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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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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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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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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부 나가기 - 41화

DUMMY

기가나 북쪽 해안. 후미진 곳의 바닷가에 밀수선이 하나 정박해 있었다. 전생의 브릭선 형태로 길이는 40미터쯤이었다.


헤진 돛들이 말려있는 두 개의 마스트 끝에는 괴생물의 문양이 그려진 푸른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선미에는 커다란 앙겔로스 그레이 셋이 묶여 있었다.


팽팽하거나 늘어진 밧줄들로 어지러운 난간에 걸터앉은 듀너가 푸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잠꾸러기가 전생에 네 원수인 거야?”


푸들은 대꾸 없이 물동이를 한번 더 들어 밸러바슈의 얼굴에 쏟았다. 그러나 밸러바슈는 잠결에 콜록거리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썅.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이봐. 이런 놈은 깨우는 방법 없어? 몰라?”


듀너가 피식 웃었다.


“신데렐라인가 보네. 예쁘장한 게 곱게도 자네. 그럴 땐 어떻게 깨우는지 몰라? 전생에 동화책도 안 읽었나?”


푸들이 짜증을 내뱉었다.


“안 읽었어. 난 베이브야. 무슨 방법인데?”


“키스. 찐하게.”


노려보는 푸들에게 질문이 생겼다.


“잠깐. 베이브? 그럼 전생의 기억도 없는 거 아닌가? 단죄단이라며?”


푸들이 귀찮다는 듯 대답을 내뱉었다.


“난 장애아였어. 좆같은 뇌성마비라나. 몇 년은 살아있었고, 드문드문 엉망이지만 기억이 있어. 날 죽인 여자 정도는 알아.”


듀너는 뇌성마비가 뭔지 알지 못했으나 미개한 시절의 병이겠거니 짐작은 갔고, 조금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종 쌍욕을 내뱉고 있는 청년에게 생긴 경멸의 감정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뭐. 사연 없는 인간은 없으니까. 그런데 이딴놈 말고 좀 제대로 된 승객인간은 없나? 저 신데렐라도 어째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고.’


선장인 아길레프가 배에 올라 다가왔다.


“아직도 못 깨웠어?”


푸들이 성질을 부렸다.


“씨발. 할말이 있다는 놈이 왜 쳐 자기만 하냐고? 고든 쪽은 아직이야? 진짜 지금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길레프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들 계획대로 되지 못한 듯 하군.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움직일 수는 없어. 우린 그런 일에 낄 처지도 아니고 계약에도 없었어.”


노려보는 푸들에게 덧붙였다.


“또한 지금 너를 배에서 내리게 하는 것도 허락할 수 없다. 일이 잘못되어 낙오자가 발생하더라도 무사한 선객들은 책임지고 서부로 돌려보내는 것이 계약 내용이니까.


특히나 단죄단 견습대원인 너는 내가 각별히 관심 가져야 할 계약사항이다. 쓸데 없는 생각 품지 마라.”


푸들은 아길레프 뒤쪽으로 빠져나갈 틈을 찾아 눈을 굴렸다. 그러나 선원 릿쉬들이 그를 주시하며 대응자세를 취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선장! 선장!”


위쪽 벼랑의 가파른 길을 내려오며 한 릿쉬가 외치고 있었다. 서둘러 배에 오른 그는 빠르게 보고했다.


“제너너따냥에서 섭외한 코호시 일당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태운 놈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길레프가 눈에 힘을 주며 잠깐 생각한 뒤 물었다.


“단순히 일이 잘못된 것을 알리려면 여럿이 올 필요가 없어. 코호시 일당인 것은 확실해?”


“가장 앞에 오는 놈은 코호시가 맞습니다. 나머지는 11명인데 잘 모르겠습니다. 망원경으로는 판단이 힘들어요.”


듣고 있던 듀너가 끼어들었다.


“이봐. 그 단죄단이 노리는 목표는 혹시 관리인가?”


그를 쳐다보는 밀수선 릿쉬들에게 손가락을 하늘로 향해 보였다.


“저건 정부에서나 쓰는 물건이잖아. 위험해 보이는데?”


그가 가리킨 북쪽 하늘. 까마득한 위에는 행글라이더 하나가 날고 있었다. 아길레프가 다급히 외쳤다.


“출항한다. 모두 내려와!”


릿쉬가 깃발을 들어 벼랑 위에 있던 동료 릿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음 명령이 뒤따랐다.


“잠자는 놈은 밑바닥 창고에 집어 넣고. 너희 두 놈도 내려가 숨어. 인간이 있는 걸 들키면 골치 아파져. 저 날아다니는 놈은 눈깔 좋은 키메라일 테니 이미 발각되었겠지만. 제길”


순간 푸들이 날렵하게 몸을 날려 배 아래로 뛰어내리고는 내달렸다.


