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랄랄라

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SF

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033
추천수 :
45
글자수 :
279,622

작성
20.02.11 22:01
조회
40
추천
0
글자
13쪽

1부 나가기 - 40화

DUMMY

루시아는 비비아이 안에서 홀로 깨어났다. 날은 꽤나 밝았고 함께 잠들었던 페이츠와 두르가는 없었다. 여전히 외로운 아침. 루시아는 불안했고 불만족스러웠다. 즐거우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탈출의 여행이어야 하는데, 기대와 딴판이었다.


‘당장 이 안을 나가자마자 날아올라 밸러바슈님을 찾아 나설까? 그러면 레무스아저씨나 다른 모두들의 날 보는 시선이 바뀔 텐데. 밸러바슈님은 눈이 좋다니까 날고 있으면 나를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찾으면 나에게 뭐라고 할까?’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가져가 코를 문질렀다. 목욕을 사흘이나 하지 못해 온몸에서 냄새가 나는 듯도 했다. 윈디가 닿아있는 부위가 특히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벗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유일한 즐거움은 가벼운 몸뿐이니까. 배가 고팠다.


‘설마 날 빼고 다들 아침식사를 끝낸 것은 아니겠지. 그냥 누워서 누군가 부르러 올 때까지 나가지 말까?’


그때 비비아이의 통신기에서 소리가 났다. 일어나 밖을 보니 라만차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밸러바슈님은 걱정도 안 하면서 통신은 되게 신경 쓰는 것이 못마땅했다.


“좋은 아침. 천사아가씨. 실례.”



페리야마이옘의 교도부 본부 통신실. 전자장비가 들어찬, 아미드룬의 인간사회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세련된 디자인의 널찍한 방에는 많은 직원들이 정신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폭동의 수습으로 바쁜 모습이기도 했지만 장관의 행차에 모두들 바짝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장관은 250은 되어 보이는 키에 창백한 얼굴. 길쭉한 귀와 긴 은발머리가 요정을 연상시키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얇은 입술에 삼백안의 노란 눈동자는 누구나 오싹하게 만드는 기운을 뿜어냈다.


길쭉한 팔을 들어 통신용 헤드셋을 착용했다. 곧 상대편의 음성이 들렸다.


“수용지 남동부 2구역 경위 라만차. 비비아이 투554. 수신.”


교도부 장관 카이벨의 입술이 길게 벌어지며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잘 지냈어? 라만차. 목소리라도 이렇게 들으니 반갑네.”


“아.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뭘 또 친히 통신을 주시고. 영광입니다.”


카이벨은 의자에 천천히 앉아 다리를 꼬았다. 옆에 서 있던 직원들은 그녀의 부드러워진 태도에도 잔뜩 굳어있는 자세를 유지했다.


“꼼짝 말라고 명령했던 기억이 있는데 다른 데로 가셨군. 그래. 어머니는 안녕하시고?”


라만차는 루시아를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루시아는 징그러운 그 표정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예. 덕분입니다. 전달은 받으셨죠? 어머니가 불안증세가 심하셔서 할 수 없이 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라만차가 밖을 향해 괴상한 수신호를 보냈다. 루시아가 밖을 보니 레무스아저씨가 긴장한 표정으로 끄덕이고 있었다. 페이츠가 가방 등을 정리하고 비비아이로 바삐 다가왔고 헬름가이투와 두르가는 보이지 않았다.


카이벨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다소 높고 빨라졌다.


“그래? 걱정이 너무 되네. 내가 얼마나 걱정이 큰지 자기는 모를 거야.”


“잘 알죠. 늘 감사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곧 돌아갈 겁니다.”


“아냐. 아냐. 기다리기 힘들어.”


라만차의 표정에 긴장감이 더해졌다. 페이츠가 조용하고 빠르게 비비아이 안으로 들어오며 루시아에게 눈웃음을 보냈다.


“기다리기 힘들어서 사람을 보냈었어. 어제. 그런데 연락이 없네?”


라만차는 머리를 굴리며 대답했다.


