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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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을 하며 어깨에 앉아있던 로누아가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우움······ 그런 것 같긴 한데, 나도 잘은 모르겠어.”
그녀 본인은 모르지만 강성우는 알고 있었다. 현재 로누아에겐 어떤 형태의 정신 금제가 걸려있었다. 지금은 섣불리 해제하려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 놔두고 있지만 말이다.
“맞을 거야, 아니 맞아. 던전들은 특이점이야. 이 세계와 그 세계를 잇기 위해 두 세계를 동시에 관통하며 박힌 말뚝.
그것을 통해 교류가 일어났고, 영맥이 말라버린 이곳이 자극 받고 있어.”
말을 하며 강성우가 로누아를 살피니, 그녀는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으······ 으으, 왜 이러지. 주인의 말을 듣고 있으니까 갑자기 머리가, 머리가 아파······.”
그녀의 반응을 보며 강성우는 자신의 추론에 따른 말이 틀림 없이 맞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제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으니 로누아가 힘들어하는 것.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강성우가 로누아의 머리를 손가락끝으로 쓰다듬었다.
“이제 됐어. 밤도 늦었는데 자.”
클래스가 없더라도 마나만 있다면 마법은 가능하다. 아니, 마나가 없더라도 일정부분 가능하다.
말에는 힘이 있으니.
물론, 태초의 뿌리에 닿아있는 드래곤이 아닌 이상에야 언령마법은 한계가 있지만.
로누아가 곤히 잠들고 강성우는 옥상 난간 위에 우뚝 서서 달을 바라봤다.
“지금 당장은······ 장단에 맞춰주지.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아, 너희들은 후회할 것이다.”
누군지 모를 대상들에게 그리 말한 후, 강성우가 오른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선선하던 바람이 변하기 시작했다.
점차 흐름이 빨라졌으며, 바람의 결을 따라 투명한 푸른빛이 발해지기 시작하였다.
강성우를 중심으로 말이다.
그의 옷과 머리카락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지이잉-
마치 조각을 새기듯, 강성우의 손등에 붉은빛 문양들이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각인이 되어갈수록 강성우의 주변을 돌던 바람도 점차 강해지고, 소용돌이쳤다.
어두운 밤.
서울의 한 주택 옥상 위.
파란 빛과 붉은 빛에 휩싸인 강성우의 내부로 본래 지구엔 존재하지 않았던 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기본 단계인 마나 모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구는 본래부터 영맥이 단절된 곳이 아니었다.
그저 먼 과거의 어느 날 세계의 모든 영력이 소진되었고, 영맥의 가장 깊은 뿌리까지 말라버렸던 것뿐.
이계의 마나가 들어와 자극을 주니, 다시 영맥이 깨어나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또 빠르게.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간 강성우는 부산한 가운데 저번 중간고사의 결과가 나온 것을 확인했다.
평균 94점.
전교 27등.
성적표를 손에 들고 한동안 내려보던 강성우가 혼자 중얼거렸다.
“거보시오, 데이만. 내가 말하지 않았소? 내 머리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마나.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 에너지체.
그 마나를 느끼고 구조를 파악하고 통제하고 방출하고······ 그 모든 것에 있어서 천재였던 강성우의 전생은 또 그 탓에 다른 마법사들에게서 무시를 당하기도 했었다.
마나에 대한 재능을 제외하곤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운 좋은 삼류 마법사라며 말이다.
뒤끝이 느껴지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 강성우.
그리고 같은 반의 다른 학우들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학교 공인 바보.
그냥 자신들끼리, ‘야 우리학교에 그 바보 있잖아.’ ‘아아 걔?’하면서 간단히 지칭하며 대화해도 전혀 문제없이 전교생이 소통할 수 있었던 상대.
심지어 주변 다른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후연고의 바보하면 통용이 된다.
실제로 1학기 기말고사에서 강성우의 성적은 평균 17점.
단순히 찍기만 하고 주관식은 모조리 틀렸기에 나올 수 있는 점수였다. 후연고 역사상 전무후무할 기록적인 점수.
“으음······ 성우가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냈구나. 세 달 만에 총 13개 교과목 전체 평균이 77점이 오르고 전교 꼴등, 아니 447등에서 27등으로 무려 420등이······.”
