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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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우 역시 한 나라를 다스려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정보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부의 체제나 법 등에 큰 문제가 없음에도 타국보다 정보 유출이 심하다면 그 원인은 소속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타락 등이 원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저는 현재 미국 신생 부처인 이계대처국의 국장에게 협상권을 위임 받았습니다. 강성우씨에게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가능하시다면 내일 오전, 집 앞에서 만나 뵙고 싶습니다.”
만나서 나쁠 건 없다. 손에 쥐고 있는 카드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내일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어떤 내용의 제안인지 말은 안 했지만 강성우는 그것이 ‘미국으로의 이민’ 즉. 귀화를 요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플레이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근데 내 레벨까지는 모르고 있나 보네. 흐음. 그렇다면 실무진 쪽은 아니고 더 높은 쪽과 연관이 있나 보군.’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이 자신을 불렀다.
“오빠, 오빠! 이리 나와봐!”
밖으로 나가니 아까 방에서 자겠다고 하던 강수영이 나와선 TV를 틀어놓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몬스터! 우리나라에도 몬스터가 나타났대!”
“······뭐?”
J모 방송국에서 뉴스특보를 내보내고 있는데, 그 배경엔 몬스터에 당한 현장의 참혹성이 모자이크로 가려져 표현되어 있었으며 밑엔 강원도 홍천에 몬스터 출몰이란 자막이 있었다.
“벌써 민간인 셋에 경찰 넷이 죽었고, 민간인 중에 중상자가 많아 더 죽을 수도······.”
이미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나온 이상 플레이어들이 활약할 여지는 없다. 남은 것은 현대 무기를 통한 몬스터 제거 뿐.
-현재 확인된 몬스터는 오크가 최소 열 개체, 비홀더가 세 개체입니다. 또한 트롤로 의심되는 개체도 하나 제보가 들어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군이 사용하는 소총의 5.56미리 탄환엔 큰 저항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것은 몬스터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는 고유마력장 때문이란 의견도 있고 일각에선 그들의 놀라운 재생력과 찐득한 혈액 때문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둘 모두 맞는 말이야. 저쪽 세계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소량의 마나를 소유하고 있고, 선천적인 마나량이 많으며 인간 및 아인종과 다른 형태인 몬스터들은 대개 고유마력장이란 것이 존재한다.
모든 곳에 마나가 있는 저 세계에서야 그게 고위급 몬스터가 아닌 이상엔 별다른 효과도 없다지만, 마나가 없는 이 세계에선 하급한 몬스터가 지닌 고유마력장이라 할지라도 상당한 메리트가 된다. 애초에 밀도 자체가 다른 거야, 밀도가.’
고유마력장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것에 저항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저쪽 세계의 생명체들이야 모두가 태어나면서 고유마력장을 갖고 있으니 서로서로 어느 정도 중화가 가능하지만 이곳의 생명체들은 다르다.
더불어 몬스터의 피는 저쪽 세계에서도 다른 일반적 생명체의 피에 비해 훨씬 점성이 강하고 복원력이 탁월하다. 그러니 총탄과 같이 관통력을 극대화시킨 공격엔 강점을 보일 수밖에.
다행히 오크야 몬스터긴 하지만 아인종의 특성도 지닌 존재이고, 총탄에도 비교적 쉽게 당할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전사나 주술사 등이 껴있다면 그것도 골치 아프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비홀더와 트롤이었다.
이 둘 때문에 분명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될 것 같았다.
“멍청한 자식들. 모든 가용인력을 사용해서 전국을 샅샅이 뒤져 던전을 찾았어야지······. 땅덩어리에 비해 사람이 많은 국가이면서도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강성우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강수영은 이제 잠이 확 달아났는지 TV앞에 쪼그리고 앉아 근심걱정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어떡하지? 사람들 더 죽으면 어떡해······ 아아.”
안심하라는 듯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강성우는 TV에 집중했다.
어찌됐든 대대급 병력이 급하게 움직였고, 같은 연대의 다른 대대와 포병대대도 곧 화력지원을 시작한다고 한다.
