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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군 님의 서재입니다.

루미네라스 연대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도라군
작품등록일 :
2016.04.10 10:35
최근연재일 :
2016.05.03 21:37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4,018
추천수 :
37
글자수 :
196,239

작성
16.04.21 23:20
조회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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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21쪽

북쪽으로 가는 여정 (5)

DUMMY

로스는 밀밭을 지나 빠른 속도로 숲으로 향했다. 지진했던 밀밭에서의 이동 탓인지 칼라스는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빠르게 갈수 있었잖아 애초에 말이지."


로스는 대꾸하지 않고 숲으로 들어가 다시 아까와 같은 높은 나무를 찾고 있었다. 이미 동이 터오고 있어서 빠르게 살펴보는 것이 안전해 보였다. 숲 안쪽에 자이덴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배치되었을지 모르는 병력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적당한 나무를 찾아 꼭대기로 올랐다. 동이 터오는 것이 멀찍이 보였고, 한눈에 숲이 들어왔다. 칼라스의 날개를 펼치니 더욱 모든 것이 분명히 눈에 들어왔다.


숲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자이덴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이덴은 숲의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지어진 독특한 마을이어서 집들 사이사이를 감싸듯 나무들이 들어서 있었다. 숨의 가운데 마을회관이 보였는데, 진을 치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막 병력 구성을 하기 시작했는지 아직 진형을 다 갖추지 못한 듯 임시 막사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숲의 가장자리에 자신이 살던 집이 보였다. 하지만 집의 주변엔 아직 병력이 보이지 않았다. 혹은 집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미 몇 명 있네. 제압 못할 정도의 인원은 아닌데? 어쩔 거지?"


칼라스가 말했다. 로스는 이번에도 대꾸 없이 나무를 빠르게 내려와 숲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과거 숲에서 이동하는 능력이 누구보다 우수했던 그는 서쪽 산맥에서 정찰병을 하던 시절에도 숲의 모든 곳을 살펴보는 역할을 자주 하고 했었다. 그때도 모두가 로스의 독특한 이동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땅을 달리면서 중간중간 속도를 내며 뛰어올라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발로 차며 날아오르듯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숲에서의 이동이 되려 평지를 달리는 것보다 더욱 빨랐다. 그렇게 숲을 지나 자이덴의 입구 근처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네 명의 병사가 자이덴의 입구에 있었다. 입고 있는 갑주의 형태나 옷의 형태로 보아 제2군단의 병사로 보였다. 아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많은 인원이 배치되기 시작한 거라 생각하고 입구를 돌아 숲을 타고 자이덴의 가장 가장자리를 돌았다.


'쓸데없는 전투를 하면 되려 보고가 될 것인데... 아직은 죽어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좋으련만...'


로스는 집에서 가까워지는 곳에서 여섯 명의 병사를 보았다. 여덟 명이 한 분대로 움직이는 것이 헬리브 왕국의 보통의 병력 운용 방법이라 두 명이 있을 곳을 살펴보았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집 안쪽을 수색하고 있거나 집 근처에 배치되어 있는 듯했다. 아마도 그렇다면 그 두 명이 분대장이 포함된 인원이라 생각하고 로스는 일단 여섯 명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칼라스가 말했다.


'좋아. 아직은 나도 좀 더 추격대와 거리를 벌리기를 원하니 특별히 도와주지. 손을 들어 여섯 명을 겨눠봐'

'전투는 안돼.'

'알아. 도와준다니까. 손을 들어 얼른 맘 변하기 전에.'


로스는 손을 들어 여섯 명의 부대를 겨눴다. 그러자 손에 갑작스럽게 힘이 느껴졌다. 몸을 관통했던 그 느낌. 마력이었다. 그리고 로스도 모르게 입이 움직였다.


"잠들어라."


나지막한 소리에 손에서 반짝 빛이 났다. 빛은 여섯 명의 주변을 감았다. 그러자 여섯 명이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내 수면 마법을 맞은 녀석들은 아마 하루는 족히 잠들고 남을 것이야. 그러면 충분히 거리를 벌릴 수 있지."


로스로서는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마법이란 새로운 전투 방법을 익혀두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과 함께 정상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로스의 생각을 늘 그대로 읽어버리는 칼라스가 말했다.


"지금은 내가 직접 발현하지만 난 힘을 빌려주는 것이지 마법을 쓰는 건 네 녀석이 주체가 되어야 해. 그래야 전투에서 더욱 유용해지겠지. 처음 쓰는 것들은 내가 이렇게 도와줄 테니 너도 얼른 익혀두라고. 마법은 마력과 그것을 발현하기 위한 언령이 합쳐지며 구현되는 것이니 잊지 마."

