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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군 님의 서재입니다.

루미네라스 연대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도라군
작품등록일 :
2016.04.10 10:35
최근연재일 :
2016.05.03 21:37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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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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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2쪽

그림을 그리는 아이 (3)

DUMMY

델라스에서 벗어난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아직 헬리브까진 한참을 더 가야 했다. 리베레아를 태우고 돌아가는 길은 혼자 왔을 때보다 더딘 길이 되었다. 그래도 서둘러 왔던 탓에 내일 저녁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숲을 벗어날 수 있어서 로스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왕궁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보다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스는 이쯤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마음먹고, 역참을 찾아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말을 빌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역참은 숙소를 제공함과 동시에 말을 쉬게 할수 있어 여관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을의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역참의 표지판이 보였다. 왕궁에서 공무를 돕기 위해 설치해둔 역참이었다. 역참의 문을 열고 역참지기를 불렀다. 복도 한편에 있던 문이 열리고 역참지기가 나왔다. 역참지지는 한눈에 로스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임무 도중 몇번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역참지기는 로스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로스는 근위대장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사랑하는 필라드 왕자였기에 더 유명해졌을 테지만 말이다.


역참지기에게 안내받아 안쪽의 가장 큰 방에 들어갔다. 여행자를 위해 2인용 침대가 있는 조촐한 방이었다. 역참지기는 이 방이 가장 좋은 방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더니 푹 쉬라면서 방에서 나갔다. 이런 마을에 가장 좋은 방이라고 해봐야 큰 기대를 하긴 어려운 법이다. 그럼에도 리베레아는 역참의 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싱글거리며 방에 들어왔다. 가장 안쪽에 비치된 침대를 리베레아에게 양보하고 바깥쪽 침대 옆에 마련된 책상의 의자에 앉아 펜과 종이를 꺼냈다.


"마을을 떠나 이런 곳에 머무는 게 처음이라 신이 좀 나는데요."


침대에 누운 리베레아가 들뜬 목소리로 로스에게 말했다.


"새벽에 바로 출발해야 하니 쉬도록 하세요. 왕궁에 들어가기 위해 정문으로 갈 수는 없으니 전령을 보내야겠네요."

"에? 정문으로 가면 안 돼요?"

"초상화를 그리러 왔다 해도 왕자님이 부른 사람이라면 결국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더욱이 저와 대동한다면 더욱 관심을 가질 것 입니다.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휴. 아쉽네요. 꿈에만 그리던 왕궁의 성문을 보지 못한다니..."


침대에서 이불을 똘똘 몸에 감아 이리저리 침대 위를 뒹굴며 리베레아가 볼멘 목소리를 했다.


"작년에 왕자님이 오셔서 기사님이 데리러 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요. 예쁜 드레스는 못 입더라도 화려한 왕궁은 늘 꿈에 그리던 것이니까요."

"그런가요? 왕자님을 만나고 나면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될지도 모르니 너무 낙심하진 마세요."

"그럴까요? 그렇다면 조금 힘이 나는데요."


로스는 무언가를 집중해서 쓰고 있었다. 리베레아는 그런 로스를 한참 쳐다보더니 이불을 감싼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기사님은 소환사라고 하시던데, 마법사가 되진 않았나 보네요."

"왕자님이 말씀하셨나 보죠?"


리베레아는 로스를 쳐다보며 다시 벌렁 침대로 누웠다. 아마도 들뜬 마음에 쉽게 잠을 잘 수 없는 듯 했다.


"아뇨. 공주님께서 말해주셨어요. 왕자님은 늘 제 그림을 보느라 정신없어하셨어요. 공주님도 물론 제 그림을 좋아해 주셨지만 주로 저랑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셨죠. 아참 공주님도 왕궁에 계신가요?"

"시이라드 공주님은 작년에 보데만 공국으로 시집을 가셨습니다."

