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살아남은 붉은오크들이 전부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날아올랐고, 강성우가 사용한 칼날 파편에 의하여 생성된 날카로운 마법체가 오크들과 함께 휘말려 그들을 관통하고 베었다.
투명하던 회오리바람이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크와!”
“그어······.”
붉은 오크들의 비명이 사방을 가득 메우고, 피와 살점을 잔뜩 머금고 맹위를 떨치던 회오리바람이 이내 그쳐서 품고 있던 것들을 땅바닥에 내뱉었다.
철퍽- 투두두둑!
붉은오크 부락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니 강성우의 레벨이 총 25상승하여 137이 되었다.
“경험치 요구량이 늘어나서 그런가, 확실히 레벨업이 점점 힘들어지는군.”
“하아······ 우으, 힘들어.”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힘이 약한 로누아가 죽는 소리를 냈다. 확실히 대규모 속박의 땅을 증폭시킨 것 때문에 피로한가 보다.
로누아는 강성우의 어깨로 날아가 걸터 앉더니, 그의 목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제 돌아가자, 로누아."
한 사람과 한 요정용이 아지트에 도착했다.
“돌아오셨습니까, 주군.”
“아아 그래.”
강성우는 데미트린에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저 발가벗은 데미트린의 몸 위로 서서히 올라오는 근육과 새로이 찢어지고 아무는 상처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이봐 데미트린. 내가 진짜 마왕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
느닷없는 질문에 데미트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드래곤들도 무시 못하던 전하셨습니다. 그 마왕의 급이 문제겠으나······ 하급의 마왕 정도라면야······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혹 BR때문이십니까?”
강성우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에 눈동자엔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을 내비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이제 흑마법을 배우고 연구할 것이다.”
데미트린과 로누아가 기겁하여 소리쳤다.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전하!”
“주인 미쳤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강성우가 폭탄 선언을 하나 더 했다.
“고작 그것 가지고 놀라다니. 내가 배울 흑마법의 주체는 마신이다.”
농담도 거짓말도 잘하는 주군이지만 저런 표정으로 단호히 말할 때는 그것을 반드시 지키고 만다.
그것을 알기에 데미트린은 숨이 멎을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신! 도대체 인간이 넘볼 수나 있는 이름인가?
9중계를 구성하는 여러 세계 중에서 현재 인간들이 살고 있는 중간계가 가운데에 위치하여있고 사방으로 각기 다른 곳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신계와 마신계는 독특한 형태를 가졌는데.
하나의 커다란 세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신과 마신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고 여기저기 멀리 흩어져있다.
자그마치 ‘신’인 것이다.
그러니 각기 다른 자신들만의 세계를 소유하고 있는 것.
물론 신계와 마신계에서 태어나지 않고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 한들 초월적인 강함을 얻어 신성을 획득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중간계에서 예를 든다면 드래곤들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조화룡과 혼돈룡들이 그러했고 타일런트 제국의 건국왕인 페이탈이 그러했다.
“주······ 주인. 그런 걸로는 장난치는 게 아니야. 나 지금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린다구.”
하지만 강성우의 표정엔 변화가 없고 ‘장난이었어.’하고 말하지도 않는다. 로누아의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점점 커져갈 때, 데미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굳히셨군요,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이 어디로 걷던 따르겠습니다.”
“둘 다 혹시나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아무리 마신이라 해도 중간계까지 100%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만반의 준비를 하여 마신이라해도 속이는 것이 가능할 듯하다.
‘게다가 새로 만들고 있는 마법체계가 내 예상과 틀림없다면······ 굳이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흑마법을 구현하는 게 불가능은 아닐 거야.’
머릿속에서 갖가지 경우의 수와 방법들이 떠오르자 강성우는 더 데미트린이나 로누아와 얘기하지 않고 자신의 책상으로 가 엄청난 속도로 마법펜대를 움직이며 자신의 이론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마신이라니, 마신이라니! 마왕과 계약을 하겠다해도 놀랐을 텐데, 마황도 아니고 한술 더 떠서 마신!?”
패닉 상태에 빠진 로누아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후아아암! 잘 잤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밖에 나온 강성우는 스마트폰에 온 문자를 보고 일찌감치 교복을 챙겨 입었다.
-어제 연락드린 에이전트 요한나입니다. 현재 강성우씨 댁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갔지만 아무도 없어 강성우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은색의 평범한 소나타 한 대가 다가와 앞에 멈췄다.
기이이잉-
유리창이 반쯤 열리고, 갈색의 부드러운 웨이브 머리에 태닝 한 듯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의 이십대 중반 미녀가 강성우를 쳐다보고 말했다.
“강성우씨, 어서 타세요.”
그가 자동차에 타니 짧디짧은 회색 미니스커트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던 미녀, 요한나는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있던 강성우네 동네를 능숙한 드라이빙으로 돌고 돌아, 사람들이 잘 안 올 것 같은 놀이터 구석에 차를 댔다.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미행은 없어 보이던데······.”
강성우의 중얼거림에 요한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의욕에 넘쳐서 혹시 모를 대한민국 정부 요원을 떨쳐내기 위하여 운전을 한 그녀였지만, 중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미행은 한 명도 붙지 않았다는 것을.
‘나 같은 신입 에이전트는 미행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 으으, 분해!’
