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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11,425
추천수 :
692
글자수 :
1,360,283

작성
22.09.14 12:00
조회
47
추천
2
글자
12쪽

82. 넌 이미 함정에 빠져 있다

DUMMY

물감으로 된 세상.

사방이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가득했던 곳은 어느새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헉. 헉."


치안군의 대장은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하! 하하! 이제... 이제는 어쩔 셈이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레 일번대의 명을 따르는 물감 대부분은 파편이 쏘아낸 붉은 광선에 말라 비틀어진 상태였다.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눌어붙어있는 물감은 더 이상 이레의 명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제대로 발 디딜 곳도 없어진 상태.

이센 부대장의 운동 마법에 의지하여 날고 있는 이레가 말했다.


"하악... 하악. 무식하게 힘만... 넘치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녀나 이센의 몸에는 비교적 가벼운 상처만 남아있을 뿐이었지만 몸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하여 슬슬 마법 탈진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편이 한 일은 간단했다.

칼날이 제 몸을 찌르던 말던, 불에 몸이 타건 말건.

그는 그저 제 자리에 서서 붉은 광선을 내뿜은 것이다.


처음에는 이레와 이센 두 사람을 노리더니 나중에는 아예 주변 물감을 없애겠다고 고쳐먹었는지 물감을 없애기 시작했다.


붉은 광선.

제다카로 쓸 수 있는 정의의 숨결이라는 마법과 그 모양새나 다른 특징들이 비슷했으나 그 위력이나 범위 등은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숨을 고른 파편은 다시금 힘을 끌어모았다.

검은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


"슬슬 끝내자 좀!"


키이이이잉


"다시 온다! 준비하거라!"

"말 안해도 알아요! 꼰대!"


콰과과과광


물감이 사라진 공간에 자리한 것은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파편이 쏘아낸 붉은 광선은 어둠을 가르며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끄응!"


이센이 힘을 짜내 손을 움직였고 그에 맞춰 두 사람의 몸뚱이가 간발의 차로 붉은 광선을 피했다.


치이이익


그들 뒤로 있던 마지막 물감이 광선의 열기에 끓어오르더니 힘을 잃고 눌어붙고 말았다.


"저게 마지막 물감이었어요. 꼰대. 다른 수가 있는 거예요?"

"..."


세상을 이루던 물감은 다 눌어붙어 힘을 잃었고 이레가 따로 준비한 특별한 물감 역시 다 쓴지 오래였다.

이제는 이레가 공격할 다른 수단이 모두 없어진 셈이다.

이레가 아무런 답이 없는 것을 본 이센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나마 위안삼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파편 역시 힘을 많이 소모했는지 붉은 광선의 지속시간이 굉장히 짧아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쪽 역시 공격할 수단이 마땅히 없기는 마찬가지.

짧게나마 공격할 수 있는 파편쪽이 유리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파편이 힘을 추스리는 사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이센 부대장은 이레 대장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쯧. 그래도 나보다는 꼰대가 사는 게 맞죠. 제가 어떻게든 저 파편 쪼가리는 막을테니 여기서 탈출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


죽음을 각오한 얼굴.

그는 제 목숨을 희생해 이레를 살리려는 것이었다.


이센의 손을 따라 여기저기 눌어붙은 물감들이 그의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찐득하게 말라 비틀어진 물감이 뭉치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구체를 이뤘다.


"흐읍!"


그가 힘을 주자 물감으로 이뤄진 커다란 구체가 압축되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작아진 구체.

힘을 잃었다고는 해도 그 안에 이레의 힘을 담고 있던 물감이다.

그런 물감을 압축하면 할 수록 안에 잔존한 이레의 힘이 요동치며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충심이네. 부하를 아주 잘 뒀어!"


파편은 질색을 하며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너네 둘은 내 대부분의 힘을 소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갈갈이 찢어버리겠다고 다짐을 했거든."


키이이이이이잉


파편 역시 이센이 만들고 있는 것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제 힘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이전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힘이 모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이센은 다시 한 번 힘을 줘 구체를 압축했다.


"흐아아압!"


우그그그극


괴상한 소리와 함께 줄어든 구체는 이제 그의 주먹만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너넨 여기서 내 손에 죽는거야!"


키이이이이이이잉


이센이 준비를 마친 것과 동시에 파편 역시 준비를 마쳤다.

마법을 재현할 때 이뤄지는 집광현상처럼 이윽고 파편의 손 끝에서 커다란 구체를 이룬 검은 힘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물감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은 공간 속, 세상을 비추는 큰빛이 떠오르듯 시뻘건 구체가 어둠을 밝히며 떠올랐다.