“이 자식아! 거기 서!”


푸들은 벼랑길이 아닌 다른 쪽으로 뛰어올라 바위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아길레프가 이빨을 드러낸 찡그린 표정으로 잠시 망설이더니 곧 그를 쫓았다.


듀너는 한심하다는 듯 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푸들이라는 청년은 제법 영리했다. 아길레프의 육중한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약한 바위를 찾아 코스를 잡고 있었다.


그래도 아길레프는 바스러지는 바위에 미끄러지면서도 큰 점프를 쉬지 않으며 푸들을 차근히 따라잡았다.


듀너는 푸들의 작전이 얕은 꾀에 불과하다 생각했으나 상황은 좀 더 흥미롭게 돌아갔다. 푸들은 벼랑에 붙어 자라난 소나무 같은 나무로 뛰어올랐다.


아길레프가 그 이상 쫓으면 가지가 부러지거나 뿌리째 뜯겨져 추락할 것이었다. 둘은 그 상태로 실랑이를 벌이는 듯 했다. 선원들의 재촉에 갑판 아래로 내려가려는 때, 후제가 배에 오르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은 어디야?”


선원 하나가 답했다.


“저 꼬맹이를 쫓아 갔어. 어? 근데 이 여자는 누구야?”


작은 몸집의 동양인 여자가 후제의 뒤를 따라 배에 오르고 있었다.


“서부로 태워달래. 돈 많아.”


선원이 손을 흔들어 제지했다.


“이봐. 알잖아. 우린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인간은 태우지 않아. 네놈의 유기견은 선장이 특별히 허락한 거라구.”


“기다려봐. 형님이 특별히 허락한 것은 내가 특별한 동생이기 때문이라고. 알아? 너. 날 특별하게 대접하지 않으면 네놈 뱃생활이 특별히 꼬일 거란 말이다.”


듀너는 그녀를 보자 신경이 곤두섰다.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외쳤다.


“어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몸을 돌려 다가가도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넌 누구지?”


감정 없는 검은 눈빛과 함께 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마기야라 하오. 나 말고도 인간 승객이 있군.”


소름이 돋았다. 키와 몸집 그리고 목소리. 무엇보다 눈빛이 며칠 전 붉은 머리 여인과 같았다. 그 붉은 머리 여인은 천으로 가린 얼굴 때문에 검은색이 아닌 푸른색 눈만이 기억에 있을 뿐이지만 분위기가 아주 흡사했다.


그러나 마기야란 이 여인은 듀너에게 그 이상의 흥미를 보이지 않고 눈을 돌렸다. 그 태도 또한 통행검문소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를 두고 후제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봐. 저 여자 뭐야? 어디서 데리고 온 거야?”


“왜? 아는 여자야?”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전에 수용지 성벽의 그 여자 같은데? 모르겠어?”


후제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대꾸했다.


“멍청한 데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맙소사. 아니면 색맹이야? 내 눈에 인간은 다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저 정도는 확실히 구분한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막 배에 오르는 아길레프를 보았다. 그는 서둘러 출항하기 위해 푸들을 포기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빨리빨리! 출발이다. 뭐야 이 여자는?”


후제가 재빨리 그녀를 소개했지만 아길레프는 지체 없이 판단을 내렸다.


“안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우리 원칙이 우선이다. 내려!”


마기야가 굳은 자세를 풀지 않자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아길레프는 빠르게 말했다.


“좋아. 저기 저 꼬맹이 보이지? 저놈을 데리고 와봐. 10분 준다. 그러면 배에 태워주지.”


마기야는 푸들과 아길레프를, 그리고 하늘을 잠시 번갈아 응시한 후 몸을 돌려 배에서 내렸다. 아길레프는 선수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자. 준비 됐나? 출항!”


후제가 다급히 물었다.


“뭐? 형님. 저 여자 안 기다려?”


“그래. 푸들도 버린다. 우리 안전이 우선이야. 닻을 감아라!”


그때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비처럼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굵은 가시 4개가 돋은 철 마름쇠들이었다. 위를 보니 아미드와이번 세 마리가 그것들을 뿌리고 있었다. 벼랑위쪽에서는 릿쉬들이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


“거기 밀수선 놈들! 멈춰라!”


아길레프는 더욱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무시해. 출발! 어서!”


그러나 마름쇠에 발바닥을 찔리는 선원들은 동작이 굼떴다. 게다가 아래로 내려온 아미드와이번들은 괴성을 지르며 그들의 시야를 방해하는 비행을 했다.


배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돛을 제어하지 못하는 탓에 전진을 하지 못했다. 갑판 아래로 내몰린 듀너는 불안했지만 순순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길레프의 비장한 외침이 들렸다.


“돛줄 잡고 있는 놈들 빼고 전원 전투 준비!”


