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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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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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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
추천수 :
45
글자수 :
279,622

작성
19.12.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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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부 나가기 - 1화

DUMMY

“신은 생각을 하는 존재일까?”



먼 하늘의 구름은 그 자리에 말라붙은 듯하고 잿빛 모래가 세상의 주인인 양 끝도 안 보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윌이 말했다.


옆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는 듀너는 시시한 대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신은 모르겠고, 너는 생각을 하는 존재가 맞아. 그리고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도착하면 어떤 술병을 네 엉덩이에 꽂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야.”


지금은 2207년 여름. 둘은 아타카마 대 테러 작전에 투입된 용병이었다.


생포한 포로를 본부로 호송하기 위해 헴이라 불리는 수송차량을 몰고 있었다.


윌은 용병으로 보기에는 태평했다. 진압작전은 무사히 끝났고 지금은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 그리고 목적지까지도 아직 한참 멀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듀너의 말은 못 들었다는 듯이 대시보드에 올려놓았던 다리를 내리며 중얼거렸다.


“생각을 한다면 신이 아니지. 아닌가? 생각을 왜 해? 생각의 결론은 태초부터 알고 있는데?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


혼잣말 같기도 한 윌의 말에 듀너는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듀너는 바로 전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전투의 나날. 그 지옥에서 멀어져 가는 이 사막에서만큼은 어떤 생각도 하기 싫었다.


머리에 틀어박힌 복잡한 전략을 지우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처참한 잔상에서도 벗어나 그저 변할 것 같지 않은 눈앞의 풍광에만 빠져있고 싶었다.


구닥다리이긴 해도 헴은 조용했고 황무지에서의 진동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이따금 자갈을 굴리는 언덕 사이로 간헐천의 수증기가 흐릿하게 피어 오르기도 했다.


신이라.. 보이는 것이라곤 맥 빠진 황야뿐이니 윌이 감상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뒤에 달고 가는 포로 때문인가?


평소에는 멍청한 돼지지만 오늘은 멍청한 소크라테스로군.


주름을 잔뜩 만든 대머리에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잡념에 빠진 윌을 보았다.


신이 생각을 안 하면 너 같은 놈만 우글거리겠지. 작은 평화를 망친 듀너는 퉁명스레 말을 던졌다.


“목적이 없는 생각은 하지 않을까?”


“그게 뭐지?”


“알아서 해석해. 그냥 튀어나온 소리니까.”


“흐음..”


듀너가 원하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면 말이지.. 신은 감정이 있으려나? 그럴 수도.. 있나?


신이 뭐에 즐거워하고 뭐에 슬퍼하지? 무엇에 분노하고 어떤 걸 싫어할까?


신 자신의 뜻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라야 신에게 감정을 느끼게 할 거 아닌가?


그래도 신 혼자서 느끼는 느낌은 감정인가? 대체 뭘 느끼지?


상상이 안 가는걸..


게다가, 감정이 있다 쳐. 가령 지구가 박살 나면 슬퍼할 신이 있다 쳐.


신은 언제 슬퍼할까? 지구가 박살 난 직후? 그 훨씬 전에 박살 날 걸 알고 있잖아?


그럼 세상 오만가지에 대해 모든 감정을 한번에 느끼고 그만이라는 건가?


그건 뭔가 아니잖아? ... 그리고 신이라면 박살 난 지구를 고쳐낼 수도 있잖아? 방지할 수도 있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듀너에게는 불행하게도 윌은 자신의 논리 흐름에 스스로 감격하고 있었다.


말이 잠깐씩 끊어지기는 해도 금세 이어지는 데다가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더 불행한 점은 듀너는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흘려 듣지 않는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윌의 말들이 의지와 상관 없이 머리 속에 틀어박히고 있었다.


제일 불행한 점은 듀너는 이런 주제의 토론을 가장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와 관련된 모든 게 싫었다. 당장 지금 호송중인 포로도 광신자 테러집단의 주요 인물인 듯 하다.


문명은 오래 전에 신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데도 이놈의 종교라는 것은 없어질 듯 하다가도 갑자기 크게 살아나 번지는 것이 참으로 괴상했다.


그것을 표현하는 건지 윌은 이제 리듬을 넣어가며 떠들고 있었다. 듀너는 랩도 싫어한다.


