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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군 님의 서재입니다.

루미네라스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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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군
작품등록일 :
2016.04.10 10:35
최근연재일 :
2016.05.0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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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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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 계승식 (2)

DUMMY

오전부터 로스는 병사 두 명을 데리고 성문 앞에서 시가지까지 이어진 대로를 점검했다. 왕위 계승식이 대로에서 치러질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위험요소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차원이었다. 수상한 물건이나 흔적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어 왕위 계승식의 식순과 동선을 확인하고 전체적으로 짜인 형태를 실제 거리와 대조해서 머릿속에 그려 넣기 시작했다. 어제 발표가 난 다음부터 바로 직공들이 계승식을 위해 터를 만들고 있었다.


필라드 왕자는 어딘가 모를 불안감이 있다고 했다. 물론 로스도 그것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으로서는 말씀을 해주지 않는 이상 속내를 모두 알기 어려웠다. 그리고 로스는 그것 말고도 신경 써야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그중 한 가지는 마법 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지크리트와 그의 장남인 파슈에 관한 문제였다.


지크리트는 마법 협회의 회장직을 오랫동안 수행하며 좋은 명성만을 쌓고 있지는 않았다. 몇 가지 스캔들이 있어서 왕궁에서 대대적인 조사를 하였던 적도 있었는데, 당시 이미 거물이었던 그를 끝까지 조사하지 못하고 무마된 사건들이 더러 있었다. 당시엔 생각보다 시끄러운 문제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고 여전히 지크리트는 협회의 회장직에 머물며 그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중 비교적 세간을 시끄럽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의 장남인 파슈로부터 생겨난 일이었다.


파슈는 마법의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에 비해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런 성장을 비추어 볼 때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기엔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그는 마법 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하고 마법 협회로 입성하게 되었다. 마법학 이수 과정에서 특혜를 받아 왔다는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런 일이 사실 알게 모르게 과거에도 있어왔고, 또 지크리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여 특별히 그것을 문제 삼는 자들은 별로 없었다.


당시 왕국의 차기 왕위를 계승할 것이 분명했던 적장자 듀라드 왕자가 18세이 되도록 호위무사를 선택하고 있지 않았다. 왕자는 호위무사를 선발할 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하나는 왕자 본인이 직접 선택하는 것과 왕가에서 추천된 자들을 통해 선택하는 방법이 있었다. 한번 호위무사가 되면 오랜 기간 긴밀한 사이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왕가는 전자의 방식을 보다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관습이었다.


듀라드 왕자는 여름이면 공국으로 피서를 떠나며 놀길 좋아했고, 겨울에는 화로 곁에 시종들을 부리며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세월을 허비하곤 했었다. 국왕도 당시에 상당히 고심했었지만 아무리 다그쳐도 쉽게 변하지 않는 그에게 좋은 호위무사가 함께하며 충언을 아끼지 않는다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저런 이유들로 듀라드 왕자는 그 누구도 호위무사로 선발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평화로운 시기였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국왕은 듀라드 왕자의 호위무사를 선발하기 위해 왕실에 모든 대신들을 모으고 협회의 유명한 가문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렇게 10명의 후보가 추천되었다. 지금이나 당시에나 마법 협회의 힘은 대단했기 때문에 10명의 추천 후보자들 모두 협회의 마법사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한 번이라도 더 아들을 듀라드 왕자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듀라드 왕자를 초대하여 성대한 파티를 벌이곤 했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듀라드 왕자를 더욱 방탕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대신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파티에 응해 시간을 보내기만 할 뿐 아무도 뽑을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국왕은 결국 진노하여 듀라드 왕자를 질책하고 스스로 후보를 두 명으로 압축해버렸다. 한 명은 마법 협회 회장 지크리트의 아들 파슈였고, 또 다른 한 명은 헤단 집안의 장자 우르였다. 헤단 집안은 검소한 삶을 유지하며 늘 마법을 탐구하고 국왕에게 충언을 올리던 명망 높은 귀족 집안이었다. 국왕도 그러한 집안의 자제라면 듀라드 왕자의 잘못된 버릇도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우르는 실력으로도 주변 동문에게도 좋은 평판을 갖춘 사내였다. 파슈가 협회에 들어오기 전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먼저 협회에 들어왔고 짧은 기간 효과적인 마법을 더러 개발하여 그의 천재성을 입증하기도 했었다.


