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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군 님의 서재입니다.

루미네라스 연대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도라군
작품등록일 :
2016.04.10 10:35
최근연재일 :
2016.05.0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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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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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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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그림을 그리는 아이 (1)

DUMMY

야심한 시각에 누군가 방문을 두 번 두드렸다. 왕세자 필라드 왕자를 호위하는 근위대장 로스의 방이었다.


"대장님. 덴브입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마른 체형의 검은 의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덴브는 30대 중반의 중년으로 빛나는 금발에 그만큼이나 황금색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왕자의 집사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왕자님께서 잠시 방으로 들라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해서 가겠으니, 먼저 돌아 가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덴브가 방을 나가자 로스는 왕가를 상징하는 짙은 푸른색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왕자가 직접 하사한 근위복이었다. 자신을 믿고 내려준 근위복인지라 늘 왕자를 만날 땐 근위복을 갖춰 입었다. 심지어 근위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연례행사 등에도 로스는 연미복 대신 근위복을 입었다.


근위복을 갖춰 입고 그 위에 가볍게 제작된 갑주를 착용했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활을 등에 메고 1큐빗(성인 남자의 중지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 길이의 검도 허리에 찼다.


복장을 모두 갖춰 입고 야심한 밤의 복도를 가로질러 왕자의 방으로 이어진 회랑을 향했다. 회랑은 천장이 없는 형태로 지어져 있었는데, 유일하게 왕궁에서 천장이 없는 곳이었다. 열 걸음마다 왕가의 역사를 양각으로 조각해둔 한 아름은 족히 넘는 새하얀 대리석 기둥이 늘어져 있어 웅장하고 널찍한 회랑이었다. 기둥마다 걸어둔 마법석의 빛이 밤인데도 훤하게 회랑을 비추고 있었다. 3일 후면 보름이라 달도 마법석 못지않게 환하게 회랑을 비추고 있었다.


로스는 2년 전 이 회랑에서 왕자에게 근위복을 하사받았다. 왕자들은 호위무사를 2명 이상 가지지 못했지만, 왕세자로 책봉되면 호위무사를 8명으로 확대하고 한명의 대장을 두도록 되어 있었다.


헬리브 왕국에는 두 왕자가 있었는데, 적장자였던 첫째 왕자 듀라드의 행실이 좋지 않아 왕세자로 책봉이 되지 못하는 바람에 둘째 왕자인 필라드 왕자가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로 인해 2명이던 호위무사는 8명까지 확대되어 분대로 구성하게 되었고, 제1 호위무사였던 로스는 호위무사의 분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왕가의 전통대로 왕세자의 호위무사 분대장은 왕가의 근위대장을 함께 수행해야 했다. 그런 처사는 후에 왕위를 물려받았을 때 약해질 수 있는 군력을 사전에 보강함으로 자연스럽게 권력의 중심이 되도록 하기 위한 왕가의 오랜 전통이었다.


루미네라스 대륙에 가장 큰 왕국으로 자리 잡은 헬리브 왕국의 근위대장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의 자리였다. 헬리브 왕국의 근위대장은 대대로 불의 민족들이 왕국이 도맡아왔다. 불의 민족은 강력한 불의 마법을 앞세운 마법사들이 많았다. 거대한 화염 구를 날리고 해일을 일으키며, 정신과 육체를 순식간에 파괴하는 마법사들은 언제나 전투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이런 전투의 유리함을 잘 알고 있기에 헬리브 왕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법 협회를 창설하고 마법 학과를 설치하여 마법을 연구해왔다. 이미 그전부터 보병과 기병만으로도 강력한 군대였는데 잘 갖춰진 마법사가 더해지자 명실상부 루미네라스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 될 수 있었다.


마법 협회의 고위직에는 불의 민족 출신의 마법사가 많았다. 왕국의 다양한 민족의 마법사들이 모인 협회였지만, 그들 중 가장 파괴력이 있는 마법들을 구사하는 건 역시 불의 민족 출신 마법사 들이었다. 그들을 빠르게 협회의 고위직 자리를 차지하며 마법사 협회의 중심에 불의 민족의 힘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왕자의 호위무사가 되는 자들도 마법 협회의 불의 민족 출신 마법사들이 많았다. 오랜 기간 그들은 왕가와 자신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왕자의 호위무사 직을 잘 이용해 왔다.


