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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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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03
추천수 :
341
글자수 :
354,049

작성
21.06.17 12:00
조회
184
추천
4
글자
13쪽

[외전] 내장탕

DUMMY

누운 사람은 꼼짝 않는다. 난 손가락이라도 무엇을 의미하듯 경직되어 있을 줄 알았다. 편안하다. ‘놓은’ 기분이다.


두 명이다. 의사는.

긴장하거나 머뭇거리는 것이 살짝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혹은 코끝이나 미간을 약간 찌푸려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을 관찰해야 했던 사람으로, 걸음걸이만 봐도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인지 보인다. 보통 ‘문제’라고 하면 걸음걸이의 경직성으로 -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걸음걸이가 딱딱해지면 목과 손끝도 부자연스러워진다. 눈을 봐도 비슷한 걸 찾을 수 있다. 상대가 이상하면 외관을 보고, 이어서 눈을 보는데, 뭘 숨기려는 사람과 마주치면 보통 외면한다. 그럼 이상을 감지한다.


항상 정답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 어떤 위기이고 어떻게 모면했냐고? 음... 글쎄... 이렇게 말하고 말겠다. 내가 먼저 뽑아서 빛나는 걸 가로등에 비춰 보여주었다. 놈은 놀란 눈을 애써 감추며 나와 아무 관계없다는 과장된 걸음으로 지나갔다. 난 등 뒤에 조용히 읊었다.


‘니 면상 다시 보면 바로 거시기 한다.’


의사들은 아주 편안한 걸음걸이로 허이 허이 마작판에라도 끼려는 것처럼 걸어왔다. 걸음부터 손끝까지 정말 편안하고 부드럽다. 긴장이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얼마나 많아 봤길래 저러나. 얼마나 많이 했길래 저러지?


누운 사람을 데려온 운동화 신은 잠바떼기 아저씨들과 가벼운 담화를 나눈다. 그러다 의사 둘이 잠깐 눈을 맞추는데, ‘시작할까?’ 말이 보였다. 아주 가뿐해 보인다. 거창한 절차는 없다.


상상으로,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찌 돌아가셨는지 좀 알아보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둘은 누운 사람의 얼굴을 별로 보지 않았다.


피부 상태나 멍 자국에 의료용 척도로 크기를 재더니, 기록하고, 바로 메스를 들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지금 내 얘기를 듣는 사람이면 자기 몸을 짚으면서 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당신의 왼쪽 옆구리에 갈비뼈가 끝나는 곳이 있다. 거기서 메스를 찔러 몸 아래 수직으로 주욱 내린다. 골반뼈가 닿기 직전까지 피부를 절개한다. 그리고 사타구니 음모가 있는 곳 부근에서 90도로 꺾어 당신 몸 오른쪽으로 간다. 메스가 오른쪽 끝에 도달하면 다시 거기서 왼쪽과 같이 90도 위로 꺾어 오른쪽 갈비뼈 끝나는 곳까지 주욱 올려 밀고 나간다.


보기에,

중간에 수직 일직선으로 긋는다면 내장 옆쪽이 안 보이거나 불편할 것 같긴 하다.


절개는 그것이 끝이 아니다. 양쪽 옆구리 갈비뼈가 끝나는 곳에서 피부를 갈비뼈 몇 칸을 더 수직으로 그으며 올린다. 왼쪽도 다시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상체 전면 피부가 위로 열린 디귿 자 형태로 절개되었다.


난 왜 저렇게 크게 찢나 의아했다. 그리고 순간 이유를 알았다. 그 디귿 자 절개 피부를 위로 완전히 들어 망자의 얼굴을 덮는다. 분명히 일부러 크게 오려 얼굴을 덮는 것 같았다.


누운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누군가 감겨준 것 같은데, 뭐가 수상하다는 듯 실눈으로 벌어져 있는 거다. 그리고 얼굴 멍... 멍들.


