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이어진 인연
젠장.. 어떻게 알았지?..
소진은 대진의 확신 넘치는 목소리에 소진이 준비한 거짓말은 힘을 잃었다.
"후.. 이봐, 대진.."
살왕이라 불리게 된 이후로.. 아니 그 전에도 자신을 이따위로 부르는 자가 있었나 싶은 대진
"뭐라고?..감히.."
소진은 그의 두 눈에서 번뜩이는 살기를 읽자 손을 크게 저으며 말린다.
'저..저 눈깔좀 보소'
"아니, 일단 들어봐. 듣고 나서 생각하라고!"
"... 지금까지는 진명을 봐서 참았다. 빨리 답하라. 참기 쉽지 않구나"
대진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언제 뽑았는지 모를 단창을 쥐고 소진의 몸에 바람 구멍을 만들어낼 작정으로 자세를 취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무조건! 무조건 끝까지 들어"
기가 찬 대진, 당당한 소진의 모습에 마음 한 켠에 설마하는 감정이 엿든다.
"네놈을 뭘 믿고?"
'어휴, 저 답답한 놈을 어떻게 납득시키지..?'
잠시간 생각하던 소진은 결국 포기했다. 어줍잖은 거짓말로는 대진을 속일 수 없다.
'에라 모르겠다..!'
"친우를 못 믿으면 누구를 믿으려고?"
.....
"설마.."
"그래! 그 설마다"
'그래, 내 유일한 친우야! 드디어 나를 알아보는구나!"
둘은 이 상황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동시에 대답했다.
"나는 진명이다!"
"진명의 아들?"
어?
소진은 불의의 일격에 순간 휘청였다.
"내..내가 아들이 있다고?"
"니가.. 진명이라고?.."
대진도 제법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정신을 못 차리는 듯 했다. 그리고 근 시일 중에 내뱉은 말 중 가장 긴 문장으로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그럴리가 없다. 나는 진명의 마지막을 보았어. 그는 분명 무림맹에서 죽었다. 게다가 뭐? 니가 진명이라고?"
진명은 기세를 몰아 퍼부었다.
"죽었다고? 직접 보았나? 진명은 무엇에 당해 죽었지?"
대진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삶의 목적을 잃은 친우의 마지막을 기억하고자 무림맹에 따라갔었던 그 날을..
"진명은.. 그 날 분명 무림맹을 부수려했다. 매화를 피웠지. 그 꽃이 떨어질 때, 진명은 사라졌다. 한줄기 빛이 그를 집어 삼켰고, 어느새 사라졌다.."
"그렇다면.. 아직도 그가 죽었다고 확신할 수 있나?"
..
"시체는? 니가 죽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진명의 시체는 직접 보았나?"
...
소진의 대답에 뚜렷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대진. 답답해 보였다.
"설마.. 아니지, 네놈이 진명이라 하기엔.. 너무 어려. 말도 안되는 소리"
소진은 고민했다.
'이 녀석과 나만 아는 무엇인가로 나를 증명해야 한다'
"아! 그.. 비무대회 기억하지?"
아연실색하며 끔직한 기억이 떠올랐다. 갓 매화검수가 된 진명과 사문도 없이 혈혈단신 출전한 대진이 친구가 된 계기
"?! 그걸 니가 어떻게?!"
해답을 찾은 소진,
"그때 너는 매우 건방졌었지. 사문도 없이 혼자 출전해서 지 잘난 맛에 까불다 본선 첫 비무에서 나한테 개처럼 맞고 떨어졌잖아. 기억 못해?"
실제로 그러했다. 대진은 후기지수들은 사문만 믿고 까부는 반푼이들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박살낸 것이 바로 진명, 그 둘이 평생의 친우가 되었다는 것이 모순.
"그건!! 니가 치사했으니까!"
"그렇지? 그때도 그렇게 나한테 말했지. 그리고 내가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하나?""
둘은 동시에 대답한다.
".. 싸움에 예의가 어딨냐.."
