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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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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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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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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부 나가기 - 35화

DUMMY

모그다일의 해안가는 전체가 해안절벽으로 되어 있고 시계방향의 빠른 해류가 흐르고 있어 주민들이 바닷물과 접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동서남북 4군데에 있는 대교들의 끝단에는 거대한 항구가 있어 비센세이그 대륙을 오가는 화물선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항구들의 오른쪽만은 파도가 약해서 밀수질을 하는 작은 배들이 들락거리기도 한다.


서부에서 오는 밀수선이 자주 출몰하는 것으로 알려진 동네 기가나의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해안절벽길. 세 명의 남자들을 한 청년이 안내하며 걷고 있었다.


“죄송해요 아저씨들. 동료가 손을 다쳐 짐을 옮길 수 없어서요.”


“물건만 좋으면 상관 없어. 운반비는 좀 깎아야겠지만.”


검게 그을린 얼굴의 청년이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바닷바람은 서늘했지만 여름임에도 그의 목에 둘려있는 털목도리는 특이했다.


낡아빠진 옷을 야무지게 조여 맨 허리에 달린 묵직한 커틀러스와 앞으로 내미는 거친 손가락은 그의 험한 생활을 대변했다.


“흥정은 동료와 하시면 됩니다. 저기 있네요.”


어둑어둑한 저 앞에는 짙은 색의 망토를 두른 호리호리한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망토자락과 후드에 가린 검은 얼굴은 사내들을 기분 나쁜 불길함에 빠지게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그 사람은 작고 마른 중년여인이었다.


“뭐야 아줌마잖아?”


“물건은 어디야? 배는 아래에 있나?”


한 남자가 절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아래를 보자 얼어붙은 듯 멈춰 섰고, 돌아보는 얼굴은 잔뜩 질려있었다. 그리고 절벽아래에서는 망토를 두른 이들이 하나씩 올라왔다. 모두 10여명의 남자들로 눈빛들이 흉흉했다.


“뭐야? 너희들.”


뒤쪽에서 그들을 안내해온 청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자! 아저씨들. 움직이지 마세요. 이제부터 재판의 시간이 있겠습니다.”


조용하지만 빠르게 세 명의 남자들을 에워싼 이들 중 리더인 듯한 자가 청년에게 꾸짖듯 말했다.


“넌 입 다물어라. 푸들. 우리가 하는 일은 장난이 아니다.”


조용히 서 있던 여인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잘 해줬어. 푸들. 고맙단다.”


“뭘요. 기껏 타겟을 데리고 나오는 것뿐인데요. 얼뜨기 둘이 딸려오기는 했지만요.”


세 명의 남자들은 바짝 긴장했지만 배짱을 보였다.


“이것들이.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수작질이야? 너. 애송이! 우릴 속여? 이러고 무사할 줄 아나?”


푸들이라 불린 청년이 히죽거리며 말을 받았다.


“속이다니? 난 너한테 서부에서 온 선물이 있다고 했을 뿐인데?”


“이 작자들이 선물이라고? 정체가 뭐야?”


여인이 후드를 벗으며 말했다.


“아니. 선물은 나야.”


조용하지만 단호한 음성의 그녀를 바라본 남자들은 그녀의 손으로 눈이 쏠렸다. 오른손이 잘려져 있었다.


“뭐야. 아줌마. 우릴 아나? 누구야?”


“빌어먹을 손모가지는 어디다 잘라놓고 다니는 거야? 재수없게!”


“조용해라.”


리더인 남자의 엄숙하고 굵은 목소리가 모두의 입뿐 아니라 행동도 멈추게 했다.


“우리는 단죄단. 전생에 지은 죄의 벌을 받지 않은 자를 단죄한다. 지금부터 죄인 브렌트 스티브의 단죄를 시작한다. 네 앞에 있는 분이 의뢰인 기셀 카빌라 여사님이다.”


세 남자 중 하나가 눈이 커지며 그와 여인을 번갈아 보았다. 좀 전의 배짱은 온데간데 없이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머지 둘도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단. 단죄단...!!”


아미드룬 최대의 범죄조직인 단죄단. 그 이름을 듣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절망을 느낀 듯 했다. 굵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머지 둘은 단죄의 대상이 아니다. 이 단죄의식이 끝나면 가도 좋다.”


날이 어두워지며 다플룬의 달빛이 선명해졌다. 둥글게 둘러선 남자들이 횃불을 하나씩 만들어 들었다. 세 남자 중 둘이 뒷걸음으로 물러나 횃불의 원 가운데는 지목된 브렌트라는 자와 중년 여인이 남았다. 여인의 옆쪽으로 리더인 남자가 다가와 섰다.