과연 파편의 선언대로 제 힘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는지 치안군 대장 몸 주위로 일렁이던 검은 기운이 눈에띄게 사그라들어 있었다.


"거 파편 쪼가리께서 무리하시는 거 아닌가 몰라!"

"닥치고 뒈져."


거대한 붉은 구체와 작디작은 물감으로 이뤄진 구체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이윽고 두 개의 구체가 맞닿은 순간.


콰아아아앙


이센이 쏘아낸 압축된 구체가 굉음을 내며 터졌다.

구체에서 폭발하듯 터져나온 힘이 붉은 구체를 뚫어내기 시작했다.


"칫."


아니.

뚫린다 생각했던 붉은 구체는 그 크기만 조금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건재한 상태였다.

막기는 글러먹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센은 자신이 항상 꼰대라 부르던 노인을 돌아봤다.


"빨리 도망치라니까 뭐해. 꼰대. 하여간 말은 지지리도 안 들어..."


덮쳐오는 붉은 구체를 배경삼아 이센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또륵 하고 흘러내렸다.


"이센아..."


눈물을 흘리는 그를 바라보는 이레의 표정은 뭔가 묘했다.

딱히 슬퍼하는 것 같지도, 그렇다고 분노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센은 이레가 언제 이런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헛짓거리를 할 때나 보여주던 표정.

그래.

한심한 부하놈을 보며 골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이었다.


"나중에 연극이라도 할 셈이야? 연기가 과하다 이놈아."


그녀의 말에 울먹거리던 그의 표정이 싹 달아났다.


"아 거. 눈치 좀 챙겨요. 그러니까 맨날 꼰대 소리를 듣는 거 아니야."

"시끄럽고 빨리 이리로 오기나 해라."

"눼눼."


붉은 구체가 이센을 덮치기 직전.

이센은 이레에게 날아가 옆에 붙었으며 그와 동시에 이레가 품에서 꺼낸 물감통을 공중에 흩뿌렸다.

검은색의 물감이 그들을 휘감았다.


콰아아아아아


한 발 늦게 두 사람이 있던 곳을 덮친 붉은 구체는 그대로 어두운 곳에 처박히고 말았다.


***


"허억... 허억."


파편은 자신이 온힘을 다해 쏘아낸 붉은 구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물감이 사라지고 남은 어두운 공간에 처박힌 붉은 구체는 서서히 그 크기를 줄이며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


잠깐 태운다고?

위화감을 느낀 파편은 붉은 구체 주변을 살폈다.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는 붉은 구체 주위로 검은색 액체가 눌어붙고 있었다.


"검은색... 물감? 이런 빌어먹..."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파편이 다급히 힘을 끌어모으려는 순간.


푸욱


난데없이 뒤에서 튀어나온 검은 가시가 그의 목을 꿰뚫었다.


"커헉... 어... 어떻게."

"2차전 시작이다. 파편 쪼가리야."


이센 특유의 이죽거리는 말투.

파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돌아본 곳에는 이레와 이센이 함께 있었다.



푸부북


"이놈아 뭘 시작이야. 끝내야지."


이레가 손을 휘적이자 어둠을 담당하고 있던 검은 물감이 그녀의 손을 따라 불쑥 솟아나 파편의 몸을 난도질 했다.


***


대현자님이 파편이라니?

그것도 가장 거대한 파편이라니?


과거 스승님의 기억에서 본 초대 대현자가 한 일을 생각해보면 대현자가 파편인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초대 대현자는 '작은 용' 위에 이미 죽은 '진짜 용'의 육신을 덧입혀 용을 부활시킨 전력이 있는 이다.

어쩌다가 미친 것인지는 차치하고라도 그런 불가해한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부터 초대 대현자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래.

초대 대현자 역시 파편이라면 용을 되살리는 것도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은 초대의 경우고 이번 대의 대현자는 다르지 않은가?

이번 대의 대현자는 자신이 넷의 손에 죽을 것을 알고도 넷을 도와주려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카밀로테를 꿈꾸는 말 그대로 선한 자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파편이라는 말인가?

동시에 넷은 그녀의 머리에 줄곧 남아있던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냈다.


어째서 혁명단은 선인이라고 생각되는 대현자님을 죽이려고 하는가?


"혁명단이 대현자님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대현자님께서 파편이기 때문이었군요."

"맞아요."


너무 많이 나간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대현자님이 넷, 자신을 차기 대현자로 세우려는 이유 역시 파편인 스스로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혁명단의 목표도, 대현자님의 기행도,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아니.

그나저나 이런 사실은 그냥 빨리빨리 알려주면 안되나?