왕국의 대신들은 모두 우르가 제1 호위무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지크리트는 당연히 자신의 아들이 제1 호위무사가 되어 후에 근위대장이 되길 염원했다. 그리하면 마법 협회와 왕궁의 병사들까지 모두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파슈는 제2 호위무사로 발탁되는 것이 자명했다. 이대로라면 제2 호위무사가 되는 것보다 다른 방법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출세에 더 유리해 보일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 했다.


후보가 두 명으로 압축되고 적장자 듀라드 왕자가 호위무사를 정식으로 발탁하여 공표해야 하는 시기가 며칠 안으로 다가왔을 때 일이 터졌다. 마법 협회의 지하 서고에 누군가 무단으로 침입을 한 사건이 생겼던 것이다. 마법 협회에는 수많은 책이 쌓여있어 서고는 흔했지만 지하에 있는 서고는 협회의 고위직이 아니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밤낮을 제외하고 4명이 교대로 상시 순찰을 하며 지키는 곳일 만큼 엄중한 곳이었는데, 한 사내가 순찰 중이던 두 명의 병사를 순식간에 제압하고 서고에 침입을 한 사건이었다.


마법 협회는 바로 조사단을 구성하여 지하 서고에서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조사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서고에서 사라진 것이 금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하 서고에서 사라진 금서는 대지의 떠도는 마력을 이용한 마법들이 아닌 악마와 결탁해 만들어내는 마법에 관련된 책 들이었다. 100년 전에는 막강한 힘을 보여주는 마법이었기에 적극적으로 연구하던 마법의 한 종류였다. 하지만 마법의 사용과 동시에 되려 마계의 악마들이 함께 소환되어 버리는 경우들이 발생하면서 큰 피해를 입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결국 마법 협회에서는 해당 주문과 기록들을 모두 금서로 지정하고 지하 서고에 넣어버렸다.


협회의 마법사들이 모두 소집되고 먼저 조사를 받았다. 제압 당했던 두 명의 병사가 마법 공격을 받았다고 진술했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가벼운 내용은 아니었기에 왕국에서도 협회와 조사단을 함께 꾸려 사흘에 걸쳐 모든 마법사들을 조사했다. 하지만 금서도,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왕국과 협회 모두 난감한 상황이었다. 급기야 타국의 스파이 설까지 제기되었다. 금서에 담긴 내용을 다른 왕국으로 반출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왕국은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범인을 잡고자 왕국 곳곳에 포고를 하며 포상금을 걸었다. 신고하는 자에게 막대한 배상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닷새가 지났을 때 한 제보자가 있었다. 물론 돈을 노리고 허위 신고를 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제보였기에 왕궁에서 마법 협회와 함께 체포에 나섰다. 그들이 긴급 출동한 곳은 헤단의 저택이었다. 저택을 급습하여 제보의 내용대로 우르가 사용하는 서고에서 다른 책들로 감춰진 금서를 발견했다. 우르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결박당해 궁성으로 호송되었다.


곧 재판이 열렸다. 재판에서 우르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숱한 알리바이와 증거를 제시하며 자신은 모함당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제보자와의 삼자대면까지도 요청했다. 우르의 주장을 바탕으로 2차 조사를 진행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말이 모두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재판은 더욱 미궁으로 빠졌다.


몇 번의 재판이 더 열리고 협회의 주장과 우르의 주장이 계속 평행선을 그렸다. 결국 재판 끝에 우르는 마법 협회에서 추방당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또 더 이상 마법을 쓸 수 없도록 마력의 힘을 증발시켜버리는 마법진을 그의 몸에 새겨 넣었다. 그가 협회로부터 받은 결정으로 미루어보아 패소한 것이 분명했지만 결국 정황만 있을 뿐 그가 직접 금서에 손을 대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찾을 수 없었기에 금고형은 면하였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협회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에 우르는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을 무력화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며 협회를 비난했다. 재판을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도 우르가 제1 호위무사가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대놓고 지크리트나 협회를 비난하진 못 했다. 다음날 우르의 몸에는 모든 마력의 힘을 증발시키는 마법진이 강제로 새겨졌다.


