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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군 님의 서재입니다.

루미네라스 연대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도라군
작품등록일 :
2016.04.10 10:35
최근연재일 :
2016.05.03 21:37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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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0
추천수 :
37
글자수 :
196,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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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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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그림을 그리는 아이 (4)

DUMMY

새벽부터 역참을 떠나 한참을 달려 헬리브 왕국의 수도 헬리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시가지에 들어서자 말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되려 말에 타고 있는 것이 더 시선을 끌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로스는 후드를 둘러써서 그가 근위 대장임을 알아보는 이가 없도록 주의했다. 어둑해진 시각이지만 시가지는 불을 켜고 장사를 하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리베레아는 자꾸만 그것들에 홀려 한눈을 파는 탓에 다소 되려 공연히 시간을 축냈다. 양들만 가득했던 시골마을 델라스에서 살던 소녀는 도시가 처음이었다. 물론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에 지체할 틈이 없었다. 한참 정신을 팔고 있는 리베레아에게 로스가 주의를 주면 그녀는 입을 삐쭉거리며 마지못해 그의 걸음에 따라붙었다. 헬리브 수도의 중심 시가지를 지나 왕성으로 이어진 길에 도달하자 로스는 성의 정문에서 동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동쪽으로 성벽을 따라 인적이 완전히 없는 곳으로 한참 걸어가자 눈앞에서 초소가 나타났다. 로스는 초소가 멀찍이 보이는 곳에서 성벽 가까이에 붙어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간밤에 날려 보냈던 율디즈의 날개가 로스의 손위로 날아와 앉았다.


"어, 어제 그 새!"


리베레아가 로스의 손위에 앉은 새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스는 율디즈의 날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 율디즈의 날개가 작게 접힌 종이를 손바닥 위로 뱉어 냈다. 뱉어낸 종이를 손에 쥐고 로스가 가만히 눈을 감고 율디즈의 날개가 올라탄 손에 힘을 집중했다. 그 순간 율디즈의 날개가 빛나더니 손바닥 안으로 녹아드는 것처럼 사라졌다. 리베레아는 그런 광경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로스는 그런 리베레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접혀있는 종이를 펼쳤다.


'오후 3번째 근무 교대 시간에 초소에서.'


짧게 쓰인 한 문장. 곧 있으면 오후가 되고 3번째 근무 교대가 일어날 시각이었다. 로스는 볼틴의 볼에 손을 올리더니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렴. 사람들이 곧 와서 너를 데려갈 거야."


로스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볼틴은 발을 지면에 두 번 그었다. 리베레아는 어딘가 신비롭다는 눈빛으로 로스와 볼틴을 번갈아 바라봤다.


로스는 리베레아를 데리고 성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뒤, 초소에 더욱 가까이 접근했다. 동쪽에 있는 초소 뒤로 그리 크지 않은 문이 하나 있었다. 평소 왕궁의 요리사들이 요리를 하고 난 음식 찌꺼기를 버리거나 초소 앞으로 나있는 밭에서 채소들을 수확하기 위해 이용하는 문이었다. 초소가 한눈에 들어오는 나무 근처로 자리를 옮겨 몸을 낮췄다. 리베레아는 피곤한 것인지 겁이 난 것인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로스의 바지를 살짝 잡았다. 아직은 스산한 바람이 부는 봄날의 저녁. 날씨가 제법 서늘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초소를 지키던 두 명의 병사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근위 대장님으로부터 전갈이 왔는데 정문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 쪽에 대장님의 전용 마가 있을 거라고 한다. 자네들이 가서 더 어두워지기 전에 말을 어서 수습해오게."

"초소를 비우고 말씀이십니까?"

"다음 근무자에게 바로 투입하라 지시하였으니 대장님의 말을 찾은 뒤 인수인계하고 복귀하도록 하게. 어차피 자네들이 지금 가도 곧 교대 근무자가 오지 않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치고 바로 두 명의 경계병이 성의 정문 쪽으로 달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가 로스와 리베레아가 숨어있던 나무쪽으로 작게 소리쳤다.


