이번 건은 도가 너무 지나치는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죄, 죄송합니다."


그의 마법에 억눌린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가 스승 노릇을 하고 싶진 않았다만, 이 정도까지 마법사 간의 예절에 대해 무지하다면 분명 어르신께도 폐를 끼칠 터. 가르쳐주마."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의 마력은 쇠고랑이 되어 현우의 사지를 옭아매었다. 의자를 가지고 온 루크가 그의 앞에 책을 펴고 앉았다.


"우선은 처음이니 가볍게 설교 한 시간으로 끝내도록 하지."

"그럼 깔끔하게 설교 한 시간에 뒤끝은 없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호라. 설교를 듣는 것이 쉬운 줄 아는 가녀린 신입 마법사를 향해, 어쨌든 스승이라 불리게 된 입장에서 루크는 자신의 제자에게 미소를 듬뿍 날려주었다.


"좋아. 어디 한 번 버텨보거라."


* * *


감각이 없다가 다시 피가 흐른다.

흐르는 피가 다리의 모든 신경을 타종하듯 들쑤셨다. 밀려오는 짜릿한 고통에 연신 현우는 손으로 주물럭거려 보지만, 툭툭 일정한 박자로 부딪혀오는 충격은 도통 줄어들지 않았다.


"이만하면 되었겠지. 네가 말하려고 했던 게 무엇이었지?"


눈 하나 꿈쩍이지 않는 루크를 노려보며 현우가 입을 열었다.


"크흠.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루크 씨."

"말해보게."

"그보다 앞서, 저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내려준다면 당연히 당신은 스승으로서의 본분을 다한다는 이야기겠죠?"

"뭐, 스승이라기 보다야 선배로서 마법사 후배에게 내리는 질책이라 보는 편이 좋겠지만, 알아서 생각해라."

"스승인지, 선배인지 그 차이가 확 나는 관계 속에서 하나만 고르시던가요. 듣는 후배인지 제자인지 하는 마법사는 짜증이 날려 합디다."


현우는 입을 쉬지 않은 채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얼추 마사지가 끝난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선 그가 루크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경험을 원해요. 제가 외부 의뢰를 가게 되었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나 자기 연구실 앞에 써 붙였는데 모르면 마법학부 소속의 마법사가 아니란 거겠지."

"자, 여기요."


원래의 자기 책상에 앉은 루크의 앞으로 현우는 두 장의 종이를 보여줬다.


"하나는 미우-에아렌 대상 호위와, 다른 하나는 엘리안 사절단 행사라."

"당신의 경험을 생각해 말해주세요. 어느 쪽이 좀 더 나을지."


나는 당신을 믿고 있으니까-라며 눈을 살짝 빛내는 현우에게 루크가 물었다.


"네가 더 중요시 하는 기준을 말해봐라."

"네?"

"보상, 시간, 위험도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마다 각기 자신만의 기준이 다르기에, 어느 기준을 우선으로 두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수만 가지의 가치 판단이 나오게 되지."

"그렇군요. 그렇다면 의뢰 수행 시간을 가장 우선으로 할게요."


혼자서 고민 하던 중 그의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것은 시간이었으니, 현우의 선택 또한 그것이었다. 한 쪽은 돌아오는 문제가 있었고, 다른 한 쪽은 행사 자체가 너무나 늦게 열릴 예정이니까. 양쪽의 조건을 놓고 비교를 마친 루크가 대답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는 이 쪽을 좀 더 추천한다."


그가 현우에게 내민 종이는 미우-에아렌 대상 호위. 현우가 이유를 묻자 그는 간단한 대답으로 제자의 입을 다물게 했다.


"네가 신경 쓰는 돌아오는 것은 나에겐 그다지 높은 벽으로 여겨지진 않아서지."


순간 말할 기회를 놓친 현우가 급히 그의 대답에 다시 말을 붙인다.


"저기요!"

"왜 그렇지?"

"점잖게 얘기해도 이건 부당하다 말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니까, 아 그, 선생님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안되죠. 제가 당신처럼 공간 이동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나처럼 되면 되지 않나?"

"네?"


루크가 손가락을 튕기자, 책장에 놓여있는 종이 뭉치 중 하나가 그의 앞으로 날아왔다. 그는 두루마리를 펼쳐 현우에게 보여주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엘리안 사절단이 왔을 때의 마법사 모집 공고였다.


"엘프들의 키에 맞추어 키가 작지 않고 수려한 외모를 가질 것, 공격 계열 마법 보다는 방어 및 탐지 마법을 가진 쪽을 우대함, 최소 블링크 마법 습득. 이 사항 중에 자네가 해당되는 사항이 있던가?"

"그건."

"물론 이번 공고에서는 저런 사항을 기입하지 않았지만, 모집 인원수가 무한대지. 저걸 봐서는 엘리안 사절단을 맞이하는 자리에 있을 마법사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뭔데요?"

"보이지 않은 곳에서 많이 구를 것이라 생각한다. 차라리 상행이 나을지도 모를 정도로."