브렌트는 쥐어짜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너희들. 실수하는 거야. 아미드룬의 법과 론의 율법을 어기는 거라고. 난 시민심사도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했어. 전생에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단 말이다! 명백하게 죄가 없는 시민이라고!!”


“아미드룬의 법은 위정자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 론의 계시들 중 어디에도 전생의 죄를 사한다는 구절은 없다. 또한 우리 단죄단은 론교와 무관하다.”


“씨발. 내가 뭘 어쨌다고? 저 여자! 이름이 뭐라고? 누군지도 모른다고!”


리더는 여인을 보았고 여인이 왼손을 펴 들었다.


“그만 고든. 이제부터 내가 직접 상대할게. 고마워.”


단원 하나가 상자를 가져와 놓았고 여인이 앉았다. 브렌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회한에 가득 차 있었고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래. 브렌트. 내 이름은 기셀이야. 당연히 기억 못하겠지. 네가 자른 손목이 몇 개였는지는 기억나나?”


그녀의 잘린 손목을 바라보는 브렌트의 눈동자는 빠르게 흔들렸지만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물론 이 손은 현생에서 잘린 것이고, 네가 자른 것도 아니지. 웃기게도 전생에서 잘린 것처럼 또 잘렸어. 나를 돌보는 신은 장난끼가 넘치나 봐.”


브렌트가 말했다. 기셀의 조용한 말투가 그의 떨림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듯 했다.


“전생에서 고무채취 인부였나? 그곳에서 처분 받은 사람들은 그 때의 법에 따라 그리 된 거야. 적법한 집행이었다고. 난 정당하게 법을 집행한 것뿐이라고. 너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어. 아니 없었어.”


뒤에서 푸들의 소리가 들렸다.


“씨발. 법. 법. 법 되게 좋아하네.”


리더인 고든이 푸들을 노려보았다.


“한번 더 끼어들면 감점이다. 푸들.”


푸들은 억울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으나 반박은 없었다. 기셀이 말을 이었다.


“나도 저 아이처럼 법을 싫어해. 법은 힘이 있지.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시한 것이 법이기도 하고. 그런데 힘과 힘이 충돌하면? 물론 더 큰 힘이 이기지. 법과 법이 부딪히면 더 센 법이 우선이고.


그렇기에 가장 큰 법은 가장 큰 힘인 자연의 이치에 따른 법이야. 그 앞에서 한낱 인간이 조잡한 욕망으로 만든 법이 권위를 주장해서는 안되지. ...


그런데 인간의 조잡한 욕망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생겨난 것이니 웃기지? 그래서 난 법을 싫어해.”


목숨이 걸린 상황인지라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 수 없는 브렌트는 어찌 대꾸해야 할 지도 몰랐다.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지? 고민할 것 없어. 지금 상황은 간단 명료하잖아?”


기셀이 고든을 바라보자 그는 품에서 작은 단도와 컵을 하나 꺼내어 브렌트의 발 밑 모래에 던졌다. 어리둥절한 브렌트에게 기셀의 말이 이어졌다.


“목숨을 건질 기회를 주지. 3분 안에 그 컵을 가득 채우면 돌려보내준다.”


그녀의 눈에 횃불의 빛이 반사되어 번들거렸다.


“전생에서 너와 내가 따른 법과 같아. 할당량을 채우면 벌은 없다.”


싸늘해진 그녀의 말투에 다시 떨리는 브렌트의 대답.


“뭐. 뭘 채워? 여긴 고무나무는 없다고!”


“그 정도도 머리가 안 돌아가나? 물론 네 피다! 시작!”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마친 기셀이 품에서 시계 하나를 꺼내 옆에 놓았다. 브렌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망토를 두른 단죄단의 단원들은 횃불을 든 채 꼼짝도 안 했고 동료 둘은 구석에 주저 앉아 넋이 나가 있었다.


단죄단의 악명은 그들에게 저항이나 도망은 떠올릴 수 조차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브렌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컵과 단도를 집어 들었다.


“이. 이봐. 이게 뭐 하자는 거야? 결국 죽일 거잖아? 무슨 장난질이냐고?”


기셀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약속은 지킨다. 할당량을 채우면 돌려보낸다.”


“이봐. 미안해. 내가 사과할게. 잘못했어. 내가 보상한다고. 난 꽤 부자야. 보상할게.”


“게으름 피우지 마라. 시간은 흐르고 있다. 컵은 작지만 간단히 채우기는 힘들 거야.”


브렌트는 잠깐 동안 멍하니 있었으나 무사히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칼을 쥐어 잡았다.