"율디즈"


로스는 짧은 한마디를 듣고 리베레아를 일으켜 세우고 초소 앞으로 걸어나갔다. 초소에 다가가자 리베레아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덴브였다.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보고 초소에서 덴브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대장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경계병은 볼틴을 찾으러 갔습니다."

"네. 잘하셨습니다. 덕분에 안전히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지시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저도 어떻게 오시려나 했었는데 지시를 받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덴브는 대답 후 반가운 얼굴로 리베레아의 손을 꼭 잡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아가씨.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다시 만나게 되니 기쁘네요."

"네. 저도 기뻐요. 올해는 좀 일찍 만나게 되었네요. 헤헤"

"저도 여름이 되어야 뵈려나 싶었습니다. 피곤하시죠?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왕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머, 왕자님께서요. 어서 가요!"


언제 그랬냐는 듯 리베레아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하긴 먼 거리를 달려 이제야 아는 얼굴을 만났을 것이니 그러려니...


성문에 들어서 한참을 걸어 회랑에 도달했다. 리베레아는 성에 들어서자 상기된 얼굴을 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정신없었다. 회랑까지 오는 동안 덴브는 리베레아에게 성에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리베레아가 물어보는 것들에 대답해주기도 하면서 많은 말을 나누었다. 로스는 주변을 주시하며 걷느라 그들의 대화엔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데려오라는 명령이 있었기에 성안에 어떤 누구도 마주치지 않도록 주변을 경계하며 회랑으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덴브가 성안을 순찰하는 병사들까지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오도록 이동시켜 두었기 때문에 회랑에 도착할 때까지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회랑을 지나 왕자의 침소에 도착하자 불침번 근무를 수행하고 있는 밴과 호위무사들을 볼 수 있었다. 로스는 덴브와 리베레아를 자신의 방이 있는 곳까지 데리고 온 뒤 덴브에게 방에 잠시 있으라 지시했다. 덴브가 리베레아와 함께 방에 들어가자 로스는 다시 회랑을 지나 왕자의 방으로 향했다.


"그간 별일 없었는가?"

"오셨습니까, 대장님. 별일이랄 게 있나요. 그나저나 어떤 임무를 다녀오신 것입니까?"

"간단한 정찰 임무였네. 왕자님을 뵈려고 한다만."

"네. 늘 하시던 대로 업무를 보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지요. 왕자님 근위대장이 찾아왔습니다."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오자 문을 열고 왕자의 방에 들어갔다. 밤이 되어가는데도 필라드 왕자는 떠나올 때처럼 여전히 집무용 책상에 앉아 서류 뭉치를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왕자님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안 그래도 덴브에게 자네의 소환수가 왔다고 들었네. 그래 리베레아는 어디에 있는가?"

"제 방에 있으라 했습니다. 지금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앞장서도록 하게."


로스는 불침번을 서고 있는 부하들에게 자신이 직접 모시고 갈테니 이곳에서 대기하라 지시하고 왕자와 둘이서 방으로 향했다. 로스는 왕자에게 듣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먼저 말을 꺼내진 않기로 했다. 하지만 왕자도 그런 로스가 못내 신경이 쓰였는지 회랑을 지날 때 먼저 말을 꺼냈다.


"궁금한 것이 많을 테지. 조만간 모든 것을 이야기해줄 것이니 염려 말게."

"괜찮습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리베레아와 덴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리베레아는 왕자를 알아보고 해벌쭉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점점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어가는구나."

"과찬이십니다. 왕자님이야말로 점점 멋진 분이 되어가시네요."


덴브가 깜짝 놀라며 버릇없게 무슨 말버릇이냐며 리베레아를 나무랬다. 하지만 왕자는 되려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리베레아를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터인데 남은 이야기는 내일 하도록 하고, 오늘은 여기서 쉬도록 하려무나."

"괜찮습니다. 어서 빨리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은걸요."

"하하. 나도 그러고 싶다만 그 즐거움은 내일로 미뤄야 할 것 같구나. 고생했다 정말로."


