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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11,418
추천수 :
692
글자수 :
1,360,283

작성
22.10.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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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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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93.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DUMMY

가주들은 말 그대로 가문의 주인이다.

그들은 가문을 통솔하고 타 가문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보통 가문 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자가 가주라는 자리에 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회의장에 모인 가주들은 가장 존경받는 열두 명의 마법사라고 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보통의 경우에 해당한다면 말이다.


"얼른 그 정체나 밝히쇼. 내가 원체 바빠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은우의 가주였다.

하얗게 센 머리칼이나 수염을 보면 나이가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의 몸은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몸이었다.

근육이 탄탄히 자리잡고 있는 건장한 몸은 어지간한 젊은이의 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대장장이 가문인 은우는 철 두드리는 일에나 관심이 있지 그 밖의 다른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이들이 모인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삶의 모습은 은우의 가풍으로 자리잡아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장인이라며 떠받들여지기도,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욕을 먹기도 한다.


이번 해방주의자들 관련 사건은 결코 작은 일이라 할 수 없는데도 은우의 가주란 자가 바쁘다며 회의를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것도 은우 가문 특유의 가풍에서 비롯한 것일 터였다.


은우 가주의 발언에 다른 가주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 오해하지 마쇼. 이번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


그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다만 항상 이런 일이 벌어지면 떼르 가주께서 잘 처리하지 않았소. 단서도 있겠다. 그 해방뭐시기라는 놈들의 처리에 대한 가주들의 동의만 받아내면 될 것인데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이 아까워서 그랬던 것이니."


그러자 누군가 은우 가주의 말을 지지하며 나섰다.

은우 가주와는 다르게 푸짐한 몸을 하고 있는 뵈나 가주였다.


"나 역시 은우 가주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떼르 가주님께서는 항상 이런 문제를 훌륭히 처리해 왔으니 전권을 위임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힘 있는 두 가문의 의견에 비교적 힘이 적은 가주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유, 베네빅, 퀴. 나셴드, 유스, 오르디나까지 가주들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는 있었지만 결국 동의를 표했다.


2와4사이월 가문의 가주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발언권이 전무하였기에 이제 남은 가문은 이납솔과 펠페림 뿐이었다.


"이상하군요..."


먼저 입을 연 것은 펠페림 가주였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동의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 영 마뜩잖았는지 뵈나 가주가 날을 세워 물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말이지? 내가 보기에 지금 제일 이상한 것은 펠페림 가주의 태연한 태도인데 말이야."


이번 정규군 부대 습격에 가장 뿔이 났을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습격이 일어난 정규군 부대가 9월 마을의 영역이라는 점은 당연히 속이 쓰릴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펠페림이 군 가문이라는 것이다.

군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 그들인데 마침 그들의 자부심이 공격을 당했단다.


분명 현 사태에 가장 분노하고 있을 가문은 펠페림이었어야 한다.


단서도 나왔다.

떼르 가주가 자처해서 칼도 뽑았다.

다른 가주들 역시 이에 대해 이견이 없다.


펠페림 가주는 이 흐름에 몸만 맡겨도 당장 그녀가 느끼고 있을 분노를 쏟아낼 명분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런 펠페림 가주가 '이상하군요' 라는 말로 서두를 떼고 있었다.


"가주들께서는... 아직 떼르 가주께서 그 증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시지도 않았는데 해방주의자들의 정체를 아는 눈치입니다?"


가주들을 둘러 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눈에는 분노 대신 의아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굳이 가주 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은 이번 결정에 죽어나갈 사람이 못해도 수백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뜻이죠. 그것도 아니면..."


그녀는 말을 늘이며 저 혼자 유독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가주를 돌아봤다.

시선이 향한 곳은 초라한 차림의 혀가 굳은 노인.

2와4사이월의 가주였다.

2와4사이월의 가주는 그녀의 시선을 받고 몸을 움찔 떨었다.


"어디 가문 하나가 먼지가 된다는 말인데."



툭툭


펠페림 가주는 손가락으로 원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카밀로테에는 법이 있다.

