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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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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046
추천수 :
45
글자수 :
279,622

작성
20.01.19 11:24
조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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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1부 나가기 - 31화

DUMMY

듀너가 짜증난 소리로 말을 뱉었다.


“내려오면서 봤잖아? 남서쪽이라니까!”


듀너의 앞에서 빽빽한 나무들을 부러뜨리며 길을 만드는 후제도 신경질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방향이 남서쪽이야. 멍청아.”


“네놈 머리는 날씨가 흐리면 같이 흐려지나? 지금 계속 서쪽으로 가고 있다니까? 이렇게는 며칠이 지나도 이 숲을 못나간단 말이다!”


“내가 아니면 꼼짝도 못할 놈이. 내기할래? 십만.”


“뭐? 그래 좋다.”


둘은 나무 위로 올라 방향을 확인하고 내려왔다. 페리야마이옘이 확실한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다. 듀너의 승리.


그 전에 있던 몇 번의 내기까지 합해 듀너의 수중에는 25만 바루사가 생겼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숲을 벗어나기 전에 자금이 꽤 마련될 수 있겠다 싶었다. 반대로 후제는 불만이 가득했다.


‘내가 교양만 없었더라도 이 귀찮은 라딜두 한 놈쯤 때려눕히고 그냥 갈 텐데.’


듀너가 물었다.


“이봐. 혹시 동부로 가려면 어떻게 하는지 아나? 페리야마이옘을 도는 게 빠른가? 아니면 북쪽으로 수용지를 끼고 도는 게 나은가?”


“정보 제공 5만.”


인상을 구기며 돈을 건네자 후제가 여러가지 정보를 들려주었다.


“동부를 가려면 동부대교를 건너야 하고 여기는 모그다일 서구니까 일단 동구로 가야겠지? 하지만 도망 다니는 놈들이 모그다일의 동서를 넘나드는 방법은 사실상 없지.


북쪽으로는 론즈로드를 검문 없이 가로지를 수 없고 남쪽으로는 교육지를 크게 돌아야 하는데, 그 길은 남부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다니는 길이고 대개 백 명 단위 단체로 움직이니까 네놈 혼자 덜렁거리며 지나면 ‘나 좀 검문해주쇼’ 하는 꼴이지.


남은 건 중앙에 페리야마이옘을 남쪽으로 끼고 도는 것인데 그 곳은 신분증뿐 아니라 통행증까지 있어야 지나가지.”


듀너는 한숨이 나왔다. 혹시나 라만차와 합류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깨끗이 접어야 했다.


“동구로 간다 한들 동부대교는 어떻게 건너려고? 그리고 동부로 간다 치고 거기서 어떻게 먹고 살려고? 네놈은 차라리 서부가 어울려 보이는데 말야.”


“무슨 말이지?”


“무식한 놈이군. 동부는 죄다 월급쟁이들이잖아. 취직할 수 있겠어? 넌 수용자니까 5급 시민이잖아. 그것도 탈주범. 어떤 회사가 널 받아주겠나?”


대충은 아는 이야기지만 자세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 동부는 사기꾼의 땅, 서부는 양아치의 땅. 남부는 겁쟁이의 땅이라는 별칭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수용지를 나와서 비로소 두 번째 인생의 세상에 맞닥뜨렸다는 실감이 났다. 그러나 생활의 걱정보다 유나의 흔적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레무스가 알고 있는 정보가 아쉬웠으나 좀 고생을 하더라도 혼자서 찾을 생각이었다. 라피앗덴은 본 적조차 없지만 차근차근 정보를 모아 대책을 세우면 불가능한 것은 없으리라. 그러기 위해 북부로 가려면 서부를 통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럼 서부로 가려면 어째야 하지? 서부대교 말고는 방법이 없나?”


“그 정보는 20만이다.”


“망할! 됐어. 안 듣고 말지.”


“으음. 10만.”


대꾸도 없는 듀너는 이미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서부대교를 통하지 않고 바다를 건너는 방법은 한가지뿐일 것이다. 밀항. 이 릿쉬자식은 그 루트도 알고 있을 듯 했지만 스스로 찾는 게 어렵지 않으리라.



꽤 굵은 나뭇가지도 앞발로 꺾어버리는 후제 덕에 나아가고는 있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약간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숲은 울창했고 습한 땅은 켜켜이 쌓인 낙엽이 썩어 질퍽했다.


물길을 찾으면 훨씬 수월할 터이지만 듀너의 의견을 무시하는 후제는 직진만 고집했다. 간간히 멈칫거리며 수풀 너머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무언가를 찾는 듯도 했다.


이미 어둑어둑해져 아무래도 오늘은 야영을 해야 할 듯 했다.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어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이봐. 슬슬 마른 땅을 찾자고. 내가 살펴보지.”