리베레아는 배시시 웃으며 미소를 띠었다. 왕자는 내일을 기약하고 덴브와 함께 다시 처소로 향했다. 리베레아는 로스와 함께 방에 남았다. 로스는 자신의 침대를 리베레아에게 양보하고 근위복의 갑주를 벗었다. 리베레아는 침대의 한가운데 앉아 머리를 풀러 긴 머리를 앉아 손으로 몇 차례 빗어내며 말했다.


"왕자님과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왕자님을 만나 참 기쁜가 봅니다."


리베레아는 로스를 쳐다보며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델라스의 사람들과도 잘 알고 지내지 못했어요. 어쩌면 델라스 사람들을 빼고 가장 많이 본 사람이 왕자님과 공주님, 덴브 아저씨 일 거예요."

"그렇군요. 내일 오후에 오늘보다 많은 이야길 나눌 수 있을 거니, 아쉬워하지 말고 오늘은 일찍 자도록 해요."

"감사해요. 저 때문에 기사님도 피곤하실 텐데... 침대에서 주무셔도 돼요. 제가 그쪽에서 자도 상관없어요."

"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왕자님의 손님은 저에게도 귀한 손님이 되는 것이 당연하니 염려 마세요.""


책상 옆에 마련된 푹신한 의자에 몸을 깊숙이 누이고 책상 위에 불을 껐다. 리베레아는 씻고 싶다며 투덜대는가 싶더니 피곤했는지 곧바로 잠이 든 것 같았다. 쉬운 임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석연찮은 기분. 로스는 더 깊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눈을 감았다.


다음날 왕궁은 오전부터 회의로 바빴다. 회의의 주제는 왕세자의 왕위 계승식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국민들이 왕위 계승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왕궁의 성문 앞 대로에서 성대하게 행하기로 결정했다. 전쟁 이후 성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화려한 행사가 될 것이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자였기에 많은 국민들이 필라드를 보기 위해 모여들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언제나 만약의 사태에 조심해야만 한다는 의견들도 함께 나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근위 대장에 부여된 권한대로 호위 부대의 호위 무사 1명당 10명의 병사를 운용하도록 징집권을 부여받았다. 또한 거기에 더해 근위대장에게는 20명의 병사가 하달되었다. 총 100명의 병사가 왕위 계승식을 위해 배치되었다. 그들은 왕자의 보호하며 나아가 왕위 계승식의 여러 곳을 지켜야 하는 의무도 가지고 있었다.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도 왕위 계승식의 경호를 위해 100명의 마법사를 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법 협회에서 배치하기로 한 마법사들의 위치 때문에 대신들의 다소 언쟁이 있었다. 근위 대장이 왕가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본디 마법사들도 근위대장의 지시를 받기 쉬운 곳에 배치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도 근위 대장의 명령에 따라 왕가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미리 예상했던 대로 근위 단과는 별개로 배치하겠다고 발언하여 대신들끼리 언쟁이 붙었다.


예전처럼 근위대장이 불의 민족 출신의 마법사이거나 혹은 마볍 협회의 마법사이기만 했어도 마법 협회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결정에 필라드 왕자도 그들의 속내를 뻔히 알아채고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국왕은 모든 대신들을 조용히 시키고 결정된 사안에 따르라는 말로 상황을 종결시켰다. 마법 협회 회장인 지크리트의 체면을 생각해 준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넌지시 국왕에게 요청을 올렸는지는 몰라도 국왕이 그렇게 결정한 이상 따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것 외에도 여러 안건들이 있었다. 음식이며, 행사를 꾸밀 재료나 보석들이며 하는 것들에 대한 의견들이 있었다. 그런 자질구레한 안건들 중에는 근위대장과 관련된 것도 있었다. 안건의 중심은 그가 어떤 연례행사에도 늘 로스가 근위복만을 입고 오기 때문에 위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으로 꼬투리를 잡았다. 그들은 더욱이 왕위 계승식까지 근위복을 입는 것은 더욱 좋지 않은 행동이라며 격식을 차려 그도 연미복을 입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 안건을 꺼낸 것은 마법 협회 회장인 지크리트였다. 필라드 왕자도 로스도 마법 협회의 꼬투리처럼 느껴져 자리가 더욱 편치 않았다.


