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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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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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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5
글자수 :
279,622

작성
20.01.2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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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부 나가기 - 32화

DUMMY

자무루트는 이 숲에서 꿀을 채취하며 지내고 있었다. 꿀은 전생지구의 잠자리처럼 생긴 바하빔이라는 곤충이 숲에서 모아오는 것이다. 지금은 꽃이 거의 진 끝물이라 올해 꿀 채집은 마무리 하고 곧 서구의 본집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꿀통과 바하빔의 집들이 빗물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고 돌아온 집 앞에서 헬름가이투를 보았다.


별로 말 걸고 싶지 않은 섬뜩한 괴물 키메라인데다 비를 맞으며 눈을 감고 서 있는 모습은 한층 더 으스스하여 지나치려 했으나 그가 눈을 뜨고 말을 걸어왔다.


“이보시오.”


우산을 들어올리자 눈이 마주쳤다. 다른 쪽 손에 들고 있는 횃불에 비친 눈동자는 짐승의 것이었으나, 짙은 붉은 색은 왠지 생기가 없고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이는 자무루트가 그만큼 대담한 성격의 남자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멈춰 서 다음 말을 기다리는 그에게 헬름가이투가 물었다.


“헤도스웨이그에 신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오?”


자무루트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헤도스웨이그 론에게 빠진 자들이야 넘쳐나지만 이자는 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론즈게이트도 통과하지 못했소이다. 내가 말한 위험은 서부에서 론즈게이트로 가는 길에 마주칠 라피앗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부도 무사히 지날 땅이 아니고요.”


“그러면 왜 신이 없다고 단정하셨소?”


“나는 그곳에 신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오. 이 세상을 만든 놈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였소. 유일하고 위대한 알라를 모욕한 자를 찾아 벌을 내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을 초월해 계시니 어디를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이 아미드룬은 알라를 우습게 아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 믿고 있소이다.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헬름가이투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교도였군. 괜한 의문을 가졌어.”


“무어라?”


시선을 내려 그를 본 헬름가이투가 차분하게 사과했다.


“미안하오. 전생의 말버릇이오. 난 섬기는 신이 없으니 이교도란 표현은 실수로 나온 것이오.”


정중한 대답에 화는 가라앉았으나 질문이 생겼다.


“그럼 신은 왜 찾는 것이오?”


순간 생기 없던 눈에 선명한 붉은 빛이 번졌다. 비에 젖은 몸에서 뿜는 김에서는 짐승의 냄새도 진하게 풍기는 듯 했다.


“신을 죽이기 위해서.”


자무루트는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뭐 이런 미친 인간이. 그때 문 쪽에서 밸러바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이쯤에서 번개가 꽈광 쳐 줘야 그 대사에 어울리는 분위기가 될 텐데. 이보게들. 지루한 토론이 싫어서 나간 줄 알았는데 더 한심한 대화 중이니 어쩐 일인가? 비까지 맞으면서.”


헬름가이투가 약간의 노기를 담아 대답했다.


“자네. 말이 가볍군. 가끔은 혀의 무거움을 제법 아는 자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오. 웬일로 수다쟁이가 되셨소? 나로 말하자면 전생에 70세까지 살다 죽은 몸이요. 이렇게 젊은이가 되었으니 젊은 기분으로 사는 것이 신들의 뜻 아니겠소? 물론 신들께서 주신 지혜도 그대로 지니고 있으니 현명함도 버릴 수는 없지.”


“세월이 현명함을 늘려 준다면 내가 자네보다 조금 더 현명할걸세. 허나 인간은 그 정도로 쉽게 성장하지 못하는 존재라네.”


밸러바슈는 손뼉을 치며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까? 귀하께서 신들에게 부여 받은 사명과 신분이 궁금해지는군요. 이 몸은 왕이었습니다만.”


“이상한 것을 묻는군. 위아래를 정하고 싶은 모양인데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야. 굳이 고집을 부리고 싶다면 나는 작은 땅의 영주였고 내게 명령을 내릴 자는 없었다네. 대답이 되었나?”


