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7.03 19:29
연재수 :
257 회
조회수 :
11,789
추천수 :
695
글자수 :
1,378,486

작성
22.11.03 12:00
조회
44
추천
2
글자
12쪽

110. 축배를 들어라

DUMMY

이납솔의 가주는 간만에 흥이 오른 상태였다.

그는 줄곧 아껴뒀던 토두바를 내와 조심스레 뚜껑을 땄다.

향긋한 주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장인들의 나라 라페.

장인들의 나라라는 별칭처럼 손으로 만드는 것에 지독한 집착을 보이는 괴짜들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아주 맛 좋은 술을 만들어내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특히나 포도주를 증류하여 만든 술이 유명한데 토두바라는 지방의 이름이 아예 술의 이름으로 자리를 잡을 정도였다.

지금 이납솔 가주가 딴 토두바는 그 중에도 굉장히 특별한 것이었다.

400년 전 당대 '가장 뜨거운 불'이 초대 영웅왕의 검을 다시 복원해냈을 때 마셨던 토두바가 바로 이 토두바였다고 한다.


- 여기 이 토두바가 내게 영감을 주었네! 아주 좋은 술이야! 껄껄껄!


애초에 라페의 지도자라는 이가 질 떨어지는 술을 마실리도 없거니와 여기에 역사적인 업적을 이루는 데에 적잖은 기여를 한 술이라는 상징성이 부여되자 '영감의 정수'라는 이름이 붙으며 이때 만들어진 토두바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장인들에게 한해서 먹혀드는 미신같은 것이었지만 사람들 심리란 것이 다 비슷한 거라 권능자를 믿는다는 카밀로테의 장인들도 '영감의 정수'를 여러 병 들여와 보유하고 있었다.


대장장이 가문인 은우쪽도 이 특별한 토두바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주정뱅이 가문인 이들은 오래 전에 이미 다 마셔버렸다고 한다.

그에 비해 이납솔은 달랐다.

가주가 천년목을 깎는 순간에 한해 이 특별한 토두바를 한 잔 마실 수 있었다.


이납솔 가주가 영감의 정수를 잔에 따르자 코끝에 맴돌던 주향이 곧 방안을 가득 채웠다.


"끌끌. 이 순간을 위해서 가주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과언이 아니야."


그의 할아버지가 천년목을 깎을 때 열었던 병과 꼭 같은 병이었다.

천년목 지팡이를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고 싶다고 따라왔다가 '영감의 정수'의 향에 매료된 아이가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 순간을 위해서 지금껏 토두바는 물론 다른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집착은 라페의 여느 장인에 비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었다.


꿀꺽


도수 높은 술이 식도를 뜨겁게 달구며 넘어갔다.

그래 이 맛!

이 향!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콜록 콜록!"


생경한 느낌에 이납솔 가주는 영감의 정수를 제대로 넘기지도 못하고 대부분을 뱉고 말았다.


"..."


음.

생각보다 별론데?


엄습해오는 지독한 실망감을 가주는 애써 무시하였다.


"용같네."


다만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오기로라도 잔에 남은 토두바를 들이켰다.

얼근하게 올라오는 기운에 가라앉았던 기분이 금새 좋아졌다.


"이... 기분인가!"


가주는 귀한 토두바를 구석에 대충 던져두고는 눈앞에 놓여있는 천년목 가지를 바라보았다.


이 가지는 떼르 가주가 혼자 미카 세 번째 숲에서 그가 주장하길 침입자와 맞서다가 부러진 천년목의 가지였다.

꽤나 두꺼운 가지였다.

천년목의 가지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기에 버리지 않고 이납솔 측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 가지가 쓰일 때가 다가 온 것이다.


공석이 된 대현자에 오를 새로운 대현자.

어둠을 가르는 빛의 검을 휘두르는 자.

그야말로 암울한 카밀로테에 어울리는 자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빛과 같은 대현자님에게 어울리는 빛과 같은 지팡이를!


영감이 샘솟는다.


무아지경에 빠진 이납솔 가주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천년목 가지가 거침없이 깎여나가며 푸른 빛망울을 뿜어냈다.

곧 방 안은 청량한 냄새와 함께 파란 빛으로 가득찼다.


***




"끄억!"


압축된 바람에 맞은 넷이 멀리 나가떨어졌다.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는 넷을 향해 온 몸의 근육이 터질듯이 부푼 남자가 말했다.


"다시. 일어나시죠."


주먹으로 때리기라도 하는 듯 묵직한 바람을 날려대는 근육질의 정체는 호위군의 대장이었다.


"끄응... 저 나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좀 살살 해주시면 안될까요? 대장님?"

"맞아요. 어제까지 병실에 누워있던 앤데."


먼지를 털며 일어나는 넷이 투정을 부리자 멀찍이 듀시아가 맞장구를 쳤다.