"에? 이런. 인사도 못했는데 아쉽네요. 하아"


보데만 공국은 헬리브 왕국과 오랜 기간 동맹을 유지한 공국이다. 왕국이 되는 길보다 나라의 평화를 위해 공국으로 헬리브 왕국에 속하는 길을 택했다. 보데만 공국의 북쪽 산맥을 넘으면 바로 이슬란트 왕국이 있기 때문에 보데만 왕국으로 있는 것은 양쪽에 강대국을 끼고 있는 형세가 되어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 쉬운 길이 아니었다. 물론 강력한 헬리브 왕국과 교통이 더 유리했고 상대적으로 이슬란트 왕국보다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보데만 왕국은 왕위를 포기하고 헬리브 왕국으로부터 작위를 받아 공국이 되었다.


보데만 공국을 통치하는 알레스 보데만 공작의 외아들 바레스 보데만 공자가 청혼을 해 작년 가을에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다. 정략적인 결혼이긴 했지만 시이라드 공주도 보데만 공국의 공자를 싫어하진 않았다. 보데만 공작과 헬리브 왕실은 오래전부터 안면을 익혀왔기 때문에 시이라드 공주도, 또 시이라드 공주와 각별했던 필라드 왕자도 보데만 공국과의 결혼에 만족했다. 다만 보데만 공국은 북부지역으로 추운 곳이어서 그것을 염려해할 뿐이었다.


"언젠가 시이라드 공주님도 뵐수 있는 날도 오겠지요?"

"그럴 수도 있겠죠."


로스는 10년이나 왕가의 후원을 받아 온 리베레아의 정체가 궁금했다. 오랜 기간 후원을 해왔음에도 로스는 리베레아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시이라드 공주도 집사인 덴브조차 그녀를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녀에게 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정도였지만, 정작 로스는 한 번도 리베레아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리베레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헬리브 왕실에 세명을 제외하곤 없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가씨는 왕자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로스의 질문에 리베레아는 고개를 돌려 로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질문을 한 로스는 여전히 책상 위에 무언가를 적는 것에 열중해 있었다. 리베레아는 입술을 삐쭉 한 번 내밀더니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7살 때 전쟁이 났어요. 아버지는 왕궁에 고용된 화가였는데, 어머니와 함께 그림을 가르치기 위해 왕궁에 잠시 머물렀다고 해요. 그때 전쟁에서 돌아가셨다고 해요. 저는 할아버지와 델라스에 살고 있어서 무사할 수 있었어요."


십 년 전 헬리브 왕국에 큰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단순히 국가 간의 싸움을 넘어 구룡기의 전설인 용들까지 참전하여 큰 전투로 번졌다. 피해도 엄청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홉 마리의 용들이 루미네라스 대륙 곳곳에 자신의 둥지를 틀고 오랫동안 힘을 과시하며 군림해왔다. 인간의 힘을 훨씬 넘어선 그들은 어떤 면으론 인간에 신적인 존재가 되기도 했고, 반대로 공포의 대상이 되어 두려움의 결정체 이기도 했다. 인간이 도시를 만들고 살아가기 훨씬 전부터 그들은 대륙에 존재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힘은 언제나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아홉 마리의 용들을 구룡기 전설이라 불렀다.


아홉 마리의 용들 중에는 이런 인간들을 자신의 편의에 따라 공생의 대상으로 삼는 용들도 있었다. 인간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왕국으로까지 발전하면서, 몰락하지 않기 위해 아홉 마리의 용들 중 하나와 관계를 가지는 왕국들이 생겨난 것은 어쩌면 루미네라스 대륙에서 필연적인 것이기도 했다. 헬리브 왕국은 그 중 빛의 용 지크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크롤은 현명한 빛의 용이라고 불리며 인간들에게 우호적인 용이었다. 이런 우호적인 용들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신에 필적할 만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지크롤은 500년간 헬리브 왕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평화를 지켜주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모든 용들이 이렇게 인간에게 좋은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지크롤이 현명한 용이라고 불리며 헬리브 왕국과 오랜 유대관계로 지내는 것과 달리 불의 용 레스타는 파괴의 용이라고 불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던 레스타는 헬리브 왕국 서쪽 산맥을 넘어 펼쳐져 있는 사막을 뜨겁게 달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레스타로 인해 척박해져서 사막으로 변했지만 그런 곳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밴파드라는 이름의 왕국이 생겨났다. 사막에 지어진 왕국 밴파드는 본래 모래 부족으로 사막에서 생활하던 소수의 부족이었다. 사막에 많지 않은 오아시스를 점령하고, 그곳을 지나는 무역상을 약탈하며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던 부족에 지나지 않았다. 오랜 기간 부족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시간이 누적되다 보면 하나의 강대한 무리가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사막의 중심에 가장 큰 오아시스를 점령하고 있던 모래 부족 도적단이었다.


