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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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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7.01 00:42
연재수 :
256 회
조회수 :
11,560
추천수 :
694
글자수 :
1,372,149

작성
22.10.3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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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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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07. 이것들은 회의만 주구장창

DUMMY

카밀로테의 가을은 건조하다.

여름에는 곧잘 내리던 비가 이상하게 가을이 되면 도통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더 웃긴 것은 가으내 없던 비 소식이 꿈이었다고 말하듯 겨울에는 또 눈을 펑펑 쏟아내는 것이다.


짧은 계절이지만 가을의 이런 특징에 빗대어 카밀로테 사람들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을 보고 가을같은 사람이라고 부르고는 한다.



투둑


메마른 계절이라는 본분에 맞지 않은 소리가 카밀로테를 적시고 있었다.

때늦은 비였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며.

빗소리와 다음 빗소리 사이, 그 길고 긴 틈 사이로 피어오르는 비 냄새는 괜스레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내리는 것도, 내리지 않는 것도 아닌 비를 보고있자니 꼭 울음을 참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서러움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우는 소리를 내지 않겠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아이 말이다.


울음을 참는 아이를 보듯, 보고 있으면 속이 퍽 상하는 날씨 가운데.

카밀로테의 모든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나와 강변을 따라 줄지어 서있었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누군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와 함께 오르디나 가문 악사들의 연주가 함께 이어졌다.

길게 늘어지는 음율에 맞춰 목함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장례 행진이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치안군 본대와 별대 합쳐 총 152명 중 139명이.

치안군에 동조하여 따라나섰던 일반인 54명이.

정규군 칠번대 총 187명 중 98명이.

그들을 이끌던 세유 세슐, 칠번대 대장이.

총 292명이 죽었다.


장례 행진은 이들을 기리는 행진이었다.


"흑... 흐윽."


본격적으로 행진이 시작되니 여기저기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우중충한 날과 썩 어울리는 행사였다.


대광장에서 시작된 행진은 열두 마을을 다 돌고 마침내 데클락 밑자락에 다다랐다.

품에 목함을 든 유족들은 절벽을 따라 나있는 계단을 따라 데클락에 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고 오르니 호수가 나왔다.


데클락에서 카밀로테로 이어지는 절벽은 엄밀히 말해 층층이 나뉘어진 계단 구조였다.

한 층에서 다른 층까지의 거리가 굉장히 멀어 그 자체로도 하나의 절벽임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어쨌든 걷다보면 중간중간 쉴 만한 공간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오는 널따란 공간은 대부분 호수로 되어있다.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가 호수를 이루고 여기서 넘치는 물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구조였다.


호수를 둘러싼 가장 자리를 따라 유족들이 둘러섰다.

정상까지는 한참이나 남았지만 처음부터 이들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절벽을 오른 것이 아니었다.

카밀로테 전통대로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높은 곳에서 뼛가루의 일부를 날리는 것.


원래는 데클락 정상에서 행했던 전통이지만 거기까지 인간의 힘으로 오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것이었고 그렇다고 대현자가 일일이 공간 이동을 시키기에는 시간도 힘도 너무 많이 들었다.

결국 약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 현재의 방식이었다.

고작 한 층을 올랐다고 해도 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으며 뼛가루를 날리기에는 충분한 높이였다.


데클락에 오른 유족들은 모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세상을 지었다는 권능자를 향한 기도였다.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지은 권능자여.

이 영혼을 당신의 곁에 두소서.

당신의 평안의 품에 품으소서.


사랑하던 자의 안녕을 기리는 기도가 끝난 유족들이 차례차례 목함을 열었다.

안에 덮힌 깨끗한 흰 천을 걷어내자 소복이 쌓인 뼛가루가 나왔다.

흰 가루를 한 움큼 쥔 이들이 절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휘이이잉


절벽을 타고 부는 바람은 천천히 펼치는 손이 무색하게 손 안에 있는 가루를 거침없이 빼앗아갔다.

희게 물든 바람은 너무도 급하게 남은 자들에게서 멀어졌다.

작별을 고할 시간도 없는 너무도 급한 이별이었다.


***


죽은 자들을 위한 장례가 끝난 후.

천년서고에 가주들이 모였다.

가주 회의를 위해서였다.


다만 이전과 다르게 천년 서고의 입구가 열린 채였다.


"일단 저희가 해야할 일은... 하..."


펠페림 가주가 입을 열었지만 그녀라고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우선해서 처리 해야하는지 명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입을 연 것은 그녀가 현재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가문의 가주였기 때문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그녀가 언제 입을 여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무겁게 꽂히는 시선 속에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도대체 어쩌다가..."


