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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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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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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내추럴 본 : 갈대숲에서 하늘을 본다 1

DUMMY

구름이 반복해서 달을 가렸다가 풀어준다. 나는 계속 가리기를 바란다. 달이 크면 클수록 산사람들에게 위험하다. 그 중간에 나타나는 별은 상관없다. 별은 보고 싶다. 그 무수한 별자리를 모를 지라도 그냥 별자리가 존재한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면서도 자주 북두칠성과 북극성에 눈길이 가고, 그걸 기준으로 북쪽과 그 반대 남쪽, 그리고 동과 서를 구분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서쪽을 본다.


시계. 분침. 새벽 01시 25분 45초.

다시 고글 밴드를 내려 스위치를 켜고 일대를 본다. 풍요로운 녹색 수풀의 바다. 양 옆으로 약간 높게 솟아 병풍처럼 이어진 능선들. 사람의 징후는 안 보인다. 물론 저 수풀 속에 30여 명이 숨어 있다. 저격수들이 모두 출동해 지금 이곳으로 올라오는 3방향을 적외선으로 감시한다. 그 각별한 총소리가 울리면 우리의 꿈은 깨진다. 옆의 김중사 역시 고글 끼고 반대편을 주시하고 있다. 모자를 벗고 고글을 써야 하기에 마치 방독면을 쓴 것처럼, 밴드 사이로 길어진 머리가 파초처럼 구역별로 솟아 있다. 앞은 보지 않아도 모두 공통적인 피로가 찌든 노숙자 얼굴.


3주간의 작전으로 모든 것이 너덜해지고 굶주렸다. 훈련 때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살짝 눈을 피해 소도시 편의점이라도 순간 진입해 물건 사고, 저 먼 시골이라면 불쌍해하는 아저씨 아줌마의 도움으로 아끼바리 쌀과 맛난 김치나 시골반찬을 맛볼 수 있다. 그러니 이곳은 그럴 상황도 아니고 뒤져봤다 나오는 게 없다.


목을 꺾어 별을 보고 있는데 김중사가 날 톡 친다. 돌아보니 손가락으로 저 앞을 지시한다. 하여간 밤에 조용하다 누가 톡 칠 때면 깜짝깜짝 놀란다. 또 뭔가 조용하게 다가오나 어쩌나. 누구 심장 터트리려고 작정했나. 헛기침이라도 예비로 하고 치던가. 그쪽으로 고글을 돌리니 수풀이 우리 쪽으로 선을 그으며 조금씩 흔들린다. 그 선에서 조그만 검은 것이 살짝 위로 들렸다 내려갔다 반복한다.

누가 오고 있다. 소리를 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김중사가 엄지와 중지로 딱 딱 딱 소리를 낸다. 그러자 상대가 머리를 들어 잠시 정지화면으로 반응했고 김중사는 손을 높이 들어 공중에서 흔들었다. 녹색 안의 물체는 김중사의 손을 보더니 끄떡끄떡했고, 나도 손을 들어 이리로 오라고 했다. 물체는 마지막으로 조준경을 들어 나를 한번 보더니 다시 총을 내리고 천천히 다가온다. 속삭임이 온다.


“멧돼지. 하나.”

“멧돼지. 다섯. 총 겨누지 마.”

“그냥 본 겁니다.”

“빈총 맞으면 재수 없다. 아니 빈총도 아니고.”


나타난 물체는 하사 2호봉으로 얼굴을 잔뜩 위장한 채 몸에 풀도 약간 꼽았다. 풀 꼽는 거는 주간에나 하는 거고, 야간에는 대가리와 목으로 이어지는 각을 깎아야 한다. 도착한 하사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습관적으로 엄지로 소총 자물쇠 위치를 확인하고 천천히 앉는다. 입을 손으로 막고 잠시 콜록콜록. 소리 내지 말라고 김중사가 돌아본다.


“어디까지 갔다 왔냐?”

“한 7부.”

“이상한 건 없지?”

“요즘, 애들이 똑똑해져서 말입니다.”

“물 마실래?”

“아닙니다. 몸 무거워져요.”

“오늘 밤은 안 뛸 거다. 못 뛰어.”


그때 무전기 송신음 세 개가 칙-칙-칙 왔다. 여기저기서 송신 버튼으로 응답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린다. 내 눈은 시계를 본다. 01시 30분 근처. 초조하다. 하사가 김중사의 고글을 받아 감시를 시작하고 김중사는 잠시 풀밭에 끄응~하고 누웠다.