사막의 중심에서 가장 큰 도적단을 유지하며 무역상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모래 부족 도적단의 우두머리가 바뀌는 사건이 있었다. 밴파드라는 15세의 젊은 전사가 도적단의 두목이자, 자신의 양아버지였던 자를 살해하고 두목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젊은 나이에 우두머리가 된 밴파드는 자신에게 거스르는 이들도 잔인하게 숙청하고 도적단을 평정했다. 그 누구도 그의 막강한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도적단의 두목이 되어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게 되었지만, 밴파드는 그런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밴파드는 중앙의 오아시스를 떠나 3년간 넓은 사막을 돌며, 사막 곳곳의 오아시스를 기점으로 도적질을 하며 살아가던 모래 부족들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밴파드의 깃발을 걸게 하였다. 밴파드의 도적단은 부족의 입구에 밴파드이 깃발이 걸려있지 않으면 무차별적으로 습격했기에 알아서 밴파드의 깃발을 거는 부족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 만에 전 사막의 부족들을 통합하고 하나로 뭉친 밴파드는 스스로를 사막 왕이라고 칭하고 모래 부족을 왕국으로 선포했다. 이름하여 밴파드 왕국의 탄생이었다. 이후 밴파드 왕국은 도적질을 그만두고 사막을 지나는 자들에게 통행세를 받기 시작했다. 계속된 도적질로는 삶을 이어가는데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통행세를 내기만 하면 안전하게 무역상을 보호하며 목적지까지 그들과 함께 했다. 하지만 통행세를 내지 않은 무역상들은 그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했다. 또 어떤 왕국이든 돈을 지불하면 밴파드 왕국은 가장 강한 전력을 그들에게 용병으로 파견해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고, 몇몇 왕국의 정치적 암살이나 보복등을 대신하며 돈을 버는 용병 사업도 함께 했다. 그렇게 2년간 밴파드 왕국은 적잖은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왕국의 사업에 곧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문제가 된 시발점은 헬리브 왕국이었다. 무역상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내야 했던 통행세가 터무니 없었지만, 무역상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통행세를 지불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문에 무역의 대상이 되던 물건들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올랐고, 높은 가격으로 인해 무역을 대상으로 한 나라들에게 큰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헬리브 왕국도 무역이 왕국에 일정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밴파드 왕국의 사업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헬리브 왕국의 국왕은 남쪽 켈즈 항구를 정비하여 해상로를 새롭게 개편했다. 이를 통해 헬리브 왕국의 무역항로가 대대적으로 변경되었다. 사막을 통과하는 것보다 오래 거리는 무역항로였지만, 사막을 통과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무역로가 되었다. 켈즈 항구의 무역로는 곧 다른 나라에게도 새로운 무역항로로 떠올랐다. 다른 왕국들이 켈즈 항구에 주목하기 시작하자, 헬리브 왕국은 켈즈항구의 무역로를 모든 이들에게 값싸게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타국에도 무역로를 값싸게 제공하면서 항구가 번영하는 이득까지 가져가기 위함이었다. 물론 항구 이용료와 관세로 인한 이득도 보장이 되었다. 물론 이런 비용을 더해도 밴파드 왕국이 요구하던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무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곧 대부분의 왕국들이 사막을 이용하던 무역로를 버리고 헬리브 왕국의 새로운 무역로만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때문에 되려 헬리브 왕국은 강대국이 주변국에 베푸는 관용의 왕국이라는 긍정적인 인식도 함께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 더해서 새로운 무역로로 벌어들인 수익도 새로운 왕국의 수입원이 되었다. 동시에 켈즈 항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시들도 덩달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밴파드 왕국으로 인해 생겨난 뜻밖의 수확이었다.