왜 나한테만 숨기는 거냐고.

저봐 저봐.

표정보니까 듀시아 쟤는 이미 알고 있었네.

아오.


넷은 또 다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잠시 덮어둔 채 질문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현자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이 죽길 바라는 분이세요. 그러니 저를 적들의 손에서 지키려고 하시는 거고. 그러니 이 목걸이도 주신 거잖아요."


그녀는 엄청 비싼 루비 목걸이를 사람들에게 보이며 물었다.


"그런 분이 이번 습격에 개입한다면 더 좋은 일 아닌가요?"

"넷양. 유스 유람이라는 파편을 상대해봤다고 했죠?"

"네... 아."


그 한 번의 질문에 넷은 이트나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파편을 몸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파편에 먹히기도 하고 또 반대로 제 의식을 유지하기도 한다.

높은 확률로 지금 개입해오는 대현자는 파편에 먹힌 상태일 것이라는 뜻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넷은 그제야 지금 벌어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깨달았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등장해선 안될 대현자라는 파편이 등장한 것이다.

더군다나 가장 거대한 파편이라니 분명 그 힘은 유스 유람을 가볍게 능가할 것이고 말이다.


에우랄은 대현자와 관련된 경우의 수를 읽어낼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가 본 경우의 수 중 까맣게 되어 볼 수 없는 경우는 없앴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대현자가 등장해서는 안되었다.


벌어져선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다.

대현자는 혁명단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다.


"이모... 가면 안돼..."


에우랄은 불안한 얼굴로 율레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이냐?"


장로의 물음에 이트나가 중얼거렸다.


"저희가 우선해서 지켜야하는 사람은 옛말의 아이, 넷양이죠. 그리고 넷양은 아직 대현자와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야기의 흐름상 이대로 잠시 위험에서 피하자는 결론이 날 것만 같았다.


넷의 눈앞으로 지금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딜람, 세슈람.

이레 일번대 대장과 이센 부대장.

사번대 대장.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사번대 대장인 세슈람의 아버지에게는 목숨빚을 지기도 했다.


넷이 도무지 막을 수 없는 존재일 것이 분명한 대현자라는 거대한 파편이 난데없이 이번 전투에 끼어든 상태.

그런 상황에서 과연 자신이 전투에 참가한다고 해서 과연 대현자로부터 다른 이들을 지킬 수는 있을까?

다른 이들은 커녕 제 목숨을 지킬 수는 있을까?


차라리.

잠시 몸을 피했다가 나중에 복수를 하는 것이 더 현실성 있는 계획 아닐까?


어느새 넷은 역겹기 그지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역겨움에 놀란 넷이 양손을 들어올려 제 뺨을 때렸다.


짜악!


"넷. 왜 그래!"


깜짝놀란 듀시아가 다가와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넷은 그가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제 뺨을 때리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정신차려 미친년아."


넷의 기이한 행동에 주변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후우... 바로 구하러 가죠. 제게 파편을 죽일 방법이 있어요."


트리아트 셋, 스승님께서 목숨을 희생하여 만들어 낸 빛의 검.

자신의 목숨을 건다면 용은 아니더라도 파편 정도는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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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2. 민낯에 자신 있는 편 22.10.20 52 2 12쪽
101 101. 빛이 어둠에 비치되 22.10.19 44 2 11쪽
100 100. 도입부는 빠르고 힘차게 +1 22.10.18 55 1 12쪽
99 99. 실패의 이유 22.10.17 43 2 12쪽
98 98.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22.10.13 49 2 12쪽
97 97. 악으로 깡으로 22.10.12 42 2 12쪽
96 96. 내가 누군지 아니 22.10.11 4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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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91. 맨날 술이야 22.10.03 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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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89.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22.09.28 49 2 12쪽
88 88. 아님 아무튼 아님 22.09.26 47 2 12쪽
87 87. 끼잉 22.09.22 47 3 12쪽
86 86. 오 오오옷 이 맛은 22.09.21 61 3 12쪽
85 85. 구라 치다 걸리면 22.09.20 42 3 12쪽
84 84. 조금만 나에게 힘을 나눠 줘 +1 22.09.19 46 3 12쪽
83 83. 한 번 봐준다 22.09.15 48 2 11쪽
» 82. 넌 이미 함정에 빠져 있다 22.09.14 48 2 12쪽
81 81. 이젠 가망이 없어 +1 22.09.13 5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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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79. 가족과 함께하는 밀도 있는 시간 22.09.08 50 2 12쪽
78 78. 아가리 싸움꾼 22.09.07 52 2 12쪽
77 77. 왕 신 장군 황제 대장 22.09.06 3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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