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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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 말대로 흡연자들에게도 역시 행복추구권이 있고, 국가가 합법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담배를 필 권리 역시 있지. 하지만 그건 성인 얘기고. 넌 아니잖아? 어디서 따박따박 헛소리냐? 게다가 여긴 금연구역이야.”
기본적으로 자신이 잘못한 건 맞으니, 시선 중학교 짱이자 게임 내에선 천검 용병단 소속 고레벨 기사유저인 배현진은 말로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달려들었다.
첫 번째 공격으로 왼손 잽을 날려 상대의 시야를 가리고 그와 동시에 허리를 강하게 튕겨 오른 주먹을 내뻗었다. 물론 발은 오른 주먹과 타이밍을 맞춰 땅을 강하게 딛는다.
“······어?”
강성우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잽을 간단히 피하고 배현진의 품으로 한 발 먼저 파고들었다.
그러니 배현진이 원래 생각하던 펀치 각이 나오지 않았고, 강성우는 그대로 멱살을 잡고 넘겨버렸다.
쿠당탕-
황당할 정도로 깔끔하게 당한 배현진은 등에서 시작하여 온 몸을 찌르르 울리는 고통 속에서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이내, 선배 용병들의 호된 질책이 들리는 것 같아 급히 미끄러지며 강성우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넘어진 상태에서 공격당하면 답이 없으니 말이다.
배현진이 부랴부랴 방어자세를 취하는데, 정작 강성우는 팔짱을 낀 채 그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업신여김 당한단 생각에 배현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솔직히 파인더의 유저 중에서 마법사를 제외한 육체파 중에는 NPC들이 가르치는 체술, 검술 등을 정말 열심히 익히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당연히, 힘들고 지루하기 때문.
어차피 레벨을 올리면 알아서 강해지고 정확한 동작이니 뭐니를 배우지 않아도 몬스터를 때려잡을 수 있으니······.
하지만 외모와 달리 우직한 성격인 배현진은 처음 파인더를 시작할 때부터 NPC들이 가르쳐주는 무술에 심취해 내공도 익히면서 열심히 배웠었다. 접속시간 네 시간. 파인더의 시간으로 치면 열두 시간 동안 무술동작만 수련한 날이 비일비재했었다.
처음엔 친구들도 그런 배현진을 비웃었지만, 그 덕택에 배현진은 항상 자신의 레벨보다 더욱 높은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가 있었고 현재는 학교에서도 짱이라 불리며 잘 나갈 수 있었다.
그랬던 배현진이기에 지금 친구들 앞에서 당하니 자존심이 크게 상해, 이를 꽉 물고 다시 강성우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질 리 없어! 타일런트 기사 체술은 최강이다!’
하지만 강성우의 입장에서 배현진은 그야말로 하룻강아지일 뿐이었다.
전생에 그는 나중엔 마법사가 되었지만 원래 육체노동을 주로 하던 노예였다. 마법사가 된 이후에도 일대 다수로 싸우거나 기습을 당할 때엔 기사와 근접전을 벌이는 경우도 많았었다.
특히나 악연이었던 타일런트 제국 기사들과는 수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싸워왔으니, 마법사인 강성우라고 해도 그들의 수법과 대처법은 꿈꾸면서도 자동적으로 나올 정도다.
게다가 완성도 측면에서는 타일런트 기사 체술보다도 뛰어난 크리에타 역시 익히고 있는 상태니 꿀릴 것도 없다.
쿠당탕탕!
아까보다 더욱 요란하게 배현진이 땅을 나뒹굴었다.
다른 중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을 상대해도 저렇게 밀린 적 없던 배현진인데.
“이 개자식이!”
얼굴이 시뻘게진 배현진은 아무리 넘어지고 당해 아프고 피가 나도 계속하여 달려들었다.
곱게 생긴 얼굴과 달리 굉장히 저돌적인 스타일이다.
“부족함도 모르고 멋대로 덤비다니, 기사의 기본도 안 된 놈이잖아. 용기와 만용은 다른 것이고 근성과 미련함도 다른 거다.”
“헉, 허억······ 헉.”
이번엔 일부러 힘을 강하게 줘, 당분간은 못 일어날 정도의 충격을 가해뒀다.
강성우는 배현진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중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야. 너희들 갖고 있는 담······.”
거기까지 말했을 때. 뒤에서 배현진이 말했다.
“아직······ 안 끝났어!”