또 한가지 수입원이던 밴파드 왕국의 용병 사업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대국과의 전쟁을 통해 이익을 보고자 전쟁을 일으키던 몇몇 나라들이 초기에 밴파드 왕국의 용병들을 빌려 전쟁에서 승리하며 큰 이득을 보았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는 전쟁 배상금을 받거나 자원을 착취하며 막대한 이득이 냈기에 밴파드 왕국에 비용을 지불하며 용병을 빌리곤 했다. 때론 적국을 막기 위해 그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빌려오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형태이건 전쟁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분명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벤파드 왕국의 전력을 이용하여 전쟁을 치르던 상대 진형에 헬리브 왕국이 동맹국으로 개입하면서 전쟁에서 대패한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동맹국이 아니더라도 전쟁이 발생하면 헬리브 왕국과 동맹이 될 것을 약속하며 도움을 청하는 국가들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왕국을 포기하고 헬리브 왕국의 공국이 되어버리는 나라들도 있었다. 보데만 공국이 그런 대표적인 나라였다. 그로 인해 밴파드 왕국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용병단을 고용했지만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되려 막대한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면서 더욱 궁핍해지거나, 전쟁의 패배로 인해 멸망으로 이르게 된 왕가들도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왕국들이 밴파드 왕국의 힘을 빌려 쓰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이런 대규모 용병 사업을 제외하면 암살을 위한 용병단의 파견은 계속해서 수입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밴파드 왕국을 움직이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입원이었다.


이런 시기가 한해 두해 누적되자 사막 왕 밴파드는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두 가지의 왕국을 유지하던 주 수입원이 사라지자 날로 궁핍해진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다른 문제도 생겨났다. 한데 모여진 힘이 분출될 곳이 없어진 것이다. 늘 약탈을 하며 살아가던 이들에게 전투는 척박한 환경에서 생겨난 분노를 분출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전한 해상 경로를 이용하며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이 없어지면서 분노가 안으로 곪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왕국으로 거듭나면서 모아진 힘이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하자 되려 작은 충돌에도 서로를 공격하며 몇 차례의 내전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사막 왕 밴파드는 문제의 시발점이 된 헬리브 왕국과의 전쟁을 치르기로 결정한다. 단순히 이길수 있는 상대들이야 대륙에 많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헬리브 왕국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사막 왕의 대신들은 전쟁에 이길 수 없다며 왕의 결정에 반대 했지만, 사막 왕 밴파드에게는 전쟁을 통해 왕국을 부흥시킬 계획이 있었다. 다만 일방적인 급습과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헬리브 왕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국가들의 개입 늦춰야 했기 때문이다.


사막 왕 밴파드의 병사들이 밤사이 헬리브 왕국의 서부 산맥을 넘은 서부 전방 초소를 공격한 것이다. 당시 무력충돌로 인해 헬리브의 병사 3명이 사망하고 10명 남짓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반대로 급습을 했던 밴파드의 병사는 30명이 사망하고 10명 정도가 부상을 당한채 도망쳤다. 일방적인 패배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막왕 밴파드의 계획의 시작이었다.


다음날 서부 전방 초소는 급히 왕궁으로 전갈을 보냈다. 소식을 전해 들은 헬리브 국왕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사막 왕 밴파드와의 회담을 요청했다. 며칠 후 헬리브 왕궁에서 회담이 이루어졌다. 사막 왕 밴파드는 서부 산맥을 정찰 중이던 부대가 고립되어 도움을 청하고자 헬리브 서부 전방 초소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도움을 요청하는 병사들에게 헬리브 왕국의 병사들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해 부대를 괴멸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무고한 사막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배상을 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었다.