"그래. 다 좋은데. 제발 이렇게 귓속말로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말아줄래?"


칼라스는 내면에서 말을 하기 때문에 아무도 들을 수 없을 테지만 로스는 계속해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칼라스가 웃으며 말했다.


"이편이 더 재밌으니 그냥 네 녀석이 익숙해지라고. 크크 그리고 네 녀석도 대답하는 게 재미있거든."


로스는 대꾸하지 않고 뒷문 쪽으로 향했다. 뒷문이 열려있었다. 로스는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문 안쪽을 살펴봤다. 그런데 순간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냐!!"

"제길!"

"야호! 전투로구나! 날려버리자!"


병사의 소리와 로스의 반응, 그리고 칼라스의 소리가 한데 뭉쳐서 들리듯 공간에 퍼졌다. 로스를 발견한 병사가 소리를 치자 안쪽에서 집을 살펴보던 분대장으로 보이는 병사도 뒷문 쪽을 바라보고 로스의 모습을 발견했다. 두 명의 병사는 순식간에 칼을 뽑고 입구로 돌진했다. 마법사는 아니었다. 로스는 문에서 한 발짝 뒤로 뛰었다.


"천둥을 가르는 자. 스톰 브레이커!"


로스가 오른팔을 들어 소리치자 오른팔 전체가 빛이 나더니 빛의 가르며 칼 한 자루가 뽑혀 나왔다.


키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스톰 브레이커가 튀어나왔다. 그는 공중을 날아 순식간에 병사 쪽으로 날아갔다. 앞서 있던 병사가 놀란 눈으로 스톰 브레이커를 보고 다급히 칼을 앞세워 방어태세를 갖췄다.


"죽이지 마! 무장해제만 하도록 도와줘!"


말을 알아듣는 듯 스톰 브레이커가 몸의 앞쪽에 세워진 칼날을 피해 병사의 옆구리 쪽을 관통했다. 병사는 칼로 내려칠 요량이었지만 스톰 브레이커의 빠른 속도에 미처 휘두르지 못하고 옆구리의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쓰러지는 병사가 손에서 칼을 놓쳤다. 병사의 손에서 흘러 떨어지는 칼을 향해 로스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칼이 바닥에 채 떨어지기 전에 로스는 칼의 중심부를 발로 차 공중으로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벽을 박차고 전방으로 날아올랐다.


챙!


금속의 큰 소리가 울렸다. 공중으로 올린 칼을 잡아들고 분대장으로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분대장은 가까스로 칼을 들어 로스의 칼을 받아쳤다. 분대장의 눈에 칼을 마주한 로스가 보였다. 로스의 눈빛과 붉은 머리칼은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핏줄기 같아 보였다.


"유혈사태를 일으키고 싶지 않소. 어서 빨리 치유사에게 데리고 가면 출혈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소."

"크흑. 네 녀석은! 어째서 그런 모습인지는 몰라도 근위 대장이 분명하구나. 역적의 말 따위에 물러설 수 없다."


로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적이라는 말에 비수가 꽂힌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왕자를 죽인 근위 대장.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난 모함당한 거요. 부디 칼을 거둬주시오."


분대장의 눈에 로스의 등 뒤로 스톰 브레이커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병사를 뚫고 지나간 칼날이 서슬을 번쩍이며 있었다. 분대장은 칼을 비틀어 로스의 왼편으로 몸을 돌렸다. 맞대던 칼이 비켜나가면서 분대장은 로스의 왼편으로 벗어나자 곧장 칼을 자신의 가슴팍으로 당겼다. 다시 한번 내리칠 기세였다. 그러나 로스는 몸을 돌리며 몸이 기운 분대장을 놓치지 않고 발로 그대로 차버렸다. 분대장은 바닥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잡고 있던 칼을 놓쳤다.


"미안하오. 잠시만 얌전히 있어주오. 잠들어라!"


로스가 아까와 같은 마법을 시전하여 분대장을 잠재웠다. 분대장은 잠들지 않으려 힘을 썼지만 이전의 사람들처럼 금방 힘없이 쓰러졌다. 로스는 스톰 브레이커를 몸 안으로 거두고 쓰러진 병사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급소는 피했지만 갑옷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주시오. 제발."

"죽이려는 것이 아니오. 진정하시오."


로스는 병사의 옆구리를 손으로 막고 피를 막았다.