작은 용과의 일전이 있던 날.

가주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소동이 이미 끝나갈 무렵이었다.


끝나지 않을 답도 없는 회의를 한창 이어가는 중에 외부에서 비상을 알리는 신호가 들어왔다.

천년서고에서 나와보니 카밀로테에 용이 출현했다는 믿기 힘든 보고가 이어졌다.

가주들은 서둘러 용이 출현했다는 곳으로 떠났다.


하지만 가주들은 마음만큼 빠르게 2와4사이월 마을로 갈 수가 없었다.

다급한 와중에 떼르 가주가 갑자기 혼절을 하였기 때문이다.

급한대로 일단 뵈나 가주를 남겨두고 남은 가주들은 먼저 마을로 떠났으나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상황이 이미 마무리 된 이후였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완전 무장한 정규군 다섯 부대였다.

그들은 사태 파악을 위해 2와4사이월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중 유독 부산스러운 부대는 오번대였다.

그들은 마을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마을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죽었거나 다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참상 한 가운데에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대현자의 행색을 한 자가 땅에 쓰러져 있었고 그 앞으로 빨간 머리의 소녀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소녀는 손에 환하게 빛나는 검을 들고 있었다.


가주들은 빠르게 자초지정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태를 파악하면 할수록 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분노에 이성을 잃은 치안군을 비롯한 무리가 2와4사이월 마을을 초토화 시켰으며.

트리아트 셋을 따르는 혁명단이라는 단체가 등장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내용은 카밀로테에 사람이 아닌 존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대현자님 안에는 파편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용에게서 비롯한 존재로 사람의 몸에 기생해서 살아가죠.


설명을 한 사람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떼르 이트나 학교장이었다.


- 문제는 파편이라는 존재가 대현자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속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람은 유스 유람, 치안군 대장, 대현자 세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높은 확률로 떼르 가주의 몸 속에도 파편이 살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첨언하였다.


- 대현자님 속에 있던 파편은 가장 오래된 파편입니다. 트리아트의 넷. 저 아이가 그런 파편을 없앤 여파로 다른 파편들 역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떼르 가주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트나가 내놓은 답변이었다.

아주 근거 없는 소리도 아닌 것이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합해 봐도 빨간 머리 여자아이가 작은 용을 끝장낸 시점과 떼르 가주가 쓰러진 시점이 겹쳤다.


이 과정에서 떼르 가주가 이번 사건의 공모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는 현재 치안군 본대의 감옥에 투옥된 상태였다.

떼르 가주가 없으니 가주 회의에서 펠페림 가주에게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한담...'


펠페림 가주 역시 혁명단의 일원인 만큼 파편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현자가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이트나의 말대로라면 넷을 차지하고자 하는 대현자는 마지막까지 제 정체를 숨겨야 했다.

예고도 없이 등장한 위협은 과연 무시무시했다.


만약 옛말의 아이마저 파편을 저지하지 못했다면...

이후의 카밀로테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콰앙


펠페림 가주의 상념을 깨뜨리며 누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현자... 아니. 뵈네 이트나. 그년을 언제까지 살려둘 셈이지?"


성격이 급한 은우 가주였다.

할 말이 많은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는지 그를 시작으로 다른 가주들이 시끄럽게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게 우선인가? 대현자의 자리를 언제까지고 비워둘 수 없는 노릇. 대현자를 한시바삐 세워야 하네."

"도대체 누구를? 그보다는 모든 카밀로테인들에 대한 검사가 우선이야! 파편이라는 것들이 더 있을 수도 있잖은가!"

"당장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죠."


하...

그래.

옛말의 아이가 훌륭하게 제 역할을 다해 가장 오래된 파편을 없앴으니 그녀도 자신이 맡은 일을 다해야 했다.


당장 떼르 가주와 함께 감옥에 투옥되어있는 대현자, 아니, 전 대현자의 처벌 문제.

공석이 된 대현자 후보의 물색.

혹시 남아있을 파편의 색출 작업.

마을 복구.

민심 안정화 등등.


이 외에도 트리아트 셋을 따르는 혁명단이라는 단체의 처우도 문제였다.

이들이 작은 용을 막아낸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그것과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아무튼.

처리할 일은 산더미인데 비해 이 중에서 무엇을 우선해서 처리해야 하는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당장 펠페림 가주가 골치를 썩고 있는 부분이었다.


짝짝짝


"일단 모두 진정하시죠."