반대로 헬리브 왕국은 깃발로 표시를 하지도 않은 병사들이 초소로 다가와 경고를 하고 위협 발포를 했으나, 그런 위협 발포에도 불구하고 계속 접근하여 서부 전방 초소를 먼저 공격했으며 이에 응전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로의 주장이 계속 엇갈리며 헬리브 국왕과 사막 왕 밴파드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사막 왕 밴파드는 회담 내내 충돌로 인해 사망한 병사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헬리브 국왕은 끝까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회담이 결렬되고, 사막으로 돌아간 밴파드 왕국은 다음날 헬리브 왕국에 선전포고를 선언했다.


사실 루미네라스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는 헬리브 왕국이 밴파드 왕국의 터무니 없는 요구를 받아줄 리가 없었고, 사막왕 밴파드 자신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막왕 밴파드의 터무니 요구는 오로지 회담이 결렬되어 선전포고로 이어지게 할 장치일 뿐이었다.


사막왕 밴파드의 생각대로 서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시작된 전쟁에 어느 나라도 쉽게 개입하지 않았다. 아무리 헬리브 왕국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일지라도 어떤 것이 정의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쉽게 전쟁에 개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물론 전쟁이 길어지면 그들이 개입할 여지가 더 많아질 수 있겠지만 밴파드는 전쟁을 길게 끌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사막왕 밴파드의 전쟁계획은 얼마 전 그의 왕궁으로 불의 용 레스타가 방문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레스타는 사막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레스타는 타협을 할 줄 모르는 용이고 인간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인간들이 살지 못하도록 주기적으로 땅을 뜨겁게 달구며 자신의 둥지 주변을 척박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기 시작했다. 불의 용 레스타는 그들 마저도 귀찮기는 했지만 오아시스를 거점으로 적은 인원들이 모여 사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막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갑자기 하나로 뭉쳐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레스타는 이런 사건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그들을 쉽게 와해시킬 수는 없었다. 그가 잠들어야 하는 때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용들이 일정 기간 잠을 자며 깨어있는 동안 고갈되는 생명과 마력을 충전해왔다. 구룡기의 전설이라 해도 영원불멸의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소비된 생명력과 마력을 충전해야만 했다. 레스타 또한 곧 생명과 마력을 충전하기 위해 잠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불의 용 레스타는 남쪽 산맥에 둥지를 틀고 있는 탐욕의 용 브린을 의식하며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탐욕의 용 브린은 어둠의 힘을 간직한 용이었다. 그는 사막의 남부에 위치한 산맥에 둥지를 틀고 레스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탐욕의 용이라는 이름답게 다른 용들의 힘을 빼앗기 위해 빈번히 다른 용들을 공격했었다. 이런 브린의 성격만큼 레스타 또한 포악한 용이었다. 이렇게 호전적이지 못한 두 마리의 용은 빈번하게 충돌해왔다. 더욱이 브린은 특히나 레스타의 힘을 탐내고 있었다. 늘 레스타를 죽이고 거의 젊고 강한 힘을 흡수하길 고대했다. 하지만 브린에 비해 나이가 어리고 젊은 레스타는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반대로 레스타 또한 탐욕의 용 브린을 쉽게 이길 수가 없었다. 레스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룡이던 브린이었지만, 지크롤과 함께 가장 오래 살아온 용답게 삶의 경험치 자체가 다른 노련하고 교활한 상대였다. 레스타는 그런 브린을 가장 혐오했다.