“그리고!

신은 원하는 것이 있는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건 불만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신이 불만이 있다?

그럼 신이 아니지.

...

즉,

신이란

이성도 없고

의지도 없고

감정도 없다?

아니라면 신은 적어도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라는 것이지.

그런 존재를 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듀너에게 딱 한가지 다행인 것은 그가 윌보다 계급이 달랑 한 칸이지만 높다는 것이다.


“그만 닥치지. 명령이다”


윌이 그제야 듀너를 발견했다는 듯이 쳐다보며 웃었다. 뻐드렁니가 꼴 보기 싫었다.


“헤헤. 대통령이 이 앞에 있다면 나한테 명령할 수 있겠어? 하물며 지금 신을 논하고 있잖아. 건방지게 인간끼리 명령이라니. 응? 네 의견은 어때? 신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해?”


“이봐. 대통령에게는 도장이 있어. 그 도장을 들고 졸졸 쫓아다니는 졸개도 있고 말야. 게다가 눈알도 부라릴 줄 알고 욕도 해.


그런 존재가 신 따위랑 비교가 돼? 그리고, 내 의견을 듣고 싶은 거야? 아니면 네 생각을 나에게 주입하고 싶어 꺼낸 말이야?


전자면 말하기 싫어. 후자면 듣기 싫어. 오케이?”


윌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딴 생각에 빠진 듯 묘한 표정이었다.


“옛설. 그만 교대 할까?”


윌이 듀너의 어깨를 주먹으로 건드리며 자리를 바꾸자는 몸짓을 했다. 15시 58분.


아직 교대 시간은 아니지만 듀너는 안전띠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운전대를 쥐어주면 조금은 조용해 지겠지. 좁은 공간을 비집고 윌의 등 뒤로 기어들며 말했다.


“신은 어디에도 없어.”(God is nowhere.)


조종석으로 한발을 집어 넣던 윌이 듀너의 목을 잡아 어깨 위로 꺾으며 헤드쿠션에 쑤셔 박았다.


“신은 지금 여기에 있어.”(God is now here.)


썰렁한 말장난은 오히려 듀너의 우울함과 짜증을 지우고 어떤 활력을 부르는 효과가 있었다. 이 자식을 어쩐다. 일단 저 뻐드렁니를 뽑아 주고 싶은데.


그때 경보음이 울렸다. 미사일 탐지 경보! 주의 단계가 아닌 위험 단계의 신호음이었다.


둘은 동시에 조종간과 메타거울 컨트롤러, 신기루플레어와 비행 터빈 시동, 분석레이더 감도 상향 등 필요한 기기에 손을 댔지만, 손들은 겹치고 자세는 어정쩡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타이밍. 게다가 페달에는 누구의 발도 닿지 못했다. 천금 같은 몇 초의 낭비 뒤 듀너는 다시 조종석에 자리잡고 헴의 속도를 올렸다.


이륙용 터빈 소리와 함께 발생한 가속력이 몸의 잔근육들을 깨웠다. 이 지긋지긋한 전투의 느낌. 햄이 이륙하며 눈앞의 풍경이 잿빛에서 푸른 빛으로 바뀌었다.


“신기루플레어 11시로 기동”


윌이 재빨리 주변의 이용 가능한 지형지물을 스캔하며 신기루플레어를 기동시켰다. 헴이 이륙하기 전 지상에 남겨진 헴과 똑같은 영상체가 속도를 올려 지정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도대체 어디서 온 거야?”


아무것도 없을 지역. 있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레이더 감도조차 가장 낮은 단계에 세팅했을 정도로 안전한 루트라고 여겼었다.


어쨌든 대 미사일 레이저를 조준했다.


그 순간 강한 진동이 헴을 덮쳐와 흔들었다. 미사일로부터 EMP공격이었다.


계기판의 절반이 꺼지고 다시 켜진 것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듀너가 윌에게 소리쳤다.


“거울 켰는데 뭐야?”


“젠장. 나도 켰다고!”


스텔스 기능과 전파공격 반사 기능이 있는 메타 방어막 스위치를 듀너가 키고 윌이 꺼버린 모양이었다.


자리 교대 중 담당 역할의 혼선으로 인한 어이없는 실수였다.


차폐 장갑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레이저 조준 시스템은 반응 정지.