듀너가 나무에 올라 주변을 살피고 방향을 잡았다. 후제도 지쳤는지 별말 없이 그 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얼마 안가 조금 높은 위치에 나무가 없는 풀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끼가 뒤덮여 있지만 바위도 있어 젖은 발을 말릴 수 있었다. 바위 아래서 꿈틀거리는 뱀을 발견한 듀너가 날쌘 동작으로 잡아채 휘둘러 머리를 깼다. 본 적 없는 종류인지라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망설이는 그의 모습을 보던 후제가 큼직한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던졌다. 물통과 말린 육포였다.


“고맙다.”


“고맙긴. 1만 바루사다.”


바가지이긴 해도 듀너는 투덜거리지 않았다. 축 늘어진 후제의 모습이 약간 불안했기 때문이다. 지쳐 힘없는 소리는 의욕까지 약해진 듯 들렸다.


“후우~ 어쩐지 오늘 아침에 장화를 신고 싶더라니. 이렇게 고약한 숲인 줄 알았다면 내려오지 않았을 꺼야.”


듀너는 다른 걱정이 있었다.


“그보다 추격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온 길은 네 덕분에 흔적이 화려하다고.”


“거 짜증나는 놈일세. 하나부터 열까지 내 덕만 보는 처지에.”


“말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적어도 그 스와즈곤이라는 것은 치우고 와야 했어.”


“무식한 놈아. 스와즈곤은 공기 중에 노출되면 금방 삭아버려. 경비병들이 오기 전에 흔적도 없어졌을 거야.”


후제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대화를 할수록 상식의 밑천이 드러나는 듀너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후제가 기지개를 켜더니 다시 축 늘어지며 숨을 내쉬었다.


“그리 힘드나? 여기서 자고 갈까?”


후제가 듀너를 묵묵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넌 릿쉬다덴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나 보군. 도대체 아는 게 뭐야?”


“릿쉬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이 살았어. 무슨 뜻인데?”


“됐어. 얼마나 가야 마른 땅이 나오지?”


“글쎄. 이 속도론 적어도 20시간은 가야 숲을 벗어날 것 같은데? 마른 땅이 그리우면 방향을 바꿔야 할거야. 오히려 그쪽이 빠를지도.”


후제가 한숨을 길게 뱉는 모습을 보며 듀너가 다시 한번 권했다.


“이봐. 추격자는 운에 맡기고 여기서 야영하자고. 비도 올 것 같아.”


“좋아. 여기까진 내 덕에 왔으니 잘 준비는 네가 해라.”


“그러지. 그런데 톱이 없으니 굵은 나무 몇 개 정도는 해결해 줘.”


투덜거리는 후제와 함께 나무 위에 임시 잠자리를 만들고 불을 피웠다. 흐린 하늘은 일찍 어두워졌다. 후제는 술까지 가지고 있었다. 꽤 독한 싸구려 증류주였으나 듀너는 5만 바루사를 지불하고도 오랜만의 술이 매우 반가웠다.



얼마 안가 둘은 기분 좋게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백오십 살도 넘게 먹은 마누라를 찾아간다고? 그것도 라피앗덴이 바글거리는 곳으로?”


“그래. 살아있다면 말이지. 살아있다면.. 왠지 살아있을 것 같아.”


후제는 꿈 깨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뭐. 니네 왕은 지금 이백 살도 넘었다며? 라딜두들은, 아니 인간들은 별 희한한 것들이 많으니 네 마누라도 살아있을 수 있겠지. 키메라인가?”


“이백 살이 넘게 살고 있는 건 전 국왕이야. 유나는 키메라는 아닐 거야. 세상에서 제일 현명하고 멋진 여자야. 키메라 따위 되었을 리 없어.”


“바보야. 그 나이 먹도록 살아 있다면 그게 키메라야.”


듀너가 그를 물끄러미 보며 말을 멈췄다. 눈물을 쏟을 듯한 그 얼굴을 본 후제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이봐. 이봐. 그래. 희망찬 이야기는 이쯤 하고 우울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아까 그 여자는 친구야? 적이야? 왜 서로 살리려다 죽이려다 쫓다가 없어지다 하는 거지?”


듀너에게도 궁금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


“몰라. 이 세상에 출현한 뒤로 이상할 정도로 시비 거는 인간들이 많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죽이려는 놈들까지 생겼어. 제기랄. 처음엔 전생에서 나한테 원한 가진 놈들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 도대체 뭘까?”


“니들은 원한 없이도 서로 잘도 죽이더만. 나도 황당하게 휘말려 큰 손해 볼 뻔 한 일이 있었어. 이번에도 창이랑 도끼를 잃어버렸고.”


“돈 줬잖아? 그딴 것 몇 백 개는 살 돈인데.”


“그건 네놈 부탁을 들어 준 대가고. 손해는 손해지.”


“통나무 수레는?”


“그건 내 것이 아냐. 운반비는 이미 받았고. 다른 릿쉬들 몫도 여기 있지만 줄 방법이 없네.”