레스타는 항상 브린이 잠드는 때를 골라 함께 잠이 들곤 했다. 같은 시간 때에 잠이 들어 같은 시간 때에 깨어남으로 서로의 급습을 피해온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시간이 축이 조금씩 어긋나고 누적되기를 반복하더니, 이윽고 브린이 잠이 들고 깨어날 때가 되어가는 데도 레스타는 잠에 들지 못했다. 잠에 들었다고 해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힘을 충전을 한 용과는 싸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잠이 들었을 때 브린이 공격해오면 레스타는 꼼짝없이 죽게 될 것이라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 걱정들을 하고 있던 때에 사막이 시끄럽기 시작했다. 레스타는 이 상황을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사막 왕 밴파드를 찾아갔다. 밴파드 왕국은 레스타의 등장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 부족들을 뒤로하고 사막왕 밴파드가 당당히 레스타의 앞에 섰다. 레스타는 그의 기백에 적잖게 놀랐다.


'이런 사내라면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레스타는 사막왕 벤파드에게 브린이 공격해오면 자신을 도와 브린을 공격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사막왕 밴파드는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자신도 기꺼이 목숨걸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은 바로 헬리브 왕국의 침공을 레스타가 함께 돕는 것이었다. 레스타는 헬리브 왕국 근처에서 오랜 기간 둥지를 틀고 있던 지크롤이 참전할 것이 부담되었기에 밴파드의 제안에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런 레스타에게 사막왕 밴파드가 알고 있다는 듯이 지크롤의 참전에 관련하여 한가지 묘안을 제시했다.


회담이 결렬되고 선전포고가 선언된 지 사흘 후 레스타를 이끌고 서부 산맥을 넘어 헬리브 왕국을 침공한 사막왕 밴파드는 순식간에 서부 전선을 붕괴시키고 헬리브 왕궁의 수도 헬리브까지 서슴없이 진격했다. 생각보다 강한 전력과 레스타의 공격에 서부는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헬리브 수도까지 이어진 대부분의 도시가 파괴되었다. 예상치 못한 레스타의 공격에 헬리브 왕국은 속수무책이었다. 헬리브 국왕은 급히 지크롤에게 도움 요청을 보냈다.


헬리브 왕국을 위해 지크롤은 침공 4일째 전장에 합류하여 밴파드 왕국과 격렬한 싸움을 치렀다. 지크롤까지 참전했지만 이미 왕궁까지 진격한 밴파드 왕국의 병사를 한순간에 격파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한 달을 넘게 전쟁이 이어졌다. 왕궁의 절반이 날아가고 수도 헬리브도 삽시간에 박살 났지만, 지크롤과 함께 공격하는 마법 협회의 군사력은 점점 밴파드 왕국의 병사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헬리브 왕국과 지크롤이 승리하고 레스타는 사막왕 밴파드와 함께 사막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로 인해서 헬리브 왕국 절반이 피해를 입고 왕궁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한 달이라는 전쟁 기간은 헬리브 왕국 역사상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하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가장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전쟁의 끝에 밴파드 왕국은 막대한 전쟁 피해 보상금을 헬리브 왕국에 지급해야만 했다. 때문에 전쟁이 끝났을 때 밴파드 왕국도 몰락할 것이라고 많은 왕국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실 레스타에게 제안했던 밴파드의 묘수는 바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사막 왕 밴파드는 전쟁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었다. 다만 그가 노리는 것은 최단기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헬리브 왕국의 수도에 치명상을 가하는 것이었다. 가장 강력한 왕국에게 끼친 일격을 통해서 자신들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 것인지 루미네라스 대륙 곳곳에 알리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막 왕 밴파드는 레스타와 함께 순순히 전쟁에서 물러섰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은 곧 잠이 들게 될 레스타로부터 나왔다. 용들이 둥지에 모아두는 수많은 금은보화를 빌려 전쟁 배상금을 충당했다. 사막 왕 밴파드는 막대한 비용을 빌려 쓰는 대신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훨씬 많은 금은보화를 채워 두겠노라 장담했다. 거기에 더해 이를 채우지 못할 경우 자신들의 왕국을 멸망시켜도 좋다는 조건을 함께 달았다. 그리고 브린이 공격할 경우 자신들의 존망을 걸고 함께 하겠다는 조건도 함께 했다.


