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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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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1
추천수 :
339
글자수 :
354,049

작성
21.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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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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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2쪽

산에 살리라 2

DUMMY

훈련대에서 수료해 나오는 인원이 워낙 적다.


‘얘는 조원으로 쓰기 위험하다. 안 돼.’


편하게 됐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창피하다. 모욕적이다. 어느 조에 들어가지 못하고 표류하며 밥 먹고 똥이나 싸는 놈은 눈 깔아야 한다. 최고의 OO대에서 OO조 OO조원이란 타이틀이 먹어주는 거다. 그 말로 능력은 더 검증할 필요 없다. 각자 자기주장을 하지만 어느 OO대가 최고인지는 영원히 분분하다.


그렇게 종종 심마니,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등산객들이 지나가길 수풀 속에서 주시하며 기다렸다. 길을 피하다 보니 험한 루트만 탄다. 길이 없는 산을 뚫어서 간다.


허리가 끊어지고 배고픈 내장은 한 줌으로 오그라들고, 지도를 펴면 아직도 아직도 인상적인 거리가 남아 있다. 과연 내일까지 이 거리가 가능은 한 건지 ‘진짜 한계’를 경험한다. 무조건 도달해야 한다. 거리가 줄어들지 못하니 잠잘 시간이 극도로 부족하다. 고각을 거의 기다시피 오르다 기절도 온다. 인간이 그런 짐으로 그런 산을 간다는 자체가 믿기 힘들다.


머리만 대면 잤다. 그러다 코를 골면 미간을 톡! 친다. 아예 못 자고 계속 갈 때도 있다. 며칠을 못 자고 중간보급도 없다. 작전 그대로다. 출발하는 등의 짐은 어마어마하다. 무릎 관절이 나가라, 산 타고 숨고 걷고 먹고 싼다. 버리고 싶지만 대신 굶어야 한다.


‘나도 한때는 날았다.’


그렇게...

그렇게...


과장은 풀 냄새에 세포들이 생동하며 코에서 김이 나온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산에서는 비누도 치약도 로션도 쓰지 않고 냄새가 강한 파스 같은 걸 못 쓴다. 자연치유와 휴식을 바탕으로 버텨야 하며, 뼈 관절 근육에 여러 부상들을 달고 산다. 소소한 부상은 본인이 아예 말도 못 꺼낸다. 큰 부상 당해 어쩔 수 없이 국군병원에 가는 것은 이중적 기분이 공존한다. ‘진짜 쉴 수 있는 기회’라고 느끼면서도 ‘논다’는 부정적인 개념이 있다. 치료가 끝나도 돌아오면 “노랑물!” 반 죽는 거다.


그래서 부상을 참고 뛴다. 참고 산을 오른다.


‘깊은 산 죽이는 데 많이 봤지. 나중에 캠핑 오고 싶은.’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그것도 과장 나이 정도 돼야 안다. 능력을 향상시킨 것도 있지만, 젊음이란 치유력을 가진 하나의 인간을 쓰고, 쓰고, 또 쓰고 마모될 때까지 사용된다는 것.


심각한 부상을 달고 나가는 사람 한둘이 아니다. 20대부터 비 오면 마디가 쑤시고 무릎 관절이 안 좋다. 뼈에 금이 갔다가 붙지만, 365일 24시간 긴장이란 심리상태는 금방 붙는 뼈처럼 치유되지 않는다. 평범한 징집병으로 군대를 갔다 와도 여러 습관과 악몽이 마음에 남는데, 나간다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짜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기에 아낌없이 짜내는 것. 기름 한 방울 남지 않게 짜낸다. 그 이후는 본인이 알아서 사는 거다.


차가운 바위 위에도 쓰러져 잘 절대 피로.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절대 추위. 어떤 것이라도 위장에서 녹기만 먹을 수 있는 절대 허기. 인대가 파열되어도 걷고 뛴다. 삼각근이 파열되어도 운동하면서 나을 때까지 숨긴다. 누굴 쳐다보면 저거 어디 어디 걸렸구만 눈치를 채도 말하지 않고, 뼈가 부러져야 쉰다. 과거에는 햄스트링이란 용어조차 없었다. 허벅지 뒤쪽 힘줄 이상. 힘줄이 불탄다. 하지만 뛴다. 절룩거리며 걷다가 뛰고 –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쓰러진다.


참아도, 골인해서 잠시는 괜찮지만, 다시 햄스트링이 돌아온다. 과장은 햄스트링이 또 돌아올까 봐, 그래서 절룩거리는 모습을 보일까 봐 불안하다. 언젠가 다시 나타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제대하고 자전거를 멀리한다.