며칠 후 당연히 듀라드 왕자의 제1 호위무사로 파슈가 발탁되었다. 제2 호위무사는 마법 협회 교수의 아들이 되었다. 호위무사가 발표되던 날 헤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짐을 꾸려 남쪽 칼즈 항구로 이사를 가버렸다. 모함을 인해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기 때문에 협회가 있는 도시에 염증을 느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당사자들도 모두 사라져버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다시 시간이 흘러 일 년 여가 지났을 때 사건은 뜻밖에 상황으로 세상에 한번 더 회자되게 되었다. 추방당했던 우르가 당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음모이고, 그것을 증명할 만한 증인과 증거가 있다며 재판장에 항소를 올렸다. 사람들은 또 다시 재미난 스캔들이 터졌다며 흥미롭게 사건을 지켜봤다. 이번에야말로 사건이 명백해질 것이라며 곳곳에 소문이 퍼졌다. 세간의 관심이 높았던 사건인 만큼 왕궁도 재판의 일정을 빠르게 결정하고, 해당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예정일을 통보했다. 그러나 행운은 우르의 편이 아니었다. 예정일로 잡혀있던 재판이 연기된 것이다.


재판이 있기 하루 전 서쪽 전방 초소를 밴파드 왕국이 기습하여 사상자가 발생했다. 긴급한 전갈을 받은 헬리브의 국왕은 모든 인재를 모아 모든 활동을 잠정적으로 무기한 중단하고 현 사건에 집중할 것을 명령했다. 그로써 재판도 당연히 무기한 연기되었다. 회담이 요청되고 밴파드 왕국과 헬리브 왕국의 회담이 빠르게 성사되었다. 회담은 팽팽히 진행되더니 결렬되었다. 밴파드 왕국은 선전포고를 선언했다. 왕국에 재앙이 닥쳐온 것이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의 전쟁에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재건 계획이 발표되고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지방 도시의 사람들이 파괴된 국토를 복구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어떤 일보다 시신들의 수습이 우선시 되었다. 역병마저 돌아버린다면 더욱 심각한 피해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습되던 시신 중에 우르의 시신도 발견되었다. 그것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정상화된다고 해도 재판이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우르의 시신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 했다. 엉망이 된 왕궁을 복구하느라 이미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스는 당시 사건이 있었을 당시 군에 입대를 하지 않은 나이였기에 당연히 사건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곧 깊게 사건에 관여하게 될 사건이 하나 생겨났다. 필라드 왕자의 제2 호위무사로 발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필라드 왕자는 로스에게 우르의 가족을 찾는 임무를 하달한하달한 것이다.


왕자의 제1 호위무사였던 롤랑은 왕궁에서 가장 뛰어난 검술가였다. 롤랑은 호위무사의 임무를 하면서 직접 필라드 왕자를 가르쳤다. 그 덕분에 필라드 왕자의 검술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또한 왕자는 공부도 멀리하지 않았다. 학자들로부터 매일 같이 우수한 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문무를 두루 갖춘 이상적인 왕자가 되기 위해 매일을 노력했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독서였다. 실제로 필라드 왕자는 엄청난 독서광이었다. 낮에는 훈련과 수업을 받고 밤에는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다. 오죽하면 당시 왕궁 도서관 사서 중 가장 많은 독서를 하였다는 덴브를 자신의 시종으로 발탁할 정도였다. 사서를 시종으로 발탁한 이유는 자신이 훈련을 하고 있을 때 서고에서 읽기 좋은 책들을 찾아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덴브는 매일 두세세 권의 책이나 필사본 등을 찾아 왕자에게 추천했고, 왕자는 매일 그것들을 다 읽기 전에는 잠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독서를 하던 필라드는 어느 날 마법 협회의 역사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되었다. 오랜 기간 헬리브 왕국의 막강한 군사력이 되어온 마법 협회의 역사는 실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대략의 역사를 훑고 마법 협회의 위대했던 인물들의 평전도 읽었다. 위대한 인물들의 평전은 지금도 존재하는 귀족들의 선조인 경우들이 많았기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유용하고 합리적인 마법들을 개발하여 왕국의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주력하였다는 헤단 집안의 기록을 발견했다. 현재까지도 그들의 기술은 왕국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헤단 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단숨에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의 기록을 거의 다 읽어 갈때 쯤 문득 듀라드 왕자의 호위무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생겼던 사건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필라드 왕자는 그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필라드 왕자는 덴브를 불러 헤단 가문의 마법사들을 기록해둔 일지를 가져오라 명했다.