'칼라스, 치유 마법도 쓸 수 있나?'

"거참 되게 귀찮게 구네. 뭐 하러 살려주려는 거야."

'도와줘. 이대로 죽게 둘 순 없어. 다른 병사들이 하루를 잠들어 있는 거라면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다가 아마 출혈로 죽을지 몰라.'

"앞으로도 매번 이럴 거지? 하 이거 되게 귀찮은 놈을 만났네."


옆구리에서 피를 막고 있던 손에서 푸른빛이 나더니 벌어진 틈이 아물더니 피가 멎었다. 그리고 신음하던 병사가 그대로 잠들었다.


"어차피 재울 거잖아. 귀찮으니 한 번에 처리했어. 얼른 이동하자."


로스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피로 물든 손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칼라스의 말대로 더 많은 병력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일단 걸치고 있던 천을 벗어버리고 옷장을 열어 예전에 입던 튜닉을 꺼내 입으며 침대 쪽으로 이동했다.


침대를 밀쳐내고 마룻바닥의 한쪽 틈을 잡아 올렸다. 그러자 상자가 들어있는 작은 공간이 열렸다. 상자를 꺼내어 안에 들어있던 활과 화살, 칼을 챙겼다. 활을 메기 쉽도록 만든 가죽으로 만든 띠와 칼을 차기 위해 고안한 벨트를 차고 칼을 집어넣었다. 빠르게 장비를 갖추고 로스는 뒷문 쪽을 살폈다. 다행히 아직 더 이상의 병사들이 배치되지 않은 듯싶었다. 빠르게 입구를 나서 숲을 향해 달렸다.


'역적... 어쩌다가 이렇게...'

"운명이려니 해. 덕분에 난 재미난 구경을 할거 같아 신이 좀 나는 걸. 크크. 계속 달릴 거지? 속도 좀 내자 이제."


왼팔에 빛이 나더니 로스의 몸을 감쌌다. 온몸이 전보다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속도를 보다 빠르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로스는 자신의 이동 방법에 더욱 빠른 속도를 얻어 자이덴을 순식간에 벗어났다. 과거 정찰병에 되기 위해 떠날 때는 마을의 촌장님께서 직접 배웅하던 숲을 이젠 역적이 되어 내달렸다. 숲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넌 느끼지 못하겠지만 내겐 분명히 오크들이 있는 것이 느껴진단 말이지. 아마도 오크가 나올 거 같은데? 이놈들도 그냥 비켜갈 거야?"


속도가 빨라지자 신나 보이는 듯한 목소리로 칼라스가 말했다. 과거 자이덴은 언제나 오크의 습격을 받던 마을이었다. 과거 헬리브 왕국이 있기 전부터 오크들이 거주하던 숲이었던 곳을 헬리브의 첫 번째 국왕이던 리제 레네스크가 밀어내고 왕국을 세웠다. 당시 오크의 족장들이 병사들의 칼에 무참히 쓸려 죽음을 당했기에 언제나 그들은 인간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살기 위해 북쪽 산맥까지 숨어들어갔는데, 종종 숲을 타고 자이덴을 습격하곤 했었다. 물론 과거의 응집되어있던 모습과 달리 흩어진 그들의 병력은 많이 약해져있었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 없는 적들이었다.


'아니. 오크들은 그냥 지나치진 않을 거야. 모든 걸 우회하며 가기엔 시간이 부족해. 자이덴에 내가 나타났다고 보고되면 근처에 봉쇄선이 만들어질 테니 얼른 벗어나야지.'

"크크크 그래. 그래야지. 마음껏 해봐. 전투를 자꾸 해야 너도 내방식까지 녹일 수 있지 않겠어?"


칼라스가 웃으며 대꾸했다. 숲을 거침없이 박차며 순식간에 자이덴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덴브는 취조실에서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왔다. 왕자의 방의 옆방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지나는 길에 많은 병사들이 왕자의 방에 있는 것을 보았다. 눈길을 주지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 방문을 닫고 탁자에 앉아 물병을 들어 물을 들이켰다.


'아무래도 눈치를 챘는지도 몰라.'


