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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3,402
추천수 :
341
글자수 :
354,049

작성
21.04.08 12:00
조회
212
추천
6
글자
11쪽

산에 살리라 1

DUMMY

“쌍안경 줘봐.”


생각하니 좀 그렇네...


왜 쌍안경이지? 망원경이 맞는 말이지. 안경이 그럼 쌍이지. 하긴, 옛날에 외눈 안경이 있긴 있었구나.


머리가 벗겨진 과장은 쌍안경 겸 망원경을 잡은 손을 견고하게, 요동 없이 일대를 스캔한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로고 없는 검은 점퍼, 하얀 운동화, 양복바지, 귀에는 이어폰.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머리가 길지만 흰 머리가 많이 섞였고, 곱쓸 없이 두상에 착 붙은 긴 머리는 숱이 빈 곳을 커버하기 위한 방편이어서 공무원이라도 이상하지 않다. 종합적으로, 다른 부하들에 비하여 머리가 길다는 기분이 안 든다.


동상 같다. 대원들보다 항상 관측시간이 길다. 두상이 크고 각이 졌으며, 노란 고무줄처럼 줄줄이 튀어나온 힘줄의 손목이 가느다래 보인다. 망원경을 건넨 대리가 과장을 본다.


“여기, 오겠습니까?”


대답은 곧바로 나오지 않고 침묵이 이어지다 나지막이,


“야... 가까이 붙어서 말해. 노랑물 들었냐.”


쳐다보지도 않고 한 말. 대리는 과장이 머리를 돌려 박치기라도 할 것처럼 느낀다. 그런 사람... 누굴 때리는 걸 본 적이 없지만, 한번 그런 일이 생기면 큰일 날 것 같은 사람. 아는 사람만 굉장한 다혈질이란 걸 안다. 화가 나면 눈에서 광채가 나오고 콧구멍이 넓어진다. 말에 비수가 섞인 듯 ‘너 요즘 지켜본다.’ 비수처럼 차갑다.


그 옆에 한 명, 역시 망원경을 들고 있다. 대머리 과장은 1분을 보고 대리에게 다시 망원경을 건넨다. ‘어이!’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대리는 가까이 붙는다.


“저기 코너 두 개 잘 감시해.”


과장과 대리는 급격하게 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단 며칠 동안 노심초사 속에서 호롱불의 기름을 다 태우고 심지마저 타는 것 같다. 밥을 먹었는지 어쨌는지 경황이 아니다. 군침을 계속 삼키나 물을 찾지 않는다.


이 조직사회에서 전투원은 정해져 있다. 다른 계통 기수는 전투원이라고 보기에는 헌병 수준. 분석관 기수도 있다. 전투원으로 이 조직사회에서 시작해 필요한 보직에 왔는데, 만약 여기서 하찮은 곳으로 보내면... 나가란 소리다.


어쩌면 우리나라 모든 곳이 그렇다. 눈치 보이면 나가라. 너는 원래부터 우리 부서 아니었다. 여기 왔다고 우리가 키워주기라도 하라고? 그럼 나이 까버리고 좀 굽혀봐. 군대도 그렇지만 경찰도 이 지역색과 다른 경찰서의 색깔이 다르다. 새로 오면 아무리 짬밥이 많아도 신병이다. 신병 대우다.


군대 부사관은 그에 비해 짬밥 대우를 어디 가서도 받으나, 그래도 텃새는 있다. 육군에서 대표적인 것이 특전사에서 넘어오는 고참 부사관들. 뭘 맡겨야 할지 애매하고, 자기가 특전사 출신이라고 내세우면 따 당한다.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못 섞이고, 그러다 제대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짬밥은 꽉 찼고 함부로 볼 사람은 아닌데, 거기 있는 사람이 불편한 거다. 그리고 ‘특’자 외에 짬밥에 맞는 작전 행정 관리 능력이 없다. 새로 배워야 한다. 정신적으로 엄청 노력해서 습득하지 않으면 부대에서 딱히 쓸 곳이 없는 부사관이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분위기.

사복 입은 고참 부사관.


