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너희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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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미의 목에 날카로운 칼날이 와 닿은 것을 본 나하윤은 창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여만기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수진이가 손가락으로 하늘에 떠다니는 반딧불 같은 것을 가리켰다.
“지금 저기 있는 드론이 이 장면을 모두 찍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 솔미 선배를 놓시죠!”
무기를 겨눈 채 다가온 세 명의 남자가 수진이의 말을 듣고 비웃음을 날렸다.
“우헤헤헤! 그래서 너희가 병아리인 거야! 우리가 그런 것도 모르고 이런 짓을 벌였겠냐? 지금 우리 모습은 안 나가! 왜 그런 줄 알아?”
말문이 막힌 수진이의 눈이 경련을 일으키듯 깜박거렸다. 지오가 땅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여만기를 보며 말했다.
“개새끼들, 이거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여만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방금 비웃음을 날린 놈이 지오를 쳐다봤다.
“우헤헤헤! 그래, 역시 리더는 다르네. 바로 눈치를 채네!”
일어선 민수련이 수통에서 물을 한 번 들이마시고는 땅바닥에 뱉었다. 그리고 레이피어를 꺼내 바이올린의 활처럼 솔미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방금 입에서 게거품을 뿜어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얼굴이었다.
“자, 모두 강혁 씨를 따라가! 조금만 허튼짓 하면 이 프리스트는 다시 못 본다.”
인질이 된 솔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솔미의 동그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수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리에 손을 얹진 채 발을 동동 굴렸다. 하윤이는 연신 쓰발쓰발을 내뱉으며 욕을 했다.
지오는 야수격투술로 번개같이 민수련을 덮쳐서 어떻게 해 보려고 했지만, 만약 실수를 한다면 솔미의 생명이 위험할 것 같아서 포기를 했다.
속에서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지만 어쨌든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위기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속으로 계속 뇌까리며 주위를 살폈다.
솔미가 인질로 잡혀 있는 이상 세 사람은 강혁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강혁이 맨 앞에 서고 헬칸 파티 세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그 뒤에는 뒤늦게 나타난 세 사람이 칼을 겨눈 채 따라왔다.
민수련은 솔미의 목에 칼을 겨눈 채 여만기와 함께 맨 뒤에서 걸었다.
뒤늦게 나타난 남자 중 한 명이 여만기에게 소근거렸다. 야수감각으로 오감이 발달된 지오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파티장, 저놈들이 가진 아이템이 꽤 괜찮은 것 같은데 우리가 가지죠?”
“안 돼! 그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져!”
“복잡할 게 뭐가 있어요?”
“내가 알아봤는데 저 아이템들은 아이제이 최혜원이에게서 빌린 거래!”
“아니 그 어린 것이 저런 고급 아이템을 이만큼이나 모았다고요?”
“자기 아버지 거겠지!”
지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교육관 지하에 그렇게 많은 고급 아이템이 있다는 게 놀라웠는데, 아이제이 그룹의 오너인 최 회장이 모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그럼 안 가져가는 게 낫겠군요. 최 회장이 분명히 헌터를 시켜서 찾겠군요.”
“그 뿐인가, 저 아이템엔 위치 추적 장치가 달려 있을지도 몰라!”
이번에 다른 남자가 여만기에게 질문을 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쟤들 죽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만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돼! 지금 죽이면 이들이 죽은 장소에 우리가 같이 있었다는 증거가 남아. 우리와 떨어진 곳에서 죽어야 우리의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어차피 거기서 떨어지면 다 죽을 거야. 네 명 모두 비행 스킬은 없거든!”
참가자의 몸에 있는 위치 발신기는 착용자가 죽을 경우 별도의 신호를 보내게 장치되어 있었다.
또 다른 남자도 질문을 했다.
“쟤들에게 부착된 위치 발신기는 제거할까요?”
“그럴 필요 없어. 나중에 누가 시신이라도 찾아 주게 내버려 둬!”
지오는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절벽 같은 곳이고, 조금 전에 두 사람이 어디론가 간 것은 소변을 보러 간 게 아니고 자신들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뒤에 있는 네 사람의 대화가 끝이 났다. 지오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쓰발놈들! 내가 반드시 살아남아서 너희에게 복수를 해 주마!’
울창한 숲속을 500m 정도 걸었다. 헬칸 파티에게는 그 시간이 몇 시간 이상 걸은 것처럼 길게 만 느껴졌다.
숲을 벗어나 멈춰 선 곳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높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
아래에서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는 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냥 숲속을 걸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절벽이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헬칸 파티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민수련이 솔미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지오에게 다가왔다.
“안지오라고 했나? 제법 잘 생겼네! 그래서 이 누님이 너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지. 여기서 뛰어내려! 내 손에 죽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겠지! 안 그래?”
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하긴 싫지만 저 여자의 말이 맞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칼에 찔려 죽는 것보다 절벽에 떨어지면 살 확률이 조금은 될 거니까!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간 지오가 아래를 한번 내려다봤다.
천길만길 낭떠러지. 거세게 밀려온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아래에는 온통 바위 천지였고, 절벽은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까마득했다.
