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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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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글자수 :
35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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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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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섬진강 1

DUMMY

나도 노랑물이 들었나.


나도 노랑물 좀 빼야하나. 우리 얼굴에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여기 공장’은 노랑물이 들었다 생각할 수 있다. 그 차이를 난 안다. 애초에 발령을 공장과 공사로 받은 사람들은 모를 수 있다. 내 기수는 다 산이었다. 업무 자체가 다르고, 만약 훈련대에서 공장으로 발령이 났다면 거기 사람들도 놀랐을 거다. 있기는 있었다고 들었다.


노랑물. 공화국에서는 노랑물을 타락한 자본주의 색채, 반혁명적인 남조선 물건이나 음악 드라다에 물든 퇴폐주의자를 의미한다. 노랑물이 들었다 하면 퇴폐에 물들어 사상적 교양을 필요로 하는 가당치 않은 인민을 지목하는 말이다. 일종의 무시무시한 비하 비판 호칭. 싹수가 노랗다는 옛 표현을 남북이 공유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공화국에서 누구를 야단칠 때 나오면 욕이려니 하면 언어적 경고겠지만, 공적인 장소에서 ‘노랑물’ 명칭으로 자아비판을 이렇게 받게 되면 로동교화소 갈 수도 있다.


서서 들어가 기거나 실려 나온다는 보위부에 끌려갈 일이 된다. 장마당에서 남조선 노래 드라마를 팔다가 잡히면 이런 소리를 듣고, 거기에 ‘반혁명분자’가 결합되면 공화국 법을 어긴 처벌대상이 된다. 그런 처벌은 살벌하고, 본보기로 총살형에 처하기도 했다. 공민 신분에서 군대에 입대하면 또 ‘이놈들 노랑물이 빠질 때까지 굴려!’ 그런 식으로도 쓰인다. 편한 부대에 있다가 전출을 와도 들을 수 있다. 풍선으로 날아온 남조선 내용물 가지고 있다가 걸려도 반혁명 노랑물 든 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남에서 날린 대형 풍선조차, 인민군은 수거 해다 건물 같은 데 방수비닐로 쓴다.


노랑물 들었다 평가할 기회가 없다. 우린 다른 공장 공사를 방문하지 않는다. 나머지 구분대를 아예 모르기에 기억 자체를 가질 수 없게 한다. 근무하는 회사만 알고, 생김새 외에 사람들 정보도 불 것이 없다.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르려니 한다. 좁은 하늘 아래 우리가 있는 곳만 믿고 훈련하며 복종한다. 그러므로 어디 어디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적으며, 그런 현장방문이 필요한 임무를 맡으려면 당연히 장기다. 서약서에 먹물 피아노 치고 기본 7년을 가야 한다.


사상적 노랑물을 먹은 인간은 우리 공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사상은 단순하다. 긴 이론이 필요치 않으며, 사상적 균열은 존재할 수조차 없다. 국가 정치 경제 사회에 관해서 아예 말을 안 한다. 우린 그저, 국가 정부를 모태신앙처럼 믿고 신뢰하며 헌신한다. 그래서 말을 조심한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며, 정부를 사랑하고, 우리 부대를 사랑한다. 끝.


하지만 은근히 감시도 있다. 우리가 탈영하면 작은 사건이 아니다. 국방부에서 공표하기도 힘들다. 예전에 북한 쪽 전방에서 정찰조원 2명이 무장탈영해 산타고 며칠 만에 함경도인가 국경까지 갔다가 포위되어, 부모까지 데리고 오자 자총으로 마감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아무리 과거에 비해 구타 가혹이 없어졌다 해도 일어나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 입은 구타 가혹행위가 없어졌다고 말해야 한다. 그 외의 말은 없다. 거칠고 말보다 힘이 앞서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공장 공사의 공기는 항상 누구 한 대 치기 전의 빡빡함이 있다. 전력공사나 공무원이나 우연히 공장 입구에 다가섰다가 공기에 눌려 몸이 굳는 걸 봤다.


우린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사상교화를 받는다. 사상교화는 단순하다. 다른 생각은 지워지고 단순한 것이 반복 압축되어 진심으로 믿는다. 그 믿음이 모든 것이다. 진심으로 믿는 것이 애국심과 동지밖에 없다. 산은 맑은 물이다. 나는 내려오면서 물이 좀 든 것 같다.


