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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군 님의 서재입니다.

루미네라스 연대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도라군
작품등록일 :
2016.04.10 10:35
최근연재일 :
2016.05.0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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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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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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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왕위 계승식 (5)

DUMMY

점점 여름이 다가오는 따듯한 날씨와 적당한 습도, 하늘마저 화창한 날씨. 왕위 계승식이 열리는 헬리브의 왕국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것 같았다. 왕위 계승식이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나 남아있었지만, 왕성 앞에 설치된 월대를 시작으로 시가지까지 이어진 대로에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왕위 계승식을 위해 화려하게 만들어진 넓은 월대에 왕궁 소속 광대들이 나와서 다양한 장기를 뽐내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다른 왕국과 공국에서 새로운 왕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귀빈들도 광대들을 쳐다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작년 가을 보데만 공국으로 시집 간 시이드라 공주도 참석하여 광대들의 재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로스는 자신의 부하 두 명을 시켜 월대를 중심으로 그들에게 부여된 근위 병사 20명과 함께 위치를 고수케했다. 월대에 어떤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가 없는지 감시하고 안전사고를 막기 위함이었다. 덴브와 필라드 왕자와 함께 의복을 정비하고 있었다. 로스는 왕자의 대기실 앞에 병사들을 배치시키고 필라드 왕자의 방에 있었다. 필라드 왕자는 의복이 다소 불편한 부분인 있는지 재단사와 의복을 손보고 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로스는 긴장의 끈을 잠시도 놓을 수 없었다.


그때 손목에 두른 팔찌에서 빛이 났다. 그것은 마법 협회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장비로 팔찌를 착용한 자들끼리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장비였다. 석연찮은 사건으로 몰락한 헤단 가문의 마법사가 개발한 장치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로스는 빛이 나는 팔찌를 귀에 가져다 대자 팔찌에서 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중간보고드립니다. 아직까지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계속 예의 주시하겠습니다."

"그래. 계속 수고해주게."


로스의 지시로 밴은 왕위 계승식 동안 듀라드 왕자를 호위하며 그들을 관찰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듀라드 왕자 보다 호위무사인 파슈가 자신이 있는데 호위부대를 배치하는 것에 반대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파슈는 되려 더욱 안전해질 것이라며 그들을 곁에 두게 했다. 로스는 파슈의 예상외의 반응에 놀랐다. 그가 알고 있는 파슈라는 사내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사내여서 병력 배치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가 반대해도 로스는 반드시 듀라드 왕자의 곁에 호위부대를 배치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소 마찰이 있을 거라는 우려 정도를 했었는데 별 탈 없이 병력을 배치할 수 있어 그로서는 다행이었다.


필라드 왕자의 방 바깥에서 전령이 외치는 소리가 났다.


"국왕 폐하 납시오!"


필라드 왕자와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국왕을 맞이했다. 방문이 열리고 근엄한 자태와 용포를 두른 왕이 들어왔다.


"편히 있도록 하게."


왕의 나지막한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왕은 평소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이었다. 여전히 마른 몸이었으나 용포를 두르고 화려한 의복을 갖춘 왕의 모습은 늘 회의에서 바라보던 힘없는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왕관을 쓰고 붉은 용포를 두르고 황금색 의복을 갖춘 왕은 500년의 역사를 가진 가장 강력한 국가 헬리브 왕국의 국왕다운 근엄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왕은 필라드 왕자의 의자에 앉았다.


"그래. 이제 곧 왕이 바뀌는 순간이 오는구나. 마지막으로 왕자로서 너를 보러 왔다."

"폐하. 상왕으로 되셔도 저에게는 변하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록 장자가 있지만 필라드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에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너의 늘 변함없는 현명함 때문이겠지. 염려라는 것은 너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님을 국민만큼이나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과찬이십니다."