덴브는 자신의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 중 한 권을 빼어들고 책상에 앉았다. 책의 사이에 한장의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종이엔 마법의 문양이 그려져있었다. 부채에 그려져있던 것과 같은 형태의 그림이었다. 덴브는 빠르게 종이를 책 사이에서 빼서 책상 위에 올리고 손바닥으로 내려치려 했다. 마법이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부채가 로스를 옮겨버렸던 것처럼. 그런데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덴브의 시선이 문쪽으로 향했는데 그때 문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덴브님 계십니까? 랜서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랜서는 왕자가 쓰러질 때 그가 바닥에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고 사라지는 로스를 바라보았다. 왕위 계승식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도 충격적이라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그저 죽어버린 왕자의 시신을 붙들고 월대에 앉아있었다. 로스가 사라지고 뒤늦게 병사들이 왕자의 주변을 둘러쌓고 보이지 않게 할 때까지도 어떻게 된 것인지 상황 파악이 다 되지 않은 눈으로 멍하니 쓰러진 왕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왕자의 시신이 마법사들에 의해 옮겨지고 랜서는 취조실로 끌려갔다. 취조실에서도 랜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로스가 왕자를 죽이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은 랜서였다. 다른 이들보다 가까이서 그 모든 참상을 지켜봤다. 그리고 랜서는 로스의 몸에서 튀어나오던 소환수들과 그 사이에 검은 형태를 보았다. 검은 형태는 로스의 찢어진 몸 틈 사이에 스멀거리면서 움직였다. 랜서는 그 검은 물체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러던 중 일순간 검은 형체의 틈 사이로 눈을 보았다. 엄청나게 서늘한 기운을 가지고 있던 눈빛이었다.


칼라스의 눈과 마주친 것이었다. 자신이 보았던 그 어떤 눈빛보다도 서늘하고 공포스러운 기분이 들게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있었던 일을 취조실에서 다 말하지 못했다. 자신이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었고, 취조실에서 조사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해도 믿어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무도 오싹했던 그 눈빛은 취조실에서 특수 부대의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서 랜서는 쓰러진 왕자에게서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무과 시험에서는 장원 급제를 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그였지만 실제로 시신과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여 생긴 잘못된 기분이라 생각했었다. 더욱이 이또한 조사를 담당한 이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는 무척이나 불경스러운 생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계속해서 잊을 수가 없었다. 취조실에서 풀려나자 랜서는 이런 자신의 이상한 감정을 물어볼 사람이 덴브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바로 덴브의 방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덴브가 랜서를 안으로 들게 했다. 랜서가 들어오고 문을 닫으며 덴브는 복도를 살폈다. 복도엔 몇몇의 병사들이 보였지만 자신을 주시하는 것 같진 않았다. 덴브는 자리에 랜서를 앉게 했다.


"덴브님. 괜찮으신지요."

"왕자님께서 돌아가셨는데, 괜찮을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어떤 상황인지 도저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랜서는 멍한 눈빛으로 덴브를 바라봤다. 그런 랜서를 보며 덴브가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요?"

"아, 덴브님. 뭔가 이상했습니다. 저는 로스님의 몸 사이에 이상한 형태를 보았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형태의 검은 물체였는데, 그것이 나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눈이요?"

"네. 분명히 마주쳤습니다. 무엇인가 로스님 몸 안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다면 아마도 로스님이 모함에 빠진 것 같습니다."


덴브는 랜서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봤다. 멍한 표정과 달리 비장한 눈빛의 랜서의 표정에서 덴브는 과거 자신과도 함께 왕자님의 곁에 있던 롤랑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와 같은 용맹한 표정의 얼굴이었다.


"랜서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로스님을 노린것 같진 않습니다."

"역시 덴브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도 로스님이 빠진 모함이 로스님을 향한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랜서는 말을 잇지 않고 잠시 골똘히 생각을 하는 듯싶었다. 덴브는 그런 랜서를 주의 깊게 쳐다봤다.


"덴브님. 쓰러지던 왕자님을 붙잡은 사람은 저였습니다. 보셨겠지만 말입니다."

"네. 저도 보았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랜서는 덴브의 대답을 듣고 비장한 얼굴로 덴브에게 말했다.


"덴브님. 가장 가까이에서 왕자님을 모셔왔으니 가장 잘 왕자님을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덴브님께 여쭈러 왔습니다."

"무엇을 말이십니까?"


덴브는 랜서의 표정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덴브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런 덴브의 말에 보다 비장한 얼굴을 한 랜서가 말했다.


"취조하던 이에겐 말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이상한 기분을 털어놓을 사람은 덴트님밖에 없다 생각했습니다."


덴브는 말없이 랜서의 말을 기다렸다. 계속해서 본론으로 가지 못하는 랜서를 보며 심상치 않은 말이 될 것을 직감했다.


"저의 팔에 안겨있던 왕자님이... 전 너무 이상했습니다. 덴브님."