이 부대에서 징계는 ‘나가라’ 비슷하다. ‘업무’를 잡고 있느냐 부대 운영만 맡고 있는가 차이가 너무 크다. 그래도 개길 수는 있으나, 업무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눈 깔고 바보 같은 행보관처럼 될 수 있다. 그걸 못 참는 기질은 징계받아 업무에 손을 놓게 하는 것이 ‘나가라!’ 느낄 수 있다. 부대 시설, 온수 냉수, 보일러, 서류 잡무. 그런 거 하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나 산에서 왔다면. 충성! 하러 근무하지 관리하러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간다 하여도 발설할 경우 목숨을 잃어도 된다는 보안서약서 쓰고 나가야 한다. 나가는 모두가 안다. 정말로 보안발설이나 배신행위를 했을 경우 정말로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 이 공장의 보직은 본사 안에서 사실 엘리트 조직이다.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발설도 안 하지만 본사(사령부)의 중요한 조직이며, 장들이 말 한마디로 움직일 수 있는 직할부대다. 그리고 전투원들이 그 어느 부대보다 막강하다. 명령을 ‘생각’으로 듣지 않는 부하들이기도 하다.


과장은 이 공장 안에서 서류상 서열은 3위 정도인데, 실제는 2위권자로 힘이 적은 편이 아니다. 이 과장을 여기서 방출한다고 꼭 완전히 나가란 소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서류상 장기근속 부사관이기 때문이다. 나가란다고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장기근속자의 직업을 빼앗는 것과 같은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디 시설보수나 하찮고 이름 없는 곳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떨어지고도 월급이나 축내며 살고 싶은 사람의 종류가 아니다.


지금 노고단 공장 사람들은 어느 야산에 엎드리고 쪼그려 앉아 있다.


“너무 적은 거 아닙니까?”


어둠 속의 중얼거림.


“본부에서 곧 도착해.”

“예? 걔들을 왜 불러요?”


“그나저나 저기 깔아놓은 애들 안 들키겠어? 지형이 더럽네.”

“저기 놔둘 수도 없고 안 놔둘 수도 없습니다.”


“참 동네 하곤.”

“도둑이 맞아 죽을 지형이죠.”

“구멍 없지?”

“담.”

“월담... 저런 거 금방 넘지.”


“온다면 알아채기 쉬울 텐데 말입니다.”

“위장이 통할라나 몰라. 그림자만 봐도 알지 않아?

“알아볼 것 같은데요.”


“일단 어둠에서 절대로 나오지 말라고 했지?”

“옙.”

“드러내면 절대로 안 돼. 무전기 다 확인했지?”

“옙.”

“감도 이상 없고?”

“테스트 다 했습니다.”


“2인이 뭉쳐서 잡아. 복잡해져.”

“어떻습니까. 노고단 좀 합니까?”

“너는 만만하고 나는 만만하냐. 듣고 데려온 거지.”


“그런데 과장님. 이거 어떻게 아셨습니까?”

“핸드폰 기지국 땄잖아.”


“그건 제가 말씀드린 거고, 과장님은 이미 여기 알고 계셨잖습니까?”


“추측이지. 그리고 플러스알파도 있고.”

“이 정도면 추측이 아니진 않습니까?”


“더 오래 근무해봐. 그런 방법까지 다 전수해달라고?”

“아니 무슨 추적을 붙인 것처럼 바로 여길 땄습니다.”


“운빨도 무시 못 한다. 아직은 운빨인지 알 수 없어.”

“근데 아까 그 경찰은 아시는 분입니까?”

“몰라. 손들 들기에 나도 들어준 거야.”

“아. 난 또.”


과장이 고개를 돌려 대리를 본다.


“색안경을 꼈는데 내가 전국 교통경찰을 어떻게 다 아냐. 내가 총경이냐.”


“아는 척을 하길래 말입니다.”


“하나 알아둬. 요즘 모든 일에서, 급하면 경찰을 부르는 게 가장 편해. 빠르고 안전하고 공적으로 감시가 되고 기록도 남고.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이야. 또 경찰은 119도 버튼 불러주지. 경찰이 부르면 누가 죽기 직전이라고 생각하고 아주 편리해.”


산. 이 사람들에게 산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경사가 있는 산책로? 표적 가옥을 중심으로 골목에 2개 조가 깔렸고, 어디 조감도로 볼 곳이 없어 야산으로 올라왔다. 또한 튈 경우 무조건 산을 목표로 삼을 가능성에 대비해... 하나둘 등들이 꺼질 것 같다. 누가 새롭게 나타나면 무전기로 묻고, 밑의 대원은 버튼 스켈치 숫자 칙- 칙-. 칙- 칙- 칙. 대답한다.