“두상부는 어째? 할 겁니까? 말 겁니까?”

“일단 안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러세요.”


20대 중반 아름다운 여자다. 이미 명을 다했지만, 아름답다. 싱전에 분명 아름다운 여자였다. 하지만 의사들에게 그건 별 특징이 아니라고 보인다. 아주 많이 해봤던 사람들 같다. 부검. 부검의.


우리가 매력적인 포인트로 보는 - 크고 아름다웠던 유방은 잘진 절개 부위에 덮여 가러졌고, 사실 그 넉넉한 크기와 부피로 인해 일부분 위로 말려 올라가 있다.


그때부터 의사들은 (솔직히 말해서 뒤적뒤적) 여러 내장 부위를 살핀다.


처음에 보는 것은 외상에 의한 내장의 멍이나 출혈을 관찰하는 듯했다. 그런데 씨발...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의학지식이 없어 어떤 장기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으나, 부위 일부분을 절개해 떼어서는 단면을 형광등에 자세히 비춰서 보고, 의사 서로,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로 의견을 교환한다.


단어가 떠올랐다. 해부...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나도 모르게 내 손이 가슴을 짚는다.

절개. 기록. 그리고 샘플 보관.


그래도 간은 알아본다.

간과 기타 내장 샘플은 알코올이나 기타 약품의 농도를 측정할 셈인가보다.

속을 여니 피가 고여 있다. 양이 적지 않다. 피도 빈 주사기로 샘플을 채취한다.


그녀의 길고 미끈한 다리도, 돈을 들여 만진 머리칼도, 발톱에 장식된 자주색 매니큐어도, 귀에 뚫린 귀걸이 구멍도, 이름도, 나이도, 학력도, 그 모든 것도 언급할 필요는 사라졌다.


메스가 슥슥 자른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나중에 막 꿰맨다고 들었는데, 저렇게 자른 걸 어떻게 하나 싶었다. 자른 내장도 다 꿰매주나? 아닐 것 같다. 그냥 ‘넣어둘’ 것 같았다. 염은 봤었다. 이건 또 다르다.


느낌. 불쌍하다. 정말 불쌍하다. 뭐 인생 허무하다 그런 말도 충분히 수용하나, 이렇게 스테인리스 침상에서 이런 꼴을 당한다는 것이 더 불쌍하다. 하지만 안 할 수가 없다. 왜, 어떻게 그랬는지 아직 우린 모르니까. 육하원칙의 WHO는 가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걸 알아야 가해자의 증거를 찾는 데 중요하다.


영혼이 있다면 이건 수모다.

이래서 부검을 안 하는구나.


그녀의 어머니가 결코 볼 일이 아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초라함과 변사라는 단어로 희석되어 묽어졌다. 사타구니에 눌려 있는 그녀의 음모는 아무런 선정성을 떠올리게 하지 못한다. 그녀의 탁월한 감각으로 구입한 멋지고 gorgeous한 의상은 다시 몸과 결합하지 못한다. 이제 이 여성은 다른 옷을, 마지막으로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고를 수 없는 옷이지.


우드득. 바득.

내 얼굴에 열기가 오르고 아래위 치아가 갈리고 있었다.


죽은 사람이 영혼? 그런 상태라 치면 굳이 내 감정이 아니겠지만, 나에게 이건 치욕, 이 여자에게 이런 치욕을 선사한 놈에게 이가 갈린다.


도감의 그림과 다르다. 도감은 장기들이 선명하게 구분되고 색칠도 다르다.


폐와 위장 정도 빼고, 창자 십이지장 췌장 기타 등등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비슷한 색깔로 뒤섞여 있고, 색깔은 거무틱틱하다. 흔히 봤던 인체 도식은 보기 편리하게 그렸다는 걸 알았다. 초임 레지던트가 맹장도 못 찾는단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 어느 포대에 여러 가지를 꽉 차게 넣었다는 느낌.