놈이 툭툭 치는 지갑을 보며 내일 중으로 이놈에게서 내깃돈을 최대한 뜯어내리라 다짐한 듀너가 물었다.


“넌 이제 어쩔 거지? 돌아가도 수배 중일지도 모르지 않나?”


후제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러게. 그 새대가리가 살아 있으면 인간 경찰에게 내 이야기를 했겠지? 에휴. 그래도 살아 있으면 다행일 텐데. 정부 인간이라 했으니 인간들도 대충 넘기지 않겠지? 늘 그렇듯 너나 그 여자보다는 릿쉬다덴인 나를 범인으로 단정할 테고.


젠장. 이제 맘먹고 착실하게 살기로 했는데 또 엉망이 됐어. 그래도 살아 있다면 전국 수배까지는 안될 거야. 모그다일만 나가면 돼. 시체가 됐으면 절망적이지만.”


시체는 셋이 더 있고, 게다가 공무원들이지만 후제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듀너는 그 점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너희 릿쉬들의 정부에 탄원하면 안되나?”


“흥. 인간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무능한 정부 따위! 내 얘긴 듣지도 않고 인간에게 넘겨버릴 걸? 얼마 전에 인간 죄수 호송을 돕다가 인간에게 폭행당한 릿쉬 얘기 아나?


니들은 그딴 사건 관심도 없지? 틀림없이 집단폭행이었을 텐데 어쩌다 죽어버린 찌질한 인간 하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대충 넘어갔다고.


큰 돈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는 소문이지만 그 릿쉬의 명예는 어쩔 건데? 고작 비실비실한 인간 하나에게 얻어맞았다고 놀림감이 되었는데 말야.”


술 맛을 잡친 듀너는 천천히 일어나 나무위로 올랐다. 나뭇가지를 얽어 만든 잠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그래. 찌질한 인간을 대표해서 사과하지. 잠이나 자자고. 피차 갈 길이 멀 텐데.”


그러나 때마침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대충 만든 지붕은 제 역할을 못해 편히 잘 수도 없었다. 투덜거리며 일어나 별 대화 없이 술만 홀짝거리며 어두운 숲을 노려보는 수 밖에 없었다.


아껴 마신 술도 얼마 안가 바닥났고 짜증이 가득한 상태에서 후제가 불쑥 말을 꺼냈다.


“결심했어.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어.”


별 관심 없는 듀너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고향이 어딘데?”


“서부. 밀수 배를 몰고 사는 친구가 있으니 문제는 없어.”


듀너가 그를 향해 시선을 보냈으나 눈길도 없이 냉정한 말을 들어야 했다.


“네놈을 태워줄 거란 기대는 접어. 내 인생을 망친 놈에게 친절을 베풀 이유는 없어.”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어둠은 더 짙어졌다. 그들 뒤의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는 여인을 알아챌 리 없었다.


여인은 조용히 붉은 가발을 벗고 눈에서 푸른색 렌즈를 빼어냈다. 이마에 두른 붕대를 풀어 상처를 매만진 뒤 다시 감으며 눈을 번뜩이는 그녀는 마기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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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지도 23.05.22 17 0 1쪽
54 비비아이 23.05.17 16 0 1쪽
53 라피앗덴, 릿쉬다덴 23.05.01 24 0 1쪽
52 1부 나가기 - 52화 21.11.14 30 0 13쪽
51 1부 나가기 - 51화 21.11.13 28 0 13쪽
50 1부 나가기 - 50화 21.11.11 26 0 13쪽
49 1부 나가기 - 49화 21.11.09 26 0 13쪽
48 1부 나가기 - 48화 21.11.07 24 0 13쪽
47 1부 나가기 - 47화 21.07.15 26 0 12쪽
46 1부 나가기 - 46화 21.07.15 24 0 13쪽
45 1부 나가기 - 45화 21.02.21 30 0 15쪽
44 1부 나가기 - 44화 21.02.19 31 0 13쪽
43 1부 나가기 - 43화 21.02.17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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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부 나가기 - 41화 21.02.13 28 0 12쪽
40 1부 나가기 - 40화 20.02.11 41 0 13쪽
39 1부 나가기 - 39화 20.02.09 5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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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1부 나가기 - 35화 20.02.01 38 1 13쪽
34 1부 나가기 - 34화 20.01.30 37 1 11쪽
33 1부 나가기 - 33화 20.01.23 40 1 12쪽
32 1부 나가기 - 32화 20.01.21 34 1 12쪽
» 1부 나가기 - 31화 20.01.19 34 1 11쪽
30 1부 나가기 - 30화 20.01.17 34 1 13쪽
29 1부 나가기 - 29화 20.01.15 33 1 13쪽
28 1부 나가기 - 28화 20.01.13 38 1 12쪽
27 1부 나가기 - 27화 20.01.11 3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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