필라드 왕자의 호위무사가 되어 근위대장에 오른 로스는 바람의 민족 출신이었다. 이는 여러모로 헬리브 왕국 오랜 역사에 없던 드문 일이었다. 바람의 민족은 대체로 그들 민족의 특기대로 정찰 임무를 하거나 궁수로서의 임무를 맡아왔다. 바람의 민족들 출신의 마법사들은 파괴력이 있는 마법보다는 이동력을 올려주거나 방어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들이었다.


마법 협회에 속해있는 바람의 만족 출신 마법사들은 그들의 특기대로 다른 마법사의 마법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지원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많은 마법사들은 그들을 자신들을 지원하는 마법사 정도로 생각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특히 중앙을 차지한 불의 민족 마법사들이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다가 그는 마법사도 아닌 소환수를 사용하는 소환사였다.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마법사들이 군력의 척도가 되는 것이 역사가 되어버린 헬리브에서 소환사는 더욱 낮은 지위의 존재들이었다. 이 때문에 로스가 서부 전방 초소의 정찰부대 실피의 부대장에서 왕자의 호위무사로 발탁되어 올 때부터 왕실의 고위 마법사들은 그를 예의주시 해오고 있었다.


적장자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어야 할 듀라드 왕자의 호위무사는 모두 불의 민족 출신의 마법사였지만, 늘 주색에 빠져 방탕한 삶을 이어가던 그였기에 왕도 국민들도 첫째 왕자를 좋게 보진 못했다. 자칫 그가 왕세자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려해 마법 협회의 고위직들도 무단히 노력했지만 그의 행동을 고칠 수는 없었다.


그런 첫째 왕자와는 반대로 둘째 왕자 필라드는 만인에게 사랑받는 왕자였다. 늘 공부와 훈련에 매진하며 문무를 두루 갖춘 필라드 왕자는 연례행사에도 잘 나오지 않는 듀라드 왕자와는 달리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며 국민들 앞에 자주 나타나 왕자의 위엄을 보여왔다. 헬리브 국왕은 자연스럽게 왕세자로 필라드를 책봉했다. 적장자인 듀라드 왕자가 왕세자에서 제외되자, 필라드 왕자와 그의 호위무사였던 로스에게 왕국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적장자였던 듀라드 왕자의 제1 호위무사는 마법 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지크리트의 아들 파슈였다. 반해 필라드 왕자의 호위무사는 바람의 민족 출신이자 정찰병이었던 로스가 제1 호위무사였고, 불의 민족이지만 아직 마법 협회에 등록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법사 바그가 제2 호위무사였다. 마법 협회는 온갖 노력으로 호위무사 중 한 명이라도 불의 민족 출신의 마법사를 넣는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생각대로 그가 제1 호위무사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왕세자가 된 왕자의 제1 호위무사가 근위 대장직을 수행하며 왕가를 보호한다는 것의 의미는 가장 왕권과 긴밀한 위치에 설수 있다는 것과 왕권의 회의에 발언권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근위대장이 헬리브 왕국의 모든 군을 통솔하는 것은 아니었다. 각각 군단에는 사령관과 장군들이 별도로 있기 때문에 명령체계는 분명히 다르게 존재했지만, 왕가의 위협이 생긴다는 조건을 이용하면 언제든 근위대장은 왕가의 보호를 위해 군단의 병사들과 장군들도 자신의 아래에 둘 수 있었다. 심지어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도 근위대장의 명령에 따라 왕권을 수호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이는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군과 마법 협회, 왕권까지 아우르는 강력한 지휘력이었다. 그 때문에 근위대장이라는 직책은 전사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명예스러운 자리였다.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은 오랜 기간 근위 대장직을 수행하며 마법 협회의 힘과 왕가의 힘, 거기에 왕국의 군사력까지 모두 자신들의 휘하의 것들로 활용해왔다. 그런 오랜 기간 누적된 이점이 흔들릴까 마법 협회의 고위직과 귀족들은 온갖 방법으로 자신들의 마법사를 호위무사로, 그리고 근위대장으로까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듀라드 왕자가 왕세자가 되지 못하고 필라드 왕자가 왕세자가 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나를 지켜야 하는 자를 등용하는 것에 내가 가장 믿는 자를 선택하겠다는데 그것이 어떤 문제가 된단 말이오.'

