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을 벗어 나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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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고 있던 벽이 사라진 이상 강성우를 막을 건 없었다.
이대로 9클래스까지 가버리겠다. 다시 한 번 생전의 경지에 이르겠다!
이미 얻은 깨달음.
영혼에 각인된 위대한 마도의 힘.
마나 결정체가 사각뿔 결정으로 완전히 만들어지고, 강성우는 더욱 견고하고 방대해진 그곳에 마나를 쑤셔 넣었다.
3클래스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강성우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치사량에 도달하였습니다. 육체가 죽음을 향합니다. 마지막을 준비하십시오!
‘뭐, 뭐야!?’
피를 토함과 동시에 코에서도 피가 뿜어져 나왔고 이어 눈과 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받아들인 마나를 감당하지 못한 육체가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두통과 환각, 환청 등의 현상도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강성우가 양 손으로 머리를 쥐어 잡으며 몸부림쳤고, 그의 귓가로 또 다른 메시지가 들려왔다.
-당신은 게임 속에 정해진 룰을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건 본인의 재능에 의한 것,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는 않겠습니다.
-룰을 스스로 어긴 최초의 존재에게 히든 칭호 ‘이레귤러’가 생성됩니다.
-육체의 건강도가 7%에 달했습니다. 당신은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차 아득해지는 강성우의 정신 속에서 마지막 메시지가 들려왔다.
-망가진 육체 수복을 위해 현실 시간으로 향후 24시간동안 접속하실 수 없습니다.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최고로 심한 두통이 엄습해왔다.
전생의 모든 기억들.
분노, 환희, 증오, 평안, 혼란, 절망, 희망, 슬픔, 기쁨······ 그리고 사랑.
그 모든 감정들도 한 번에 강성우의 정신과 영혼을 할퀴듯 지나갔다.
머리가 쪼개지고 영혼이 비틀리는 고통 속에서 강성우는 때론 미소를 짓고 때론 화난 표정을 하고 또 때론 울었다.
이 모든 것이 고작 10초도 지나지 않은 시간동안 이루어졌다.
탈태가 끝날 무렵.
집 현관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피곤에 쩔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응? 아니, 얘가! 성우야. 왜 또 안 자고 있어. 정말 엄마한테 혼나야겠어? 피곤할 텐데 자지 않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미소 실린 어머니의 얼굴에선 하루종일 일하며 얻은 피곤이 어느새 거짓말처럼 싹 사라져있었다.
아들을 본 까닭이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그 어떤 자양강장제를 먹었을 때보다도 더 힘이 나는 것이다.
비록 그 아들이, 태어나면서 자폐를 앓고 병명조차 알 수 없는 병증에 시달림으로 인해 모든 가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게 어머니라는, 아니 임봉숙이라는 위대한 사람이었다.
강성우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저 가만히.
그러다 눈물을 또 주르륵 흘렸다.
“아, 아들? 무슨 일 있니?”
뭔가가 평소와 다른 아들의 모습.
항상 볼 수 있던 멍한 얼굴과 흐리멍텅한 눈동자가 아니다.
임봉숙은 급히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강성우가 그녀를 보며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다녀오셨어요, 어머님. ······항상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이제, 어머니 속 썩히지 않고 효도를 다하겠습니다. 정말 잘할게요.”
우연히 접속한 게임에서 마나를 느꼈다.
어떻게 그리도 완벽하게 ‘마나’를 표현해낸 것인지 놀랍고 또 의심이 가며 전율이 느껴진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환생하면서부터 강성우 자신을 괴롭혔던 두통과 환각과 환청이 이제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단 것이다.
무기력하던 몸에도 어던지 모를 활력이 흐르기 시작했단 것이다.
······이제 사람구실 할 수 있게 됐단 것이다.
그것 말고 또 중요한 게 무엇이란 말인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어머니, 임봉숙을 강성우가 마주 안았다.
전생에서는 겪을 수 없었던 이 위대한 존재를 느끼며 강성우는 말했다.
“저 이제 괜찮아졌어요.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엄마,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꼭 엄마 호강시켜드리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강성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나에게 중요한 건 오직 그것 하나야. 나를 위해 희생한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드리겠어.’
임봉숙은 이게 꿈인가 싶었다.
자신의 아들이 그 긴 말을 하며 단 한 번도 말을 더듬거리지 않았다. 스스로 다 나앗다 말하며 호강시켜주겠다 말한다.
아들의 품에 안긴 그녀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다음날.
임봉숙은 자신이 직접 아들의 학교에 전화를 걸어 병원을 가기 위해 오전은 쉬겠다 말하고. 괜찮다며 거부하는 강성우를 억지로 끌어 병원으로 향했다.
“모두 정상입니다. 환자 본인이 이제 그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했고, 혹시 몰라 해 본 테스트에서도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인지능력과 지적능력을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드님의 병은 일단 완쾌가 된 듯합니다.”
강성우는 당연한 결과에 고개를 끄덕였고 임봉숙은 의사가 확정을 내려주니 다시 한 번 눈물을 쏟아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흑! 흐흐흑! 우리 성우가, 우리 성우가! 정말 감사해요 의사 선생님!”
강성우의 담당의사이지만 사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의문의 불치병을 앓고 있던 강성우이기에 어떤 실제적 도움도 줄 수 없었던 담당의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임봉숙의 감사를 듣다가 문득 강성우를 쳐다봤다.