그저 눕는 게 최고다. 자고로 모든 긴장을 풀고 몸에 힘 빼면서 완전히 쉬려면 척추가 쉬어야 하고, 그러려면 눕는 게 최고다. 군대에서는 아무 데나 아무 때나 틈만 나면 눕는다. 그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군인은 잠시 이동만 해도 피로가 쌓인다. 항상 장비와 함께 하고 민간인보다 먼 거리를 걷는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는 먹고 눕는 게 가장 절실하다. 특히 야전에서. 최근 들어 가장 조용하고 편안한 밤이다.


이곳은 높은 산의 구릉지대와 비슷한 곳. 말로 따지면 고원 평지인데 말처럼 그렇지는 않다. 골이 아주 얕지는 않으나 그래도 평평한 지역이고 철원 펀치볼인가 어디처럼 작지만 모양이 비슷하다. 거기 원을 그리며 병력이 포진되어 있다. 모두 눈보다 귀가 예민해 있다.


무전기가 스켈치를 깨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7분 전.]


대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너무 짧게 이야기해서 누군지 모르겠다. 대대본부 같다. 오늘, 3주 만에 천리행군 출발하는 것처럼 모여 악수하고 포옹하고 모처럼 욕을 홍수로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지정받는 사방으로 퍼졌다. 사방은 조용하나, 모두 흥분과 기대로 들떠있다. 진짜 오기는 오는 건가 부정적인 사람도 많다. 전문을 받고 이해는 했지만 피부로 와 닿지가 않는 거다. 정말 이게 사실일까. 누가 가짜 로또를 준 기분이다. 모두 반은 속는다는 기분이다.


“뭉게구름!”


저 멀리서 대공포 포성이 연달아 울리면서 미세한 공포가 땅과 하늘로 전달되어 온다.

‘이런... 맙소사.’


아무도 몰랐다. 거기 대공포가 있는지를. 우리가 들어온 뒤로 거기서 쏘는 걸 처음 봤다. 지나가 본 적 없는 산이다. 손을 쓸 방법도고 도와줄 방법도 없다. 그 쪽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저 방포진지 빠르면 내일 밤 가서 아주 아작을 낸다. 여기 온다는 것 자체가 그리도 고마운데, 어디서 초를 치고 지랄인가. 포탄 쌓아둔 곳에 C4로 떡을 발라 아주 공중에 날려주겠다. 하나도 남김없이 조져주겠다.


대공포가 쏜다는 건 두 가지다. 방공포 자가 레이더로 감지했거나 위에서 진행방향과 폭을 통보 받았거나. 어떤 쪽이든, 우리의 꿈을 빼앗으려는 대공포 소리에 일대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동요하고 있었다. 우리의 것을 앗으려 한다. 모두 그 대공포가 자기 손 안에서 가루가 되는 상상을 하고 있다. 내일 밤에 보자 새끼들. 니들은 이미 명함 깠다.


그때였다. 촉촉한 구름 사이로 갑자기 제트가 굉음이 들린다. 소리를 듣자니 뭔가 수평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수직으로 내려오는 듯하다. 밤이라면 아군 전폭기가 유력했다. 그것이 무서운 쌔애~~~액 소리를 내며 하강하더니, 갑자기 저 멀리서 엄청난 폭발이 우르릉 쾅쾅 꽈릉! 일어난다. 나도 모르게 욕과 환호성이 나온다. 옆의 김중사와 하사도 넋이 나갔다. 전폭기는 발포를 기다렸던 듯하다.


“우와, 씨발 돌아가신다.”

“공군은 차원이 달라.”

“한 오백 파운드 되나봐.”

“용각산 만들어버려!”


그때 다시 무전기가 열린다.

[정신 똑바로 차려! 1분 전!]


폭발과 함께 다시 제트기 소리가 위로 뜨면서 멀어지고, 이어 다시 한 대가 특유의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내려왔고, 다시 꽈르릉 폭탄이 폭발한다. 그 순간 모든 이의 전율은 말하지 않아도 최고였다. 아군의 제트기, 아군의 폭탄. 항폭유도를 할 때마다 느끼는 짜릿한 전율. 세상의 끈이 저 아래 남쪽과 이어져 있다는 기쁨.


녹색 고글의 눈으로 하늘을 보며 계속 두리번거린다. 서쪽에서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나도 모르게 계속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하늘을 훑는다. 하도 하늘을 봤더니 목이 뻑뻑하다. 또 시계. 거의 가까웠다. 정말 제 시간에 터지는 걸까? 공중재보급 뭐 한두 번 속나. 30분 늦은 적도 있다. 공군 존나게 욕하면서 떠나려는데 통보도 없이 떨군 적도 있다.