금은보화를 자신들의 둥지에 모으는 용들의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레스타는 브린의 위협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했기에 막대한 비용을 밴파드에게 빌려주었다. 그리하여 밴파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이 비용을 모두 전쟁 배상금으로 사용했고 남은 비용은 다시 국력을 키우는데 사용했다. 실제 전장으로 사용된 영토가 헬리브 본토였기 때문에 밴파드 왕국은 복구할 것이라곤 전쟁으로 인해 사라진 병사들을 충원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사막 왕 밴파드는 그렇게 자신의 계획대로 순식간에 국력을 회복했다.


이후 루미네라스 대륙 곳곳에 밴파드 왕국의 소식이 퍼졌다. 그들의 강력한 힘이 헬리브의 수도에 치명상을 가했다는 것과 불의 용 레스타가 밴파드 왕국과 함께 한다는 소식이 전해 했다. 이는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헬리브 왕국을 견제할만한 힘이 밴파드 왕국에도 있다는 의미로 인식 되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국가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평화를 위해 다시 사막에 위치한 밴파드 왕국을 찾게 되었다. 이들 국가에는 평소 헬리브 왕국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도 더러 있었다. 사막 왕 밴파드는 그들을 동맹국으로 삼으며 더욱 세력을 확장했다.


레스타가 잠든 지 몇해 되지 않아 밴파드 왕국은 그가 빌려준 모든 금액을 지불하고도 훨씬 많은 부를 사막에 축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보다 더욱 강대한 국가로 성장했다. 사막에서 모래 부족으로 약탈을 일삼던 이들이 헬리브 왕국과 견줄만한 강력한 국가로 태어난 것이다. 물론 레스타는 긴 잠에 들었지만 그런 사실을 알리 없는 국가들은 밴파드 왕국이 전투에 참여하기만 해도 항복을 하기 일쑤였다. 전항이 유리한 상황이라도 언제든 레스타가 동원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들에게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레스타가 없더라도 밴파드 왕국의 병사들은 너무도 막강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밴파드와 달리 헬리브 왕국은 몇해가 지나도록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도시들을 수복하는 것에 모든 여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왕국을 다시 복구하는 동안에는 다른 나라의 전쟁에 병력을 파병하는 일도 없어졌다. 그로 인해 몇몇 동맹국이 헬리브 왕국에게 등을 돌리면서 세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또 밴파드 왕국은 헬리브 왕국의 켈즈 항구 무역로를 교훈 삼아 사막의 무역로를 개편하고 아주 적은 비용의 통행세만을 받았다. 저렴한 비용으로 사막의 무역로가 다시 열리면서, 거리가 멀었지만 안전하기 때문에 사용했던 켈즈 항구의 무역로보다 예전처럼 사막의 무역로를 이용하는 것이 다시 유리해졌다. 때문에 밴파드 왕국은 무역로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헬리브 왕국은 전쟁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그때 전쟁에서 살해당하셨다고 해요. 왕자님과 공주님을 피신시키고 적에게 살해당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전쟁때 할아버지와 델라스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의 무서움을 잘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도시에 있는 부모님이 늘 걱정되곤 했죠."


리베레아의 고개를 떨구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다음 해부터 왕자님께서 저희 집을 찾아오셨어요."

"그렇군요. 왕자님도 전쟁으로 어머님을 잃게 되었으니 어쩌면 더욱 마음이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내색을 하진 않으셨지만, 시이라드 공주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했어요. 그리고 언제나 저에게 미안함을 표현하셨죠. 두분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나를 만나러 오지 못 했을 거라면서요."


리베레아는 잠시 말을 잊지 않았다. 한번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로스를 바라보고 말했다.


"두 분은 그림을 그리는 분이셨는데, 어째서 그렇게 돌아가셔야 했는지..."

"전쟁은 가리지 않고 파괴하기 때문에 무서운 법이죠."


리베레아가 살짝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로스는 그런 리베레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리베레아는 순간 로스와 눈을 마주치고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 버렸다.