그녀의 삶이 유지해줬던 이 다양한 장기들. 나도 있겠지. 나도 이걸 받으면 피부에 메스가 뚫고 들어오겠지. 한군데 뭉쳐 맨들맨들한 저 것. 나도 저것이 드러난다. 본인의 것이지만 어지간해서는 본인이 볼 수 없는 것. 그러면서 평생을 같이하는 것.


염에서 본 것을 또 본다. 여자의 얼었던 몸이 풀리자 밑에서 배설물이 일부 흘러나온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먹고 마셨던 것. 더럽지 않다. 그냥 그렇다. 나도 먹고 싸니까...


난 마스크를 벗는다. 그녀의 진짜를 맡고 싶다. 그래, 여자 주변에 서성거렸던 사람 중에서 진짜 ‘안’을 본 사람은 나다. 이 냄새를 맡는 사람도 나다. 내가 죽는 날까지 이 여자를 기념하고 북적이는 명절마다 추모원을 외롭지 않게 하겠다.


시간의 흐름, 이 조용하고 차가운 공간에서... 공기가 달라진다. 의사가 어떤 부위를 유심히 보고, 형사들이 가까이 와서 묻는다. 나와 그녀의 외삼촌에게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형사를 쳐다보니 곧 부검서로 알게 될 거라고 눈치를 준다.


서랍 같은 칸들을 본다.

저 안에 저마다 한 명씩 있다면,

저게 다 부검을 기다리는 사람들인가.

그럴 수 있다.

이건 긴급으로 새벽에 온 거니까.


“아저씨. 일부러 새벽이 아냐. 원래 새벽에 많이 해.”


밖으로 나오니 아침. 대지에 동이 뜬다.


이런 어두운 회색보다는 컴컴한 밤에 빛나는 네온사인이 낫다. 오늘 그런 생각이다. 오늘 나는 다른 세상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나오지 이 세상도 정상은 아니다.


동. 동녘.

나에게 어제의 태양이 아니다. 세상은 새로워졌다. 하지만 아름다워진 것도 아니오, 암울해진 것도 아니오, 차가워졌다. 세상은 정말로 냉장칸처럼 차가워졌다. 어떻게 표현하지 못하게 씁쓸하다.


‘어쨌거나 살아있는 놈이 승자야? 그게 더럽고 치사하다.’


스테인리스 침대에 누운 사람이나 옆에서 보는 사람이나 좆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잠깐일 수도 있고 몇십 년이 지나건 멀지 않아 누구나 눕는다.

거꾸로 말해... 더 이상 아무것도 환상/상상적으로 무섭지 않다. 우린 깡패의 칼이 무서우나 맞아보지 않았다.


오늘.

나에게

[모든 걸 포기한 용기] 비슷한 걸 주었다. 그걸 받아들이자 내가 쓴웃음을 짓는다. 내가 죽을 거면 마지막에 내 손으로 디귿 자를 그어서 편하게 해줄까. 이걸 보고 인생이 허무하다 생각해서 세상 물 흐르듯이 살거나 겁을 먹을 수도 있을 거다. 그건 그 사람들 이야기고. 나 같이 남을 해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내릴 판단은 누구도 모르는 거다.


“오늘은 왜 저렇게 했대?”

“몰라. 저건 의대 실습 아냐?”

“몰라 씨.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내장탕 자실려?”


진짜로 내장탕 집이 저기 보이네.


말을 건 형사는 아까부터 그랬다. 저런 직업에 옷이, 옷을 잘 차려입었다. 무슨 잘 나가는 자영업자 같다.


“괜찮습니다.”


내가 고개를 젓자 형사들은 그리로 걸어간다.

의사나 형사나, 이라고 이란 거 매일 보나봐이.

지금 밥이 먹히나? 거기다 내장탕이?


“어이 아저씨!”


왜 그러시지. 옷 잘 입는 공무원.


“네?”

“그냥 같이 먹지!”