박수를 친 사람은 호위군의 대장이었다.

본래 가주 회의는 가주만이 참석하지만 현재 카밀로테는 지도자를 잃은 상황.

정확히 말하면 지도자가 사람이 아닌 존재였던 전무후무한 상황이다.


가주들은 자신들 뿐 아니라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은 물론 이번 사건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을 모두 불러 조언을 얻기로 한 것이다.

현재 심각한 부상으로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천년 서고에 자리한 사람은 다음과 같았다.


호위군 대장.


정규군.

떼르 유드바 이번대 대장.

뵈나 디넷 오번대 대장.

펠페림 유날 육번대 대장.


치안군.

트리아트 율레 부대장.


마법 학교.

떼르 이트나 학교장.


집행처.

떼르 이시아 집행관 대행.


모아놓고 보니 혁명단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리 파편의 존재를 파악해 대비하고 있던 단체인만큼 그들의 조언은 필요했다.

다만 의외인 것은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그들이 줄곧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호위군 대장이었다.

사실 호위군은 대현자의 공간 이동 마법이 없다면 데클락 정상에 갇혀있는 자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번 사태에서도 파편이 호위군을 일부러 떼어놓고 움직인 덕에 호위군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호위군 대장이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

갑작스레 사라진 대현자를 찾기 위해 데클락 정상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까딱하면 바람에 날려 다른 곳으로 날아갈지 모를 일이고 그 긴 거리를 내려오는 내내 바람 마법을 유지하는 것도 보통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그는 호위군 대장이라는 자리를 거저 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무사히 카밀로테에 내려왔고 뒤늦게 대현자와 파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의외로 그는 파편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였다.

대현자의 압도적인 힘에 대해서 설명이 된다며 말이다.


하여튼.

가주들을 진정시킨 그가 입을 열었다.


"누가 뭐래도 카밀로테는 대현자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입니다."

"그건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이지. 하지만 그게 지금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지금 누구 하나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황이야. 그런 상황에서 다가올 연합전에서 용을 물리칠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마법사를 찾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누군가의 물음에 호위군 대장은 의외로 쉽게 답했다.


"그 모든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고...?


"트리아트의 넷. 작은 용을 죽인 아이 말입니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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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8. 장난 그만해 진짜 재미없어 +1 22.11.01 35 1 12쪽
» 107. 이것들은 회의만 주구장창 22.10.31 50 2 12쪽
106 106. 개벽 22.10.27 43 2 12쪽
105 105. 내 옆에 계속 있어 22.10.26 148 1 12쪽
104 104. 왜 이제 왔어 기다렸잖아 22.10.25 45 2 12쪽
103 103. 검은 용이 울부짖었다 +1 22.10.24 38 2 12쪽
102 102. 민낯에 자신 있는 편 22.10.20 53 2 12쪽
101 101. 빛이 어둠에 비치되 22.10.19 44 2 11쪽
100 100. 도입부는 빠르고 힘차게 +1 22.10.18 55 1 12쪽
99 99. 실패의 이유 22.10.17 44 2 12쪽
98 98.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22.10.13 50 2 12쪽
97 97. 악으로 깡으로 22.10.12 42 2 12쪽
96 96. 내가 누군지 아니 22.10.11 41 2 12쪽
95 95.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22.10.10 39 3 12쪽
94 94.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22.10.06 44 2 12쪽
93 93.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22.10.05 58 1 12쪽
92 92. 누구인가 누가 소리를 내었어 22.10.04 45 1 12쪽
91 91. 맨날 술이야 22.10.03 42 2 12쪽
90 90. 그 느낌적인 느낌 느낌 22.09.29 56 2 13쪽
89 89.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22.09.28 49 2 12쪽
88 88. 아님 아무튼 아님 22.09.26 47 2 12쪽
87 87. 끼잉 22.09.22 48 3 12쪽
86 86. 오 오오옷 이 맛은 22.09.21 61 3 12쪽
85 85. 구라 치다 걸리면 22.09.20 42 3 12쪽
84 84. 조금만 나에게 힘을 나눠 줘 +1 22.09.19 46 3 12쪽
83 83. 한 번 봐준다 22.09.15 49 2 11쪽
82 82. 넌 이미 함정에 빠져 있다 22.09.14 48 2 12쪽
81 81. 이젠 가망이 없어 +1 22.09.13 52 2 12쪽
80 80. 산들바람에 바다가 마르고 22.09.12 51 2 12쪽
79 79. 가족과 함께하는 밀도 있는 시간 22.09.08 5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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