2년 전 왕자가 이 회랑에서 모두에게 했던 말이었다. 헬리브 왕국에서 만인에게 사랑을 받아오던 왕자였기에 협회도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 했다. 결국 2년 전 이곳에서 로스는 근위대장의 근위복을 입을 수 있었다. 로스는 근위복을 하사받은 그날부터 왕자의 앞에 나설 때에는 늘 근위복만을 착용했다. 언제 불현듯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 자신을 믿어준 필라드 왕자의 믿음을 보답하는 자세 중 기본이 되는 것이라고 로스는 생각했다.


회랑을 지나 왕세자를 위해 마련된 별채에 당도했다. 왕자의 침소 앞에는 4명의 병사가 주둔해 있었다. 그들은 로스의 부하 병사로 로스가 직접 발탁하여 뽑은 인재들이었다. 인재를 등용하고자 할 때 불의 민족 출신의 마법사를 넣고자 했었다. 강력한 존재였던 그들은 꼭 필요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바람의 민족인 로스의 밑에서 일할 수 없다며 완강히 고사하는 바람에 불의 민족 출신의 마법사는 분대에 넣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오랜 기간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바그도 분대로 구성되는 과정에서 제2 호위무사 직을 내려놓고 분대에 합류할 수 없다고 로스에 말했다. 아마도 바그가 로스의 발탁을 고사한 것은 집안에서의 반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불의 민족은 순수한 자신들의 혈통만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민족 출신이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민족끼리 결혼을 하면 그 힘이 섞이면서 분산되고 약화되기 마련인지라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여 강력한 힘을 오랫동안 이어가는 것이 그들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친척, 혹은 형제들끼리의 결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불의 민족은 왕국에 많이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그들만의 힘이 응집된 다소 특별한 집단이 되어갔다. 물론 루미네라스 대륙의 곳곳에는 다양한 불의 민족들이 있긴 하지만 오랜 기간 마법 협회의 양분을 먹고 자란 그들과는 질적으로 힘의 차이가 달랐다.


바그는 불의 민족 마법사가 창립한 마법사 협회의 고위 관리자의 아들이었다. 아직은 나이가 어리고 막 마법 협회에 등록한 수습 마법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좋은 집안의 환경을 바탕으로 필라드 왕자의 호위무사가 될 수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호위무사로 발탁되어 로스와 왕자의 호위무사 역할을 오랜 기간 수행한 탓에 두 사람의 친분은 두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는 집안의 자존심을 넘어서진 못 했다고 로스는 생각했다. 호위무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명예에도 크게 실추되는 일이었기에 로스로서는 그 점이 무척 안타깝게 여겨졌다.


결국 유일하게 함께 할 수 있던 불의 민족 출신의 전사가 무산되자 로스는 나머지 분대를 어쩔 수 없이 다른 인원으로 채워야 했다. 물론 필라드 왕자가 강제로 발탁해도 되는 것이었지만 되려 그런 등용은 긴밀하게 상호 협조해야 하는 분대에는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모든 결정을 로스에게 위임했다. 결국 분대는 물의 민족 출신 마법사와 기사와 정찰병, 사제로 구성되었다. 이를 두고 다소 전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했지만, 이를 간단히 묵살할 만큼 로스의 전투 능력과 근위대장으로서의 업무 능력은 대단했다. 아마도 이런 점이 더욱 불의 민족 마법사들에게는 거슬리는 점이 되어갔다. 세력을 약화시키면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는 강력한 소환술과 전투력으로 숱한 임무를 문제없이 이끌며 자리를 지켜냈다.


"대장님 오셨습니까. 안에서 왕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물의 민족 출신인 부분대장 밴이 로스를 알아보고 말했다. 밴은 물의 민족 출신답게 치유술이 대단하고 군중 제어술이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는 호위무사가 되기 전에 몇몇 임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두각을 나타내던 마법사였다. 로스는 바그가 호위직을 고사하고 호위무사를 그만두자 그를 바로 부대장으로 선발했다. 그렇게 부분대장이 된 밴은 로스가 임무로 자리를 비울 때에도 문제없이 호위부대를 이끌었다.