“우린 병원에 가면 교보재지. 다중 교보재.”


50에 입성하자 과거에 다쳤던 곳들이 ‘아직 안 끝났어!’ 징후를 보인다. 그때는 서 있을 수 없어야 쉴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그래도 하겠다고 한다. 그래도 하겠다고 해야 한다. 진심으로 그래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쉬겠다고 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켈로의 곤조다.


그렇게... 산 풀 나무 땅은 냄새와 색깔로 세포 하나하나에 입력되어 있다. 그것이 여기 사람의 감각을 깨우고 있다.


셋은 물론, 저 아래 있는 사람도 대체로 유경험자다. 다만 처음부터 공장으로 발령이 난 (운이 대박인) 사람이 끼어 있는데,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의도치 않게 산 얘기가 표현되면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런 얘기는 조원들 사이 아니면 못 듣는다.


유경험자란 거기 있다가 기간연장을 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어떤 00대에 특정 조원으로 잘 수행하는 데 제대도 아니고 하산하지 않는다. 도장을 찍어야 가능하다.

나간다는 생각을 버린 거다. 3년 추가 연한이 끝나면 생각이 바뀔지 모르지만 그러하다.


경험이라고 생각 안 한다. 그냥, 사는 방식. 다른 군인들과 달리 제대한다, 나간다, 잊고 산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구랴. 산에 들어가 시간이 경과하면 그것이 삶이고 언제 어디 간다 내려간다 말해봤자 상처만 받는다. 내가 짐승이었다는 건 거기서 내려와 봐야 안다.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과장님. 속삭이겠습니다.”

과장이 느낌을 받고 쳐다본다.

“뭐라고? 뭘?”

“물어서는 안 되고, 압니다만. 듣고 싶습니다.”

“뭐...”

“전연공작.”


“더 속삭여봐. 광대뼈를 빠숴주마.”


“항상 그러잖습니까? 요즘엔 안 한다. 안 넘어간다. 요즘엔... 과장님 과거는... 아닙니까?”


“내 나이가 많아 보여?”


“많아는 보이는데 몇 살인진 모르잖습니까.”


“북한군은 정년이 없다. 이 새끼가 자꾸 사적인 거 건드리네.”


“시정하겠습니다.”

“육군처럼 말하지 마.”

“옙.”

“너. 다시 산에 가고 싶냐?”


Gone... are... the days

when my heart was young and gay

Gone to the fields

of a better land I know


“그러니까 갔다 왔냐고?”

“접수...”

“너한테 말하면 천 명이 알게 된다.”

“...로망 아닙니까.”


“망우리에서 좆 까는 소리 해봐라. 안 우는 귀신이 없다.”

“죄송합니다.”


“갔다 와서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

“그래서 요즘엔 안 한다... 입니까.”

“요즘은 제대하고 동기끼리 모인다며. 세상 좋아졌다.”


“저도 지인들에게 제대했고 군무원이라고 말합니다.”


언젠가 한 번은 지쳐, 등을 기대고 저런 가지와 풀을 본 적이 있다. 모두가 있을 것이다. 멍~~~할 때. 풀을 자세히 보면 내가 보인다.


“꼭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누가 가냐. 누가 가.”

“우리죠.”

“우리 아래는 많아도 우리 위는 없어. 꼭 알아야 할 일이 안 생기겠냐? 만국에 평화냐?”

“들은 거 잊겠습니다.”

“대답은 됐어?”

“새겨 모시겠습니다.”


I hear those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거긴 어떨 거 같으냐?”

“네? 어떻습니까...”


“선일 뿐이야. 하나의 선일 뿐이야. 같은 산에 선 하나가 그어져 있는 거야. 산천은 아름답고... 하지만, 마음이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것이 눈에 들어오지. 마음이 격하면 숨도 쉬기 힘든 화성 표면이야. 그리고 그 화성 표면 의외로 개판 많다.”


I'm coming, I'm coming

For my head is bending low


“넌 아냐.”

“...”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피죽 끓이는 소리를.”


Old Black Joe,


“만나세요?”

“밖에?”

“예.”


“안 만나. 따악 한번 가봤다. 보고 싶은 애가 있어서. 그 동지가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래서 한번 가봤지.”


“사석?”


“행사할 때가 미쳤다고 가냐? 나 연급 받아야 돼.”


“어땠습니까?”