당황한 탓인지, 스스로도 믿기가 힘들어서인지 강성우의 담임은 제대로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변한 건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
바보가 정상인이 되어 일진들의 괴롭힘에서 한 번에 벗어나더니, 성적마저 전교 27등이란 상위권 점수로 바뀌어버렸다.
괴물 같단 눈빛으로 강성우를 보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다.
물론 이제 와서 시험 성적이 높아진다 해도 그게 내신에 큰 영향을 줄 리 없다. 하지만 수능도 곧 학교 시험의 연장선상이란 점에서 보면, 강성우가 수능에서도 고득점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예상이 가능해진다.
“아······ 짜증나.”
“천재라는 게 진짜 있긴 했구나.”
우울감에 빠진 몇몇 아이들의 중얼거림.
그래도 다행히 ‘성적이 조작된 것 같아요!’ ‘분명 컨닝을 했을거예요!’ 같은 볼쌍사나운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다.
강성우가 평상시 향수처럼 퍼뜨리는 기품과 위엄 덕분에 말이다.
하지만 기적처럼 급상승한 강성우의 성적 때문에 박탈감이나 우울감 등에 빠진 아이들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자신의 노력 등이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또 헛수고였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
“성우야. 혹시 무슨 비법이라도 있니? 어차피 넌 수능을 봐야 하니 내신으로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진 않잖아.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으면 친구들을 위해 좀 알려주지 않으련?”
담임의 물음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강성우에게 가 쏠렸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 그게 말이죠······ 있긴 해요.”
아이들의 눈에서 광선이 발사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각.
강성우의 동생이 다니는 학교인 배인 중학교의 3학년 9반.
“뭐? 진짜? 문현이형이 그랬어?”
“그래. 손 좀 봐줘야겠다고 잡아서 끌고 오랬어.”
“야 근데······ 괜찮을까? 강수영네 오빠가 그 강성우란 사람 아냐? 얼마 전에 플레이어 자격도 획득했고, 소문으로는 싸움도 꽤 잘한다던데.”
“좇까 이 새끼야. 난 그딴 소문 안 믿어. 나도 그 새끼 알고 있었는데, 완전 개병신이었다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게다가 진짜 그렇다 그래도 뭐? 지 혼자서 일진들 전부랑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아. 하긴. 쌈 조금 할 줄 안다고 씹선비질하다가 다구리 맞아 털린 애들이 한둘이냐.”
자신들끼리는 서로 싸우기도 반목도 하는 일진들이지만, 자신들의 테두리 밖의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 엄청난 단결력으로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게 바로 일진이다.
어른들보다 더욱 지독하고 잔인하게 공포로 기득권을 지킨다.
“어쨌든 해버리자고. 문현이형이랑 다른 형들 빡치기 전에. 그리고 강수영 그 썅년도 요새 마음에 안 들어. 지가 언제부터 모범생이었다고 우릴 무시해?”
요새 강수영은 일진들과 완전히 거리를 두고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다. 어쩌다 대화할 때가 생겨도 귀찮고 관심 없음을 표시하며 밀어내고 있던 상황.
그리고 일진이 아닌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친분을 만들며 자신도 공부에 힘쓰고 있었다.
“어쨌든 이따가 점심시간 때 해결하자고. 몇 대 후려갈기면 쫄아서 따라 올 거야.”
이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다른 일진 하나가 불쑥 말했다.
“강수영 건드리면 현진이가 안 좋아 할 텐데.”
잊고 있었던 사실을 배현진과 같은 초등학교 출신인 김노대가 꺼내자 일진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배현진의 똘기와 무서운 싸움실력이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내, 배현진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었던 배인중의 짱 정명훈이 인상을 험악하게 찡그리며 협박했다.
“다 입 다물면 배현진 그 새끼도 모를 거야. 아니 그리고 알면 뭐 어쩔 거야? 그 새끼도 요새 일진에서 나갔다는데.”
뭉치면 배현진이든 누구든 두려울 건 없었다.
사자도 하이에나 여럿이 모이면 두려워 도망가니 말이다.
“끙······ 으으, 아후.”
“아! 이, 이건 요가보다 더 힘들잖아.”
“참고 해! 성우도 이걸 배우고서 성적이 좋아졌다잖아.”