분대는 로스를 제외하고 총 8명으로 구성되고 각각 보름달을 주기로 4명씩 불침번의 임무를 교대로 수행한다. 그리고 로스는 8명의 부대 중 불침번 임무를 담당하는 4명을 제외하고 4명의 병력으로 주간 임무를 수행한다. 물론 특별한 사항이 있을 때에는 주간에 불침번 조도 임무에 투입되는 때가 있다. 하지만 로스가 근위대장을 맡은 2년간 그런 일은 단 한차례도 있지 않았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기보다는 실력으로 그런 사태를 만들지 않았다. 심지어 근위대장에게 주어지는 다른 부대의 병사를 자신의 휘하로 임시 편성할 수 있는 징집 권한을 사용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모두의 걱정과 달리 전력이 약할 것이라는 우려를 과감히 없앨 수 있었다.


"피곤할 텐데 고생이 많다. 곧 보름이 되어가니 그때까지만 더 고생해주게."

"별말씀을요. 대장님께서 더 고생이 많으신데요."


방문을 열어 왕자의 침소에 들어섰다. 마법석이 훤히 밝혀주는 집무용 테이블에 왕자가 앉아있었다. 검은 흑발을 단정히 묶고 단아한 복장의 왕자가 턱을 괴고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마법석의 특유의 불빛이 아름다운 그의 얼굴을 보다 신비롭게 비춰주고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연로한 왕이 병까지 생기면서 자신의 업무를 왕세자에게 위임하기 시작했었다. 필라드 왕자는 국왕을 대신하여 안건이나 상소를 확인하고 서류에 결재를 하는 등의 업무를 이어가며 늘 늦게까지 집무용 테이블을 벗어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왕자님 부르셨습니까?"

"아, 밤늦게 불러 미안하네. 그쪽에 앉게"


붉은 깃털로 장식된 펜을 내려놓으며 왕자가 말했다. 로스는 간단히 묵례를 하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곧 아버님께서 선왕으로 자리를 물러나시고 왕권을 위임해줄 모양이야."

"네. 얼마 전 회의에서 넌지시 들었습니다."

"아마도 다음번 보름이 되고 다음날 정오에 행사를 열어 국민들 앞에서 발표하실 모양인데, 그전에 꼭 자네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네."

"어떤 일이든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


왕자는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던 로스의 대답을 듣는 것만으로도 왕자는 늘 안심이 되곤 했다.


"그림을 그리는 한 아이가 있네. 10여 년 전부터 알던 아이인데, 왕실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아이지. 오랜 기간 그 아이를 후원해주었는데, 그 아이가 드디어 내 초상화를 완성했다고 하네. 그 아이를 자네가 데려왔으면 하네."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야 귀족이나 왕족에겐 흔한 일인지라 궁금할 것이 없었지만, 왕실이 잘 모르는 아이라는 점에 로스는 관심이 생겼다.


"제가 직접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델라스의 변두리에 있으니 자네라면 나흘 안에 데려올 수 있을 것이네."

"예. 알겠습니다."


델라스는 헬리브 왕궁에서 제법 남쪽으로 떨어진 작은 도시였다. 헬리브 왕국의 수도인 헬리브에서 말을 타고 하루를 넘게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자네가 꼭 조심해야 할 것은 이 아이를 누구도 그 알 수 없도록 은밀히 데려오게. 또 아이와 초상화의 존재를 모두에게 비밀로 해주었으면 하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왕자는 깍지를 낀 손을 배 위에 올리고 의자에 깊이 몸을 젖혔다. 그리고 눈을 살며시 감으며 피곤한 듯 로스에게 말했다.


"아마도 조만간 사건이 하나 생길 것 같은 기분이야. 사실 오랫동안 불안감이 있어왔는데, 왕권을 위임받을 때가 오니 더욱 그 불안감이 깊어지고 있어."