지오가 뒤로 돌아서서 원수들을 보았다. 원독에 사무친 눈빛이 흉포하게 변해 있었다. 지오는 어금니가 깨어질 만큼 악물며 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너희를 죽이기 위해서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야, 뭐해! 리더부터 솔선수범해야지! 네가 뛰어내릴래, 아니면 내가 밀어줄까?”
“됐다. 내가 뛰어내린다. 너희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지오는 짧고 강렬한 한마디를 남기고 앞으로 뛰어내렸다. 꽉 다물고 있는 입에서는 비명 한마디 새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세 사람의 입에서는 목구멍이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오야아아! 지오야아아아아!”
목에 칼이 닿아 있는 솔미는 지오를 부르다가 칼날에 목이 베였다. 그녀는 목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애타게 지오를 불렀다.
수진이도 눈물을 펑펑 쏟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서언배애애애! 서언배에에에! 흑흑흑흑!”
하윤이는 지오를 잡기라도 할 것처럼 앞으로 나가며 절규했다.
“안 돼에에에에에!”
낭떠러지 앞에 멈춰 선 하윤이가 뒤돌아서서 창대를 내밀며 으르렁거렸다.
“이 개새끼들! 모두 죽인다!”
하지만 여섯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솔미를 뒤에서 안고 있는 강혁이 비아냥거렸다.
“그래! 우리가 먼저 죽나, 이 아가씨가 먼저 죽나 내기할까?”
하윤이의 눈에 솔미의 목에서 흐르는 빨간 피가 보였다. 창대를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앞으로 나간 김에 너부터 뛰어내려! 리더의 뒤를 따라가야지!”
하윤이가 악귀처럼 흉포하게 변한 눈으로 여섯 사람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그래, 나도 뛰어내린다. 조금 있다가 함 두고 보자! 개새끼들아!”
말을 마치자 바로 뒤돌아서서 점프를 했다.
“야이, 개새끼들아······!”
하윤이는 비명 대신 욕설을 내뱉으며 추락했다.
지오와 하윤이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수진이가 솔미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마치 마지막 인사를 하듯.
“이번에는 내 차례군요. 언니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뺨을 타고 흘러내린 수진이의 눈물이 턱에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솔미의 텅 빈 눈동자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뒤로 돌아선 수진이의 입에서 아직 다 말하지 못한 마지막 단어가 흘러나왔다.
“······ 우리!”
솔미의 입에서 뛰어내리려는 수진이의 이름이 힘없이 흘러나왔다.
“수진아, 미안······!”
수진이는 솔미의 마지막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자, 이제 너만 남았네. 앞으로 가!”
민수련이 뒤에서 솔미를 밀었다.
“됐어. 나도 뛰어내릴 거다. 지오와 하윤이와 수진이가 저 밑에서 나를 기다릴 거니까!”
솔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자진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절벽 앞에 멈춰 서서 두 눈을 감았다.
며칠 전에 발생한 데쓰 매치와 탈출좀비열차 그리고 영등포공장 게이트······ 수많은 장면이 머릿속에서 폭발적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졌고, 죽음의 위기에서 네 사람은 힘을 합쳐 잘 버텨왔다. 그것이 자신으로 인해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지오야, 하윤아, 수진아! 미안하다. 나 땜에······!’
솔미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미련없이 절벽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본 강혁이 속이 시원한 듯 소리쳤다.
“자, 이제 보스나 잡으러 가봅시다!”
여만기는 그래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 혀를 끌끌 찼다.
“대충 했으면 괜찮았을 건데, 병아리들이 너무 설쳐 대니까 이런 꼴을 당하지! 쯧쯧쯔!”
민수련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1등은 우리 셋 중 하나가 되겠군요! 호호호호!”
여섯 명은 사이좋게 울창한 숲으로 돌아갔다.
***
지오는 떨어지면서도 두 눈을 감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대기가 찢어지며 귀신 소리를 냈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부는지 볼살이 부들부들 떨리고, 위로 솟구친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오는 사지를 활짝 폈다.
영화에서 봤던 고공낙하 자세를 취하려 했다. 그래야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아 떨어지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한 번도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이런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 하지만 야수감각을 가진 지오는 신체 부위에 부딪치는 공기 저항을 느끼며 미세하게 팔다리를 움직였다.
곧바로 안정적인 개구리 자세를 취한 지오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닥이 까마득했다. 절벽이 얼마나 높은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려도 될 것 같았다.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일단 저 나무를 잡고 지난번 린제이쿠스를 처치할 때처럼 회전으로 속도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른팔을 조금 움직여 방향을 조정했다.
‘하나, 둘, 셋!’
두 손이 나뭇가지를 움켜잡는 순간 나무가 부러질 듯 휘청거렸다. 지오는 두 발을 힘껏 차올리며 몸을 회전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우지끈!
지오의 무게와 떨어지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나무가 부러지고 말았다.
다시 아래로 추락.
몸이 허공에서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지오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사지를 벌려 몸의 균형을 잡았다. 아래에 튀어나온 나뭇가지가 보였다. 위에 있던 나무보다 더 굵었다.
‘하나, 둘, 셋!’
다시 나무를 붙잡았지만 한 바퀴를 회전하자 또 부러졌다. 또 다시 추락하는 지오가 아래에 있던 나무에 부딪치며 튕겨 나갔다.
-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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