왕이 말하는 필라드 왕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로스도 잘 알 것 같았다. 일순간 로스는 왕의 말처럼 멋진 왕자의 모습을 한번 쳐다보며 필라드 왕자의 호위무사를 수행하게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늘 그런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이 순간의 감정은 평소와는 조금 남다른 것이었다. 자신이 지키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것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대륙의 많은 왕국의 호위무사들과 역사에 기록된 많은 호위무사들 중에 자신이 모시는 이가 왕이 되는 순간을 함께한 호위무사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왕은 왕자와 몇 마디의 대화를 더 나누고 방에서 나갔다.


재단사와 다시 의복의 이곳저곳을 고쳐 잡으며 왕자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어느덧 시간도 왕위 계승식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로스는 이제 곧 월대 쪽으로 이동해서 행사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로스는 병사들에게 왕위 계승식을 위해 준비한 대형으로 이동하여 위치에 대기할 것을 명령했다.


"왕자님 이제 준비하셔야 합니다."

"그래. 그럼 이제 가보도록 할까?"


필라드 왕자는 황금색 의복을 갖추고 한쪽에 화려한 칼을 찼다. 그리고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의 얼굴과 달리 필라드 왕자도 긴장한 듯 보였다. 방을 나서는 필라드 왕자를 따라 로스도 방을 따라나섰다. 긴장한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였는지는 몰라도 연미복 차림으로 왕자의 뒤에 서니 어딘가 굉장히 낯선 기분이 많이 들었다. 로스는 팔찌를 이용해 밴과 나머지 부하들이 제자리에 대기 중인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왕자가 왕위 계승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왕위 계승식에 월대를 목적지로 군단의 열병식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근위 부대가 열병식의 선두에 섰다. 이어 중무장을 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의 제1 군단과 제2 군단, 궁수부대, 정찰부대, 지원부대가 뒤따라 당당한 걸음으로 대형을 갖춰 자신들의 자리에 위치했다 그 뒤로 헬리브 왕국의 강력한 힘의 상징인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이 화려한 외복을 갖춰 입고 열병식의 마지막 장식했다.


열병식의 웅장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중에는 분명히 그들의 모습을 보고 군에 대한 환상과 기사에 대한 꿈을 꾸고, 위대한 마법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열병식이 끝나 왕성을 등지고 월대를 중심으로 대형을 갖춰 집결했다. 집결한 부대 뒤로 웅장한 성이 자리 보였다. 웅장한 성앞에 나열한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은 웅장한 모습에 압도되었다. 마치 위대한 화가가 그의 영혼과 맞바꿔 그려낸 한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열병식이 모두 끝나자 곧 왕성의 입구에서 무용수들과 악사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경쾌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에 맞춰 화려한 복장으로 춤을 추던 무용수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홀렸다. 왕위 계승식이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무용수들의 화려한 공연이 모두 끝나자 왕성의 망루에서 폭죽이 터졌다. 밤에 터지는 폭죽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마법이 섞여있는 헬리브 왕국의 폭죽은 환한 낮에도 독특한 빛깔을 내며 화려한 그림을 하늘에 수 놓았다. 왕위 계승식을 지켜보던 귀빈들과 헬리브의 국민들이 아름다운 폭죽에 더 큰 환호성을 질렀다.


폭죽이 모두 터지고 나자 8명의 병사가 월대에 올랐다. 그리고 한 남자가 월대의 중앙에 섰다. 로스가 근위 대장이 되기 전까지 국왕을 지키던 근위 대장이자 국왕의 호위무사였다. 그가 크게 외쳤다.


"국왕 폐하 납시오!"


우렁찬 그의 소리가 울려펴지자 환호하던 모든 국민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모든 소리가 멈추자 곧 국왕이 성문에서 나와 월대의 중심에 올랐다. 월대의 중심에 선 국왕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일제히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큰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국왕은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왕국의 역사를 자랑하고 이런 위대한 왕국을 물려주게 되어 자신으로서는 감회가 남다르단 내용의 연설을 시작했다. 또 전쟁이 있었고, 국민들의 희생에 가슴이 아픈 나날을 보낸 것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내용을 담담하게 국민들에게 말했다. 국왕의 그런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국민들도 있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날 준비를 하는 국왕에 걸맞은 훌륭한 연설이었다.