덴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랜서는 순간 덴브의 행동에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랜서는 굳게 다짐한 표정으로 덴브를 바라봤다.



쉬이익!


화살이 활을 벗어나 공간을 가로질렀다. 오크는 멀리 화살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고 빠르게 몸을 옆으로 돌렸다. 오크의 빠른 반응에 이대로라면 화살은 크게 오크를 비켜갈 것이었다.


"이야. 이거 놀라운데! 저거 이제 죽겠군"


칼라스의 말과 동시에 화살은 바람의 흐름을 받아 오크가 피해버린 방향으로 빠르게 휘었다. 바람의 민족이 자랑하는 궁술이었다. 그들은 바람의 움직임을 읽고 화살을 날려 바람의 힘으로 예상치 못한 곳으로 화살을 날리는 특유의 궁술을 가지고 있었다. 로스가 날린 화살이 마치 오크의 움직임을 예상했던 듯이 바람을 타고 타고 휘어 오크의 가슴팍에 박혔다. 오크는 꽤액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로스는 다시 한발의 화살을 더 활에 올리고 시위를 당겨 두 번째 오크 쪽을 향했다. 그런 로스를 노리고 우측에서 해머를 든 오크가 달려왔다. 가까운 곳에서 달려오는 오크를 의식하며 로스는 이를 악물고 화살을 공중으로 높게 쏘아올리고 빠르게 허리춤에 칼을 뽑았다.


투캉!


오크의 해머가 나무뿌리를 찍어 박살냈다. 해머를 종이 한장 차이로 피한 로스는 자신의 칼을 휘둘러 오크의 손목을 베었다. 깊진 않았지만 동맥이 잘려나간 듯 피가 솟구쳤다. 오크가 비명을 질렀지만 해머를 놓치지 않고 다시 올렸다. 로스는 오크가 해머를 다 올리기 전에 바닥을 차고 뛰어오르며 다시 한번 그의 겨드랑이 안쪽을 칼로 그었다. 또다시 피가 공중에 뿜어져 나왔다. 겨드랑이 안쪽이 잘려나간 오크는 그대로 해머를 놓치고 팔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머리를 노려!"


칼라스의 말을 듣고 로스가 빠르게 왼팔을 들어 쓰러진 오크의 머리 쪽을 향하게 했다.


"불타올라라!"


순간 손에 붉은 빛과 함께 불꽃이 쏟아져 나와 오크의 머리를 덮쳤다. 오크는 불꽃을 맞고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때 또 다른 비명소리가 로스의 앞쪽에서 들려왔다. 로스가 해머를 든 오크와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칼을 빼어들고 달려오던 오크의 비명소리였다. 그는 화살을 가슴팍에 맞고 쓰러진 오크의 칼을 뺏어 들고 양손에 칼을 쥐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공중으로 날려버린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에서 오크를 덮쳤다. 화살은 오크의 어깨를 뚫고 가슴까지 깊게 박혔다.


"히야. 대단한데! 이런 것까지 노린 건가?"


쓰러진 세 명의 동료를 보고 놀라서 한놈의 오크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 오크를 보고 칼라스가 로스에게 죽이라 외쳤지만, 로스는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화살을 맞고 쓰러진 오크에게 걸어갔다. 아직도 바닥에 뒹굴고 있는 오크의 몸에서 화살을 뽑았다. 화살이 뽑혀 나오면서 더욱 많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오크는 더욱 큰 소리의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 꿈틀댔다. 로스는 화살이 손상되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화살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오크를 뒤로하고 다시 숲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조우한 오크였지만, 네 명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제법인데! 나 살짝 감동했다. 재미난 전투 방식이야."

'나도 너의 힘에 익숙해져야겠지만 너도 익숙해지라고.'


숲이 점점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로스는 론페즈 봉우리가 있는 산맥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높아지는 경사를 가벼운 몸놀림으로 나무 사이를 헤집으며 빠른 속도로 오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매일 올리기로 다짐했는데, 생각치 못한 집안 일로 이틀간 올리지도 못했네요. 보고 계시던 분들께 너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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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덴브와 랜서 (2) +4 16.04.23 182 2 21쪽
15 덴브과 랜서 (1) +4 16.04.23 173 2 17쪽
» 북쪽으로 가는 여정 (5) +3 16.04.21 230 2 21쪽
13 북쪽으로 가는 여정 (4) +2 16.04.18 175 2 21쪽
12 북쪽으로 가는 여정 (3) +2 16.04.17 237 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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