카밀로테인이 죄를 지으면 법에 근거하여 문제를 처리하는 곳이 바로 집행처이며 그 수장인 집행관은 대현자의 권한을 위임받아 법치를 대리 수행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증언을 통해 해방주의자들의 정체를 밝혀냈다면 집행처에서 그들을 잡아들여 법에 근거한 처벌을 내리면 되었다.

그들이 벌인 짓이 항간에 알려진대로라면 사형일 것이고 아니라면 형이 줄 것이다.

사실 해방주의자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알아내기만 하면 간단한 문제였다.




그런데.

굳이 떼르 가주는 가주 회의를 소집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그녀가 좀 전에 말한대로였다.


죽어나갈 사람의 수가 너무 많거나, 혹은 한 가문이 통째로 연루되어 있거나.

단순히 도의적인 차원을 떠나서 5000명이 채 안되는 작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죽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 가주들의 논의 하에 죄인들의 처벌을 유예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이번 회의의 본질이었다.


요컨대 이렇게 쉽게 결정 내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걸 아는데도 가주들께서 이렇게 쉽게 수긍하고 납득하는 것은 역시 그 증언이 가리키는 자들이 그들이기 때문이겠죠?"




현재 카밀로테인 중 떼르 가주가 말하는 해방주의자들의 정체가 누구인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치안군의 부대장 한 명이 나머지 대원들을 이끌고 마을로 향하려는 것을 떼르 가주가 뜯어 말리지 않았던가.


저주받은 마법사의 후손.

빨간 머리 가문.


"2와4사이월 말이에요."


그녀는 원탁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이전보다 더 높이 치켜 들더니 원탁을 쳤다.


투웅


손가락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가벼운 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순식간에 다른 가주들의 목을 훑으며 지나갔다.


"이곳에서 마법이라니! 미쳤는가?"


뵈나 가주가 대경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가주 회의에서는 아무래도 모이는 사람들의 위치가 위치다 보니 사소한 마법도 미리 양해를 구하고 재현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방금 펠페림 가주가 일으킨 바람은 단순히 그 기본을 어긴 것을 넘어 대놓고 인간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갔다.

물론 실제로 그녀가 위협적인 마법을 쏘아냈다고 해서 이 자리의 가주가 모두 죽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어쨌든 가주 회의에서 하기에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명백히 잘못을 범했는데도 펠페림 가주는 도리어 뵈나 가주를 쏘아붙였다.


"제 몸 하나는 그리도 끔찍히 아끼면서 다른 사람 목숨은 그리도 쉬운가 봅니다?"

"하! 설마 저것들과 내 목숨을 비교하는 것이야?"


뵈나 가주는 절망으로 물들어있는 2와4사이월 가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언제고 말해주마. 저딴 쓰레기같은 년놈들보다 내 목숨이 훨씬 비싸다. 훨씬 귀하다!"


뵈나 가주가 드물게 제 비대한 몸을 일으키기까지 하면 한 말이다.

다른 가문 사람들에게 했다면 논란을 일으키고도 남을 오만하기 그지 없는 발언이다.

그런데도 저리 확고하게 말한다는 것은 뵈나 가주는 그가 한 발언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뜻이었다.

비단 뵈나 가주만의 생각도 아닌 것이 좀 전의 그의 발언에 다른 가주들 역시 수긍하는 모양새였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

하지만 붉은 머리 가문에 한해서라면 이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된다.

카밀로테 건국 이후 조금도 변하지 않은 붉은 머리 가문에 대한 인식이었다.


"이미 다 아는 것 같지만 그 증언이라게 제 연인의 죽음에 미쳐버린 여인의 말일 뿐입니다."


이번에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확실치도 않은 증언에 지금 가주들은 붉은 머리 가문을 다 죽이겠다 동의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앞장서냐 소극적으로 뒤따르냐의 차이일 뿐.

여기있는 가주들은 모두 같은 편이었다.


이해는 간다.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단체가 활개치고 다니는 와중에 2와4사이월 가문은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 딱 좋은 자들이 아닌가?

마침 해방주의자들이 해방시키고자 하는 약자였으며 80명이 채 안되는 작디 작은 가문이었다.