헬리브 왕국의 500년 역사상 국왕이 상왕이 되고 그의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국왕이 승하하고 왕위가 계승되는 때가 많았기에 왕위 계승식은 늘 엄숙하고 침통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왕위 계승식이 치러진 이날은 보통 이들도 경험하기 힘든 축복스러운 행사였다.


국왕의 연설이 끝이 나고 이제 왕위 계승식의 주인공인 필라드 왕자의 차례가 왔다. 왕자는 성문에서 나와 월대를 한 바퀴 돌며 귀빈과 국민들에게 인사한 뒤 다시 시가지의 대로 쪽으로 반바퀴를 더 돌아 국왕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서 월대의 중심으로 이동해 왕위를 계승 받게 된다. 월대의 중앙에서 왕자에게 국왕이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왕의 상징인 왕관을 벗어 왕자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왕위 계승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왕이 된 필라드 왕자가 새로운 왕으로서 첫 연설을 통해 왕국에 대한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행사가 모두 끝이 난다. 필라드 왕자가 말위에 올라 근위 부대와 함께 성문 앞에 섰다.


선문에 왕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필라드 왕자가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백마를 타고 성문을 출발하며 사람들에게 고귀한 자태를 드러냈다. 왕위 계승식의 마지막 왕자의 행차가 시작되었다. 행사의 주인공인 왕자를 보다 위대하게 보이기 위해서 뒤따르는 근위 부대는 말을 타지 않고 도보로 함께 왕자의 뒤를 따라 월대의 주변을 걸었다.


백마에 올라탄 필라드 왕자는 월대를 천천히 돌며 사람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화답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왕자가 내딛는 길 위로 꽃을 내려놓으며 그를 축복했다. 별다른 문제없이 어느덧 월대를 한바퀴 돌아 다시 시가지의 대로 쪽으로 이동했다. 월대를 정면으로 국민을 등 뒤에 두고 국왕을 마주 보는 위치에 선 필라드 왕자의 눈에 수많은 병사들이 보였고, 그들 뒤로 자신이 짊어질 왕성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아아. 헬리브 왕국이여.'


적잖은 감동을 느낀 필라드 왕자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필라드 왕자는 말에서 내려 3단으로 조성된 월대를 큰 걸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로스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한계단. 두 계단. 세 번째 계단을 올라 월대의 중심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로스의 몸이 옥죄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헉하고 숨이 막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해봤지만 고통이 극심했다. 로스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로스의 단말마 같은 외침에 필라드 왕자가 뒤돌아 봤다.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은 로스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로스의 뒤를 따라 일렬로 늘어섰던 근위 부대가 로스의 모습을 보고 대형을 펼쳐 월대를 둘러싸는 진형으로 펼쳐졌다. 웅성대는 사람들이 돌발 행동을 할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로스의 가슴은 터질 것 같이 옥죄어고 몸이 뜨거워졌다. 로스는 재빨리 의복의 앞 단추 부분을 잡고 겉옷을 벗어냈다. 그러나 세 장의 옷 중 두장을 풀어 헤쳤는데, 튜닉이 벗겨지지 않았다.


튜닉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어떤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밴의 보호 마법이 발생된 것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되려 튜닉의 안쪽에 새겨진 문양대로 빛이 나며 문양이 몸을 파고드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로스는 극심한 고통에 피를 토했다. 왕자는 피를 토하는 로스에게 다가가려 했다. 로스는 안간힘을 쓰며 왕자에게 오지 말라는 손짓을 하고 크게 외쳤다.