저것도 찢어버려야 하나를 고민하는 현우의 앞에서 루크는 박수로 그의 시선을 돌렸다.


"그럼 남은 하나는 대상 호위 건인데, 그대가 고민하는 건 돌아올 때의 문제겠지?"

"네."

"그렇다면 내가 두 가지를 도와주지. 하나는."


루크의 말이 연구실을 울리고, 그들의 옆에 놓여진 책장의 책들이 툭툭 튀어나와 오와 열을 맞춘다. 색깔과 크기와 가죽의 재질을 모두 고려한 그 대이동에 현우의 눈이 동그래진다. 완벽하게 정리된 책장은 좌우로 갈라지더니 숨은 공간을 내뱉었다.


그곳에 놓여진 작은 상자를 루크가 완드로 두들겼다. 뚜껑이 열리고, 황금색의 향연이 현우를 맞이했다.


"자,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가 던진 무언가를 손으로 받은 현우가 제 손가락을 살짝 폈다. 조그마한 노란색의 동전 두 개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현우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도 찬란하게 빛을 뿌리는 동전들을 그대로 다시 쥐고서, 현우는 떨리는 입을 열어 다시 책장을 정리중인 루크에게 물었다.


"저, 저기. 이 돈이 이 정도라고요?"

"아까 전과 똑같은 대답을 들려주지. 나에게는 이 정도다."

"하하... 부탑주라는 직위가 진짜 높은 자리인 것이 이제야 실감이 가네요."


다시 자리에 앉으려다 멈칫한 루크는 미소를 띠며 현우에게 말했다.


"뭐, 학교에서 돈은 받는다만 나는 거의 이곳에서만 지내고 있지. 돈을 쓸 데가 어디 있지? 아, 한 군데에 쓰긴 하는 군."

"뭐에 쓰시는 데요?"

"너도 나중에 조금 더 나이를 먹거나 한다면, 마법사들은 대개 넘치는 탐구욕을 지닌 이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될 거다."

"그건 충분히 알겠더만요."

"그리고 그것은 물질적으로 드러나게 되면 수집욕으로 발전하지. 나 같은 경우에는."


루크는 스태프를 들어 왼쪽의 빈 벽을 쿵 쳤다. 그의 스태프에서 나오는 마력이 벽을 타고 흐르자 무언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빈 벽은 출입문이 되고, 루크는 문을 열어 현우를 안쪽으로 들였다.


"스태프라네."


숨겨진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현우를 맞이한다.

저 남부의 숲이나 삼림에 가야 볼 수 있다는 흑단나무, 리파로스부터 단풍나무, 마호가니, 호랑가시나무까지. 다양한 색을 뿜어내며 매끈한 자태를 자랑하는 스태프들이 현우에게 매혹의 눈길을 날렸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는 제자를 향해 루크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여기서 네게 맞는 스태프를 하나 주마. 밖에서는 완드나 스태프가 없으면 마법사 취급을 받지 못하니 말이다."


* * *


"이 앞은 무풍지대인데, 정녕 이 곳으로 가려 합니까?"

"아, 우리는 괜찮습니다. 다 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성문의 경비대장이 상인의 어깨 너머로 쭉 밀려있는 행렬을 바라보았다. 꽤나 큰 규모의 상행이라서, 무풍지대를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대체 어느 상행이길래 그렇소? 로즈?"

"아, 죄송합니다. 이곳으로 들어오지를 않아 아직 저희 이름이 많이 퍼지지 않았군요."


사내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튕겨 경비대장에게 넘겨주었다. 손을 피니 때를 타지 않은 은화 하나가 경비대장을 반겼다. 목을 가다듬으며 기사가 슬쩍 상인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명망 있는 곳인가 보군요."

"트라베 상단 소속입니다. 지금까지는 뭐, 대장님께서 워낙 고생하시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넘어가드리지만."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왼팔을 슬슬 긁던 상인이 슬쩍 말을 내밀었다.


"더 이상 지체하면 본단에서 이 쪽에 항의 서한을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그려."

"아! 트라베 대상단이라. 이것 실례했군요."

"예, 미하엘 판입니다. 지금이라도 아신다면야 뭐. 이제 괜찮겠지요?"


판이 슬쩍 내민 서류를 경비대장이 살펴본다. 자세히 훑은 것은 아니나 얼핏 본 바로는 통과 서류는 완벽했다. 수년 간 이곳의 문을 지키던 그의 감 또한 별다른 일이 없으리라 말해주었다. 그의 옆에 있던 말이 갑자기 투레질을 하며 바닥을 두들겼다.


"아니, 이 녀석은 또 왜 이럴까. 이 녀석도 막 달리고 싶나 봅니다. 하하."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군요.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인데, 저기 실려있는 것들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아, 이오니아는 예부터 좋은 술과 세공품이 유명하지 않습니까. 더불어 바다 건너에서 온 사람들 덕분에 특히 목공예품 같은 건 제가 본 바로는 여기가 최고더군요. 그 특이한 멋을 찾는 부호들이 많습니다."

"아, 그런가요? 저도 집에 하오란의 장인이 만들어준 나무 새가 하나 있지요."