바로 옆의 고속도로를 지나는 화려한 차들만 봐도 공장은 천국이다. 산이 힘든 건 단절된 고독도 있고 공장에 비해 밤이면 무시무시한 일이 암적으로 벌어진다. 여기 와서 내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훈련에서 난 짐승 이상이 아니다. 현재의 나만 남고 생각이 증발한다. 나는 공장으로 내려와 ‘잠에서 깬’ 기분이 들었다. 사람 몸에서 제정신의 영혼이 다시 들어온 것 같았다.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림에 물을 부었더니 배경 색깔이 드러나는 것처럼... 그 덧칠 된 것이 지워지고 나니 이상했다. 나는 공화국 인민군이면서 그 북한군을 적으로 삼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인민군복을 입고 제식 군가 AK 사격을 했다. 경기관총, 7호발사관, 경척탄통 등 무척 많은 걸 쐈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모든 중소 병기를 다 한다. 밖에서는 구경도 못 할 총들도 있고, 그런 총이 이 땅에 있다는 것도 모를 거다. 그런 곳이 있다면 아마 대졸이 아닐까...


깜짝 놀랐다. 꿈속에 있었던 것 같았다. 내 과거가 서서히 다시 와서 붙었다... 하지만 그 예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산에 비해 노랑물을 접하게 된다. 대표적인 거이 텔레비전. 북조선처럼 라디오 텔레비전의 회로 자체를 특정 주파수만 잡도록 고정해서 막을 수도 없다. 그 회로를 조작하며 외부 방송을 청취/관람하면 체포되어 보위부나 수용소로 끌려간다. 주기적으로 당 간부가 돌아다니며 공인받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열어 조작이 없었는지 확인한다. 봉인지도 붙인다고 들었다.


우린 방송이 너무 많다. KBS만 볼 수도 없다. 요즘은 거기도 노랑물이 있으니까. ‘특정’ 주요한 사건이 사회를 뒤집으면 시청 금지 떨어진다. 보통 부대들처럼 몰래 밤에 켜서 보는 거 없다.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일단 조장부터 하지 않으니 금지다. 그런다고 완전히 모를 수도 없다. 허가된 시간 텔레비전을 보면 특히 광고를 볼 때 엄청난 괴리감을 느낀다. 너무 현란하고 너무 빠르다.


그 거부할 수 없는 노랑물 속에서 난, 상상처럼 나의 List를 만들었다. 옛날 말이 맞다. 편해지니까 마음이 살아난다. 입산하기 전에는 나란 놈이 그냥 그렇지... 적당히 생각하고 구부렸다. 배운 것도 없고 적당히 눌려서 욕망도 못 느꼈다. 하지만 내가 꿈에서 깬 시점에, 내가 이제 괴물이 되었으며, 마음먹으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하고 바라만 봤지만, 이제 그 나무 오를 수는 없어도 나무를 부러트려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 필요 없다. 싸우면 내가 이긴다. 흔적 없이 처리하고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뭉개고 싶은 놈들이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난 지금 그 길을 간다. 리스트는 상상이었지만, 사람은 상상이 현실로 바뀔 수 있는 무서운 자기애적인 존재. 예전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은 안 참아진다. 리스트는 개인적 감정이 들어갔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선서하고 받은 임무의 연장이다. 난 배신하지 않았다.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은 자총 자폭.


국가 5적을 정했다.


리스트는 나 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빨을 갈던 존재들. 그런 놈들이니까. 타격적 분노의 시선을 주게 되는 대상은... 사상적 노랑물이 들었지만 이 사회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인간들. 그리고 국가를 좀먹는 존재들. 우린 진실만을 받아들이는데, 진실하지도 않고 이 세상의 꿀만 빠는 인간들. 또... 강한 척하는 사기꾼 놈들.


그런 인간이 군 내부에 있다면 수사단이나 우리나 기무에서 찾아내 옷을 벗기고 적법 조치를 취한다. 개중에는 어설프게 동조한 귀염둥이도 있지만, 아주 전도가 되어 수리가 불가한 놈들도 있다. 노랑 빨강이 동시에 물든 놈들도 있다. 그런 반민주주의자가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면 군 조직이 위험하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다 보니 충격적으로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거다.