"모두 왕자님을 감싸라!"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보기 위해 앞쪽으로 몰려나왔다. 근위 부대가 월대의 가장자리에서 몰려나오는 몇몇 사람들을 막느라 로스의 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랜서가 막고 있던 사람을 내버려 두고 급히 로스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로스의 몸 전체에 푸른색의 강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푸른 빛은 소용돌이 형태로 몸의 곳곳을 휘감기 시작했다.


'보호 마법이 아니다. 이건!'


로스는 직감했다. 소용돌이치는 푸른빛에 검은 잉크가 퍼지듯 검은 형체가 함께 섞이며 요동쳤다. 요동치는 알 수 없는 힘은 로브에 새겨진 곳곳의 문양 위로 굽이치며 로브에 새겨진 것들과 함께 몸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살을 후벼파듯 몸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어떤 마법인지는 몰라도 심각한 상태라고 직감했다. 로스는 있는 힘껏 몸을 돌려 밴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를 보았다. 로스의 왼쪽의 월대 끝에 서 있던 밴을 찾았다. 밴이 여태껏 본 적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이었다.


'대장님. 달리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연미복을 준비하겠습니다. 정 걱정이 되신다면 제가 보호 마법을 아로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대장님과 함께 수행하는 저희들을 믿고 부디 위상을 살려주시길 바랍니다.'


밴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단 한번 근위복을 입지 않았는데... 단 한순간, 단 한 벌의 연미복이 나를 결국 무너뜨리는구나. 제기랄!'


로스가 괴로움에 가슴을 쥐고 계속 튜닉을 뜯어내려 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달려오고 있는 랜서의 움직임이 느릿느릿 보였다. 그때 몸 안에서 큰 울림이 느껴졌다. 로스는 단박에 마법의 종류를 깨달았다. 튜닉에 새겨진 것은 로스의 몸 안에 마법의 어떤 것을 소환시켜 빙의시키는 마법 같았다. 소환사들이 맺는 계약을 통한 소환 방법이 아닌 마법으로 강제로 불러내는 소환 마법이었다.


'몸 안에서 소환되는구나. 마력이 주입된다...'

로스는 손에 힘을 집중시켜 모든 소환수와의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이대로 마법의 어떤 것이 몸 안에 소환되어 버리면 마력과 상반된 힘을 가진 소환수들이 강제적으로 몸 바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것만은 막고자 로스는 있는 힘껏 손에 집중시켜 소환수들을 모두 계약 해지시키고 자유로 풀어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몸안에 무엇인가가 소리쳤다.


'늦었어. 네 몸은 이제 내 것이다!!'


피부가 터져 나오면서 몸의 곳곳이 꿈틀대고 있었다. 소환된 것에 의해 마력이 주입되자 로스의 소환수들이 일제히 마력에 반응해 몸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로스는 너무 늦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소환수와 계약을 해지하기엔 시작이 부족했다.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필라드 왕자를 쳐다봤다. 필라드 왕자도 로스와는 다른 시간 안에 있는 사람처럼 천천히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히 달려오고 있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로스에게는 천천히 다가오는 것으로 느껴졌다. 로스는 있는 힘껏 왕자에게 떨어지려 애썼다.


'와...왕자님... 피하...셔야 합니다...'


피를 토하며 로스가 왕자에게 말을 하려 노력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공중으로 떠오른 로스의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휙 돌았다. 몸이 회전하는 그 짧은 찰나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달려오는 랜서가 보이고, 멀리 듀라드 왕자 곁에서 서있는 차가운 얼굴의 밴도 보였다. 놀란 표정의 드벤과 비명을 지르는 듯한 시이드라 공주도 보였다. 그리고 월대의 한 가운데서 근위 부대에 부축을 받는 국왕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지크리트가 보였다.


'지크리트!!'