“아주 좋습니다. 공을 존중하며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안에서의 토론은 거의 끝났으니 들어오시죠. 한가지 문제로 투표를 해야 합니다. 우습지만 천한 출신에게도 공평하게 발언권이 있다는데 참고 따릅시다.”



모그다일 탈출의 다양한 방법이 논의 되었으나 모두 위험했다. 너무나 눈에 띄는 헬름가이투나 루시아가 걸림돌이었고 레무스를 제외한 나머지도 만만치 않은 외모였다.


결론은 비비아이로 서구 해안선을 따라 날아서 남부로 가는 방법이었다. 추적을 피해 최대한 빠르게 날아 남부에 도착한 뒤 비비아이를 버리고 육로를 통해 동부로 향하는 경로였다.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길이지만 별 수 없었다. 제멋대로인 지배자들과 야만적인 인간들이 가득한 서부를 통한 방법은 너무 위험했다. 동부대교의 통과를 위해 섭외했던 인원들과의 연락은 포기했다.


듀너의 문제는 레무스가 아모디 전 국왕의 저택에 방문해 살펴보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위험하면 무리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 전제였다. 거프나 정부의 추격 전에 빨리 벗어나야 했기에 시간도 촉박해서 듀너 구출은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리고 루시아의 문제가 남았다. 레무스는 자신이 마련해 둔 거처로 바로 보내고 싶어했고, 루시아 본인은 끝까지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라만차는 긴 생각 끝에 위험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같이 가자는 의견을 냈다. 만일 잡히더라도 루시아 정도는 훈방조치 되리라 생각했다. 밸러바슈와 두르가는 레무스와 같은 생각이었고 페이츠가 라만차의 의견에 표를 보탰다.



“자. 헬름가이투공을 데려왔소. 현재 3대 3. 이제 공의 표로 소녀의 운명이 결정된다오.”


경찰제복을 벗고 청바지와 편한 티셔츠 차림이 된 라만차가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다수결은 결코 현명한 해결법이 아닙니다. 결과에 상관 없이 좋지 못한 감정과 갈등을 남기게 됩니다.”


어린 소녀의 철없는 바람일 뿐이지만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위험한 일에 끌어들인 레무스에게로의 반감도 작용했고, 일행으로서의 미안함도 컸다.


루시아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결론 날 것이 분명한 다수결로 몰아가는 레무스가 못마땅했지만, 그도 또한 소녀를 아끼는 마음이 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위험한 여행길에 이 어린 소녀를 데리고 가는 것은 반대가 당연했다.


말썽 좋아하는 페이츠 덕에 상황이 미묘해졌으나 헬름가이투가 반대에 표를 던질 것은 자명했다. 붕대를 감은 팔을 만지며 약간 찡그린 표정이 된 레무스가 말을 받았다.


“본래 내 결정에 따라주기를 약속 받았지만 이번에는 내 잘못이 있으니 여러분의 의견에 따라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오. 헬름가이투씨에게 간단히 설명을 드리죠.”


레무스가 각 입장을 명료하면서 객관적으로 가감 없이 설명했다.


루시아는 불안한 눈으로 헬름가이투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굳은 결심을 하고 교육지를 나와 저 높은 페리야마이옘의 정상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외로움을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의 길이 어렵다 해도 오늘처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을 몰라주는 레무스 아저씨가 야속했다. 비록 자신 때문에 모두의 계획이 틀어지고 위험에 빠지긴 했다지만 억울한 면도 있었다.


잘생긴데다 가장 나이차가 적어 보이는 밸러바슈가 자기 편을 들어주기를 은근히 바랬으나 헛된 기대였다.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요. 무섭지만 착한 키메라 아저씨.’


그의 얼굴은 똑바로 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무서웠다. 힐끔거리는 루시아를 본 헬름가이투가 말했다.


“당연히 반대요. 어리고 약한 소녀가 함께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라만차를 제외한 모두는 간단한 투표가 끝났을 뿐이라는 표정으로 덤덤했다. 그러나 루시아가 울음을 터트리자 분위기는 서늘해졌다.


헬름가이투는 당황하여 구석으로 가던 발을 멈추었고, 레무스가 루시아를 다독이려 다가갔다. 그때 라만차가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한가지 더 다수결을 해 볼까요?”