강성우가 뒤를 돌아보니 배현진이 이를 악물고 일어나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그렇고그런 녀석인 줄 알았고, 시시껄렁한 일진이겠지 싶었는데 단순히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재밌는 걸. 유스타피가 떠올라.’
유스타피.
마하라스 왕국 근위기사단 소속 여성기사였다. 초록색 머리에 굉장히 귀여운 얼굴과 달리 싸움이 시작되기만 하면 불타는 호승심과 끝 모를 투쟁심, 근성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그 아이는 어찌 됐을까······.’
생각하며 강성우는 버티고 있던 배현진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후에 그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담배갑과 라이터를 챙겼다.
“너희들도 가진 담배 다 내놔.”
이미 주눅 든 중학생들은 더 대들 생각은 하지 못하고 쭈뼛쭈뼛대며 갖고 있던 담배들을 하나둘 빼서 강성우에게 건넸다.
겁먹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니 이제야 좀 중학생처럼 보인다.
강성우는 한숨을 한 차례 쉬고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잘못은 내 자신에게 있는 거야.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사회를 미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억울하고 짜증나고 불공평하다면 스스로 바꿔봐.”
학생들이 비뚤어지는 이유에서 가장 큰 것은 뭔가의 결여다.
그것을 알기에 강성우는 그렇게 한 차례 말한 뒤에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뒤에서 다시 배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당신 캐릭터 아이디가 뭐요? 딱 보니까 파인더에서 근접 전투 계열 고렙일 거 같은데.”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는 배현진의 물음에 강성우는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알아서 잘 찾아봐. 아참 그리고, 혹시 내게 져서 분하다면 일단 담배부터 끊어라.”
다음날.
학교는 들썩거렸다.
고3 교실의 평소 분위기와 전혀 다르게,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고 난리도 난리가 아니였다.
“그래서 플레이어 적성 검사는 어떻게 된대?”
“일단은 고레벨 유저들을 우선시해서 시작된대. 그래야 몬스터들을 사냥하는데 더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야.”
“하긴 그건 그렇네. 아아! 나도 플레이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왜? 어차피 던전 밖에서는 능력도 못 쓰잖아.”
“바보야! 내가 장담하는데, 앞으로 플레이어는 엄청난 대우를 받게 될 거야. 목숨을 구하는 의사와 사회를 유지시키는 검사 변호사.
이들에 비해서, 무력으로 사람들을 지켜주는 군인이 왜 일반적으로 더 낮은 신분인지 알아?”
“글세. 왜 그런데?”
“실제적인 위협이 주변에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야. 물론 우리나라는 북한이란 존재가 있다지만, 사실 정말 위협이라 하기엔 좀 어폐가 있잖아.
반대로, 내전 중인 국가 등에선 군인의 힘이 정말 강해. 군부가 나라를 통치하는 경우도 많고. 그러니까······.”
“아아. 몬스터는 전 세계 각지에서 등장할 수 있고, 그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게 하기 위해 미리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플레이어들의 가치는 엄청 높은 거겠네.”
“그래, 그렇지. 그러니까 난 꼭 플레이어가 돼야 한단 말이야.”
수학 공부를 하며 열심히 여러 문제를 풀고 있었지만 강성우의 귀는 열려있었다.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당장 오늘부터 플레이어 적성 검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방법은 이미 공개가 되어있었다.
정부에 의해 공인이 된 플레이어들이 대상자들을 데리고 던전에 들어가 확인을 하고 나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파인더의 유저수 자체가 워낙 많기에, 던전과 공인된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부족하여 순차적 테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공부를 하다보니 어느새 하교 시간이 되었다.
중간중간 학교 내에서도 유명한 파인더 고렙들이 선생님의 호출에 학교를 떠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후우. 이제 가볼까. 빠르게 강해져야 하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강성우는 이제 그만두게 된 알바엔 가지 않고 바로 집에 향했다.
그리고 에투스에 접속했다.
“좋아. 저번엔 방해 때문에 못했지만 이제 4클래스에 돌입하자.”
이미 계획은 세워 놨다.
우선 퀘스트와 레이드 등을 통하여 레벨을 올리고 돈을 모은 뒤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데미트린을 구출해온다.
‘반드시 너의 몸을 치료해주마. 다시 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
강성우의 눈빛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 작가의말
배현진과 싸우는 장면에서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이 굉장히 많이 보이더군요.
대대적으로 수정을 가하였고 배현진의 캐릭터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몇몇 부분들을 삭제 및 추가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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