벼랑을 내려온 놈들은 지체 없이 갈고리가 달린 밧줄들을 휘둘러 배에 던져 걸어 당기기 시작했다. 선원들이 창으로 끊어내려 하였으나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하자 피하기에 급급했다.


결국 놈들의 선내 진입을 막지 못하고 대치 상황으로 돌입했다.


“뭐냐? 네놈들은! 무슨 권한으로 내 배를 막는 거지?”


아길레프는 긴 창을 비껴 잡고 놈들을 노려보았다.


“우리는 인간 정부 동부지사의 경호대다. 네 배에 숨어있을 터인 단죄단을 찾고 있다. 순순히 넘겨라.”


아길레프는 놈들 뒤에서 비열한 눈빛을 번들거리는 코호시에게 쏘아붙였다.


“코호시. 실망이 크다. 고든과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 되었나?”


“보면 모르나? 전멸이다. 전멸. 모두 죽었어. 시체들을 데려온들 내가 얻을 몫은 없을 테지. 이쪽에 붙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네가 데려간 애송이 라딜두를 넘기고 너도 서부로 꺼지라고. 그게 가장 현명한 마무리야.”


아길레프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세상은 엉망이고 우리가 떳떳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킬 도리라는 게 있는 거다. 비겁한 놈아. 그리고 네놈들도 큰소리 치지 말아라. 라딜두의 개 노릇을 하는 주제에 감히 명령이라니! 여긴 단죄단 라딜두는 없다. 얌전히 내 배에서 내려!”


경호대의 지휘관이 들고 있던 창을 휘둘러 갑판에 박았다.


“라딜두의 개라. 웃기는 소리. 경호대는 단지 직업일 뿐. 위대한 릿쉬다덴 윙롱과 함께라는 자부심 높은 우리들이다. 떳떳한 일을 하고 있단 말이다. 너희야 말로 라딜두의 천박한 본성에 기생하는 릿쉬다덴의 수치.”


화가 잔뜩 실린 그 말에 대답도 날이 서 있었다.


“천만에. 우리는 라딜두에게 굽실거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위선적인 말을 떠벌리면 스스로 위로가 되나? 윙롱이라는 별명은 그 동부지사 라딜두 놈이 지어준 것이 아니더냐? 거듭 말하지만 여기는 단죄단이 없어. 너희 행패는 용서되지 않는다. 어서 내려!”


지휘관은 창을 뽑아 들었다.


“그렇다면 수색에 협조해라. 아니면 험한 꼴을 볼 뿐이다.”



듀너는 갑판 위의 상황에 신경을 집중하며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같이 있던 후제가 불안한 눈으로 속삭였다.


“단죄단 꼬마는 저 밖에 있잖아. 형님은 그냥 저 놈 넘기면 될 것을 왜 저러는 거야?”


“네가 모르는데 내가 어찌 알아? 아무튼 난 여기서 억울하게 잡혀가기 싫어. 여기 선원놈들은 싸움은 좀 하나?”


“험악한 놈들이기는 하지. 그렇지만 상대는 군사훈련을 받은 놈들이야. 숫자도 더 많고.”


커틀러스 하나를 찾아 든 듀너가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우리도 참전해야겠군.”


후제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뭔 보탬이 될지 모르겠지만 워낙 무식한 놈이니 한마디 하마. 큰 사고는 치지 마라. 인간과 릿쉬다덴은 서로가 잘못 엮이면 인생 종친다.”


“쉽게 말해줄래? 넌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창을 휘둘렀잖아.”


“그건 작은 장난이지. 멍청아.”


다짐을 주듯이 힘주어 말을 이었다.


“죽이지 말라고. 혹시 죽이더라도 들키지 말고.”



곧 전투가 시작되었다. 밀수선의 선원들은 소리를 지르며 창을 휘둘렀고, 경호대원들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받아내었다. 전투에 익숙한 데다 머릿수에서 우위인 경호대쪽이 밀어붙였으나 배 위에서는 노련한 선원들도 만만치 않았다.


밧줄을 타고 뛰어다니는 현란한 움직임으로 경호대를 중앙으로 몰아 에워쌌다. 그러자 경호대는 밧줄을 끊으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기저기 뒹굴어 다니는 마름쇠들은 대열을 갖추고 발놀림이 적은 경호대에 유리했다. 선원들은 끊어지는 밧줄과 함께 하나 둘씩 바다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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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1부 나가기 - 51화 21.11.13 28 0 13쪽
50 1부 나가기 - 50화 21.11.11 2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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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부 나가기 - 42화 21.02.15 30 0 12쪽
» 1부 나가기 - 41화 21.02.13 29 0 12쪽
40 1부 나가기 - 40화 20.02.11 4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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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1부 나가기 - 35화 20.02.01 3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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