"괜한 걱정은 아닐는지요. 실제로 저를 통해 정리한 일들도 있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좋겠지만 실제로 몇 가지 정황을 확인하고 나니 더욱 그 불안이 깊어졌네. 그 아이를 데려오면 큰 전력이 될 것이니 아마도 대처가 가능해질 것 같아서 자네를 부른 것이네."

"전력이라면 어떤 능력이 있는 아이입니까?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아이는 아니라는 말씀 같습니다."

"그래. 그 아이에게는 조금 남다른 능력이 있네. 10년 전에 그 아이의 자질을 알게 되고 오랜 기간 후원하며 능력을 키워왔지. 이런 날을 대비해서 왕실의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게 말이지."


왕자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로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자네를 못 믿기에 자네에게도 비밀로 한 것은 아닐세. 다만 한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어서 말하지 않은 것이니 서운해하지 말게."

"왕자님의 생각을 제가 어찌 다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개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날이 밝는 대로 채비하여 떠나겠습니다. 바로 출발하면 행사 이틀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로스, 자네만 믿겠네."


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올리고 왕자의 방에서 나왔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라...'


많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왕자가 부여한 임무이니 더 이상의 궁금증은 실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로스는 왕자의 방문을 지키던 밴을 불렀다. 그리고 왕자의 방 옆에 위치한 근위병사의 내무실로 들어갔다. 내무실에는 나머지 4명의 병사가 잠을 자고 있었다. 내무실을 가로질러 근위대장 집무방으로 밴과 함께 들어갔다.


"왕자님께서 임무를 하달하셨다."

"지금 말입니까?"

"날이 밝는 대로 채비를 해 잠시 왕궁을 떠날 것이니 자네가 근위 대장직을 임시로 대행하고 있게."


밴은 의아한 눈빛으로 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왠지 말씀하시는 것이 혼자 가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왕자님께서 그리하라고 직접 지시하셨네."


밴은 팔짱을 끼며 걱정되는 말투로 로스에게 말했다.


"흠. 며칠 전만 해도 불의 민족 귀족의 거동이 수상하다며 조사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곧 왕위 계승식도 있고 한데, 혼자선 불안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로스는 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걱정 말게. 내 실력은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계승식도 불침번 교대 일도 지장 없이 다녀올 것이니 걱정 말게."

"누가 불침번 교대 일을 걱정한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임시로 한명 충원하고 저는 임시로 대장직을 수행하고 있겠습니다."


밴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로스는 내무실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갔다. 빠르게 이동을 위해 짐을 최소한으로 꾸리고 침대에 누웠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특별한 능력이라...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리 당부하시는지 직접 보면 알겠지.'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 간단히 식사로 대처할 요깃거리를 챙겨 애마 볼틴에 올라탔다. 볼틴은 처음 호위병사가 되었을 때부터 함께한 말로 속도가 빠른 날쌘 녀석이었다. 단숨에 왕궁을 벗어나 왕궁의 시가지를 내달렸다. 볼틴은 순식간에 왕궁의 시가지를 벗어났다.


작가의말

늘 열심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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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덴브와 랜서 (2) +4 16.04.23 182 2 21쪽
15 덴브과 랜서 (1) +4 16.04.23 173 2 17쪽
14 북쪽으로 가는 여정 (5) +3 16.04.21 230 2 21쪽
13 북쪽으로 가는 여정 (4) +2 16.04.18 175 2 21쪽
12 북쪽으로 가는 여정 (3) +2 16.04.17 237 2 25쪽
11 북쪽으로 가는 여정 (2) +2 16.04.16 230 2 22쪽
10 북쪽으로 가는 여정 (1) +2 16.04.16 168 2 24쪽
9 왕위 계승식 (5) +4 16.04.14 202 3 19쪽
8 왕위 계승식 (4) +2 16.04.13 128 2 18쪽
7 왕위 계승식 (3) +2 16.04.13 116 2 17쪽
6 왕위 계승식 (2) +2 16.04.13 229 3 21쪽
5 왕위 계승식 (1) +2 16.04.12 218 2 11쪽
4 그림을 그리는 아이 (4) +2 16.04.11 158 2 20쪽
3 그림을 그리는 아이 (3) +2 16.04.11 284 2 32쪽
2 그림을 그리는 아이 (2) +2 16.04.10 154 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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