대진은 눈이 빠져 나올 듯 커졌다.
"... 정말.. 반로환동이라도 한거냐?"
"뭐.. 비슷한 거라고 치자. 어쨋든 이 몸의 주인은 천마신교의 막내 공자다. 덕분에 소진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마교라.. 등선한다고 까불더니 마교도인가.. 기묘하군"
소진은 드디어 자신을 알아보는 친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이구만, 이 친구야!"
점점 다가가는 두 손. 이제 맞잡는다.
대진이 진명.. 아니 소진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는다.
"사실 많이 후회했다.. "
"무엇을?"
촉촉한 눈망울의 대진, 그의 제자가 보았다면 기절했을 표정으로 진명의 마지막을 회상했다.
"처음에는 너에게 화산의 소식을 전해주지 말걸.. 하고 후회했다. 그리고는 무림맹으로 달려가는 너를 말릴걸.. 그리고 어제까지의 나는.. 너와 같이 죽을 껄 하고 후회하던 있는 중이었다"
"같이 죽기는 얼어죽을, 한번 죽어봐서 아는데 사는게 훨씬 낫더라"
피식
대진은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친구가 어색했으나, 이내 확신했다.
"친구도 없는 놈 혼자 보내는게 걱정됐으니까.. 결국 이리 돌아왔으니 나는 제법.. 아주 많이 기쁘다. 돌아와줘서 고맙다. 진명.. 이젠 소진이라고 불러야 하나?"
감동적인 분위기의 둘, 진명은 소름이 슬슬 돋아왔다.
"..그래 고..고맙다"
어색한 기류에 대진도 말을 돌린다.
"그나저나 도대체 혼자 무림맹을 친 것이야"
소진은 드디어 이번 생에 처음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후.. 얘기하려면 긴데.. 화산은 마교에 의해 지워진 것이 아니다. 나는 미약하게 숨쉬는 화산의 아이를 화산에서 보았다... 그 숨은 오래가지 못했으나.. 나에게 알려주더군"
"?! 설마.."
"그래. 무림맹주 소현. 그자의 짓이다"
....
"세상에.. 소현? 무림 제일의 협객이라는 천룡검 소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 소진
"그래.. 게다가 나는 섬서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화산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시체들을 보았다. 그들은 진원진기를 뽑혀 마치 목내이 같았지.."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소진은 잠시 허리를 숙여 기절해있는 호량의 앞섬을 뒤진다.
"그리고 그 곳에는 이런 것도 있더군"
장부 한 권을 대진에게 휙 던지는 소진
장부는 허공섭물의 묘를 살린 기공에 대진의 손아귀로 안착한다.
촤라락
장부를 넘기는 속도가 점점 거칠어진다.
".... 세상에.."
"그래, 마교인들을 팔아넘긴 자들은 살아있는 자들을 무림맹에 넘기고 시체를 받아와 처리장이라 불리는 곳에 버렸지. 난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대진은 장부를 닫으며 소진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를 찾은건가?"
"그래.. 나랑 일하나 하자"
"일? 무슨일?"
씨익
"쓰레기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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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방, 침대 위
정신을 잃었던 장호가 파악할 수 있는 지금 상황의 전부
"헉..! 여.. 여긴 어디지?
'나는 분명 폐가에 들어섰고.. 갑자기 기절했다.'
이것에 인과를 찾지 못한 장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호는 살금살금 닫힌 방문을 향한다.
터벅..터벅..끼익!
.....
'다행히 아무도 듣지 못한건가..? 휴..'
들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는 장호, 문을 살살 열어 젖히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소진과 대진
'어? 공자님? 어? 살왕?'
문 밖의 둘은 제법 친해보였다.
어쩔 때는 서로 싸우는 듯 하더니 갑자기 손을 맞잡고 우정을 맹세하는가 하면.. 느닷없는 서로 내뿜어내는 날 것의 살기에 온몸의 털이 바짝 선다.
'도대체 둘이 무슨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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