"확실히 몸이 많이 둔하십니다."


둔하지 않아!

많이 먹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찌지는 않았어!

라는 속마음을 넷은 사람에게 건넬 수 있을 만한 말로 다듬어 말했다.


"제가 둔한 게 아니라 대장님이 지나치게 빠르신 거예요."

"호위군의 다른 사람들 모두 저 만큼은 합니다."


호위군 대장의 발언에 이번에는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호위군의 대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속지 마세요! 거짓말입니다!""

"쯧."


호위군 대장이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대원들을 째려봤다.


현재 이들이 있는 곳은 데클락 정상.

대현자가 거하는 곳인 성전의 널따란 복도 안이었다.


- 대현자가 되겠다 결심한 것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 큰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넷님께서 너무 약하시다는 겁니다.


넷이 대현자가 되겠다 자신의 결심을 전하자 호위군 대장이 그녀를 찾아와서 한 말이었다.

파편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 동시에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한 사람이니 자신을 추천했다면서 갑자기 이제와서 딴 소린가 싶었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그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 듣자하니 파편을 없앨 수 있었던 이유가 빛나는 검 덕분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 네.

- 모든 마법이 그렇지만 그 특별한 마법도 결국 기본적인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써먹을 수 없습니다.

- ... 넴.

- 그러니 몸이 다 나으시는 대로 제 밑에서 여러 훈련을 받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넵.


대현자의 자리에 트리아트 넷이 오를 것이라는 소문은 이미 알음알음 퍼진 상태.

아무리 그녀가 작은 용과의 전투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녀를 반대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을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와중에 대현자에 오를 귀한 몸을 함부로 굴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성전에서 훈련을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데클락 정상에 있는 성전은 공간 이동 마법이 없으면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며 성전 자체의 크기는 두 사람이 훈련을 하기에는 차고도 넘쳤다.

안전이 보장된 대신 오고 가는 것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것은 듀시아가 있어서 자연스레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렇게 지금에 이른 것이다.


몸을 일으킨 넷을 향해 대장이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넷님께서 다루실 마법이 검의 형상을 띄고있는 이상 검을 다루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카밀로테에서 검은 잘 다루지 않는 무기다.

마법이 공격의 주를 이루며 육체를 훈련하는 이유 역시 마법을 잘 재현하기 위함이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다루는 무기라고 해봐야 제다카 뿐인데 이는 오히려 창에 가까운 모양새라 창술을 훈련하면 했지 검은 어지간하면 만져볼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 근육질의 사내는 의외로 무기술에 관심이 많은지 검을 다루는 법을 아는 듯 했다.


"전 검에 대해 잘 모릅니다."


음?

처음에 훈련 시작할 때만 해도 잘 아는 듯이 말하지 않았나?

검을 잘 다루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몸을 잘 다루는 것이니 이것부터 훈련한다고 했는데?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죠. 검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몸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거 왜인지 사기꾼 냄새가 나는데...


"자 그러니 다시 해보죠.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 사기꾼."

"네?"

"아니에요."


그가 넷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순수한 육체능력만으로 작은 원 안에 있는 그의 명치에 손을 대는 것.

대장은 원 안에서 나갈 수 없으며 공격은 오로지 한 가지 마법으로만, 방어는 오직 몸만 이용한다는 조건을 붙여놓고 하는 훈련이었다.


"갑니다!"


이번이 벌써 스물다섯 번째 시도였다.

넷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펑 퍼벙


호위군 대장이 근육이 꿈틀거리는 양 팔을 번갈아가며 강하게 내지르니 묵직한 바람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일단은 마법은 마법이었다.

그의 육체적인 능력이 덧붙여진 그의 고유한 마법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원리 자체는 공기를 압축해서 쏘아내는 것뿐인데 본래 속도에 그의 무자비한 주먹질이 더해지자 여타 바람 마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빠른 마법이 탄생했다.

주먹질이 더해진 바람, 줄여서 주먹 바람.


'이건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


이 사실을 그녀는 열한 번째 시도에나 깨달았다.

보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넷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아닌 사번대 대장이었다.

유스 유람과 싸울 때, 그에게 마법이 막히자 사번대 대장은 그의 손 끝을 보고 마법의 경로를 예측해 공격을 다 피해내는 신기에 다다른 기예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똑같이 해내는 것은 불가능해도 그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이 대장이 내지르는 주먹의 방향에 고정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휘둘러지는 주먹이기에 간신히 대략적인 방향 정도만 짐작할 수 있었다.


넷은 방향을 틀지 않았다.

세 발 중 두 발은 현재 그녀 경로의 양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녀에게 날아오는 마법은 하나.

그녀는 몸을 더 낮게 숙이며 나가던 방향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녀의 반응을 보자마자 대장이 공격을 추가했다.