자신의 나라를 칭찬했기 때문일까, 판을 바라보는 기사의 눈빛이 한결 유순해졌다. 판은 다시 주머니를 열어 짤랑이는 은화 몇 개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 고생하시는 기사님을 위해 특별히 제 감사를 몇 개 더 담았습니다. 혼자 드시지 마시고, 휘하에 계신 분들께도 같이 술 한잔 돌리시면 좋겠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해주신다면야. 앞으로도 이오니아에 오실 땐 저희 마을로 오시죠."

"하하. 잘 알겠습니다."


성문이 열리고, 수많은 말들과 마차가 판의 뒤를 따라 바람 없는 땅을 걷기 시작한다.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얇은 막의 실드가 마차와 수레 등을 둘러싸며, 판 또한 목걸이에 마나를 밀어 넣어 따가운 햇살을 가리는 차광막을 펼쳤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이다 보니 햇살이 따갑군."

"조심하십쇼, 판 어르신."

"아, 맥. 다른 이들에게도 혹시나 탈수에 걸린 말이나 사람은 없는지 확인해보라고 해주게. 특히 술을 실은 곳은 더더욱."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슬슬 봄이 물러나고 있나 보네."

"이제 여름이 올 때긴 하지요. 저기 보십쇼. 여기도 풀들이 조금씩 나고 있지 않습니까."


맥이 말한 곳을 따라 판은 고개를 돌렸다.


"하기야 이곳이 사막도 아니고, 저런 게 오히려 보이지 않음이 이상해."

"엄청난 전투였나 보군요."

"그렇기 때문에 이오니아를 넘어 다른 나라에도 그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나. 적어도 모든 마탑에서는 필수 도서로 지정되어 있을걸."

"판 님! 급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평소 그를 보필하던 보관이 급히 상행의 뒤로부터 판을 향해 말을 몰았다. 급히 말을 멈춘 탓에 발생한 먼지가 잠시 판의 시야를 가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 탓에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야 먼지가 가라앉았다.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급박한 일인가? 에드윈?"

"네, 저기 맥은..."


자신의 오른쪽에 있던 맥에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 명한 판이 말을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인가?"

"예. 아마 그 쪽에 연락이 간 모양입니다. 행렬 뒤를 맹렬히 쫓는 이들이 있습니다. 경비대인 것 같습니다."

"좋아. 내가 처리하지. 에드윈. 자네가 상행을 이끌고 가게나. 곧 뒤따라가지. 내 스태프나 넘겨주게."


상행이 자리를 뜨고 가만히 말을 몬 채 기다린 판에게 경비대원들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신가?"

"아, 미하엘 판 씨. 저희 쪽으로 급격히 들어온 제보가 있어서 말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누군가 시장에 풀린 에아렌의 마석들을 싹 쓸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래서, 외국 상단인 트라베 상단을 의심한다는 말이죠? 이거, 정식으로 항의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저희를 조금 도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상단의 수레를 건들지 않겠습니다. 그저 화물에 이 도구만 가까이 해주시면 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판은 말에서 내리더니만, 말의 주변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를 쳐다보는 경비대원들에게, 원을 그려 방어마법을 끝낸 마법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기억을 건드리는 건 마법으로는 어려워 보이지만, 성력이 함께한다면 성공할지도 모르겠군요."


그의 손에서 에블린의 것과 같은 백색의 성력이 스태프를 휘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7 57화. 대상에 달라붙은 빈대(2) +2 19.09.06 70 1 14쪽
56 56화. 대상에 달라붙은 빈대(1) 19.09.05 77 1 14쪽
55 55화. 시작은 소개부터 19.09.04 80 1 14쪽
» 54화. 의뢰 고르기(2) 19.09.03 68 1 13쪽
53 53화. 의뢰 고르기(1) 19.09.02 73 1 14쪽
52 52화. 마드라드의 루키(2) 19.09.02 83 1 13쪽
51 51화. 마드라드의 루키(1) 19.08.31 84 2 14쪽
50 50화. 검과 마법은 합을 이루고(4) +2 19.08.30 87 1 14쪽
49 49화. 검과 마법은 합을 이루고(3) 19.08.29 85 1 13쪽
48 48화. 검과 마법은 합을 이루고(2) 19.08.28 93 1 14쪽
47 47화. 검과 마법은 합을 이루고(1) 19.08.27 86 1 15쪽
46 46화. 친선 대회 19.08.26 82 1 14쪽
45 45화. 교류제(5) 19.08.23 88 1 15쪽
44 44화. 교류제(4) 19.08.22 82 1 14쪽
43 43화. 교류제(3) 19.08.21 78 2 14쪽
42 42화. 교류제(2) 19.08.20 87 1 14쪽
41 41화. 교류제(1) 19.08.19 74 1 16쪽
40 40화. 비밀 과외(4) 19.08.16 79 2 14쪽
39 39화. 비밀 과외(3) 19.08.15 85 2 14쪽
38 38화. 비밀 과외(2) 19.08.14 86 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