이제 취할 행동은 반격이 아닌 회피였다.


일단 저 미사일은 타격용이 아닌 EMP 선제공격용이니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세트로 딸려올 주력 미사일이 문제였다.


“터빈 컨트롤 피해 없음! 자동조향 이상 없음.”


“메인 컴퓨터 피해 57%. 보조 컴퓨터 온. 5초 뒤 복구.”


“차폐장갑 외부 피해 파악불가. 공격, 통신, 탐지 시스템 보조 키트로 전환. 리부팅. 복구 예상 5분 23초 이상!”


EMP 피해로 본부와 통신은 불가능. 가능하더라도 용병에게 긴급위성공격지원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 순간 또 한번의 진동이 느껴졌다. 나노젤이 뿌려진 듯 했다.


그것은 스믈스믈 장갑을 훑으며 틈새를 찾는 액상 무기였다. 약한 곳을 녹이고 들어와 헴의 시스템에 침투할 수 있는 전자장비들을 노릴 것이다. 헴이 고철이 되는 건 시간문제가 되어버렸다.


임무를 마친 적 미사일이 헴의 옆으로 비웃듯 지나갔다. 신기루플레어는 사용할 필요도 없었던 방사선 유도 헌터 미사일. 게다가 초저고도형 레일추진체 미사일이었다. 탐지기가 늦게 반응한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것은 주변에 규모가 되는 군사기지나 이동형 레일건이 잠복해 있을 정도의 중요 시설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늦게나마 메타거울을 작동시킨 윌이 후방모니터를 보며 외쳤다. 주력 미사일이 나타난 것이다.


“왔어 듀너! 약 500미터 후방. 거울 손상 17%”


“탈출한다. 윌.”


듀너는 노련한 군인답게 당황하지 않고 비상탈출용 비행유닛을 준비하고 회피 기동을 위한 역추진 스탭파워를 세팅했지만 머릿속은 최악의 결과를 상정하고 있었다.


미사일의 궤도에서 한 번 정도 회피하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그 다음 메타거울의 손상부위를 탐지, 분석하고 돌아올 미사일을 피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었다.


그리고 당장 저 미사일을 피하고 탈출한다고 해도 이곳이 적지여선 온전히 벗어날 방도가 없다. EMP에 당한 헴은 반격할 무기가 전무했다. 일부 복구된다 해도 얼마 안가 나노젤에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차폐코팅 된 비행유닛은 무사했지만 개인화기는 작동불능이었다. 그나마 멀쩡한 재래식 권총이라도 챙겨 넣었다.


미사일 직격까지 기껏 70여 초. 윌도 헬멧을 착용하며 비상탈출을 준비했다. 듀너도 헬멧을 쓰는 사이 윌이 위쪽에 손을 뻗어 포로가 있는 호송모듈의 분리스위치 커버를 열었다.


“일단 무게도 줄일 겸 저놈부터 떨구자고.”


순간 그 판단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따지고 들 여유는 없었다.


“안돼. 그러면 파워세팅을 다시 해야 되”


“저놈을 죽게 두는 것도 곤란해!”


“아니 안 죽어.”


무슨 소리냐고 묻는 윌의 눈을 보며 말했다. 번뜩 스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듀너는 방금 한 말이 무색하게 빠른 속도로 파워세팅을 다시 했다. 그리고 뒤쪽 콘솔에서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윌의 눈이 더 커졌다.


“나 좀 먼저 나갔다 온다.”


“뭔 짓이야?”


“내가 실패하면 바로 탈출해. 그리고 좀 조용해!”


듀너는 계기판 서너 개를 노려보며 비상사출 버튼의 커버를 열었다. 고도의 집중력.


윌은 그의 돌발행동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언제나 기발하고 무모했지만 성공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미사일이 헴의 꽁무니에 붙어오는 거리를 중얼중얼 카운트 하던 듀너가 역추진 스텝파워를 작동시켰다.


헴이 맹렬한 속도로 아래로 향해 꼬꾸라지듯 떨어졌고 동시에 듀너가 사출되었다.


미사일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왔다.


듀너는 몸을 비틀며 관성으로 날아가 미사일이 그의 앞을 지나는 순간 놈의 제트탭에 손도끼를 힘껏 찍어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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