학교 실내 체육관에선 체육수업이 없는 시간임에도 강성우가 속한 6반의 아이들이 기묘한 동작들을 취하며 신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니 잠깐. 신지수, 어깨가 너무 내려왔어. 더 위로!”
그렇게 말하며 다른 학생의 자세를 잡아주는 건 바로 강성우였다. 그리고 그가 가르쳐주고 있는 건 스스로 변형한 크리에타.
전투와 관련한 부분들은 모두 제거하고 대신 내기와 마나를 조금씩이라도 쌓을 수 있을 동공(動功)적 요소들을 추가 시켜 놨다. 더불어 특별한 마법적 수식까지 함께 말이다.
‘무공에 필요한 내력을 키우기 위한 내공심법들. 그 중에서도 동공의 체계적인 수련법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지. 덕분에 이렇게, 동작에 마법수식을 곁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물론 복잡하고 강한 것은 부여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동작을 취하는 자신에게 마나작용으로 정신에 미약한 성향주입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즐겁지 않다, 내가 즐거우려면 남을 돕고 괴롭히지 않아야 한다.]
하는 정도.
현대식 크리에타를 익히면 익힐수록 자연스레 저런 마음이 들 것이고, 그것은 차후 분명 좋은 방향으로 사회에 작용한다. 강성우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강성우의 담임, 스물아홉 살 여교사 신은경은 반 아이들보다도 더 심하게 굳은데다 운동을 안 해와 근력이 매우 부족하여 자세 몇 가지를 취하다 힘들어 쉬고 있었다.
“선생님? 그렇게 하시면 결국 아무 효과도 없어요. 분명 아직 한계는 아니시니까 좀 더 참고 해주세요. 고통, 그러니까 자극을 참고 견디면서 나아가야 성과를 거두는 법이에요.”
제자에게 지적을 당한 탓인지 얼굴이 붉어진 신은경이 투정부리듯 말했다.
“하, 하지만 난 너희들처럼 공부가 딱······.”
강성우가 말을 끊었다.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되고, 요가나 필라테스보다도 체형 교정에 도움이 될 겁니다. 자연스레 힙업과 바스트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당연하고요.”
신은경이 입을 한일자로 꽉 다물더니 열심히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본래 담임의 수업이었던 2시간동안 크리에타를 가르쳐준 강성우는 플레이어 양성 학교에 가기 전, 급식을 먹기 위하여 식당으로 이동을 했다.
“아구구······ 으으, 진짜 아프다.”
“성우야. 너 정말 이거 하고 나서 성적이 좋아진 것 맞지? 그리고 그······ 흠흠. 네가 정상이 된 것도 이것 덕분이고?”
현대식 크리에타를 전파하기 위해 강성우는, 보통 사람이 보기엔 기적과도 같은 자신의 변화가 모두 크리에타 덕분이라 둘러댄 상태였다.
크리에타 수련을 한 아이들이 근육통 생긴 팔다리를 주무르며 재잘재잘 강성우와 함께 걷는데, 앞에서 등장한 세 명을 보고 움찔했다.
복장과 행동에서 껄렁껄렁함이 그대로 새어나오는 그들 세 명의 일진이 아이들을 어깨로 치며 다가와 강성우의 앞까지 왔다.
“야. 잠깐 얘기 좀 하자?”
강성우는 차갑고도 깊은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얘기정도야 할 수 있겠지. 어디로 갈까?”
단지 눈빛을 받았을 뿐인데, 일진 셋은 몸을 자신도 모르게 움츠렸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이라 어떻게든 이겨내며 태연히 말했다.
“따, 따라와라. 문현이가 기다린다.”
강성우가 일진들에게 불려가지만 함께 있던 아이들은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래 일진들에게 당하며 살았었지만 강성우에 의해 해방되었었던 한 키 작은 남자아이가 입을 열어 말리려 했지만, 입만 벙긋 열릴 뿐 소리가 흘러나오진 못했다.
두려움이 더욱 크기 때문이었다.
일진들을 따라 강성우는 학교 뒤편 펜스로 향했다.
'이런 녀석들과 자꾸 엮이는 것도 짜증나는군. 이젠 전과 달리 힘도 생겼으니 오늘 싹 정리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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