피해는 더 받겠지만 그 정도면 진화가 가능할 것.
땅이 넓은데 사람이 적고 방위군이 그리 촘촘하지 않게 배치되어있던 호주. 그리고 그와 유사한 환경의 나라들은 이미 몬스터들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받았고, 아직도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남아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
‘아. 그런데 북한은? 북한은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던전과 몬스터 출몰에 따른 각 나라의 피해에 관해 생각하다보니 북한 생각이 대뜸 들었다.
북한에도 플레이어가 있을까?
아니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북한도 땅 크기에 비해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으니 지금 당장은 몬스터가 출몰해도 격퇴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다른 나라들처럼 아예 던전 안에서 플레이어를 이용해 사전 제초작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
결국 피해는 계속해서 누적될 것이고······.
‘어떻게 해도 몬스터를 해결하기가 힘들고 결국 멸망할 것임을 알게 된다면 그 놈들이 대체 어떤 미친 짓을 할지······!?’
그 생각을 하고나니 갑자기 강성우는 온 몸의 털이 쭈뼛하며 바짝 일어섰다.
‘후우, 생각해보자. 북한이 그런 파국을 막기 위해서 무슨 조치를 할까?’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에투스 접속기의 확보와 더불어 플레이어 육성이다.
‘그래. 아무리 북한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위층 자제들의 경우엔 에투스 접속기를 밀반입해서 플레이한 경우가 분명 있을 거야. 일단 그들을 찾아내서 법을 어긴 것에 대하여 면책을 해주고 영웅 대접을 해줘야지.’
물론 그것이 자기 부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당장 플레이어의 존재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북한 전체에 있을 던전의 숫자에 비해 플레이어의 숫자가 훨씬 적을 것은 당연한 일. 해외에서 새로 구매한 에투스 접속기를 통하여 신규 플레이어를 육성하는 것이 굉장히 시급하다.
더불어 해외에서 용병을 들여와 그들을 통해 던전 안의 몬스터 개체수 조절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시행하는 데엔 돈이 필요하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굶어죽는 가난한 나라인 북한에서 그걸 감당할 여력이 될까?
“······미치겠군.”
“응?”
혼자 중얼거린 말에 반응을 보이는 강수영에, 강성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신경 안 써도 돼. 그보다 얼른 자야지. 이러다 내일 아침에 졸려서 고생하겠다. 일단은 다 잊고 자.”
“우웅······ 알았어.”
강수영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강성우는 거실에 서서 잠시 TV를 쳐다보다 이내 끄고 에투스 앞에 앉았다.
크리에타를 다시 익힌 이후로는 전생에서처럼 잠을 별로 자지 않아도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기에 시간에 대한 압박감은 없다.
“시작해볼까.”
***
눈을 뜨니 데미트린이 어딘가에서 구한 나뭇가지로 땀을 흘리며 검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아! 주군. 이제 일어나셨군요.”
“그래, 데미트린. 나 없는 사이에 별다른 일은 없었나?”
데미트린이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팔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별 거 없었습니다, 주군. 아······ 그렇지, 하나 정도는 있군요.”
처음 데미트린을 구해올 당시. 그는 비쩍 말라있었다. 근육이나 지방질은 찾아볼 수가 없는 모습. 거기에 골병이 온 몸에 들어 찬바람만 불어도 인상을 찡그렸다.
비록 삼일의 시간이 지난 것뿐이지만, 데미트린은 그사이 꽤나 혈색이 좋아지고 몸에도 살이 붙어있었다.
“뭔데 그래?”
“저기 지금 자고 있는 아가씨 말입니다. 중간에 깼었는데, 글쎄 저를 강도로 오해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탓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행히 데미트린이 대처를 잘해서 요정마법을 썼다거나 하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예전과 다른 지금의 데미트린으로서는 큰 일이 났을 것.
“큭······ 큭큭큭.”
