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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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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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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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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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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부 나가기 - 50화

DUMMY

루시아가 만난 배는 남부에서 서부로 어떤 임무를 띠고 가는 사절단의 배였다. 남부는 론교의 신도들이 모여 사는 곳. 그리고 그 배의 승선자들은 모두 론교 수도자이며, 최고장로인 장창호라는 노인이 이끌고 있었다.


그는 어딘가 괴팍한 성격으로 레무스 일행을 구조해놓고도 별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수도자들도 그리 달가워하지는 않았기에 모두는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다들 범법자이므로 불안함은 당연했다. 남부가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약한 곳이며 서로 간섭을 꺼린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서부로 간답니다. 어쩌죠?”


한 선실에서 대책을 논의하는 이들은 레무스, 라만차, 듀너와 헬름가이투였다. 라만차의 물음에 레무스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배를 탈취라도 하지 않는 이상 다른 방법은 없었으나, 서부를 경유하는 방법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허나 서부는 어찌 통과한다 하여도, 문제는 그 다음이야. 라피의 땅 서쪽으로 들어서면 아주 위험하네. 그쪽의 라피들은 너무나 호전적이야.”


침대 구석에 비딱하게 누워있던 듀너가 계속 궁금하던 점을 물었다.


“목적이 뭐요? 신을 만난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바로 라만차에게 이어 물었다.


“자네는 또 뭔 이유야?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면 왜 굳이 들어가려는 거야?”


그리고 헬름가이투를 보았으나 별로 말을 걸고 싶지 않은 형상이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입을 먼저 연 것은 헬름가이투였다.


“우리가 가는 곳에 신이 없다면 나는 갈 이유가 없소. 위험은 어떤 것이라도 감수할 것이오.”


라만차가 이어 대답했다. 그러나 말투는 무겁고 느릿했다.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 자네도 알다시피 난 이번 생도 따분하게 사는 것이 싫었어. 단순한 이유지. 요 며칠 후회도 좀 했어. 어설프게 위험한 길로 뛰어 들었다고.. 계획대로 되는 것도 없었고.. 그런데 엉망으로 흩어졌던 멤버들이 운명처럼 다시 모였단 말이지. 뭔지는 모르지만 끝까지 가고 싶네.”


묵묵히 둘의 이야기를 듣던 레무스는 듀너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인간과 세상을 움직이는 많은 요인들 중에는 자네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네. 그러나. 자네가 이해하려 들지 않는 이상 내가 애쓸 이유도 없지.”


듀너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레무스가 그 뒤통수에 말을 더했다.


“유나의 묘는 라피의 땅 동쪽인 핫족이나 서이족 영토에 있네. 우리가 서쪽으로 가게 된다면 론즈게이트 이후로는 자네 혼자 따로 찾아가야 해. 싫다면 빠져도 말리진 않아.”


다시 고개를 돌린 듀너는 재차 질문을 했다.


“다시 계획을 짜서 동부로 가지 않는 이유는? 왜 서두르는 거요?”


이번에는 바로 대답이 나왔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라피의 땅을 통과하고 싶어서일세.”




마기야가 누워있는 여성용 선실에는 루시아만 함께 있었다. 루시아는 심경이 복잡했다.


뗏목으로 표류 중이던 다른 이들을 구할 수 있던 순간, 기쁨과 감사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밸러바슈와 다시 만난 기적. 그 놀라운 황홀함은 그도 루시아를 보고 최상의 반가움을 표했기에 극한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배에 오른 뒤, 페이츠와 밸러바슈가 보이는 연인의 모습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한 둘의 다정한 모습은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질투가 가득 일었으나 교양 없이 티를 낼 수도 없었고, 둘이 같이 있는 꼴을 보기도 싫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마기야를 간호하며 어제 그녀의 눈부신 모습을 떠올렸다.


‘현생나이는 나와 비슷한 듯 한데, 전생에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 멋진 무술 실력을 지니고 있을까?’


동경이 일어나 질투를 가라앉힘에 흡족했다. 나도 이 여자처럼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약하고 괴상한 몸을 한 나라도.. 또 우울함이 밀려왔다.


만나는 모두가 건강하고 멋진 몸을 지니고 출현했는데 왜 나만 이리 허약하고 별난 몸으로 출현한 것일까. 그리고 짜증나는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별나고 쓸데없는 능력의 키메라인 테드가 한 말이었다.