넷은 머리칼을 흔들며 스쳐지나가는 공기 덩어리를 느끼자마자 곧바로 몸을 옆으로 틀며 한 바퀴를 돌았다.


쐐애액


그녀의 볼이 풍압에 슬쩍 찢겼지만 무사히 피해낸 상황.

이를 본 대장이 열심히 주먹을 내질렀다.


펑 펑 펑


쉴 새 없이 날아오는 공기 덩어리를 무사히 피한 그녀가 마침내 대장이 서있는 작은 원 안으로 들어갔다.

25번의 시도 중에 원 안에 들어온 것은 이걸로 3번째.

바로 이전에는 대장의 명치를 공격하는 것에만 집중하다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바람에 맞아 빈틈을 내주었고 이어서 날아온 그의 주먹 바람에 그대로 나가떨어졌었다.


"하아압!"


기합과 함께 날아드는 그녀의 주먹을 대장이 가볍게 쳐냈다.

그와 동시에 대장이 반대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가 마법을 재현한다는 뜻이었다.


넷은 뒤로 풀쩍 뛰어 잠시 그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주먹 바람을 쓰기 위해서는 주먹질을 할 거리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그가 그녀를 공격할 수 있는 마법은 압축된 공기를 쏘아내는 마법 뿐인 상황에서 주먹질 없이 그냥 재현하면 그녀를 밀어낼 뿐 별다른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그녀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주먹 바람이 필수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접근한 세 번 모두 그는 주먹 바람을 위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먼저 그녀를 밀어내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좀전까지 있던 자리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대장은 행동이 읽혔다는 사실에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거리가 확보되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주먹을 휘두른 순간.

넷이 주먹의 경로에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


대장은 내지르던 주먹을 급하게 멈춰세워야 했다.

어디까지나 공격은 마법으로만 할 것이 이번 훈련의 규칙이었다.

그가 멈칫한 찰나의 순간에 넷의 몸이 아래로 훅 꺼지며 그의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넷이 뻗은 주먹이 그의 명치를 가격하려는 순간 그의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동시에 넷의 주먹을 쳐내는 대장.


하지만 어린 시절 아이들과의 수많은 싸움으로 단련된 넷 역시 근접한 싸움에 익숙한 편이었다.

넷은 곧바로 자세가 무너진 대장의 무릎을 밟으며 위로 뛰어올랐고.




기어코 대장의 명치에 달린 표식에 손을 댔다.




압축되었던 공기가 뒤늦게 허공에서 터지며 넷의 성공을 알렸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9 109. 내 옆에 있으라고 했다지만 +1 22.11.02 39 1 12쪽
108 108. 장난 그만해 진짜 재미없어 +1 22.11.01 39 1 12쪽
107 107. 이것들은 회의만 주구장창 22.10.31 53 2 12쪽
106 106. 개벽 22.10.27 44 2 12쪽
105 105. 내 옆에 계속 있어 22.10.26 149 1 12쪽
104 104. 왜 이제 왔어 기다렸잖아 22.10.25 46 2 12쪽
103 103. 검은 용이 울부짖었다 +1 22.10.24 39 2 12쪽
102 102. 민낯에 자신 있는 편 22.10.20 54 2 12쪽
101 101. 빛이 어둠에 비치되 22.10.19 45 2 11쪽
100 100. 도입부는 빠르고 힘차게 +1 22.10.18 56 1 12쪽
99 99. 실패의 이유 22.10.17 45 2 12쪽
98 98.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22.10.13 51 2 12쪽
97 97. 악으로 깡으로 22.10.12 43 2 12쪽
96 96. 내가 누군지 아니 22.10.11 42 2 12쪽
95 95.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22.10.10 40 3 12쪽
94 94.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22.10.06 45 2 12쪽
93 93.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22.10.05 59 1 12쪽
92 92. 누구인가 누가 소리를 내었어 22.10.04 46 1 12쪽
91 91. 맨날 술이야 22.10.03 44 2 12쪽
90 90. 그 느낌적인 느낌 느낌 22.09.29 57 2 13쪽
89 89.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22.09.28 52 2 12쪽
88 88. 아님 아무튼 아님 22.09.26 48 2 12쪽
87 87. 끼잉 22.09.22 49 3 12쪽
86 86. 오 오오옷 이 맛은 22.09.21 62 3 12쪽
85 85. 구라 치다 걸리면 22.09.20 43 3 12쪽
84 84. 조금만 나에게 힘을 나눠 줘 +1 22.09.19 47 3 12쪽
83 83. 한 번 봐준다 22.09.15 50 2 11쪽
82 82. 넌 이미 함정에 빠져 있다 22.09.14 49 2 12쪽
81 81. 이젠 가망이 없어 +1 22.09.13 53 2 12쪽
80 80. 산들바람에 바다가 마르고 22.09.12 52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