회의가 마무리되자 회의장으로 음식들이 나왔다. 회의 끝에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헬라브 왕국이 이어온 오랜 전통이었다. 왕자는 가볍게 포도주 한 잔을 마시고 로스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을 벗어나자 필라드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했다.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 것만 같구나. 이런 실속 없는 회의를 하고 있노라면 왕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한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니까."


왕자는 짜증 섞인 말을 하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가씨를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그래. 그편이 좋겠구나."


길다란 복도를 따라 회랑을 향해 걷고 있는 도중 로스가 말했다.


"아가씨의 부모 이야길 들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시이라드와 나를 구해 주었지."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 때문에 책임을 느끼시는 것이라면 되려 공개적으로 모시는 편이 좋지 않았을지요."

"처음엔 그런 생각도 했었지. 하지만 10년 전 그 아이를 처음 봤을때 신비한 능력을 보았다네."


로스는 리베레아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나비와 꽃그림이 생각났다.


"네. 저도 적잖게 놀랐습니다."

"아. 그래. 자네도 보았군. 나도 어릴 때 보고 굉장히 놀랐다네. 신비한 광경을 보고 난후에 훗날 이 아이의 능력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네."

"그렇게 오래전부터 생각할 만큼 중요한 것이 있으신가 봅니다."


필라드 왕자는 한쪽 눈을 한번 질끈 감고 뜨더니 말을 이었다.


"어릴 때부터 형님은 늘 우리 둘과 잘 어울리지 않았지. 때론 형님이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나는 형님과 더 가까이하지 못했어. 시이라드도 마찬가지였네. 아마도 어렴풋이 그때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몰라."

"왕세자가 되시는 것 말씀이십니까?"

"그래. 우리 왕자들에겐 보이지 않는 끈들이 있지. 그 끈을 잡고 줄타기를 하듯 많은 사람들이 꼬이게 되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모이는 자들 말일세."


가뜩이나 아픈 머리가 더 아파지는 듯 왕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연신 손으로 문질렀다.


"만약 그 줄이 단단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지. 너무도 어릴 때부터 그런 것들을 절실히 느끼며 지냈어. 그러다 보면 내게 전력이 될만한 것들은 최대한 감춰두고 있는 편이 좋다는 것도 깨닫게 되지. 자신의 패를 모두 보이지 않는 편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좋은 것처럼 말일세."

"아가씨가 왕자님께는 좋은 패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직 나도 모르겠네. 그렇지만 그 패를 지금 필요할 것 같은 기분이 최근에 들더군. 자네를 내 호위무사로 두고 꺼내둔 패가 근위 대장이 되면서 모두가 의식하는 꺼내둔 패가 되어버렸거든. 마치 에이스 카드가 먼저 나와버린 것처럼 말이야."


로스는 말없이 걸었다. 왕자도 그런 로스를 한번 쓱 보더니 걸음을 걸었다. 몇걸음 지나지 않아 로스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로스의 방에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를 끄적 거리던 리베레아가 벌떡 일어나 왕자에게 인사를 했다. 왕자는 미소를 지으며 리베레아의 인사를 받았다.


"일전에 부탁한 그림은 다 완성되었나?"

"그럼요. 봄이 오기도 전에 다 그렸어요. 하지만 무척 어려웠어요. 지금 보여드릴까요?"


리베레아는 함께 가져온 대나무 통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때 왕자는 로스를 바라봤다. 로스는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알았다. 묵례를 올리고 밖으로 나가 대기했다.


'나는 왕자님이 가진 패로서 좋은 패가 된 것이었을까? 아님 아직은 1이 될지 11이 될지 모르는 상태인 것일까?'