무전이 전혀 없다가 듣건 말건 우리 무전기에 ‘간다!’ 통보만 하고 뿌렸다. 아마도 진입 루트에 어떤 산이 가린 모양이다. 단거리 FM 통신은 대상이 공중에 저 멀리라도 보여야 전파가 터진다. 그리고 나는 잡아보지 않았지만, 공군과 교신할 때는 영어 엄청 써서 좀처럼 말을 알아먹기 힘들다. 저들만의 특색적인 대화법이 영 외계언어처럼 들린다. 단어만 캐치하면 된다.


훈련 때는 존나 성의 없이 모래주머니 더미만 투하하고, 어떤 더미에는 무슨 장난도 아니고 건빵 한 열 개 추가로 넣었다. 욕을 했지만 그 건빵 맛있게 먹었다. 그건 특정대가 작전 포장은 했지만, 여단 군수과에서 ‘보급, 지상에서 들어가는데, 걍 아무 거나 넣고 떨궈.’ 그랬다는 뜻이다. 공중재보급 훈련은 전술종합 적어도 2주가 지나서 하는데, 곯은 병력에게 어디 소 뼈다귀라도 삶아 먹으라고 떨구면 어디 덧나나. 게다가 주변에 산이 있으면 분실 확률도 높다. 특히 가파른 능선이 겹치는 강원도 같은 곳은 쥐약이다. 투하물은 둘째 치고 화물낙하산 잃어버리면 대대에서 변상해야 한다. 못 찾으면 무조건 우리 잘못이 법칙이다.


낮에는 낙하산 보고 그 직하방을 봐 저 나무 근처...하고 짚지만, 공중재보급을 낮에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항상 일정 중 가장 깜깜한 밤 무월광에 주로 받는다. 한번은 공중재보급 날 대대장이 장난 아닌 장난을 쳤다. 재보급작전 끝내고 존나게 낑낑거리며 산타고 가고 있는데, 작은 계곡길에서 대대본부를 동원해 매복을 한 것이다. 훈련이라도 공중재보급은 작전이기 때문에 훈련 상 그런 게 가능은 한 것이나, 건빵 열 개 떨어졌다고 대대장께서 그날 밤 밋밋한 설렁탕에 고추기름 한 통을 투하하셨다.


공포탄 빵빵 터지고 매복! 전파되자 정말 산길 직진 아니면 산으로 들어가 존나게 뛴다. 은거지야 뭐 아니까 일단 분산탈출. 그때서야 특정대가 고마웠다. 그날 진짜 한 3일치 보급품을 투하했다면 훈련 상 그때 거의 다 죽었다. 가뜩이나 새벽에 존나게 걷고 있는데 보급품까지 진짜로 받았다면 니기미 뽕 아련하다. 훈련보급은 보통 주간에 산에서 내려가 시골길에서 트럭에서 받고 또 지고 존나게 올라온다.


그런데 오늘, 진짜로 개땀 날 진짜 보급투쟁이 온다. 무릎 아작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각 은거지에 팀원들이 밤잠 설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하다. 물론 식량도 기다리지만 실전에서 충분한 식량을 공중재보급으로 기다리는 건 병신이다. 그걸 다 어떻게 지고 다니나. 개털지역이라도 먹을 건 현지 보급투쟁에 맡겨도 된다. 정말 기다리는 건 실탄과 배터리와 조준경 재보급이다. 특히 적외선 기능 조준경. 아군 실탄 떨어지면 AK로 전환해야 한다. 이미 많이 들고 다닌다. 특히나 팀 무성무기 사수들은 바닥난 K-7 실탄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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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도요새, 안녕 1 20.09.28 625 23 13쪽
90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체육관 깨기 2 20.09.26 546 22 13쪽
89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체육관 깨기 1 20.09.26 563 22 12쪽
88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2 20.09.26 562 24 14쪽
87 Jumping Jack Flash 위경 (僞經) : 전투 스쿠버 1 20.09.25 617 24 12쪽
86 도요새 사냥꾼 5 +2 20.09.25 609 23 11쪽
85 도요새 사냥꾼 4 20.09.25 592 21 11쪽
84 도요새 사냥꾼 3 20.09.24 561 23 13쪽
83 도요새 사냥꾼 2 +2 20.09.24 625 26 15쪽
82 도요새 사냥꾼 1 20.09.24 661 24 15쪽
81 Jumping Jack Flash 7 +4 20.09.23 612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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