그런데 웃고 있는 강성우를 보니 그 눈빛 속에서 놀랄 정도로 원숙하고 깊은 느낌이 나 깜짝 놀랐다.
‘애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네. 무슨 칠팔십 먹은 노인네 같아.’
검사를 하느라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12시였다.
강성우는 너무 울어 기력이 다 빠져버린 어머니, 임봉숙을 부축하여 근처 순대국집에 갔다.
순대국을 먹으면서도 임봉숙은 계속하여 강성우에게 말을 시키고 그의 손을 잡으며 혹시나 다시 자폐증이 도지지는 않을까하는 염려와 대견함을 번갈아 표출하였다.
“저 정말 괜찮아요 엄마. 앞으로도 이제 그런 몹쓸 병에는 걸리지 않을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드세요. 순대국 좋아하시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강성우는 내심 계속하여 머리를 굴렸다.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가 힘들게 일하시는 건 정말 너무 싫은데······ 엄마는 그저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실 것이 뻔하고.
나도 이 세계의 시스템상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게 가장 안정적이란 건 알아.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게임 속에서나 마나를 느끼고 마나를 축적했었지. 현실에 오니 다시 마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쉽긴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진 않았다. 마법이 없더라도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이용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든다.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고민을 하던 중, 강성우의 귀를 잡아채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티비에서 흘러나온 것.
거기선 에투스, 그 중에서도 파인더의 유명 공대 중 하나인 써전크로스의 공대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네, 블랙웜이 분명 강력한 보스 몬스터였기는 하지만 저희 써전크로스 공대원들의 실력과 강력한 연계 전투 앞에서는 그리 어려운 적도 아니었습니다.
자신감과 당당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써전크로스 공대장 최종원의 모습.
그리고 뒤이어 써전크로스가 이번 레이드를 통해 얻은 부수입이 추정 얼마이며 하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추산 4000만원.
총 40명의 공대원들이 나눠서 갖는다 해도, 그걸 게임 속이 아닌 현실의 돈으로 치환했을 때에 100만원이란 돈이 된다.
한 달에 네 번만 레이드를 뛰어도 400만원이다.
그걸 본 강성우의 눈에 번쩍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그래. 에투스! 맞아. 게임 속의 아이템과 같은 것들을 현금으로 거래하는 팔짜 좋은 사람들도 많다고 했지. ······좋아, 잘하면. 좋아······!’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함으로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그 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티비를 보며 웃음 짓는 강성우의 눈에 다음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라산 지킴이로 유명했던 한 산악인이 정체불명의 동굴이 나타나서 탐사하겠다는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실종됐단 내용의 뉴스였는데,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길지 않게 끝났다.
“엄마, 이제 일어나요. 저 학교 가야죠.”
“아! 그래. 그래 우리 아들 공부하러 가야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알았지? 뒤떨어진 공부 따라가려면 많이 힘들 거야. 엄마가 어떻게든 과외교사를 구해 볼 테니까 조금만 참고 열심히 공부해, 알았지?”
강성우는 미소 지으며 임봉숙의 손을 꼭 잡아줬다.
“과외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엄마. 제가 알아서 할게요. 집에 교과서 다 있잖아요. 그거 보고 배우면 되죠. 그럼 저 갈게요, 엄마.”
어머니와 헤어지고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학교에 들어간 강성우는 조용히 1층에서부터 고3 교실이 위치한 4층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한 것은.
점심시간이 끝나면서 계단이니 복도에 가득 찼던 학생들이 이상하게 강성우가 가까이 오면 뭔가 모를 느낌에 빠져 그의 앞길을 터주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동급생은 물론이요 후배들까지 강성우를 무시하며 뒤통수를 때리거나 괴롭히던 이전 날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게 강성우가 천천히 걸어가 자신의 반인 6반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았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반 아이들의 시선이 저절로 강성우에게 향하여 꽂혔다.
그리고 이때.
마침 딱 담배를 다 피고 교실로 들어왔던 6반의 대표 일진, 박종식이 강성우를 발견했다.
박종식은 사실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공부 문제로 엄마와 싸우고 아빠에게 맞기까지 한 그는 한가득 쌓인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박종식은 잔인함에 찬 웃음을 지으며 강성우에게 걸어갔다.
“여어, 떠듬이! 이젠 학교도 째고 완전 돌았나 보다? 나쁜 새끼한테는 벌을 줘야지!”
그렇게 말하며 강성우의 뒤통수를 후려치려는데, 강성우가 그를 돌아봤다.
“흡!”
뭔가 모를 느낌과 범접할 수 없는 위엄!
무형의 무엇에 짓눌린 박종식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주춤 뒷걸음질쳤다.
강성우가 그런 그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무슨 일이지?”
욕을 하고 때리려 했는데,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
평소 때와 다르게 말을 더듬지 않는 강성우의 모습이 63빌딩보다도 아니 그 어떤 빌딩보다도 더욱 크게 느껴진다.
마치 태양을 10미터 앞에 두고 쳐다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 위엄! 존엄! 품격!
박종식은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래, 그건 영혼의 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 작가의말
주인공이 제정신을 차린 뒤에 무엇을 해야 할지 활로를 모색하던 장면.
허물을 벗은 뒤 처음으로 학교에 갔을 때의 장면.이 부분들의 문장들을 전체적으로 손봤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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