"저도 아버지, 어머니처럼 그림을 그리며 지냈어요. 두 분께서 해마다 왕궁에서 오셔서 그림 도구도 주시고, 저의 그림도 보고 가시곤 하셨죠."


로스는 아무말 없이 리베레아를 쳐다보다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성한 편지를 잘 접어 한 손에 쥐고 한손에 힘을 집중했다.


"소리 없는 율다즈의 날개여. 깨어나라."


집중하던 한 손에 일순간 빛과 바람이 일더니 작은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순간적인 빛과 바람에 리베레아가 깜짝 놀라 로스를 쳐다봤다. 작고 푸르게 빛나는 새는 마치 반딧불이 모여 만들어진 새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이윽고 빛은 바람과 함께 사라져 푸른 빛깔을 지닌 새 한 마리로 거듭났다. 로스는 잘 접은 편지를 새에게 먹이고 창문을 열었다. 새는 단숨에 편지를 집어삼키더니 열린 창문으로 빠르게 날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야. 그게 소환수인가요?"


호기심에 가득 찬 리베레아가 로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로스는 리베레아를 한번 쳐다보더니 의자에 다시 앉았다.


"네. 율다즈의 날개라는 소환수예요. 편지 배달부 같은 거죠."

"신기해요. 처음 봤어요."

"소환사가 흔한 건 아니니까요."


로스는 펜과 종이를 다시 가방에 집어 넣고 책상 옆에 마련된 길고 푹신한 의자로 향해 누웠다.


"기사님은 왕자님과 언제 만났어요?"


로스는 리베레아의 물음에 침대쪽을 바라봤다. 침대에 이불을 감싸 안고 앉은 리베레아의 표정이 마치 대답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잘 것 같지 않은 표정이었다.


"정찰병을 하다가 왕자님께 부름을 받았어요."

"뛰어난 분이셨나 보다. 마법사도 아니신데 말이죠."

"마법이 가장 뛰어난 전력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마법사도 마법사 나름의 약점이 있는 법이죠."


리베레아는 침대에 다시 드러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로스에게 말했다.


"공주님은 마법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셨어요. 신비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저도 그래서 커서 꼭 마법사가 되면 좋겠다 생각했었죠. 재능도 없으면서 말예요."

"그런가요? 그래도 마법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던데요."

"언제인지는 모르는데 그런 일들이 생겼어요. 그림을 그리면 그것들이 그림 안에서 나와서 돌아다니는... 처음에는 굉장히 무섭기도 했어요. 그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왕자님께서 대단하다며 저에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하셨죠. 무서운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고..."


필라드 왕자가 말했던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 아마도 어릴 때부터 내가 본 것을 왕자님도 보았을 것이라고 로스는 생각했다.


"십년 전 전쟁에서 서부 전선이 가장 먼저 공격당했어요. 그때 저희 부모님은 서부 전방 초소의 정찰병이셨죠. 가장 먼저 전멸당한 부대였죠. 전쟁이 끝난 후 마을에서 소식을 듣고 굉장히 슬펐어요. 이듬해 왕궁에서 각 마을에 붙여둔 포고문을 보게 되었어요. 전쟁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적의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본국으로 소식을 전하며 사라져간 서부 전방 초소의 병사들의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때부터 저도 정찰병이 되는 꿈을 꾸게 되었죠. 그러다가 지금의 왕자님을 만났어요. 제 힘이 필요하다 하시더군요."

"기사님도 저도 둘 다 그곳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네요."

"그때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만큼 무서운 전쟁이었으니까."


로스는 테이블에 놓은 촛대에 불을 끄고 다른 쪽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리베레아는 잠이 들었지만 로스는 여전히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때 서부 전방 초소에서 왕궁으로 전갈을 보냈던 병사들이 부모님이었을까, 아니면 한순가에 사그라진 생명이었을까. 아무리 고심해봐도 그것에 대한 정답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기만 해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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