쉽게 말해 2와4사이월 가문 사람들을 모조리 죽인다면 카밀로테에 큰 타격 없이 사람들의 불안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타격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그들이 하던 일인 쓰레기 치우는 일을 대신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누가 봐도 남는 장사였다.


"미친 사람의 증언 하나로 가문 하나를 몰살시키겠다니 단체로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겁니까?"


펠페림 가주는 이 꼴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흐흐흐."


그녀의 말에 은우 가주가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말아 올렸다.


"그 사람이 미쳤느냐 미치지 않았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을 아직도 모르슈? 사람들이 피를 원하고 있다. 이 말이오!"

"그게 아니겠지."


은우 가주의 말을 맞받아친 것은 줄곧 가만히 있던 이납솔 가주였다.

지팡이 장인 가문인 이납솔 가문은 은우와 똑같은 전형적인 장인 가문이었다.


"은우 가주, 자네가 받아처먹은 돈이 그리 말하고 있는 거겠지."

"... 이 영감탱이가 드디어 노망이라도 났나."


은우 가주는 이납솔 가주를 때려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서슬퍼런 기세를 흩뿌리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 가문에 불만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근거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면 안되지 않겠소?"


본래 은우와 이납솔은 사이가 나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대현자의 명으로 군용 지팡이인 제다카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 두 가문의 관계는 급격히 나빠졌다.


제다카의 구조는 크게 지팡이, 마법석, 그리고 둘 사이를 잇는 매개물로 나뉜다.

지팡이 제작에 필요한 기술이 중요한 것은 당연했지만 그보다 '정의의 숨결'이 각인된 마법석과 지팡이를 이어주는 매개물의 역할이 더 중요했다.

마법석 자체만으로는 고위력의 마법을 견딜 수 없었기에 지팡이의 힘을 가져다 써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매개물의 재료가 되는 것이 철이었다.

매개물을 제작하는 일은 자연스레 은우에게로 넘어갔고 이때부터 두 가문 사이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줄곧 지팡이에 관한 부분은 오롯이 이납솔의 영역이었는데 그 영역을 은우가 침범한 꼴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은우 가주는 이를 꼬집은 것이다.

실제로도 은우 가주의 말대로 이납솔 가주가 그를 공격한 이유에 가문 사이의 앙금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납솔 가주가 좀 전에 한 말은 사사로운 감정이 섞였을지언정 절대로 근거가 없는 허튼소리는 아니었다.


떼르 가주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시늉이라도 할 가주가 세 명 있었다.

은우, 뵈나, 그리고 최근 그 세를 급격히 키우고 있는 세유까지.

공통점이라면 그들 모두 떼르의 비호 아래 이런저런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도 은우 가주가 떼르 가주에게서 따로 돈을 받는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자네가 떼르 가주에게서...!"




"거기까지 하시죠. 지금은 그걸 논할 때가 아닙니다."


펠페림 가주는 화제가 다른 곳으로 튀려는 것을 바로잡았다.

과열되었던 분위기를 어느정도 가라앉힌 그녀는 곧바로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를 보았다.


"이제 슬슬 말해주시죠. 떼르 가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계획하신 것인지 말입니다."


그녀의 비난 섞인 질문을 받은 떼르 가주가 퍽 난처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펠페림 가주께서 뭔가 오해를 하는것 같은데... 난 단 한 번도 2와4사이월 가문을 몰살시키자 말한 적이 없네만."

"...?"

"오히려 난 그들을 보호해야 하지 않겠느냐 말하려던 참이네."


엥.

당신이?

왜?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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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9. 실패의 이유 22.10.17 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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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22.10.05 5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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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91. 맨날 술이야 22.10.03 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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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 아님 아무튼 아님 22.09.26 47 2 12쪽
87 87. 끼잉 22.09.22 46 3 12쪽
86 86. 오 오오옷 이 맛은 22.09.21 60 3 12쪽
85 85. 구라 치다 걸리면 22.09.20 42 3 12쪽
84 84. 조금만 나에게 힘을 나눠 줘 +1 22.09.19 4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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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82. 넌 이미 함정에 빠져 있다 22.09.14 47 2 12쪽
81 81. 이젠 가망이 없어 +1 22.09.13 5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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