어쩔 수 없이 야산으로 올라왔지만 밤이라 다행이다. 낮이면 남녀불문 어디서나 등산복이 나타나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당연히 셋은 이상해 보인다. 몸에 두툼한 병기와 장비를 갖췄고 어둠에도 들어나지 않을 사복. 3번 인물은 여분의 장비를 담은 검은색 백팩을 매고 있다. 이들에게 오랜만에 다가오는 건... 풀. 나무. 흙냄새. 그것이 범벅이 된 특유의 공기 냄새. 계절의 냄새. 모양과 냄새는 계절별로 뚜렷하게 다르다.


산의 계절 변화에서 오는 차이를 안다. 어느 시기에 산에 들어가면 1년 전, 2년 전, 혹은 10년 전 그 때가 떠오른다. ‘떠오르면’...? 몸 세포들이 자극을 받고 살짝 눈깔이 뒤집어지는 기분이 든다. 눈빛이 살아 번득이고 뭔가 해야 한다는 불안함과 뜨거운 기분이 뒤섞인다. 공장 뒤의 산과 산길은 머물러 있은 적이 없다. 노출 시간을 줄여야 하기에 빠르게 갔다가 공장으로 돌아온다. 지금처럼 시간을 두고 뭘 느끼고 볼 시간이 없었다.


“눈 아파도 계속 봐. 끊지 말고. 한순간이다.”


과장도 전투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에게 이 작은 야산도 많은 걸 떠올리게 한다. 산은 항상 거품이 나도록 뛰거나, 위장을 한 채 수풀과 하나 되어 조용히 움직이거나, 엄청나게 무거운 걸 지고 고바위를 걸었다. 그 경험이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지 않는다.


산에서 먹고 자고 작전하는 것. 남들은 1년 내내 산속에 있다고 착각하지만, 1년 내내는 북한도 못 한다. 그러다 정말로 죽는다. 전투원은 써먹으려고 양성하는 것이지 죽여서 시범케이스나 본떼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고로 숨을 돌릴 시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자유 제한과 고립 폭력으로 종종 사건이 일어난다. 한번 터지면 크다. 사람이 버티는 내구성은 아무리 강한 걸 받아도 휴식이 필요하다. 산속 훈련은 계절 별로 아주 집중적으로 들어가 했다.


요즘은 육군 통합막사처럼 시설도 좋아졌다.


산. 풀 냄새.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를 왔다 갔다 했다. 조용히. 모든 길과 민가를 피해. 이 산이었다가 저 산이었다가 아니라, 이 산맥이었다가 저 산맥으로. 오늘은 남도 내일은 북도였다. 큰 산은 민간인 등산로를 탈 수 없으며, 그 어떤 민간인과 접촉은 물론 신고될 경우 큰 총화를 받는다. 어쩔 수 없이 민간인과 조우하여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육군의 모 부대를 댄다. 안심하라고. 그 부대도 산에서 그런다고 대중의 생각에 경향이 있다. 달리 댈 부대도 사실 없다. 너무 깊은 산을 다니니까.


산에 군장을 지고 있는 자체가 작전이자 공작이다. 작전상태에서 다른 모든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고 피한다. 전시가 아니기에 자신들을 봤다고 죽일 수는 없으나 만약 휴대폰으로 신고가 들어가면 작전 실패다.


세상 일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자 들어가는 곳에서도 차등이 있다. 주력 전투원인가 보조 전투원인가, 대접을 못 받는 가장 밑바닥은 어느 팀이나 조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소일 잡일 막사 훈련장 관리나 대항군이나 하는... 다시 말해 버린 놈. 방출은 안 했지만, 딱히 어떤 티에서 쓰기 애매한 사람이다. 소수지만 ‘쓸모없는’ 사람은 동지가 아닌 것처럼 쓰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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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 살리라 1 21.04.08 213 6 11쪽
64 28사 병장 2 21.03.25 217 5 12쪽
63 28사 병장 1 21.03.18 234 2 12쪽
62 글록 파이터 2 21.03.11 157 2 11쪽
61 글록 파이터 1 21.03.04 155 3 12쪽
60 심심한 날의 분노 21.02.25 157 2 12쪽
59 섬진강 3 21.02.18 147 1 12쪽
58 섬진강 2 21.02.09 168 3 11쪽
57 섬진강 1 21.02.04 194 5 11쪽
56 이성적 배신자 3 21.01.25 126 2 12쪽
55 이성적 배신자 2 21.01.18 13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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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믿습니까!!! 1 20.12.28 13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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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폭력의 서막 1 20.12.16 15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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