“아, 왜 웃으십니까. 주군. 제가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데미트린은 여성공포증 비슷한 것이 있어서 여자와 대화를 할 때면 항상 허둥댔었다. 그것이 지금도 그러한지, 요정용을 상대로도 그러한지 궁금했지만 강성우는 꾹 참고 말했다.
“그래. 내가 시킨 것은 제대로 잘하고 있었어?”
그의 물음에 데미트린이 씩씩하니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말씀하신 탕에 약재를 넣고 정해진 시간마다 휴식을 취했으며, 준비해두신 마법 시약도 잊지 않고 발랐습니다.”
“그래, 잘했다. 아 그리고······.”
강성우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요정용, 로누아가 긴긴 잠에서 깨어났다.
“후아아암! 잘 잤다. 어? 주인! 돌아왔구나?”
반가운지 로누아가 강성우의 주변을 요란스럽게도 빙빙 돌며 좋아했다.
“그래. 근데 왜 데미트린을 괴롭혔어?”
그러자 로누아가 ‘쳇’하는 소리를 내며 허리에 양손을 척 올렸다.
“그럼 어떡해? 주인은 의식이 없지, 아지트에 처음 보는 인간 남자, 그것도 흉측한 녀석이 서있지. 난 당연히 도둑 아니면 강도라 생각하고 주인을 지키기 위해 그런 거라구!”
틀림 없는 진실로 느껴져, 강성우는 그래도 로누아가 자신을 위한 마음에 그랬단 것이 기특하여 손가락 끝으로 로누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헤헤헤.”
기분이 좋아진 로누아의 토끼꼬리가 빵빵해져서는 마구 흔들렸다.
웃던 로누아가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 근데 난 운도 없지······.”
“응? 왜?”
“정령계에 있을 때, 인간계의 대표 꽃돌이들이라고 하면서 리온, 클로아, 데미트린, 이리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구. 나도 인간계에 가면 그런 꽃돌이들과 함께 다닐 것 같았는데······.”
강성우가 말문이 막혔을 때, 데미트린이 입을 열었다. 그래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것을 알기에 하지 말라고 눈짓을 주었건만, 눈치 없는 데미트린이 말했다.
“저기. 내가 바로 데미트린이고 나의 주군이신 저 분이 바로 리온 폰 마하라스님이시다.”
로누아가 데미트린을 보며 그저 ‘풉!’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믿지 못하는 것이냐? 내가 지금 비록 이런 몰골이 됐다지만 그건 전투와 고문으로 인한 것이고 주군께서는······.”
잠시 강성우를 쳐다본 데미트린이 낮은 한숨을 쉬었다.
“몸이 바뀌어서 지금 저런 것뿐이시지, 예전엔 칠흑처럼 검고 윤기 나는 흑발에 밤하늘의 별과 보석보다 찬란한 눈동자, 시리도록 하얀 피부와 아지엘 산맥의 꼬리보다 도도하고 아름다운 콧대를 지닌 분이셨다.”
그렇게 강성우의 전생, 리온의 외모에 대해 찬양하던 데미트린은 당사자 앞에서 이렇게 아부처럼 느껴지는 말을 하는 게 부끄러운 건지 뭔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강성우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데미트린 경의 그 묘한 한숨과 ‘저런 것 뿐’이란 말이 이상하게 신경 쓰이는군?”
그러자 실수했음을 깨달은 데미트린이 당황했다.
“아, 아닙니다. 주군! 주··· 죽여주십시오!”
걸핏하면 ‘죽여주십시오’란 말을 해서 자살희망기사란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가졌던 데미트린. 그게 떠올라 강성우는 추억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강성우가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던 데미트린이 ‘주군?’하면서 그를 쳐다보고, 두 남자의 하는 양을 팔짱 낀 채 지켜보던 로누아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기사 아저씨. 아직까지 한 숨도 안 잔 거야? 맞지?”
여태까지 보인 당황과는 급이 다를만큼 크게 데미트린이 당황하며 로누아의 말을 막으려 하고, 그보다 먼저 강성우가 말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로누아? 잠을 안 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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