“누구를 보내셨다고요? 전 못 봤습니다. 연락도 없었고요.”


“그래? 자기가 모른다면 모르는 거겠지. 그 친구는 삼일 전에 자기가 있던 곳에 들러보라고 했거든. 근데 거기서 갑자기 기가나 쪽으로 날아가더라고. 그리고 연락이 없어. 왜일까?”


점점 빨라지며 노기를 섞은 목소리에 라만차의 대답은 성의가 없었다. 대신 주위를 경계하는 눈이 빠르게 돌았다.


“글쎄요. 전 전혀 모릅니다. 제가 가서 찾아볼까요?”


“아냐. 아냐. 자기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그러면 화가 좀 풀릴 것 같아.”


“예. 말씀만 하세요. 본부로 발령만 내지 마시고요.”


“섭섭해. 기왕 제너너따냥에 갔으니 아모디 전 국왕 생신파티에 좀 들려줬으면 해. 일단 통신 끊고 병원 로비로 와. 자기 어머니 줄 꽃다발에 내 축전을 든 친구가 있을 거야. 부탁 좀 할게. 명령이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하죠.”


“그래. 수고.”



레무스가 비비아이 안으로 들어오자 라만차가 문을 닫았고 그를 돌아보았다.


“레무스씨. 결정은?”


레무스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출발하게.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어.”


비비아이가 날아올랐다. 레무스는 루시아의 옆으로 와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저씨. 가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요?”


레무스가 시선은 앞에 둔 채 설명을 했다.


“그래. 어쩔 수 없구나. 아침에 두르가가 없어졌어. 밸러바슈와 그녀의 짐 중에서 상당부분도 같이 없어졌단다. 아무래도 둘은 우리와 다른 길로 나선듯해. 기다릴 필요가 없지. 헬름가이투는 도중에 태우기로 했다.”


씁쓸함이 가득한 말끝에 루시아를 돌아본 레무스의 눈길은 피곤해 보였지만 다정했다. 라만차가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쉽지? 그렇게 잘생긴 남자가 떠나버리다니.”


루시아는 눈을 찡그리며 레무스를 보았다. 그는 싱긋 웃으며 어깨를 쓰다듬었다. 페이츠가 삐딱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말을 보탰다.


“버림받은 건 전데요. 아무도 위로 안 해줘요?”


아무도 대꾸가 없는 가운데 레무스가 들고 온 종이 꾸러미를 풀어 루시아에게 건넸다. 샌드위치였다. 루시아는 그것을 받아 들었고 배도 고팠으나 먹고 싶지 않았다.

얼마 안가 라만차가 외쳤다.


“나왔구나! 너무 늦은걸?”


뒤를 보니 비비아이 두 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교도부 통신실. 카이벨에게 직원의 보고가 있었다.


“장관님. 어제 행방불명 된 경위를 찾았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손을 내밀자 직원은 재빨리 통신기를 건넸다.


“장관님. 면목 없습니다. 라만차 경위는 지금 바로 추적을 재개하겠습니다.”


“아니. 라만차는 지금 우리가 추격 중이야. 자네는 어찌된 일이지? 그거나 얘기해봐.”


“예. 저.. 명령하신 대로 어제 북서쪽 숲에 들렀습니다. 오두막 하나가 있었습니다. 내려서 조사를 하려는데..”


카이벨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이봐. 지금 한가하지 않아. 간단히. 명료하게. 변명은 나중에 차근히 들어줄게.”


“예. 어떤 자의 기습을 받아 비비아이를 탈취당했습니다. 그자의 협박으로 기가나로 향해야 했고, 도착하자 그자의 가격으로 기절했습니다. 깨어보니 묶여 있었습니다.”


“인상착의는?”


“보지 못했습니다. 키는 대략 160센티미터. 왜소한 몸집이고 목소리는 일부러 탁한 발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여자일 수 있습니다만 힘이 매우 셌습니다.”


카이벨은 통신기를 벗어 던지고 직원에게 명령했다.