먼저 왼손바닥을 베어 흐르는 피를 컵에 담았다. 달빛에 검게 번들거리고 횃불에는 붉을 빛을 내는 피가 쏟아졌다. 그것을 보며 흥분한 브렌트가 독한 눈빛을 기셀에게 쏘아붙였다.


“오냐. 약속은 지켜라. 나중에 네 년 남은 손목도 잘라주마.”


그러나 피는 계속 쏟아지지는 않았다. 피가 멎는 상처를 짜내는 것은 고통뿐이었다.


“1분이 지났다.”


브렌트는 이번에는 옷을 걷어 살집이 두둑한 배를 드러내고 칼을 대었다. 또 피가 쏟아졌으나 컵의 사분의 일을 채우기도 전에 멎기 시작했다.


위쪽으로 한번 더 칼을 그어 피를 받았으나 역시 부족했고 컵에 담기는 피보다 옆으로 흘려 보내는 피가 더 많았다.


“2분이 지났다.”


당황한 그는 이곳 저곳에 상처를 내며 컵을 채워갔으나 조급한 마음에 제대로 피를 받아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 칼자국들을 보며 고무수액을 받아내기 위한 칼자국을 떠올리는 기셀의 눈은 깜박임조차 없이 메마른 나무조각마냥 굳어있었으나 눈물이 한줄기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시간이 다 되었다. 삼분의 이 정도뿐이로군. 할당량에 미치지 못한다.”


“제기랄. 뭐? 어쩌라고! 말이 되는 조건을 걸어야지. 미친년아!”


기셀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시 차분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넌 그래도 대들고 반박도 하는군. 당하는 자의 처지에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일 꺼야. 말한 대로 벌을 내리겠다.”


고든의 손짓에 단원 셋이 다가와 브렌트를 잡아 바닥에 엎어뜨렸다. 그리고 그의 왼손을 자르고 팔목을 묶어 지혈을 마친 뒤 물러났다.


그 동안 꼼짝도 않은 채 그의 몸부림을 지켜보고 비명을 듣던 기셀이 다시 싸늘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벌이 끝났으니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역시 3분이다. 할당량을 채워라. 시작.”


브렌트는 고통으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엎어져 기셀을 노려보던 그는 1분경과의 소리가 들리자, 괴성을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고든의 발차기에 턱을 맞고 자빠졌다. 그에게 향하는 기셀의 말은 다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기억 안 나나? 고무채취 인부들은 손이 잘려도 할당량의 열외는 없었어. 그게 법이었지. 자 시간이 흐른다. 서둘러.”


가쁘게 씩씩거리던 브렌트는 이를 악물고 컵의 앞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리고 잘린 자신의 왼손을 주워들어 잡고 컵 위에서 쥐어 짜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양이 나왔지만 컵을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이번에는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칼을 왼손을 감은 압박붕대에 대고 끊어버렸다.


“끄아악!”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내민 팔의 잘린 동맥에서 피가 솟구쳐 뿜어졌다. 컵은 금새 채워졌고 브렌트는 손목을 움켜 쥐며 소리를 질렀다.


“됐지? 붕대 다시 감아! 새끼들아!”


단원들이 다가가 다시 지혈을 했다.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이빨을 까드득거리며 브렌트는 기셀을 향했다.


“날 우습게 봤나? 역겨운 것들. 열등한 인종으로 태어났으면 열등하게 살아야지! 감히 어딜 기어올라?!”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기셀의 목소리가 다시 조용하게 들렸다.


“삼분이 지났다.”


“그래 썅년아. 난 이제 간다. 다음에 네 피를 몽땅 뽑아줄 테니 기다려.”


그러나 뒤돌아서 걸어가는 그를 푸들이 막아 섰다.


“너도 각오해라. 아시아 원숭이. 비켜!”


다시 들려오는 기셀의 목소리는 다시 날카로웠다.


“브렌트. 이번에도 할당량은 채우지 못했다.”


눈을 부라리며 돌아보는 그에게 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첫 번째와 두 번째 작업이 합해진 것이잖아? 정직한 일꾼이라면 이러면 안되지.”


단원들에게 다시 제압당해 오른손마저 잘리고 몸부림치던 그는 한참 뒤에 세 번째 3분을 맞아야 했다. 컵을 비우고 이빨로 붕대를 풀어 쏟아지는 피를 채워 담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브렌트는 기력을 짜내어 승리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몽롱해지는 정신과 벌벌 떨리는 온몸은 과다출혈과 쇼크를 버티지 못했다. 엎어진 그의 몸에 컵도 같이 넘어져 가득한 피를 바닥에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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