징집으로 들어온 사상적 귀염둥이들은 큰 보안 정보를 접하지 않으니 먹고 싸다 제대한다. 제대하면 우리 소관도 아닌 선 밖이다. 우리가 눈총을 주는 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손을 댈 수 없는 군인이 아닌 (북한용어로) 사민 공민이면서, 떵떵거리며 우리 땅에 살며, 거기다 유명하고 존경까지 받는 인간들...


물론 우리가 손을 대면 안 된다. 그건 대졸이 하는 거니까. 울타리 밖이니까. 그러나 우리만 알 경우 급히 손을 댈 때도 있다. 또한 우리가 아는 걸 대졸에게 다 주면 우린 전락한다. 우리도 자체의 힘이 있어야 예산도 따내고 존대를 받는다. 음지 작업은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


미국에는 실행적 정보기관이 너무나 많다. 국가안보국은 물론 세무기관의 정보부도 엄청나다. 미 해군 정보부대는 CIA FBI가 물어볼 정도로 전 세계적인 정보 능력이 있다. 미군이 전 세계에 주둔하기 때문이고, 잠수함 때문에 전 세계 거의 모든 해안에 센서와 감청을 깔아놓았다. 중앙정보국도 그들이 필요할 때가 있다.


정보는 인터넷과 SNS로 완벽하게 둘러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의 언론은 국민 여론을 100% 투사하지 못한다. 투사가 아니라 권력의 중심변수인 나라가 대부분이다.


비판기능이 있는 언론은 좀 사는 민주주의 국가뿐이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치선전 도구다. 멀리선 피상적인 정보밖에 없다. 나머지 자세한 건 ‘가봐야’ 안다. 우리 같은 입장에선 모든 미국인/미군은 정보기관의 센서라고 간주해야 구멍이 안 난다. 그렇게 많은 정보기관. 미국은 정보기관의 난립에 가깝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각 정보기관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또한 건설적 정보경쟁은 필요하고, 선의적 협조도 필요하다. 그 경쟁이 정보의 성숙도를 만든다. 정보계통이 하나로 통합되면 정보의 부실이 시작된다. 단편과 속단이 시작된다. 정보를 하나의 우두머리가 장악하면 보여도 못 보는 현상이 일어난다. 한 국가의 정보를 한 기관이 장악하면 권력은 커지지만, 비교 평가할 능력을 상실한다. 독재국가는 독재적인 정보기관부터 썩기 시작해 정권 붕괴의 단초가 된다. 각 정보기관은 독립적이며 선의적인 경쟁이 필요하다.]


[미 정보기관들의 관계 : 건설적 상대 정보 불신]


사회와 군이 연결이 없다고? 아니. 필수 불가결이지. 직업군인 숫자보다 많은 군인 가족부터 엄청나다. 군에서 시작되어 사회로 이어지는 것도 관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장이 생겼다. 그래서 여기가 중요하다. 우리가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우린 자부한다. 사회의 기관보다 우린 즉각 반응 즉각 행동한다. 거기처럼 오래 지켜보지 않는다. 대졸은, 알아도 모른 척 주시하며 뿌리를 모두 캐려고 기다린다. 대졸은 정치와도 끊어지지 않는다. 정치적 욕망이 투사될 위험이 있다. 그것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작가의말

매주 목요일 12:00시로 지정일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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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28사 병장 1 21.03.18 235 2 12쪽
62 글록 파이터 2 21.03.11 159 2 11쪽
61 글록 파이터 1 21.03.04 157 3 12쪽
60 심심한 날의 분노 21.02.25 158 2 12쪽
59 섬진강 3 21.02.18 148 1 12쪽
58 섬진강 2 21.02.09 170 3 11쪽
» 섬진강 1 21.02.04 196 5 11쪽
56 이성적 배신자 3 21.01.25 128 2 12쪽
55 이성적 배신자 2 21.01.18 134 4 12쪽
54 이성적 배신자 21.01.11 155 4 11쪽
53 믿습니까!!! 2 21.01.04 122 3 12쪽
52 믿습니까!!! 1 20.12.28 139 4 12쪽
51 폭력의 서막 2 20.12.21 120 3 13쪽
50 폭력의 서막 1 20.12.16 15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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