모두 그를 바라보자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루시아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가 아니라 루시아를 어떻게 하면 좋지 않은 것일까를 두고 다시 다수결을 해 봅시다.”


다들 어리둥절한 가운데 페이츠가 빙그레 웃었다. 밸러바슈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똑같은 내용이 아닌가? 멍청한 건 자네인가 나인가?”


그가 멋들어진 동작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순간 벼락이 치고 천둥 소리가 뒤따랐다. 밸러바슈는 인상을 구겼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전하는 의견이 없이 투표만 하셨죠? 반대의 이유가 뭐죠?”


“당연한 것 아닌가? 위험하니까. 무슨 이유가 있겠나? 저 소녀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올 가능성도 크고. 비비아이가 좁아지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고.”


라만차가 두르가를 바라보자 그녀도 입을 열었다.


“전 전하의 의견에 따를 뿐입니다.”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든 루시아를 보며 라만차가 천천히 말했다.


“끝난 다수결을 다시 하자 했으니 구구절절 제 주장을 펼치지는 않겠습니다. 잠깐만 생각들 해 보시고 다시 투표합시다. 루시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은 방법일까요?”


레무스 외의 모두는 오늘 처음 만난 소녀였다. 피곤한 하루였고 앞길도 불안했지만 라만차의 호소에 잠깐 동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 소녀의 입장을 떠올리게 되었다.


헬름가이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군. 저 소녀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 안정을 줄 인간관계로군. 내가 해줄 역할은 없지만 생각은 바뀌었소. 다만 내 표의 책임은 라만차씨가 지시오.”


레무스의 눈빛이 굳어졌고, 라만차가 고개를 끄덕이며 헬름가이투에게 대답을 대신했다. 밝아진 표정의 루시아를 보며 밸러바슈가 손을 들었다.


“세상의 모든 철없는 소녀를 위해 일일이 손을 잡아줄 의무는 없지. 그러나 너를 보니 라우샤니가 보낸 불쌍한 영혼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북부로 가기 전에 나약함을 지우는 데에 내 힘을 보태마. 나도 의견을 바꾸겠소이다.”


두르가도 손을 들어 동의했고 페이츠도 웃으며 손을 들었다. 루시아의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던 레무스가 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결론은 났군요. 알겠습니다. 모두들 오늘은 그만 잡시다. 이 집에 오래 머물 순 없으니 내일 아침 출발합니다.”



얼마 뒤 깊어진 밤. 촛불 하나 밝힌 조용한 주방에서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긴 레무스에게 자무루트가 다가왔다.


“레무스가 기록자가 되었다라..”


“그래. 그래도 자네만큼 안 어울리는 직업으로 바꾼 것은 아니지.”


“무척이나 안 어울립니다. 게다가 민주주의자 흉내까지 내다니. 언제부터 다른 이의 의견을 듣게 되셨나?”


무표정한 얼굴로 자무루트의 눈을 응시하던 레무스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놀랐나?”


대답 또한 한참 있다 나왔다.


“당신의 변덕에 놀라고 결정에 실망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죠. 그때는 원망스러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요.”


“늦더라도 변해야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지. 더 놀랄 말을 해주겠네.”


일렁이는 촛불에 비친 두 남자의 눈동자는 미동이 없었다.


“미안하네.”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레무스의 말을 들은 자무루트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늦었습니다. 너무나.”


뒤돌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레무스는 팔을 내밀어 촛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자세는 움직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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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지도 23.05.22 17 0 1쪽
54 비비아이 23.05.17 16 0 1쪽
53 라피앗덴, 릿쉬다덴 23.05.01 24 0 1쪽
52 1부 나가기 - 52화 21.11.14 30 0 13쪽
51 1부 나가기 - 51화 21.11.13 28 0 13쪽
50 1부 나가기 - 50화 21.11.11 26 0 13쪽
49 1부 나가기 - 49화 21.11.09 2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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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1부 나가기 - 46화 21.07.15 2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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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1부 나가기 - 43화 21.02.17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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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부 나가기 - 28화 20.01.13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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