헬리브 왕국의 가장 큰 전력인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은 타국으로 반출되는 등의 문제를 막고자 문서로 마법사들의 신상을 기록해 왔었다. 대개는 언제 마법 학교에 입학하는지를 시작으로 학회를 이수한 때와 마법 협회에 들어간 시점 등이 기록되고 거기에 더해 특별히 어떤 성과들이 발생되면 그것들도 함께 기록했다. 그리고 마법사가 사망하면 그 기록은 마지막 죽게 된 이유와 날짜를 적어 넣으면서 기록이 종료되었다.


우르의 경우 죽은 시점이 불분명했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기록이 간단히 적혀있었다. 하지만 우르의 사망 기록과는 달리 헤단 가문의 다른 가족들에 대한 것들은 칼즈 항구로의 이사에 대한 기록 이후로 새로운 기록이 전혀 없었다. 전쟁의 피해가 전혀 없었던 칼즈 항구로 이사를 가버렸기 때문에 어떤 피해도 받지 않아 새로 기록할 것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당시 헤단 가문의 사람들은 대대로 마법사였다. 그 때문에 우르의 부모에 대한 기록은 변동이 없더라도 조부모의 기록에는 새로 추가된 것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협회에 가입된 날짜만 보아도 그들은 상당히 고령의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헤단 가문의 기록은 어떤 새로운 내용도 없이 멈춰져 있었다.


아직도 전쟁으로 인한 피해 복구가 미흡한 곳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단순한 누락일 수도 있었지만, 과거 우르의 기묘한 사건을 기억하던 필라드 왕자는 이를 미심쩍게 여겼다. 그리하여 필라드 왕자는 마법 협회에 자문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조사해보기로 했다. 조사 임무는 로스에게 하달되었다.


임무를 하달 받고 로스는 남부의 칼즈 항구로 향했다. 하지만 칼즈 항구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로스는 오랫동안 근방에서 살아온 이들을 방문하여 그들에 대한 추적을 시작했지만, 밴파드 왕국과 전쟁 당시 그들의 집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모두 죽어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동네의 모든 주민이 나와 불을 끄려 노력했지만 불은 삽시간에 커져 모두 불타버렸다고 했다. 전소한 집터에서 살고 있던 네 명의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했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마법사였는지 몰랐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할 신고를 하지 못 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본래 마법사들은 어디에 거주하던 회관을 통해 왕국으로 기록을 전달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였다.


어찌 보면 별일 아닌 결말이었지만 로스는 의구심이 일었다. 화재가 일어날 수는 있었으나 헤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마법사였다. 그들의 아들 우르처럼 마법을 금지 당했던 것도 아니었고, 협회에서 활동했을 만큼 우수한 마법사였기 때문에 화재를 막아 낼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급작스러운 불길로 인해 대처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동 마법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살아날 방법도 있었다. 로스는 잠시나마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을 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봤지만 아들 우르가 당시 왕궁으로 항소를 올리며 결백을 주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전쟁은 서쪽 산맥을 시작으로 왕궁을 향해 치러졌기 때문에 남쪽 칼즈 항구는 전쟁에 타격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일어난 의문의 화재 사건과 우르의 죽음.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수상했다. 로스는 바로 왕궁으로 복귀하여 조사한 내용을 필라드 왕자에게 고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필라드 왕자도 수상하게 생각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필라드 왕자는 어떤 후속 조치도 하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 헤단 집안의 기록에 전쟁으로 사망이라는 짧은 글귀를 적어 넣고 덴브를 시켜 문서를 원위치 시켰을 뿐이었다.