하지만 요원답게 행동해야 한단 생각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말했다.
“어제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대거 타국으로 전향했습니다. 그로인해 한국 정부의 국정원 등 소속 요원들의 자국내 첩보망이 촘촘해지고 플레이어 관리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니 분명 미행인이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안전하지만요.”
강성우가 피식 웃으며 대충 동조해줬다.
“예, 그렇다고 하죠. 그런데 절 왜 보자고 한 것입니까?”
그의 물음에 요한나가 한 번 헛기침을 하더니 곧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성우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우리나라로 귀화하십시오.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취득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향후에 있을 징병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이고, 한국에서 플레이어 생활하는 것보다 미국에서 하는 것이 훨씬 더 높은 페이를 받게 될 것입니다.”
“대충 어느 정도의 페이를 부를 수 있죠?”
“현재 강성우씨가 고등학생인 것을 고려하여 기본급은 약8만불 선에서 정해질 것입니다. 물론 생명 수당, 몬스터 사체로 인한 추가 수당을 뺀 기본급입니다. 합친다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되겠죠?”
몬스터의 사체를 던전 밖으로 빼올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해당 국가의 의학과 과학계 등등에 미칠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의 생명체를 해부하고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니.
요한나의 제의는 확실히 솔깃할 만하다.
“······그럼 제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전 제 가족과 헤어질 수 없습니다. 제가 미국에 간다면 가족도 함께 가야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동생의 경우 영어도 못하고 정상적으로 영주권 및 시민권을 취득하기에 힘들 것입니다.”
머리를 쓸어 올리며 요한나가 말했다.
“플레이어 가족의 경우도 플레이어와 동일하게 특별귀화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단, 해당 플레이어의 기본급엔 그에 해당하는 패널티가 부여될 수 있습니다.”
강성우는 잠시 고민했다.
"이 문제는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만약 요한나가 러시아나 중국, 일본 등의 에이전트였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요구에 크게 반항할 수가 없는 국가.
그런 미국의 에이전트이기에 요한나는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요. 며칠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할까요?"
"늦어도 삼일이면 됩니다."
말을 하는 순간이었다, 요한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들어온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나서 요한나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경직된 상태로 한참동안 핸드폰 화면만을 보던 요한나가 이내 강성우를 힐끗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강성우씨. 정말 미안하게 됐군요."
"왜 그러시죠?"
"방금 저희쪽 1차 TO가 가득 차, 말씀드렸던 조건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성우씨 레벨이......"
"레벨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었나 보군요. 알겠습니다."
강성우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요한나가 급히 막았다.
"자, 잠시만! 이건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강성우씨. 하지만 이렇다해도 저희는 강성우씨에게 한국보다 더 나은 조건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요? 그게 과연 4만불은 넘길 수 있을까요? 거기다가 가족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그 말에는 요한나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방금 그녀가 받은 메시지에서는 강성우의 레벨을 뒤늦게 확인한 상사의 영입 반대 의사가 적혀있었다. 너무 저레벨이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죄송합니다, 강성우씨."
"괜찮습니다. 차라리 후련하군요."
뒷말은 더 하지 않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전 곧 한국 정부 정도야 바꿀 수 있을 힘을 확보할 수 있게 될테니까요. 어차피 제 계획에선 미국보다 한국이 더 낫기도 하고요.'
떠나가는 강성우의 뒷모습을 보며 요한나는 자신의 차 핸들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젠장, 젠장!"
어쩐지 모르게 호감이 가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촉이, 자꾸만 미묘하게 그를 놓치면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강성우씨?”
“기본급을 올려주지 않으면 정부 소속 플레이어가 되는 것을 좀 더 고려해봐야겠다 말했습니다.”
강성우의 말에 이체리의 표정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사실 그녀는 강성우가 꽤나 마음에 들었고 또 기대를 갖고 있었다.
비록 레벨 자체는 낮다지만 그가 가진 순발력과 체력, 여유로움에서 느껴지는 멘탈의 단단함은 그의 성장 가능성을 아주 높이 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초조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며 이체리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받아봤던 서류를 떠올렸다.
각 플레이어들의 기본급 인상에 대한 것이었는데, 어제의 난리 때문에 급하게 내려온 변경사항이었다.
대다수 플레이어의 연봉이 크게 인상되었지만 몇몇 인물의 경우엔 변동이 없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강성우였다.
“음······ 지금 당장은 내가 어떤 답을 하기가 힘들군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자존심이 상하지만 일단 이렇게 말하고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밖에 나가서 어딘가와 통화를 하며, 이체리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상대가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강성우의 잠재력에 대하여 끝없이 어필하며.
꽤나 긴 통화가 끝나고서 이체리가 다시 강성우와 대화하고 있던 회의실로 들어왔다.
"좋아요, 강성우씨.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무엇이요?"
"기본급을 올려주긴 힘듭니다. 하지만 군 복무를 플레이어 활동으로 대신해 줄 수 있고, 잡은 몬스터에 따라 인센티브를 올려 지급해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강성우가 아직 저레벨이고 던전에서 큰 활약도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인센티브를 생각한 것이리라.
강성우는 미소를 지었다.
- 작가의말
아들과의 이야기를 이번에도 완전히 들어내 2개의 화를 합쳤습니다.
또한 강성우의 현실 세계 이야기에도 꽤 변화를 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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