“넌 정말 아름다워. 루시. 스스로 모르고 있을 뿐이야.”


그 멍청한 눈을 빛내면서 떠들던 얼굴이 생각났다. 고개를 마구 저으며 기억을 끊어내려는 때 문이 열리고 푸들이 들어왔다.


쭈뼛거리며 들어오는 그가 약간 귀여웠다. 어제 한때는 원망했지만 결과적으로 루시아가 큰 공을 세우게 한 남자이고, 지금의 우울한 기분도 전환시킬 말동무가 될 수 있었다.


“이거 니꺼지? 어쩌다 내가 주웠어. 돌려줄게.”


그가 내민 헤어브러쉬를 보고는 루시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푸들의 다음 말은 약간 풀어졌던 루시아의 기분을 완전히 잡쳐놓았다.


“근데 거기 글씨는 누가 새긴 거야? 혹시..”




뾰로통한 얼굴로 헤어브러쉬를 받아 침대구석에 던져버리는 루시아를 보고 푸들은 급히 그 방을 나왔다. 뭔지 모르지만 그녀를 화나게 한 듯 했다.


평소 백인종들이 자신을 멸시하면 즉각 응징을 가했던 푸들이었으나 루시아는 달랐다.


전생에서 기억에 있는 모든 시간을 보낸 방에 걸려있던 그림. 그 조악한 그림 속 천사는 메마른 그의 가슴 속 한 켠에 아련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 천사와 꼭 닮은 루시아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성역에 있는 듯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아주 유치하고 창피한 것이었다. 거칠 것 없이 호쾌한 인생을 살아갈 자신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었다.


씩씩거리며 복도를 지나 갑판으로 나왔다.


“어이. 푸들.”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밸러바슈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야기 좀 할까?”


“오오. 너. 마침 잘 만났어. 할 말은 내 쪽이 더 많아.”


알 수 없이 분한 마음을 풀 상대로 제격이었다. 그러나 밸러바슈는 싱글거리며 푸들을 상대했다.


“무례를 범하지 마라. 나는 전생에 왕이었다.”


어이없는 말에 푸들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 안도감이 뒤따랐다. 덜 떨어진 놈은 마음 놓고 괴롭혀도 죄책감이 들지 않기에.


“뭐라는 거야? 또라이 새끼. 난 전생에 황제였어. 무릎을 꿇고 말해.”


“후후. 고귀한 존재는 티가 나는 법. 통할 리 없는 거짓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냐? 겨드랑이에 범죄자 표식이 박혀 있는 수용자 녀석아. 고귀한 티가 팍팍 나는구나. 아무튼.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아니. 동부지사 놈과 무슨 관계가 있나? 고든네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 너 뭐야?”


푸들은 질문을 쏟아내며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밸러바슈는 웃음기를 거두었으나 여유는 유지했다.


“너에게 닥쳤던 불행은 나와 관계가 없다. 네 이름을 아는 것은 네 동료가 네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동부지사의 수행부대가 너희 단죄단을 경계하며 대책을 세우는 것을 들었다. 아마 모두 체포되었을 것이다. 막고 싶기도 하였으나 나 혼자의 몸으로는 역부족이었으며 시간 또한 촉박하여 포기했다.”


밸러바슈의 눈을 노려보며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아무 생각도 일지 않았다. 절망의 확인 뿐. 혼자 남아 정체도 모르는 배에 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고개를 떨구고 눈에서 독기가 빠진 그의 귀에 밸러바슈의 말이 들려왔다.


“관대함과 인자함으로 너의 질문에 답을 하였다. 이제 나의 질문이다. 답을 하라.”


눈동자만 돌려 바라보는 푸들의 표정은 질문 따위 들을 자세가 아니었으나 밸러바슈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단죄단의 단죄 대상에 내가 있는 듯 하다. 나의 처벌을 원하는 자와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 어디로 가면 알 수 있는가?”


푸들은 다시 바닥으로 눈을 돌리고 내뱉듯 말을 하였다.


“그러냐? 이유를 듣고는 바로 죽을 곳으로 자진해서 들어가겠다 그거냐?”