그 후 로스는 지크리트 가문을 경계해야 할 대상 일 순위로 꼽게 되었다. 모든 사건에 지크리트 가문을 연결하여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지크리트 가문과의 몇 번의 사건을 겪으며 로스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적장자였던 듀라드 왕자의 좋지 않은 행실로 인해서 왕세자로 책봉되지 못하였다. 그로 인해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지크리트의 장자인 파슈가 더 이상 듀라드 왕자의 제1 호위무사인 것이 되려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대로면 그는 근위대장도 될수 없었다.


호위무사로 발탁되고 나면 호위무사를 평생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단 세 가지뿐이었는데, 첫째는 일종의 해고 처리가 되는 것이다. 왕자가 스스로 자신의 호위무사를 박탈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이면 호위무사를 그만두는 것은 가능하나,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에 가문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것과 더불어 박탈당한 자는 두 번 다시는 호위무사가 될 수 없는 제약이 있었다.


두 번째 방법은 왕자의 사망이었다. 이런 경우 호위무사는 자연스럽게 자유 신분으로 복귀한다. 단 이 경우에도 두번 다시 호위무사가 될 수 없었다.


세 번째 방법은 호위무사 본인이 죽는 것이었다. 전사한 호위무사는 호위무사 직에서 자유 신분으로 처리되었다. 물론 명예로운 죽음이라면 영웅들을 기리는 영웅의 전당에 마련된 비석에 영원히 그 이름을 남기게 된다.


세 가지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파슈는 절대로 근위대장이 될 수 없었다. 차라리 호위무사가 아니었다면 되려 협회에서 마법의 신기술을 개발하며 입지를 쌓아 나가 협회장이 되는 등의 방법이 더 나은 출세의 길일 테지만 이 역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만약 수단을 가리지 않는 방법으로라도 자리를 찾지 하겠다면 그들이 행할 방법은 이제 단 하나 밖에는 없었다. 바로 필라드 왕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 다시 적장자 듀라드 왕자가 왕세자로 책봉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우르의 사건에 연관되어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왕세자로 책봉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조짐을 보인 적이 없었다.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은 근위대의 오른쪽 위치에 배치가 되는군. 그렇다면 지크리트는 단상의 오른쪽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겠구나.'


식순에 따라 왕자의 주변에 가장 멀리 떨어지게 되는 순간까지 모두 파악하고 거기에 따라 지크리트가 위치하는 곳까지 파악할 정도로 철저히 전체 동선을 살폈다.


'부디 아무런 일도 없이 왕위 계승식이 끝나길...'


그때 왕궁의 정문 쪽에서 로스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부대장 밴이 오고 있었다.


"대장님. 징집 명단을 모두 완성했습니다."

"아. 수고했네. 나도 마침 동선 파악을 끝낸 참이라네. 그럼 자네의 부탁대로 연미복을 입게 될 것인지 살펴보도록 할까?"

"후후. 연미복을 불편해하지 않으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밴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로스의 뒤를 따라 왕궁으로 들어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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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덴브과 랜서 (1) +4 16.04.23 172 2 17쪽
14 북쪽으로 가는 여정 (5) +3 16.04.21 229 2 21쪽
13 북쪽으로 가는 여정 (4) +2 16.04.18 175 2 21쪽
12 북쪽으로 가는 여정 (3) +2 16.04.17 236 2 25쪽
11 북쪽으로 가는 여정 (2) +2 16.04.16 230 2 22쪽
10 북쪽으로 가는 여정 (1) +2 16.04.16 168 2 24쪽
9 왕위 계승식 (5) +4 16.04.14 201 3 19쪽
8 왕위 계승식 (4) +2 16.04.13 128 2 18쪽
7 왕위 계승식 (3) +2 16.04.13 115 2 17쪽
» 왕위 계승식 (2) +2 16.04.13 229 3 21쪽
5 왕위 계승식 (1) +2 16.04.12 217 2 11쪽
4 그림을 그리는 아이 (4) +2 16.04.11 158 2 20쪽
3 그림을 그리는 아이 (3) +2 16.04.11 283 2 32쪽
2 그림을 그리는 아이 (2) +2 16.04.10 154 2 23쪽
1 그림을 그리는 아이 (1) +9 16.04.10 300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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