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집으로..
진흙바닥 위에서 소진을 향해 부복하고 있는 장호와 호량.
이들의 경외감은 종남에서 소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다도 강렬했다.
신의 행사를 직접 목격한 광신도들은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이 상황이 멋쩍은지 낫지도 않은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는 소진
"일어나라, 흙바닥에서 뭐해"
소진의 말에도 둘은 엎드린 땅바닥에서 몸을 뗄 생각조차 할 수 없는지, 눈을 지그시 감은 체 경어만을 외울 뿐이었다.
"천마불패...."
..
"...명한다. 일어나라"
벌떡!
부복한 자세에서 촌각을 다툴 정도로 짧은 사이에 벼락처럼 일어난 두 사람의 이마와 팔다리는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있었으나, 그들의 눈빛 만큼은 밝게 빛났다.
'이분이.. 나의 신..!'
둘의 빛나는 눈빛이 제법 부담스러운지 소진은 손을 저으며 두 사람을 말렸다.
"그만하고 가서 씻고와라 오늘은 여기서 지내고, 내일 교로 복귀하자"
"예!"
소진의 명을 듣는 둘은 교주를 뵐 때와 같은 극진한 예를 취하고 곧장 객잔으로 향했다.
'후.. 저것도 적응해야 된다는 거지?.. 쉽지 않겠군'
장호와 호량이 사라지자, 대진이 나서 참아왔던 질문을 쏟아낸다.
"너.. 도대체 무슨짓 을 한거야..? 주술을 익힌것이냐?.."
'주술 같은 소리하네'
살왕이라는 자가 자신의 체신도 생각치 않고 무림초출 처럼 신기하다는 듯 묻는 모습이 제법 웃겼다.
"주술로 살아난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한 것도 주술 같은 것이 아니다. 무공이지"
대진은 소진의 대답이 성에 차지 않는지 소진의 몸을 두손으로 잡고 흔들며 물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런 무공이 도대체 어디있다고! 모산이냐? 아니면.. 마교냐?"
"아! 그만해! 안그래도 내공 쓰지 말랬는데.. 아이고, 골 깨진다.. 자하신공이다. 임마, 무슨 모산? 화산이다! 진짜 맞아볼래?!"
'아 지금 싸우면 내가 지는구나?'
...
순간 자신의 힘을 망각하고 까불었던 소진은 잠시 자중했다.
"아무튼! 이거 자하신공이다. 그런데.. 여기에 마기가 섞이니까 재미있는 일이 생기더라고?"
"호오.. 화산의 절기인 자하신공에 마기가 섞였다?! 그 자하가 그 자하신공 맞겠지?"
"그래, 화산의 장문인만이 익힐 수 있는 화산 최고 절기, 근데 이몸으로 살아난 뒤 신교의 만마고.. 그러니까 서고에 갔는데 이게 떡 하니 있더라.."
대진은 이 상황에 합리적으로 생각하길 멈추고 소진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으려 노력했다.
"그러니까.. 죽었다 살아난 뒤에 마교의 서고에 갔는데.. 거기서 우연찮게 자하신공 비급서를 보았다.. 그래서 익혔다?"
"그렇지! 이제야 좀 이해가 돼? 생각보다 빠르군.. 의외야"
....
"..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래서 그 무공은 다른 사람의 정신을 네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거냐?"
절레절레
"섬서로 오는 길에 몇번 시도해 봤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자안이 미치는 범위는 마인으로 한정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뭐 짐작가는 바는 있다"
거듭되는 소진의 설명이 그의 호기심을 더욱더 자극하는지 몸이 달은 대진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안되겠다, 들어가자. 오늘 일찍 잠들 생각하지 말거라. 뭐해, 안따라오고!"
'... 젠장.. 오늘 잠은 다 잤다..'
투덜대는 것 치고는.. 대진을 따라가는 소진의 발걸음은 제법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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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망한객잔
호량은 개운하게 창문을 타고 내려오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일어났다.
따듯한 햇살.. 폭신한 침대.. 그리고 잘생긴..남자? 어? 공자님?!
"꺄악!!"
퍽!
호량은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옆에서 곤히 자고있는 소진의 옆구리를 내공을 실어낸 발로 차버렸다.
소진은 아직 술이 덜 깼는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고 반쯤 감긴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뭐..뭐야! 적습인가!"
"헉.. 공자님!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너무 놀라가지고.."
소진은 맞은 옆구리가 아려오는지 인상을 쓰며 화냈다.
"뭐야! 갑자기 왜그래! 가뜩이나 술 때문에 머리아파 죽겠는데..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허리야..."
"죄.. 죄송해요. 근데 여기 제방이니까 나가주세요..!"