밸러바슈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죽음은 쉽기도 하나 가볍지는 않은 법. 나는 나에게 원한을 가진 자를 만나 대화하기를 원할 뿐이다.”


푸들이 다시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뭘 모르는 놈이군. 단죄단의 역사는 2천 년이다. 너의 단죄를 원하는 자가 살아있을 확률은 아주 낮아.”


밸러바슈는 꽤 놀란 듯 잠시 말을 못했다.


“그..런가? 그렇군. 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허나.”


긴 손가락을 이마에 대고 생각하며 말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내 이름과 나의 죄가 적힌 기록은 있을 터. 그리고 그 기록을 보고 나의 단죄를 정할 책임자가 있을 터. 나는 그 기록을 보고 그 책임자와 대화를 하면 될 것이구나. 맞느냐?”


푸들은 단도를 거두어 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어처구니가 없군. 너 같은 놈이 단죄단에 제 발로 찾아 온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허나 반드시 죽어서 나가게 될 거야. 장담해. 우린 단죄의 대상을 아주 까다롭게 심사한다. 억울한 죄인은 결코 없어. 네놈이 아무리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아도 결과는 죽음뿐이다.”


푸들의 말을 듣는 도중 미소를 짓던 밸러바슈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봐. 죽음은 그리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인간의 미련과 부족함을 메우는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필요한 것은 신들의 이 축복을 한껏 받아 안을 각오뿐. 아! 그러고 보니 단죄단은 어찌하여 죽음을 단죄라 부르는가? 다음 생에서 다시 살아날 생명을 죽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밸러바슈가 지껄이는 말의 주제는 푸들이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 덜 떨어진 놈이 내뱉는 말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치미는 분노는 잘못된 쪽은 저놈이라는 증거였다.


“단죄단을 모욕하지 마라! 그리고 다음 생이 있는지 없는지 네가 어찌 알아? 건방진 자식. 너 같은 놈은 잔뜩 보았어. 너의 죄는 오만에서 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단죄를 받고도 뉘우치지 못하는 놈들.”


밸러바슈는 깊게 숨을 내쉬고는 큰 눈을 똑바로 뜨고 푸들을 노려보았다.


“더 할 말은 없다. 지혜가 없는 천한 아이여. 다만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다오.”


푸들은 가운데 손가락을 세운 손을 뻗었다.


“꺼져. 고귀한 자식아. 가서 뒈지기 전에 그 여자랑 수준 높은 짓거리나 실컷 해둬.”

돌아서가는 푸들을 보며 밸러바슈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시선을 약간 내리고는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페이츠는 최고장로 장창호의 방에 있었다. 둘은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페이츠는 그의 가슴 위에 머리를 얹고 손은 축 늘어진 뱃살을 잡아당기며 놀고 있었다. 장창호는 손을 머리 뒤로 올려 괸 채 그녀의 정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격렬한 섹스를 이제 막 마친 노인답지 않게 고요하면서도 서늘한 눈빛을 뿜고 있었다. 그러나 입은 너저분한 말을 내놓았다.


“그래. 어땠나? 노인네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애는 써 보았네만.”


페이츠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손을 내려 노인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아주 형편 없었어요. 장창호님처럼 나이 든 남자와의 잠자리는 처음이네요. 그래도 실망은 안 했어요. 기대도 안 했으니까요.”


장창호의 표정에는 별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페이츠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자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면 다른 기대는 좀 채웠는가?”


페이츠는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


“못됐어요. 아시면서 채워주지 않으시니.”


“궁금한 것이 있어도 넌지시 돌려서 물어봐야지. 그리 중요한 질문들을 노골적으로 해대니 날 바보로 보는 듯 여겨지지 않겠는가?”


“저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눈치 못 채시게 하려고 했다고요.”


장창호는 싱긋 웃었다.


“정신이 엉뚱한 곳에 있었으니 집중을 못하고, 집중을 못하니 만족을 못하지. 다 자네 탓이네.”


페이츠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 뒤 진한 눈웃음을 머금고 노인의 입에 입술을 포갰다.




그들을 태운 배는 부지런히 북서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맑은 하늘의 태양은 느긋하게 배를 추월하여 서쪽 수평선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붉은 색으로 물든 해무가 살짝 일렁이는 수평선에는 아직 서부가 보이지 않았으나 그 땅의 거친 냄새가 풍겨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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