“그 오두막 조사하고, 그 난장이 정체를 알아봐. 이 바보는 라드쥴라랑으로 보내고.”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근데. 우리 라만차는 도망갈 생각이 없나? 마지막 산책을 즐기나? 어머니랑? 여유가 넘치는 속도네.”


다른 직원이 재빨리 대답했다.


“아마 도주는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같은 비비아이. 우리 쪽은 두 대. 벗어날 방도가 없습니다.”


“불쌍한 라만차. 어울리지 않는 사고를 치니 궁지에 몰릴 수 밖에.”


“비비아이로 육탄전이라도 벌일 생각 아닐까요?”


카이벨이 눈을 반쯤 감고 대답했다.


“아냐. 아냐. 저 친구는 멍청이는 아냐. 단지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태연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지만 심장은 요동치고 있겠지. 용케도 일탈을 해내기는 했지만 머릿속은 새하얄 꺼야.


아마 자기도 이해를 못하고 있을걸? 멍청이는 절대 아닌데 왜 이리 안절부절 못할까? 정답은 자기가 바른 생활 인간이기 때문이지. 죄는 아무나 짓는 것이 아냐.


범죄자의 자격도 없는 수많은 인간들이 죄를 짓고는 후회하며 벌을 받지. 우리 라만차도 자신을 알지 못한 채, 분수를 벗어난 일탈을 저질렀으니 평소와 같을 리가 없지.”


“그래도 우리 유도에 걸리지 않고 도주를 시도했습니다. 적어도 그 정도는 냉정해 보입니다.”


카이벨이 눈을 뜨고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지. 그건 라만차와 같이 행동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야. 우리 착한 라만차를 그자로부터 구해줘야 해.”



추격하는 비비아이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라만차 경위. 여기는 교도부 본부 장관 직속 비비아이다. 경위는 지금 명령 불복으로 수배되었다. 비행을 멈추고 지시를 따라라.”


천천히 해안도로 위를 날던 라만차는 눈에 띄게 솟아있는 해안의 바위기둥 하나를 골라 내려섰다. 꽤 높게 선 바위이면서도 위는 적당히 평평한 장소였다. 추격하던 비비아이 두 대도 따라 내렸다.


추격대원들이 비비아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양쪽에서 둘씩 모두 네 명. 둘은 활을 들었고 둘은 허리에 찬 칼에 손을 대고 자세를 잡았다. 라만차의 비비아이에도 문이 열리고 라만차와 루시아가 내려섰다.


추격대원들은 무장이 없는 라만차를 보며 긴장을 풀고 동시에 루시아의 날개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수고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귀찮게 해드려 죄송하네요.”


라만차가 넉살 좋게 다가서자 다시 경계심이 솟은 그들은 무기에 손을 댔다. 라만차가 손을 저었다.


“워. 워. 진정합시다. 제 어머니께서는 아직 심신이 불안정하답니다.”


루시아는 충격을 받았다. 몇 번 들어본 저 아저씨의 어머니가 나를 말하는 거였어? 긴장한 데에다 찡그려진 그녀의 표정은 추격대원들이 신경을 쓰이게 만들었다.


“뭐. 됐고. 우리는 명령대로 할 뿐이다. 자네 비비아이는 여기서 대기하고, 자네와 자네의 어머니는 연행한다. 이쪽으로.”


대원 하나가 루시아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루시아는 복잡한 표정을 풀지 못한 채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드님이 작은 실수를 했기에 약간의 조사만 하면 됩니다. 잠시만 따라오시죠.”


라만차가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루시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그를 쏘아보았다. 라만차는 아차 싶었다.


“아.. 저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지금이 그 때야. 부탁한다.”


루시아는 화가 치밀었지만 지금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용기가 필요할 때였고,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였다. 큰 숨을 들이쉬고 날개를 폈다.


추격대원들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경이로운 광경. 황홀한 장면이었다. 맑고 푸른 하늘에서 소녀의 금발은 눈이 부셨고 하얀 날개는 감동 자체였다.


임무를 잊고 천사의 비행을 그저 경탄을 담아 감상할 뿐이었다. 뒤쪽에 선 대원 하나가 헬름가이투의 일격에 쓰러지는 소리에도 돌아보는 속도는 느리기만 했다.