“다 몰라. 서로 연락되는 사람만 해. 하지만 사람이 적으니 대충은 알지. 난 모여 있는 게 신기하더라고. 우리 시대는 죽었는지 나갔는지 몰라.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어. 삼삼오오 찢어져서 올라가고 끝이야. 서로 전혀 몰라. 나도 하산해서야 전체적인 윤곽을 안 거지. 그러니 같은 대에서 근무한 사람들끼리 또 그렇고. 하여간 보고 싶은 놈은 봤다. 그걸로 만족!”


“저는 엄두가 안 납니다.”


“넌 아직 안 돼. 갔다 큰일 나. 그런 술자리 절대로 피해라. 그런 단체가 아니라도 모임 나갔다가 사진 찍히거나, 아니, 그건 애들이 알아서 하지. 하지만 요즘 SNS도 있고, 브라인드 모자이크 처리해도 본사에서는 다 알아봐. 그리고 다른 본사인진 모르겠는데, 요즘 위에서 SNS 많이 뒤진다. 내 말 명심해라.”


“예.”

“너도 보고 싶은 놈이 있나 봐?”

“아직도 썰입니다.”

“걔 죽었다 어쨌다 그런 거?”

“네 그렇습니다.”


생각한다. 과장의 시대는 그게 뭔지도 몰랐다. 가서 알았다. 하지만 과장은 눈치를 챘다. 커튼을 젖힐 수 없도록 고정한 버스가 높은 산을 계속 오르다가, 계속 내려간다는 걸 주목했고, 말로만 듣던 곳이란 걸 알았다. 과장은 헌병대 하사관이 된다고 알고 들어왔다.


잘못 들어왔다고 느낀 건 늦었다. 과장은 요즘 거기서 ‘퇴교’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일종의 충격이었다. 퇴소를 한다고? 그게 가능해? 팔다리가 부러진 거야?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훈련받다 부적격으로 퇴소한다고? 나온다고? 내보내 줘? 그때는 나가고 싶다고 입 뻥끗했다가 배신자 신세가 되고, 어떤 일을 당하는지 한번 보면 모든 걸 포기했다.


하지만 남들도 이상한 소리들을 한다. 시대가 앞서니 더 끔찍한 소리를 한다.


아니다. 요즘은 운동하다 들어온 애들이 많다지만, 당시 거기 사람들도 입소자들이 초짜란 걸 당연히 알았다. 천천히 시작해서 계속 올린다. 그 올리는 것이 하루하루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들도 그렇게 끌어올려 ‘만들어야’ 한다. 그 시절은 지원하는 사람이 너무 없었고, 그마저도 다쳐서 나가고, 산에서는 사람이 또 항상 모자라고, 반드시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라가서 잘해라.” 동기들의 말을 마지막으로 지옥이라면 지옥이 올라가서 시작되었다.


어쩌다 가끔. 아주 가끔. 아내와 아이들과 텔레비전을 보다, 개그 프로그램이든 예능이든 볼 때, 모두가 웃고 난 가만히 바라본다. 웃긴 이유를 모르겠다. 텔레비전에는 ‘이상한’ 사람들만 나온다.


무전기기 칙칙거린다.


“통신. 통신.”

“어디.”

“좌면. 좌면. 좌측.”

“불어.”

“여기 돌산. 돌산. 33? 33?”


칙- 칙-


“25? 25?”


칙- 칙--


“그럼 뭐.”


칙- 칙- 칙- 칙 -

“말할 수 없다고?”


칙-


“예상하지 못한 건가?”


칙-


과장이 망원경 들고 무전기를 잡는다.


“여기 돌산. 장! 좌면에 사람이 안 보이는데?”


무응답.


“입술을 대봐.”


잠시 후 술 취한 것 같은, 입술을 거의 열지 않은 불분명한 말투.


[...... 아오스...]


“여기는 돌산. 재송 바람.”


[... 카... 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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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28사 병장 2 21.03.25 217 5 12쪽
63 28사 병장 1 21.03.18 232 2 12쪽
62 글록 파이터 2 21.03.11 157 2 11쪽
61 글록 파이터 1 21.03.04 153 3 12쪽
60 심심한 날의 분노 21.02.25 154 2 12쪽
59 섬진강 3 21.02.18 1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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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섬진강 1 21.02.04 190 5 11쪽
56 이성적 배신자 3 21.01.25 125 2 12쪽
55 이성적 배신자 2 21.01.18 132 4 12쪽
54 이성적 배신자 21.01.11 152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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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믿습니까!!! 1 20.12.28 137 4 12쪽
51 폭력의 서막 2 20.12.21 118 3 13쪽
50 폭력의 서막 1 20.12.16 15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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