"아 귀찮은데 좀만 더 자자.."
호량은 슬쩍 다시 침대로 올라오며 질척이는 소진의 태도에 조금은 갈등했으나, 다시 단호하게 소진을 내쫓았다.
"안됩니다. 나가세요. 당장!"
쾅!
그렇게 소진은 호량의 방에서 쫓겨났다.
시끌벅적한 옆방의 소음에 짜증나는 표정으로 슬쩍 나온 장호. 소진과 눈 마주친다.
"무슨일입니까, 공자님.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네!"
".. 나 지금 쫒겨났어.. 안되겠다. 니 방에서라도 잘래. 나 진짜 죽을거 같다고!"
"천마불패...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쾅!
수하들에게 버림받은 소진.. 어제까지만 해도 신이라 불렸던 사내는 그렇게 쫒겨났다.
...
시간이 지나 신강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소진 일행, 어째서 인지 소진의 낯빛이 어둡다. 눈밑의 그늘아래서 햇빛을 피해도 될 정도
"아이고.. 내 팔자야.."
소진의 탄식이 묻어나오는 말투에 장호가 궁금한듯 묻는다.
"왜그러십니까? 공자님. 아침에도 갑자기 재워달라고 하지 않나.."
"뭐?! 내가 언제 재워달라고 했어! 침대 좀 같이 쓰자고 했지"
억울함을 토로하는 소진, 내용은 제법 허술했다.
"아니 자기 침대는 어디다 두고 제 침대를 같이 쓰자고 난립니까?"
".. 몰라 술김에 아무대나 들어가서 잤는데... 쫒겨났다"
소진은 호량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쏘아냈다. 강렬한 소진의 눈빛에 호량은 얼굴을 붉혔다.
".. 놀라서 그러죠! 갑자기 옆에.. 있으니까!"
늘 그렇듯 투닥거리고 있을 때, 대진이 다가와 말리듯 말했다.
"자자, 다들 그만하고! 수하들을 시켜 신강으로 가는 길에 필요한 것들은 다 챙겨놨으니 이제 출발해도 될 거다"
장호가 나서 예를 취한다.
"감사합니다. 살왕이시어"
대진은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는지 소진을 향해 눈짓한다.
소진은 대진을 억지로 못본 척 하려 했으나, 그런 그의 옆구리를 장호가 찌른다. 호량에게 맞은 부위를 또 맞자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소진
퍽!
"아, 왜! "
대진이 듣지 못할 만큼 나즈막한 목소리로 소진을 다그쳤다.
"빨리..하세요.. 인사.."
소진은 먹기 싫은것을 억지로 먹을 때 만큼 싫어하는 표정을 짓고 대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고맙다"
"흐음.. 말이 제법 짧구나, 너의 생각만큼이나"
.....
"고맙소..형님.."
"크하하, 그래. 못난 아우를 위해 이정도도 못해줄 이 형님이 아니다. 조심히 가거라. 그리고 내 너에게 선물을 하나 주겠다"
'선물?'
이미 형님이라고 해버린 마당에 선물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소진은 덥썩 물었다.
"자, 이녀석을 받거라"
'이 녀석? 뭐지..?'
대진이 허공에 손짓하자, 허공에서 드러난 인기척이 무엇인가를 전달한다.
사내는 대진에게 품안에 안긴 무언가를 넘겼고 대진은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소진에게 일렀다.
"이놈은 뇌응의 자식이다. 내 평생을 함께 다닌 전우이나.. 저 녀석의 자식을 본 건 처음이지. 자 데려가거라. 영물의 자식이니 제법 쓸만 할게야"
대진은 품에 안긴 새 한마리를 소진에게 건네주었다. 어느새 대진의 어깨에 앉아 자기 자식을 바라보고 있는 뇌응
소진은 감사 인사를 표했다. 대진이 아닌 뇌응에게.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데 생각해보니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했었구나. 고맙다. 그리고 이 녀석, 너 못지않게 잘 키워내마"
소진을 바라보는 뇌응의 눈이 마치 알겠다는 듯 천천히 감긴다.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대진, 앞으로의 긴 여정을 위해 당부한다.
"아참, 그리고 천마신교에 돌아가게 되면 이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뭐.. 어차피 저자가 알아서 하겠지만"
'저놈'에서 '저자'로 승격한 장호, 드디어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조금은 감격한 눈치다.
"예! 어르신, 제가 살막주와 정리할 터이니 심려치 마십쇼"
작별인사를 모두 마진 소진, 작은 새 한마리를 품에 안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 그쯤 하고 가보자고.. 집으로!"
"예! 공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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