“괜찮습니다. 배 안 고픕니다.”


돌아서려는데 등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럼, 나 연속으로 내장탕 먹게 하지 마!”

“무슨, 무슨 얘기십니까?”

“그건 아저씨가 알지, 내가 알겠어?”


나는 외삼촌에게 인사하고 돌아서 걷는다. 외삼촌은 어디 공장에서 평생 고된 일을 한 그런 얼굴과 복장을 하고 있다. 거북이 등처럼 딱딱한 얼굴 피부에서 감정이 쉽사리 뚫고 나오지 못한다. 그 딱딱한 피부와 깊은 주름은 오랜 노동에서 온 체념 같다.


딱 봐도 거짓말하지 않을 것 (못할 것) 같은 중년 남자는 쓸쓸하다. 가볍게 악수하고 등을 돌렸다. 손은 차가웠다. 우린 서로 잘 알지도 못한다. 외삼촌은 이제 병원 지하로 가서 다음 준비를 하겠지. 오랜 인고로 슬픔을 대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그의 얼굴이 날 더 슬프게 한다.


가로등도 피로해 졸고 있는 이른 아침 거리를 걷는다.


이런 걸 접했을 때, 세상 모진 일에서 손을 떼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겁도 날 거다. 시신을 처음 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실감으로 피부로 온다. 어제 살았던 사람이 지금 살아있지 않다. 보고 있는 나도 대단하지 않은 거다.


내 생각은 간단하네.


‘안 걸리게 해야겠구나.’


완전히 내 일은 아니지만, 말로 해서 안 되는 예의가 없는, 무례한 놈들이 있구나. 가만히 당하면 안 되겠구나. 먼저 치는 게 장땡이다. 당한 사람만 바보다. 사후는 실감이 없다. 벽에 똥을 칠해도 산 놈이나 화를 낼 수 있지 않나? 그리고, 그녀를 무시했구나. 무시당했구나.


아저씨와 거리가 충분히 벌어졌을 때, 다시 손이 가슴으로 간다. 혹시나 소지품 검사를 하지 않나 겁이 났었다. 글쎄. 모르겠다. 그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착하게 생겨서 그런가보다. 신문지에 싼 길고 예리한 놈이 손에 닿는다. 난 길이로 천천히 쓸어내리며 물체를 인지한다. 이 시간에 약국 연 데가 있나? 붕대를 좀 감아?


‘디귿 자. 너도 그렇게 해주지. 좋은 거 잘 봤어.’


가자, 내장탕 만들러.


그녀는

왜 하필 오늘 검은 드레스를 입었나.


Oh, Long cool woman in a black 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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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내장탕 21.06.17 185 4 13쪽
68 저녁 백반 21.05.27 171 5 15쪽
67 밤눈과 설교 21.05.06 203 3 12쪽
66 산에 살리라 2 21.04.22 180 6 12쪽
65 산에 살리라 1 21.04.08 213 6 11쪽
64 28사 병장 2 21.03.25 217 5 12쪽
63 28사 병장 1 21.03.18 234 2 12쪽
62 글록 파이터 2 21.03.11 157 2 11쪽
61 글록 파이터 1 21.03.04 155 3 12쪽
60 심심한 날의 분노 21.02.25 157 2 12쪽
59 섬진강 3 21.02.18 147 1 12쪽
58 섬진강 2 21.02.09 168 3 11쪽
57 섬진강 1 21.02.04 194 5 11쪽
56 이성적 배신자 3 21.01.25 126 2 12쪽
55 이성적 배신자 2 21.01.18 134 4 12쪽
54 이성적 배신자 21.01.11 155 4 11쪽
53 믿습니까!!! 2 21.01.04 122 3 12쪽
52 믿습니까!!! 1 20.12.28 138 4 12쪽
51 폭력의 서막 2 20.12.21 119 3 13쪽
50 폭력의 서막 1 20.12.16 15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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