그리고 그들이 보게 된 형상, 등 뒤에 선 존재는 악마였다. 별안간의 공포는 너무나 강력했다. 손에 든 활은 땅에 떨어졌고 악마에게 잡힌 멱살은 조금의 반항도 없었다.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치다가 벼랑으로 떨어질뻔한 한 놈을 잡아 세운 것은 라만차였다.


“이거 우리가 너무 요란한 계획을 세운 모양이군. 미안해지는데.”



그들을 한데 묶어두었고, 그들의 비비아이는 헬름가이투와 라만차에 의해 벼랑 밑으로 굴려졌다. 다시 비비아이에 모인 다섯은 잠시 동안 침묵했다. 라만차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자. 이걸로 정식으로 사표를 낸 셈이군. 이제 실감이 나네. 이제는 확실한 무법자 무리가 됐습니다.”


레무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래. 이제는 뒤가 없어. 우선은 남부로 전속력이야. 가세.”


라만차가 심호흡을 하고 오토웹에 앉아 비비아이를 발진시켰다. 순간 큰 충격이 비비아이에 가해지며 옆으로 굴렀다. 정신 없이 회전하는 중에서 레무스는 루시아를 안고 뒹굴었다.


헬름가이투의 육중한 몸이 조종패널을 덮쳤기에 라만차가 그 난리통을 진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땅에 몇 번 부딪히며 튕긴 비비아이는 해안도로 옆 언덕에 처박히며 멈췄다.


스피커에서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선 비비아이 하나가 빠르게 활공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 라만차~! 나야. 파르키유. 지금 출장 갔던 서부에서 돌아오는 길이지. 나 없는 동안 뭔 짓을 벌인 거야? 그런데 자기는 참 운도 없네? 어쩜. 이런 데서 날 만나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6 앙겔로스 레드와 블루 23.10.02 10 0 1쪽
55 지도 23.05.22 16 0 1쪽
54 비비아이 23.05.17 15 0 1쪽
53 라피앗덴, 릿쉬다덴 23.05.01 23 0 1쪽
52 1부 나가기 - 52화 21.11.14 29 0 13쪽
51 1부 나가기 - 51화 21.11.13 28 0 13쪽
50 1부 나가기 - 50화 21.11.11 25 0 13쪽
49 1부 나가기 - 49화 21.11.09 25 0 13쪽
48 1부 나가기 - 48화 21.11.07 23 0 13쪽
47 1부 나가기 - 47화 21.07.15 26 0 12쪽
46 1부 나가기 - 46화 21.07.15 24 0 13쪽
45 1부 나가기 - 45화 21.02.21 30 0 15쪽
44 1부 나가기 - 44화 21.02.19 31 0 13쪽
43 1부 나가기 - 43화 21.02.17 33 0 12쪽
42 1부 나가기 - 42화 21.02.15 30 0 12쪽
41 1부 나가기 - 41화 21.02.13 28 0 12쪽
» 1부 나가기 - 40화 20.02.11 41 0 13쪽
39 1부 나가기 - 39화 20.02.09 49 0 13쪽
38 1부 나가기 - 38화 20.02.07 32 0 12쪽
37 1부 나가기 - 37화 20.02.05 33 1 13쪽
36 1부 나가기 - 36화 20.02.03 34 1 13쪽
35 1부 나가기 - 35화 20.02.01 37 1 13쪽
34 1부 나가기 - 34화 20.01.30 37 1 11쪽
33 1부 나가기 - 33화 20.01.23 40 1 12쪽
32 1부 나가기 - 32화 20.01.21 34 1 12쪽
31 1부 나가기 - 31화 20.01.19 33 1 11쪽
30 1부 나가기 - 30화 20.01.17 34 1 13쪽
29 1부 나가기 - 29화 20.01.15 32 1 13쪽
28 1부 나가기 - 28화 20.01.13 38 1 12쪽
27 1부 나가기 - 27화 20.01.11 33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