마음에 파문이 일듯 왕자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근위대장을 맡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사 협회에서 단체로 성명을 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근위대장의 교체를 요구하고 있었다. 마법 협회의 마법이 곧 가장 강한 군사력이었던 역사가 있는 만큼 마법사가 근위대장을 맡아오던 것을 마치 당연한 전통이었던 것처럼 왕에게 주장했다. 또 왕가의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근위 대장이 마법 협회와 긴밀하게 함께 움직이기 위해서 마법사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주장도 함께 펼쳤다. 교활하게도 그들은 필라드 왕자가 국왕에게 조문을 올리는 시간을 선택해서 고의적으로 두 사람 앞에서 상소를 올렸다. 그것은 국왕에게 올리는 상소를 빙자한 필라드 왕자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런 의중을 눈치 챈 왕자는 평소와 달리 격하게 마법 협회의 대신들에게 화를 냈다.


필라드 왕자는 그날 왕실을 나와 왕자의 처소에 도착해서도 쉽게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며 쉽게 분을 삼키지 못 했다. 그런 필라드 왕자에게 로스가 물었다.


'왕자님. 마법 협회의 사람들을 단장으로 두는 것이 어떠셨을지요.'

'자네까지 그런 말을 하는 겐가? 내가 자네를 믿기에 곁에 두겠다는 것인데, 주변의 말에 자네까지 휘둘려 나의 믿음에 오점을 주려는 건가?'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믿음엔 언제나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만 저로 인해 왕자님까지 곤란한 일들을 겪게 되는 것 같아 심히 마음에 걸려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들은 내가 안고 갈 문제이니 자네까지 나서서 걱정할 필요 없네. 그것 말고도 자네는 나를 위해 할 일이 많지 않은가. 그날이 몇 번이 다시 돌아온대도 난 자네를 곁에 둘 것이니 두 번 다시 그런 생각은 하지 말게나.'


그날 이후로도 마법 협회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런 사건들이 이따금씩 그런 사건들이 지금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찰병으로 부모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자신이 이런 자리까지 오른 것은 스스로도 대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찰병으로서의 마음 편히 임무를 수행하던 때가 그리울 때도 있었다. 로스는 왕자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몇 번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미 꺼내버린 패로 게임을 승리할 때도 많지.'


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이 열리고 왕자가 나왔다.


"미안하네. 오래 기다리게 했네."

"아닙니다.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리베레아를 덴브의 거처로 보낼 것이니 자네가 덴브에게 데려다주도록 하게. 그리고 쉬도록 하게. 오후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나도 처소로 들것이네."

"알겠습니다."


왕자의 지시대로 리베레아를 덴브의 처소로 데려다주었다. 리베레아는 혼자 있지 않게 되어서 신이 났는지 덴브의 방으로 신이 나서 들어갔다. 로스는 방에 들어와 갑주를 벗었다. 갑주를 벗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시종을 불러 목욕물을 받아두라 명령하고 의자에 앉았다. 이로써 왕자가 지시했던 이번 임무가 완전히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여자아이를 데려오는 단순한 임무였다. 하지만 몇 번의 전투를 한 것처럼 피곤했다.


잠시 후 시종이 방문을 두드리고 목욕물이 다 되었다고 말했다. 로스는 갈아 입을 옷을 가지고 욕실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때 회랑 쪽에서 걸어오는 밴을 볼 수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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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리베레아의 능력 +4 16.04.25 221 2 22쪽
16 덴브와 랜서 (2) +4 16.04.23 182 2 21쪽
15 덴브과 랜서 (1) +4 16.04.23 172 2 17쪽
14 북쪽으로 가는 여정 (5) +3 16.04.21 229 2 21쪽
13 북쪽으로 가는 여정 (4) +2 16.04.18 175 2 21쪽
12 북쪽으로 가는 여정 (3) +2 16.04.17 236 2 25쪽
11 북쪽으로 가는 여정 (2) +2 16.04.16 230 2 22쪽
10 북쪽으로 가는 여정 (1) +2 16.04.16 168 2 24쪽
9 왕위 계승식 (5) +4 16.04.14 201 3 19쪽
8 왕위 계승식 (4) +2 16.04.13 128 2 18쪽
7 왕위 계승식 (3) +2 16.04.13 115 2 17쪽
6 왕위 계승식 (2) +2 16.04.13 228 3 21쪽
5 왕위 계승식 (1) +2 16.04.12 217 2 11쪽
» 그림을 그리는 아이 (4) +2 16.04.11 158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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