로스는 나오지 않는 소리를 외쳤다. 지크리트의 모습이 눈에 보였을 때 그는 손가락 두개가 로스를 향해 있었다. 모두가 다른 시간에 갖힌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지크리트만은 로스와 같은 시간 안에 있는 듯 보였다. 지크리트의 그의 손가락이 왕자가 있는 곳으로 휙 하고 움직였다. 아마도 이 순간 그 모습을 본 사람은 로스밖에 없었을 것이다. 로스는 지크리트의 손가락에 방향대로 몸이 붕 떠서 왕자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몸 안에서 모든 것이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터져 나온 소환수들은 괴로운 듯 비명까지 지르며 빠르게 날아갔다. 그중 몇 마리의 소환수가 왕자의 몸을 관통하고, 팔을 날아가게 만들었다. 허벅다리를 뚫고 지나가는 소환수도 있었다. 로스는 피눈물을 흘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왕자가 부채를 크게 폈다. 그리고 남은 한쪽 팔을 휘둘러 로스의 한쪽 어깨를 크게 내리쳤다.


'어째서 저에게 그것을!'


로스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 순간에도 반쯤 뜯겨나가버리고 남은 몸 안에서 계속해서 소환수가 튀어나와 왕자를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왕자의 남은 팔마저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미 발동된 부채에서 바람이 일더니 하늘에서 한줄기의 빛이 로스에게 쏟아져 내렸다. 쏟아지는 빛 줄기를 받으며 로스의 몸이 점점 투명해졌다. 순간이동 주문이 발현된 것이다.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로스는 지크리트를 바라봤다. 지크리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었다.


왕위 계승식은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병사들이 필라드 왕자가 있던 곳으로 달려왔다. 랜서가 손을 뻗어 두팔을 잃고 온몸에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 필라드 왕자를 팔로 안에 붙잡았다. 이어 듀라드 왕자 옆에 서 있던 밴이 월대로 달려 올라와 근위 부대에게 소리치며 명령을 내렸다. 밴의 명령을 듣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근위 부대가 밴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왕자를 안은 랜서를 둘러싸고 왕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벽을 만들었다.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도 함께 월대 중심을 둘러쌓았다. 모두들 충격적인 상황에 놀라 비명을 지르거나 울고 있는 국민들도 있었다. 모두들 왕자를 외치며 울었다. 국왕은 기절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근위 대장이 왕자를 죽였다!"


시민들 사이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에 따라 몇몇의 사람들도 같은 소리를 내 지르며 흐느꼈다.


작가의말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 기분입니다. 참 오랜 길을 걸어 이제 시작의 글을 마쳤네요. 

글 소개에 적혀있는 역적이 된 남자의 이야기가 8만자를 쓰고야 시작될 줄은 저도 몰랐네요.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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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덴브과 랜서 (1) +4 16.04.23 173 2 17쪽
14 북쪽으로 가는 여정 (5) +3 16.04.21 230 2 21쪽
13 북쪽으로 가는 여정 (4) +2 16.04.18 175 2 21쪽
12 북쪽으로 가는 여정 (3) +2 16.04.17 237 2 25쪽
11 북쪽으로 가는 여정 (2) +2 16.04.16 230 2 22쪽
10 북쪽으로 가는 여정 (1) +2 16.04.16 168 2 24쪽
» 왕위 계승식 (5) +4 16.04.14 202 3 19쪽
8 왕위 계승식 (4) +2 16.04.13 128 2 18쪽
7 왕위 계승식 (3) +2 16.04.13 116 2 17쪽
6 왕위 계승식 (2) +2 16.04.13 229 3 21쪽
5 왕위 계승식 (1) +2 16.04.12 217 2 11쪽
4 그림을 그리는 아이 (4) +2 16.04.11 158 2 20쪽
3 그림을 그리는 아이 (3) +2 16.04.11 284 2 32쪽
2 그림을 그리는 아이 (2) +2 16.04.10 154 2 23쪽
1 그림을 그리는 아이 (1) +9 16.04.10 300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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